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584
584화 밀정 색출
이틀 뒤.
정찰을 나갔던 척후병들이 대연 신조에서 보낸 정예병들에게 전부 소탕되는 일이 발생했다.
그나마 둘은 운 좋게 살아 돌아올 수 있었으나 나머지는 전부 적에게 당하고 말았다.
대연이 본격적으로 대군을 움직이며 대영을 압박해오기 시작한 것이다.
현재 대연 진영에는 얼마 전에 죽은 유 화두에 대한 소문이 빠르게 퍼져나가고 있었다.
목숨 걸고 대영 군영으로 숨어든 그가 마지막까지 대연 신조를 위해 싸우다가 산화했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그의 희생으로 대제희는 전투 불능 상태에 빠지고 말았다는 소문도 더해졌다.
적을 덮칠 절호의 기회였다.
소문은 순식간에 사방으로 퍼져나갔고 어느새 대영 신조의 군인들 사이에서도 같은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대제희가 죽었다는 소문부터 돌이킬 수 없는 중상을 입었다는 소식, 그리고 생사를 알 수 없다는 소식까지.
사실 이런 소문이 도는 것도 이상할 건 없다.
가희는 벌써 며칠째 사람들 앞에 나타나지 않고 있었으니 말이다.
한편, 취사군도 가희에 대한 일로 술렁이고 있었다.
잠잠해질 기미는커녕 오히려 점점 더 소란스러워지는 분위기였다.
진양은 그저 갑갑할 뿐이었다.
한시라도 빨리 군심을 바로잡고 다가올 적을 맞이해야 할 때인데 가희는 여태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진양보다 병사들을 다뤄본 경험이 훨씬 더 많다.
그만큼 진양보다 훨씬 더 멀리 보고 움직이고 있을 것이다.
일단은 그렇게 믿기로 하고 조용히 기다려보기로 했다.
‘다 생각이 있겠지.’
* * *
어느덧 대연의 군대는 완충지대를 지나 대영의 군영을 향해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었다.
그러나 가희는 아직까지도 아무런 반응도 없었고, 얼굴조차 비치지 않고 있었다.
그렇게 불확실한 소문은 거의 사실인 것으로 판명되어가는 분위기였다.
군영 내에서도 소문은 더욱 빠르게 돌기 시작했고, 사기는 점점 떨어지기 시작했다.
거기에 코앞까지 다가온 대연 신조의 대군에 의해 군영 전체가 밀릴 위기였다.
이쯤 되자 장수들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강제로 지휘관 막사 내로 진입하여 대제희의 생사를 확인하고자 한 것이다.
누군가 총대를 메고 나서자 수많은 이들이 뒤를 따랐다.
이들은 곧장 가희가 머물고 있는 지휘관 막사로 몰려갔다.
이어서 군장 상태의 한 교위가 막사 앞에 한쪽 무릎을 꿇으며 외쳤다.
“전하, 큰 전투를 앞둔 상황에서 군사들의 마음을 다스리지 않으신다면 이 전투는 결코 승리할 수 없사옵니다. 한시라도 빨리 군심을 다스려주시옵소서…….”
* * *
지휘관 막사 내부.
군장 상태로 앉아 있는 가희의 눈빛은 상당히 날카로웠다.
“자란, 알아봤느냐?”
“진양의 첩신호위의 도움 덕분에 조사를 모두 마칠 수 있었사옵니다. 소문을 퍼뜨리고 선동을 한 자들 중 구 할은 이미 모두 파악이 되었고, 나머지 일 할은 아직 파악이…….”
“상관없다. 곧바로 사람을 풀어 그들을 잡아들이도록 하거라.”
가희가 손을 뻗으며 자란의 말을 끊었다.
“그들이 상대가 심은 밀정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이런 시기에 고의로 유언비어를 퍼뜨리는 자는 결코 용납할 수 없다.”
“존명!”
자란은 예를 갖춘 뒤 조용히 뒤로 물러났다.
이어서 가희는 자리에서 일어나 막사 밖으로 향했다.
펄럭-!
막사를 가리고 있던 장막이 걷어지는 순간.
큰소리로 울부짖으며 대제희를 부르던 교위는 순간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버렸다.
“장 교위, 날 찾지 않았느냐? 그래서 나왔는데, 어째서 아무 말도 없는 것이냐?”
