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583
583화 미리 방비
진양은 고개를 저었다.
“걱정할 것 없어요. 이미 일격을 날린 이상 평범한 신해 수도사랑 다를 바 없으니까요.”
가희는 고개를 끄덕이며 독소를 수집하는 데 정신이 팔려있는 묵양의 뒷덜미를 잡고 진법 밖으로 나갔다.
이어서 자란도 진양을 한 번 힐끔 바라보며 가희의 뒤를 따라나섰다.
진양은 유 화두 쪽으로 한 걸음 다가가 자신이 만든 탕을 한 그릇 건넸다.
“갈 땐 가더라도 탕 한 그릇 정도는 괜찮잖아요. 방금 그 일격으로 힘이 꽤 많이 빠져나갔을 텐데. 쭉 들고나서 얘기하도록 하죠.”
유 화두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진양을 바라보며 그릇을 받아들었다.
그러나 이내 씁쓸하게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렇죠. 일격을 날리고 나면 모든 힘이 빠져나가는 법이죠.”
진양은 술병과 술잔을 꺼내 상대에게 먼저 따라준 뒤 자신의 잔도 채웠다.
“한잔하시죠.”
그렇게 연달아 세 잔이나 마시고 난 뒤.
유 화두는 여전히 의아하다는 듯 진양을 바라보고 있었다.
“제 정체에 대해선 어떻게 아셨습니까?”
“해가 지기 전까지만 해도 전혀 몰랐습니다만. 대연 신조가 갑자기 대군을 움직일 조짐을 보이기 무섭게 제가 중독이 된 순간부터 어딘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게다가 일부러 시간을 맞추려고 조화석독이라는 진귀한 재료까지 쓰셨더군요.
제가 쓰러지기 무섭게 당신은 가희 소저를 찾아갔습니다. 저와 가희 소저가 가까운 사이인 만큼 제게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보고를 받으면 아마 가장 먼저 당신을 불러들여 사건에 대해 물을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겠죠.”
“그게 전부입니까?”
유 화두는 꽤 놀란 눈치였다.
“당연히 더 있죠.”
진양이 껄껄 웃으며 남은 술을 모두 입안에 털어 넣었다.
“우린 이미 당신이 어느 수준의 경지인지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최근 며칠 동안 전하께서는 신해 경지를 가진 사람은 단 한 번도 만나신 적이 없습니다. 심지어 영태 경지의 사람조차도 말이죠.”
“그럴 리 없습니다.”
“아뇨, 모두 사실입니다. 신해나 영태 경지의 사람을 만나야 할 때마다 제가 전부 준비를 해 두었기 때문이죠. 실제로 만난 것도 전부 대타일 뿐이고요. 전 이미 모든 사람들을 당신이라고 생각하고 최대한 완벽하게 준비를 했었습니다. 그러니 억울할 것 없습니다.”
“그렇군요…….”
유 화두는 씁쓸하게 웃어 보였다.
암살은 애초부터 성공할 가능성조차 없었던 것이었다.
그는 이 사실을 뒤늦게 알고 말았다.
“솔직히 당신은 아니길 바랐습니다. 담도 작고, 답답할 정도로 조심스럽고, 죽음을 두려워하고, 책임만 미룰 줄 아는 사람이긴 해도 모두에겐 각자 살아남는 법이 있는 법이죠.
그게 잘못됐다는 건 아닙니다. 당신이 유 화두로서의 삶을 살았더라면 진심으로 당신이 잘살 수 있도록 돕고 싶었습니다. 탕을 만드는 비법을 알려준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죠. 비록 처음 만나긴 했어도 인연은 인연이니까요.
저 역시 범인이던 시절 당신과 같이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을 쳤던 경험이 있습니다. 그래서 당신만은 아니길 바랐던 겁니다.”
진양은 한숨을 푹 쉬었다.
그의 얼굴엔 복잡한 심정이 그대로 얼굴에 드러나고 있었다.
“사실 이미 군영 내에는 비상 경계령이 떨어진 상태입니다. 제 첩신호위도 한참 전부터 조용히 움직여왔고요.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 몰래 침입했다면 곧장 알아차릴 수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아무 이상도 발견되지 않더군요. 이렇게 되면 가능성은 오직 하나. 자객이 대연의 군영이 아닌 대영의 군영에 이미 숨어들었다는 뜻이죠.
