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575
575화 영제의 자리를 대신?
엄청난 목적을 하나 심어주었으니 앞으로 모용가악이 벌이는 모든 일은 목적을 중심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는 곧 대연을 심각한 내분의 도가니로 빠뜨리게 될 것이다.
대연 신조의 폐태자에 대한 정보는 이미 오래전에 살펴본 적이 있다.
그는 군사적인 측면에서 꽤 훌륭한 재능을 가진 사람이었다.
물론 가희에 비하면 한참 부족한 수준이긴 하지만, 그건 그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가희가 말도 안 될 정도로 강하기 때문이다.
어쨌든 여기에 다른 재능까지 모두 겸비하고 있었기에 폐태자는 과거 인정받는 태자였었다.
폐태자는 가희를 이길 수 없자 청혼을 하여 그녀를 자신의 사람이자 대연의 사람으로 만들려 했다.
중간 과정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정말로 폐태자의 청혼은 받아들여졌다.
만약 당시의 폐태자가 황위를 이어받았다면 대연 신조는 지금과는 많이 달랐을 것이다.
하지만 누구에게 원한을 진 것인지, 아니면 단순히 대연 신조의 사람들이 똑똑한 사람을 황제로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는지는 모르지만 결국 그는 폐태자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 * *
다시 밖으로 나온 진양은 모용가악이 깨어날 때까지 조용히 기다렸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모용가악이 이성을 회복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기절한 척 연기하고 있었다.
“이봐요. 어설픈 연기 하지 말고 이만 일어나요. 다 알고 있으니까.”
모용가악은 그제서야 눈을 떴다.
머리가 깨지는 듯한 고통이 느껴졌지만, 그는 조용히 진양을 노려보며 말했다.
“도대체 내게 뭘 원하는 겁니까?’
“첫째, 당신을 살려준 대가로 용수수정을 받아야겠습니다.”
“용수수정? 좋습니다. 가져가시지요.”
모용가악은 의외로 순순히 진양에게 용수수정을 넘겨주었다.
“둘째, 대연 신조로 돌아갈 수 있게 해 주는 대가로 제 부탁을 한 가지 들어주셔야 합니다.”
“뭐라고요? 날 대연 신조로 돌아갈 수 있게 해 주겠다고요?”
모용가악은 멍한 얼굴로 한참 동안 진양을 쳐다보았다.
“갑자기 왜 이런 호의를 베푸는 겁니까?”
“마음 같아선 죽이고 싶지만 간신히 참고 있는 거니까, 괜히 마음 바뀌기 전에 대답 잘하는 게 좋을 겁니다.”
“좋습니다. 그래서 뭘 부탁하려는 겁니까?”
모용가악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지금 이 순간 가장 중요한 건 어떻게든 대연 신조로 돌아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돌아가자마자 곧바로 대연 신조의 대군을 국경 근처에 주둔시키세요. 어떤 방법을 쓰던 상관 없고, 원한다면 전쟁을 벌여도 좋습니다. 제가 원하는 건 그저 군대를 국경 근처에 주둔시키는 것뿐이니까요.
하겠다면 곧바로 대연 신조로 보내주도록 하고, 이전에 있었던 은원도 없던 일로 쳐주겠습니다.”
“그게 전부입니까?’
“이게 전부입니다. 이 정도도 못 하겠다면…….”
“아닙니다. 하겠습니다.”
모용가악은 더 이상 고민할 것도 없이 진양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어려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수락한 것도 있지만, 지금으로선 별다른 선택지가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기절시켜.”
진양이 묵양에게 눈짓하며 말했다.
“아니, 이게…….”
입을 떼기 무섭게 퍽- 하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묵양은 다시 기절해버렸다.
“대연 신조 국경 안쪽까지만 데려다주고 와. 거기부턴 알아서 돌아갈 테니까.”
묵양은 고개를 끄덕이며 배 속 공간에 모용가악을 집어넣었다.
그리고 그렇게 떠난 묵양은 몇 시진 지나지 않아 다시 돌아왔다.
“자, 그럼 우리도 이만 돌아가자.”
묵양이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정말로 살려줄 셈이야?”
“죽여서 좋을 건 없잖아.”
“좋을 게 없다니?”
“…….”
진양은 더 이상 대꾸하기 싫다는 듯 고개를 돌려버렸다.