멍하게 그녀를 쳐다보던 장 교위는 사색이 되어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전하, 용서하시옵소서. 큰 전투를 앞두고 군심이 많이 흔들리는 상황이라 소신도 어쩔 수 없었사옵니다.”
가희는 감정 없는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체포하라.”
말이 끝나기 무섭게 청란이 나타나 그의 팔을 등 쪽으로 눌러 제압했다.
“전하, 소신…….”
사색이 된 장 교위가 뭐라고 변명을 하려고 했으나 청란이 그의 뺨을 휘갈겼다.
그는 따귀 한 방에 기절하고 말았다.
그때, 군영 곳곳에서 싸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떻게 된 일인지 파악할 틈도 없이 사방에서 완전 무장 상태의 장수들이 몰려들었다.
그리고 몇몇 주요 인물들을 붙잡아 장막 앞으로 끌고 왔다.
이어서 한 장수가 가희에게 다가와 한쪽 무릎을 꿇으며 말했다.
“전하, 명단에 있는 삼백팔십 명 중 완강하게 저항하던 백팔십 명에 대해 즉결처분을 내렸고 나머지 이백 명은 전부 잡아들었습니다.”
그의 표정은 썩 밝진 않았다.
가희가 잡아들이라며 넘긴 명단에는 자신의 부하도 몇 포함되어있었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 함께한 부하들이 적이 보낸 밀정이라니.
그 누구도 이런 사실을 믿고 싶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군인은 상관의 명령에 복종해야 하는 법.
어쩔 수 없이 모두 잡아들이는 수밖에 없었다.
원래는 조용히 말로 설명하며 데려올 예정이었다.
그런데, 거의 절반에 가까운 자들이 상황이 심상치 않은 걸 깨닫자마자 완강하게 반항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외에 붙잡힌 이백 명 역시 멀쩡하진 않았다.
약간의 반항이 있었기 때문이다.
“전하, 어째서 소신을 체포하라고 말씀하신 겁니까?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사옵니다. 전 그저 전하의 안위가 걱정되어…….”
한 사람이 자신의 억울함을 토로하기 시작하자 다른 이들도 기다렸다는 듯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가희는 그들은 무시한 채 어느새 돌아온 자란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자란은 한 권의 서책을 꺼내 가장 먼저 억울하다고 말한 남자에게 읽어주었다.
“손오류, 북방 국경 수비대에는 십삼 년 전에 들어왔군. 그전에는 북방 국경지대에 있는 어느 이름 없는 마을에 살던 사람이었고. 그런데, 이 마을은 이미 팔십 년 전에 사라진 마을이다. 게다가 넌 본래 대연 사람으로 약 사백 년 전에 대영에 정착하여 살기 시작했지.
사흘 전, 넌 장 교위의 명령을 받고 유언비어를 퍼뜨리기 시작했다. 네가 했던 말을 그대로 읽어줄 테니 잘 듣거라.
‘대제희는 분명 죽었어. 이대로 큰 공을 세운다면 분명 돌아갈 수 있을 거야.’
자, 이의 있느냐?”
손오류는 자가 아무 말이 없자 이번에는 그 옆에 있던 사람에게 말했다.
“넌 손오류의 고향 친구지? 대연에서 큰 범죄를 저지르며 어쩔 수 없이 밀정이 되었구나. 네 감시자는 아마도 손오류일 것이다. 내 말에 이의 있느냐?”
그렇게 자란은 연달아 서른 명이나 되는 자들의 대략적인 신상과 죄명을 읽어나갔다.
가희는 이만하면 충분하다는 듯 손을 들었다.
그리고 자신의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있는 한 장군에게 다가갔다.
“오 장군, 전시에 유언비어를 퍼뜨린 것도 모자라 지휘관 장막까지 몰려와 소란을 피우다니. 군법에 이런 죄는 어떻게 다스리라고 나와 있더냐?”
“주모자는 참형에 처하고 가담자는 상황에 따라 곤장 오십 대를 때리는 것으로 정해져 있사옵니다.”
그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더 이상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군법대로 처리하도록. 연루된 자들 중 자신의 수하가 있다면 직접 집행하도록 한다.”
가희는 살기 가득한 눈빛으로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장수들을 날카롭게 쏘아보았다.
“관리 감독을 소홀히 한 죄는 우선 묻지 않도록 하겠다. 대신 공을 세워라. 전쟁이 끝날 때까지 아무런 공을 세우지 못한 자는 관리 감독을 소홀히 한 죄를 엄중하게 물을 것이다.”