그제서야 깨달았습니다. 전장에서 살기와 살의를 흡수하던 이는 단순히 시선을 끌기 위한 존재였다는 걸 말이죠.
그리고 실전 훈련을 하는 모습을 보니 이해가 되더군요. 굳이 전장에 갈 필요도 없이 군영 내에서도 충분히 살기와 살의를 흡수할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죠.
취사군은 대부분 희망이 없는 자들이 몰려드는 곳입니다. 늙거나 다쳐서 더 이상 싸울 수 없는 자들이 모이는 곳인 만큼 실전 훈련은 거의 없었고, 살기나 살의는 거의 없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희박하죠.
그래서 당신은 이런 곳에서 살의와 살기를 흡수한다면 의심을 받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 겁니다. 제 말이 맞죠?”
“과연 진 형은 다르시군요.”
유 화두는 진심으로 놀란 듯 포권을 취하며 고개를 숙였다.
이어서 한숨을 쉬며 말했다.
“반대로 저는 진 형에 대해 전혀 파악하지 못한 듯합니다. 그저 넉살 좋고 큰 뜻에 욕심 없는 편안한 사람으로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미리 알았다면 아마 가장 먼저 진 형을 죽였을 겁니다. 장차 대연에 큰 후환이 될 사람이나 마찬가지니까요.”
“과찬이십니다.”
진양은 다시 한번 그와 잔을 부딪쳤다.
“궁금한 게 있습니다. 왜 이런 일을 벌인 겁니까? 전혀 자객과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 같은데.”
“정, 그리고 도의 때문이죠.”
“그게 무슨 뜻이죠?”
“목숨을 구해 준 은혜와 공법을 전수해 준 은혜는 반드시 갚아야 하는 법이죠. 앞서 말했던 정은 이걸 얘기한 겁니다. 그리고 대연 사람으로서 그분께 충성을 다하는 것, 목숨을 바치는 것. 이것이 바로 도의입니다. 설령 이 자리에서 죽게 된다고 하더라도 마음만은 편안할 것 같습니다. 목표를 이루지 못한 건 다소 아쉽긴 하겠지만요.”
“그렇군요.”
진양이 다시 한번 잔을 들며 물었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묻겠습니다. 굳이 대답할 수 없다면 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유 화두가 잔을 들며 고개를 끄덕이자 진양이 진지한 얼굴로 물었다.
“누가 당신을 이곳으로 보낸 겁니까?”
유 화두는 잔을 비운 뒤 잔을 내려놓았다.
“그동안 돌봐주신 것도 그렇고, 마지막 가는 길까지 좋은 술을 대접해 주시니 대답해드리지 않을 수가 없겠군요. 물론 나중에 조사해 보시면 알게 되시겠지만 제 뒤엔 대연 태자가 있습니다. 이 외에는 별로 말씀드릴 가치가 없을 것 같군요.
진 형, 그럼 이만 부탁합니다.”
유 화두는 무릎을 꿇고 차분히 눈을 감았다.
“당신에게 지켜야 할 정과 도의가 있는 만큼 저 역시도 제가 지켜야 할 정과 도의가 있는 법. 다음 생에는 좀 더 사람다운 삶을 살기를…….”
진양은 마지막으로 그에게 포권을 취한 뒤 손을 뻗어 그의 목숨을 거두었다.
그리고 생기가 끊어지는 순간 곧바로 습득 능력을 사용했다.
보라색 광구 하나와 하얀색 광구 하나가 나왔다.
확인은 나중에 하기로 하고 일단 관을 꺼내 그의 시신을 수습했다
그다음 검은색 구슬을 꺼내 이곳을 오염시켰다.
모든 일을 마친 진양은 진법을 해제시킨 뒤 관을 챙겨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가희에게 갔다.
“배후에 있던 건 대연 신조가 아니라 대연의 태자라고 하더군요.”
진양은 매우 씁쓸하다는 듯한 얼굴로 짤막하게 말했다.
가희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만 돌아가서 쉬도록 하세요. 남은 일은 제가 알아서 하도록 할게요. 정말 고마워요.”
“전 괜찮아요. 단지 누군가 제게 탕 제조법을 배우고 싶어 하던 건 이번이 처음이라 조금 아쉬울 뿐이네요.”