* * *
대연 신조 국경 너머 이천 리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어느 한 동굴.
모용가악이 얼굴을 잔뜩 찌푸린 채 머리를 부여잡으며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는 경계 가득한 눈빛으로 주위를 살폈다.
아무도 없다는 것을 재차 확인한 뒤에 황금 부전을 꺼내 들었다.
부전에서 은은한 빛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곧바로 사용이 가능하다는 뜻이었다.
“그게 사실이었다니.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날 보낸 거지?”
그는 진양과의 대화를 곱씹으면서도 손은 부지런히 부전을 작동시켰다.
부전에서 강렬한 황금빛이 흘러나와 모용가악을 감쌌다.
이어서 번쩍- 하며 밝은 빛을 마지막으로 모용가악의 모습은 완전히 사라졌다.
* * *
모든 목적을 달성했으나 분신은 스스로 사라지지 않았고, 묵양과 함께 이도로 돌아왔다.
이도에 도착하기 무섭게 묵양이 배 속에 있던 분신을 꺼내놓으며 말했다.
“이 녀석, 그놈을 죽이지도 않고 그냥 살려서 보내버렸어. 어떻게 된 건지는 직접 물어봐.”
“뭐라고?’
진양이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분신을 쳐다보았다.
“뭐, 하나씩 설명하자면 좀 긴데. 귀찮으니까 직접 살펴보도록 해.”
이 말을 마지막으로 분신은 펑- 하는 소리와 함께 연기가 되어 사라져버렸다.
분신이 사라지며 그가 가지고 있던 기억이 진양의 머릿속으로 흘러들어왔다.
잠시 뒤.
진양이 머리카락 한 올을 뽑아 다시 분신을 소환해냈다.
“무슨 생각으로 이런 거야?”
“우리는 한 몸이잖아. 내 생각은 곧 네 생각이라는 거 몰라서 묻는 거야? 네가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없다면 나도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 거라고.”
틀린 말은 아니었다.
확실히 진양이 생각한 적 없는 일을 분신이 스스로 저지를 리는 없다.
사실 모용가악을 직접 죽이는 것만큼 간단한 해결 방법은 없다.
그를 죽이면 대연 신조의 내분은 끝나게 될 것이고, 다시 국력을 한 곳으로 집중시킬 수 있게 된다.
그렇게 되면 대연 신조는 분명 대영 신조를 상대로 전쟁을 벌일 것이고, 그러다 보면 언젠간 영제의 본체가 사라졌다는 것이 밝혀지게 된다.
이렇게 되면 대영 신조의 기세는 크게 기울게 될 것이며, 가지고 있던 영토도 조용히 내어주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 방법은 열매를 맺을 때까지 너무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현재의 모든 상황을 종합하여 고려했을 때, 모용가악의 마음속에 새로운 목표를 심어준 뒤 살려 보낸 건 장기적으로 보면 매우 잘한 일이다.
대연 신조는 내부 암투에 정신이 팔려있기 때문에 한동안은 대영 신조와 격렬하게 싸울 일은 없다.
이건 영제가 가장 바라는 결과다.
이를 통해 자신의 힘을 더욱 온전하게 지켜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지금으로서 유일한 선택지는 대영 신조의 조대(朝代)를 바꿔버리는 것.
“이봐, 본체. 그래도 방향은 제대로 정해놓고 가야 하는 거 아니야? 태자와 조왕, 그리고 주왕 중 누구든 자리를 차지하려면 마찬가지로 똑같이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할 텐데. 누굴 도울 생각인지는 정했어? 아니면 아무도 안 도와주고 전부 다 나락으로 보내려는 거야?
이들 중 누군가 대제의 자리에 앉게 되면 영제는 신조 국운의 근간을 잃게 되며 일생을 일념의 바닷속에서 혈라마와 싸우는 운명을 맞게 되겠지. 그런데, 그렇게 되면 네게 뭐가 이득이 되는데? 기껏해야 위험 요소 하나 제거하는 게 전부일 거잖아.
그건 너답지 않은걸? 분명 이렇게까지 고생하는 이유가 있을 거 아니야. 그러니까 그냥 전부 다 쓸어버리고 가희를 여제로 만들어버리면 되잖아. 그럼 굳이 매번 시체를 만지고 다닐 필요도 없이 손쉽게 주도정을 배울 수도 있을 거고.