“소신, 명 받듭니다. 전하의 자비로우심에 감사드립니다.”
장수들은 그제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소란이 벌어지는 동안 이들도 당연히 어딘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꼈었다.
그러나 아무리 나서서 수습을 해 보려고 해도 일은 점점 더 커지기만 했다.
잡혀 온 밀정들의 수를 보니 그 이유를 알 것만 같았다.
그야말로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였던 것이었다.
이들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을 때.
가희가 날카롭게 날이 선 목소리로 말했다.
“멍하게 서서 뭣들 하고 있는 게냐! 어서 가서 형을 집행하라! 허튼수작으로 자신의 수하를 감싸려 들거든 열 배의 벌을 내릴 것이다.”
가희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장수들의 얼굴은 새파랗게 질려버렸다.
이렇게 된 이상 명을 따르는 수밖에 없었다.
가장 먼저 형장(刑杖)을 들고 나선 건 오 장군이었다.
기절한 장 교위를 바라보는 그의 눈에선 무시무시한 살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능력도 훌륭하고 충심도 깊던 자였는데 하마터면 이번 일로 같이 엮어 골로 갈 뻔했다.
붕- 하는 허공 가르는 소리와 함께 형장이 장 교위의 둔부를 가격했다.
퍽-!
그 힘이 어찌나 강했는지 대지가 다 울릴 정도였다.
기절한 채 누워있는 장 교위는 형장 한 방에 피떡이 되어버렸다.
한 방에 사람을 골로 보내버리는 오 장군의 모습을 본 다른 장군들도 결심을 했다.
‘피할 수 없다. 그렇다면 하는 수밖에 없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백 명이나 되는 이들이 전부 쓰러졌다.
지면은 터져 나온 살덩이와 피로 뒤덮여있었다.
일부는 남아있는 영혼을 몰래 빼돌려 도망치려고도 했으나, 육신 밖으로 빠져나오기 무섭게 장내에 가득한 살기에 의해 소멸되어버렸다.
집행을 마친 오 장군은 미쳐 피를 닦을 틈도 없이 가희의 앞으로 다가와 보고를 올렸다.
“폐하, 모든 형을 집행했사옵니다. 명하신 대로 모두 숨통을 끊어놓았습니다.”
“하루의 재정비 시간을 주겠다. 재정비가 끝나면 적을 맞이하러 갈 것이다. 추후라도 나태함을 보이는 자가 있다면 오늘과 같은 방법으로 즉결처분하도록 하라.”
“소신 명을 받듭니다.”
말을 마친 가희는 다시 막사로 돌아갔다.
남은 장수들은 병사들을 시켜 주위를 정리하도록 했다.
수많은 자들이 몰려있었으나 쥐 죽은 듯 고요했다.
무시무시한 장면을 눈앞에서 목격했으니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 * *
모두들 물러나고 난 뒤.
몇몇 장수들이 모여 앞으로 어떻게 할지에 대해 상의하기 시작했다.
“전하께서 군대를 이끌고 백전백승했던 때는 과거라고 몰래 떠들어댔던 적이 있었는데. 이제 보니 내가 말실수를 한 것 같군. 여인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냉정한 판단이었어…….”
오 장군이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알게 모르게 대제희를 무시했던 그였지만 오늘 일로 따끔한 맛을 본 것이다.
“나도 같은 생각이었네만. 이백 명이나 되는 부하들이 눈앞에서 피떡이 되어가는 걸 보고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모습을 보고 내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걸 깨달았다네.”
대답을 한 장수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져 있었다.
“괜히 전설로 불린 게 아닐세. 허나 자네들은 아직 젊어서 잘 모를 수도 있겠군. 어쨌든 불필요한 소동을 피우는 것보단 전하를 믿고 따르기만 한다면 충분히 승리할 수 있을 걸세. 그러니 이만 어서 남은 일을 처리하러 가보도록 함세. 하루 안에 모두 처리하지 못한다면 전하께선 결코 용서하지 않으실 테니 말이야.”
머리가 하얗게 센 장수가 손을 휘휘 내저으며 말하자 모두들 고개를 끄덕이며 각자의 길로 흩어졌다.
그렇게 군영 내에 일어났던 작은 소동은 순식간에 마무리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