진양은 억지로 웃음을 쥐어 짜내긴 했으나 얼굴에선 여전히 씁쓸함이 느껴졌다.
“나중에 시간 되면 제게도 가르쳐주세요.”
가희도 최대한 밝게 웃으며 말했다.
“좋아요. 후회나 마세요.”
진양은 피식 웃으며 주위에 있는 장수와 병사들을 바라보았다.
모두들 살기로 끓어오르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진양은 작은 목소리로 가희에게 속삭이듯 말했다.
“절대 방심해선 안 됩니다. 자객이 유 화두 한 사람이라는 법은 없으니까요.”
“물론이죠. 하지만 설령 정말로 한 사람이 남아있다곤 해도 더 이상은 기회를 노릴 수 없을 거예요.”
“좋아요. 그리고 한 가지 더. 전 이번 일과는 아무 관련이 없는 겁니다. 그냥 조용히 취사장에 박혀있고 싶네요.”
이번에는 자란마저 웃음을 터뜨렸다.
진양은 적당한 곳을 찾아 유 화두의 시신을 묻어준 뒤 다시 취사장으로 돌아왔다.
유 화두의 일은 조용히 묻어졌기 때문에 그가 갑자기 사라진 이유에 대해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를 신경 쓰는 사람도 아무도 없었다.
심지어 취사군 내에서도 말이다.
골치 아파하는 건 오직 진양뿐이었다.
유 화두가 죽고 나자 다른 이들이 자신을 귀찮게 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제자 하나 두기 참 힘드네.’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하고 있었으나, 진양은 여전히 제일 강한 분신을 만들어 가희의 곁에 숨겨두었다.
일단 전장에 있던 살의와 살기를 흡수한 건 유 화두가 아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누가 그것들을 흡수했단 말인가?
당시 살기는 분명 동쪽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대영의 진영은 분명 완충지대의 남쪽에 자리 잡고 있다.
유 화두는 진양과 달리 군영 출입이 자유롭지 않았기 때문에 그가 그랬을 리는 없다.
묵양이 직접 만든 인형을 풀어 조사를 했지만 아무런 단서도 발견하지 못했다.
진양은 자신을 중독에 이르게 만들었던 괴수 고기로 탕을 끓이고 있었다.
낮에 먹으면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이들은 감히 가까이 다가오지도 못하는 모습이었다.
무엇보다 가희는 이왕 이렇게 된 거 보급으로 받은 괴수 고기를 전부 다 진양에게 넘기기로 했는데, 그 누구도 불만을 제기하는 사람은 없었다.
어쨌든 진양은 탕이 끓는 동안 새롭게 얻은 기능서들을 살피고 있었다.
예상대로 보라색 광구에서는 음영살도 공법이 나왔다.
매우 강력한 공법인 건 틀림 없지만 그만큼 단점도 매우 컸다.
게다가 기회가 오직 한 번뿐이라는 점만 봐도 이전에 얻었던 혈성살도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극단적이었다.
성공한다면 다행이지만 실패한다면 돌이킬 틈도 없이 자신이 골로 가게 되다니.
‘일단 이건 묵혀뒀다가 천천히 연구해 보도록 하자.’
남은 하얀색 광구에는 예상했던 대로 비밀스러운 기억이 들어있었다.
그런데, 살펴보니 다소 의외였다.
광구 속에는 유 화두가 음영살도를 배웠을 때의 기억이 들어있었다.
당시 꽤 많은 사람들이 그와 함께 음영살도를 배웠는데, 놀랍게도 가장 죽음을 두려워했던 유 화두만 공법을 익히는 데 성공했고 나머지는 전부 힘을 이기지 못하고 죽어버리고 말았다.
진양은 머리를 긁적였다.
‘뭐야? 그럼 이게 전부란 말이야? 그럼 전장에서 벌어진 일은 어떻게 된 거지?’
유 화두의 기억이 잘못됐을 리는 없다.
분명 음영살도를 배운 사람은 더 있다.
게다가 두 나라의 군대가 대치하고 있는 이곳만큼 음영살도를 수련하기에 적합한 곳은 없다.
‘어쨌든 미리 방비해 둬서 나쁠 건 없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