아무리 생각해도 이것보다 완벽한 계획은 없는 것 같은데?”
한참 떠들어대던 분신을 향해 진양이 손을 내밀었다.
“젠장! 또 한참 이용해 먹기만 하고 이러기냐!”
진양은 무표정으로 손가락을 탁- 하고 튕겼고, 분신은 펑- 하는 소리와 함께 사라졌다.
옆에서 조용히 지켜보던 묵양이 한마디 했다.
“진양, 내가 듣기에도 분신이 한 말이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은데. 저 녀석, 아무래도 너보다 더 똑똑한 거 같아.”
확실히 분신이 한 말은 이전에 진양이 구상했었던 계획이 맞았다.
그리고 지금까지 세운 계획 중에 가장 완벽한 계획이기도 하다.
위험 요소도 제거하고, 자신에게 유리한 상황도 펼치고.
이보다 더 완벽한 계획이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완벽한 계획인 만큼 달성하기 어려운 계획이라는 사실도 부정할 수는 없다.
한참을 고민하던 진양이 자리를 털고 일어나며 말했다.
“묵양, 잠깐 가서 가희 소저 좀 만나고 오자.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다녀와야 해.”
묵양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진양을 따라나섰다.
* * *
대제희부 앞.
두 사람은 대제희부를 드나드는 계집종을 따라 조용히 함께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대제희부 깊은 곳에 있는 한 화원에서 한참 책을 읽고 있는 가희를 발견했다.
묵양이 그녀에게 백 장 정도 떨어진 곳까지 접근했을 무렵.
갑자기 가희의 모습이 흐릿해지며 사라졌다.
그리고 다시 나타난 그녀는 한 손으로 묵양의 뒷목을 눌러 제압하고 있었다.
이어서 그녀의 손에서 뿜어져 나온 빛의 그물이 묵양을 칭칭 감아버렸다.
그러자 묵양의 몸에서 불꽃이 튀어 오르며 혈육 인형 변장이 깨지고 본모습이 나타났다.
“저 기억 안 나세요?”
묵양은 황급히 그녀를 말렸다.
그녀가 여전히 모르겠다는 듯한 표정을 짓자 황급히 한마디 보탰다.
“진양이 보내서 온 겁니다.”
하지만 가희는 여전히 묵양을 칭칭 감은 그물을 풀어줄 생각이 없는 듯한 모습이었다.
안 되겠다 싶었는지 묵양은 자신을 감은 그물을 강제로 끊어버렸다.
그리고 재빨리 배에 달린 뚜껑을 열어 안에 있던 진양을 밖에 꺼냈다.
진양을 보면 오해를 풀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가희 소저, 진정하세요. 이 친구는 제 첩신호위입니다. 상의드릴 일이 있어서 찾아왔어요.”
가희는 그제서야 손을 멈추었다.
그녀는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진양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말했다.
“볼일이 있으면 그냥 찾아오면 되지 뭐하러 수상한 티까지 내가며 몰래 찾아오는 거죠? 그나마 이 정도로 끝나서 다행이지. 괜히 다른 사람의 이목이라도 끌면 어쩌려고.”
“다른 사람의 눈에 띄면 안 돼서 어쩔 수가 없었네요. 혹시 조용히 대화를 나눌 만한 곳은 없을까요?”
“따라오세요.”
진양과 묵양은 가희를 따라 조용한 서재로 왔다.
묵양은 도착하기 무섭게 금제를 펼쳐 이곳을 완전히 뒤덮어버렸다.
“좀 어때요? 이젠 좀 적응됐나요?”
“너무 무료한 것만 빼면 다 좋네요. 그래도 일전에도 한참을 조용히 지냈던 적이 있어서 그런지 금방 적응이 되네요.”
가희가 편안하게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비록 정식으로 봉호가 회복된 건 아니었지만, 어쨌든 그녀는 다른 사람들에겐 매우 어려운 대제희라는 존재다.
하지만 진양 앞에서는 여전히 가희라는 존재였다.
“좀 묻고 싶은 게 있어서요.”
“물어보세요. 대답할 수 있는 거라면 뭐든 대답해드릴게요.”
진양은 한참을 시간 끌고 나서야 입을 열었다.
“혹시 영제의 자리를 대신할 생각은 없으신가요?”
가희는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뜨며 진양을 바라보았다.
진양은 진지한 얼굴로 눈도 피하지 않고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