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ife of an actor of a former idol RAW novel - chapter 275
“앗, 입장하네요.”
영화의 상영을 알리는 멘트가 나오고, 배우와 감독이 입장했다. 멀리서 봐도, 참으로 멋진 모습들이 아닐 수 없었다. 장은혜 자신의 심장도 이렇게 두근거리는데, 저들은 어떠려나?
“와…. 정연진…. 진짜 대박이야. 역시 우리 오빠야.”
주인공들의 입장에 박수를 치던 전수민이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장은혜는 진짜 어이가 없었다.
“야, 정연진이 너보다 어린데, 무슨 오빠야.”
“잘생기면 다 오빠예요.”
“너, 너. 정연진 앞에서는 조심해야 하는 거 알지?”
“에이, 선배님. 그 정도는 저도 알아서 해요. 이제 저도 그 옛날의 어리버리 인턴이 아니라고요. 지금까지도 잘했잖아요?”
뭐, 조심하는 것처럼 보이기는 했다. 그래봐야, 눈치도 빠른 정연진은 다 알고 있을 것도 같긴 하지만….
“와, 석진현도 처음에 봤을 때는 진짜 잘생겼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석진현 잘생겼지.”
“그런데 정연진 옆에 있으니까…. 음….”
“그 입. 입. 조심하라고 했지?”
“에이, 이렇게 작게 말하는데 누가 듣겠어요.”
“여기 한국 기자들도 많이 와 있잖아.”
장은혜는 어금니를 깨물며, 소리 낮춰 전수민에게 주의를 줬다. 평소에는 정말 자기 앞가림을 잘하는 애였는데, 하필이면 이렇게 중요한 자리에서 이러는 거지? 장은혜는 눈을 가늘게 뜨고 전수민을 바라봤지만, 전수민은 여전히 해맑기만 했다.
“와…. 그런데요, 선배님.”
“응?”
“정연진이요, 쟤는 뭐 하나도 긴장을 안 한 거 같지 않아요? 아까 레드 카펫 때도 그랬고…. 시상식이야, 꽤 불려 다니긴 했지만, 여기는 칸이잖아요. 그런데 어쩌면 저렇게 멀쩡해 보이죠?”
“글쎄다. 그런데 진짜 너무 태연해 보이기는 하네. 뭐, 배우잖아. 속으로는 긴장했을 수도 있지.”
“그렇겠죠? 긴장했겠죠?”
장은혜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정연진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전수민의 말처럼 그의 얼굴에서는 긴장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이런 자리를 수도 없이 참석했던 사람 같은 자연스러움. 표정이며 몸가짐에서 그런 것들이 배어 나왔다. 잘난 얼굴에 애티튜드마저 저러니, 시선이 모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여기가 칸이고 영화제라는 것을 떠나서, 그간 촬영했던 작품이 처음으로 공개되는 자리였다. 그런데도 저렇게 평정을 가장할 수 있다니…. 그저 놀라웠다. 자신이 있다는 건가? 영화? 아니면 자신의 연기? 곁에 서있는 석진현이 바싹 얼어 있는 모습과 비교하니 더욱 신기하기만 했다.
“시작하나 봐요.”
“그래.”
상영관의 불이 하나씩 꺼지기 시작하고, 안내 멘트가 흘러나왔다. 그리고 커다란 스크린이 밝아졌다. 잔잔한 선율이 귀를 파고들었고, 스크린에는 소담한 집 안이 비쳤다
장은혜는 의자에 기대고 있던 몸을 일으켰다. 틀림없이 편안한 의자였다. 등을 기대고 있는 것이 자연스러웠고. 그런데 그저 잔잔하게 시작하는 이 영화는 편한 자세로 볼 수 없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허리를 세우고, 스크린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스크린을 가득 채우고 있는 이의 얼굴이 낯설었다. 저런 얼굴의 배우가 있었던가? 단역이라고 해도 임정선 감독의 영화에 나올 정도면, 얼굴이 제법 알려졌을 법도 한데, 노년의 낯선 배우였다.
조용한 방 안, 노인은 움직이고 있었다. 그러나 어쩐지 움직이지 않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신기한 일이었다. 저렇게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는데, 모든 것이 정지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부산한 움직임을 정적인 것으로 보이게 만들다니…. 저 배우와 임정선 감독 대체 영화를 찍으면서 무슨 짓을 한 거지?
오프닝 시퀀스가 제대로 시작도 안 했는데, 장은혜는 이 영화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눈치챘다. 그래, 임정선이 칸에 들고 올 영화라면, 평범하지야 않았겠지. 그런데, 시작부터 이런 느낌을 받을 줄은 몰랐다.
[…여보, 마누라.]쇠를 긁는 듯한 목소리. 노인이 입을 열었을 때, 어쩐지 소름이 돋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버석하게 갈라지는 목소리가 이상하게도 소름이 끼쳤다. 마치 칠판을 손톱으로 긁는 듯한 느낌….
장은혜는 괜히 팔을 쓸어 올렸다. 그러면서도 스크린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이상했다. 정말이지 모든 것이 이상했다.
낯선 배우의 얼굴.
움직임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정적인 듯이 느껴지는 화면.
이상하게도 소름이 끼치는 목소리.
그리고 낯설지만, 어딘가 익숙하게도 보이는 배우의 얼굴.
아, 정연진과 닮았구나….
곁에서 집중하는지 한참을 조용히 있던 전수민이 장은혜의 손을 잡아 왔다. 장은혜는 놀라서 손을 빼려고 했지만, 전수민은 손바닥을 위로 올렸다. 그러더니 장은혜의 손바닥에 무언가를 쓰기 시작했다.
저. 배. 우. 정. 연. 진. 같. 아. 요.
뭐?
그 순간 너무 놀라서 소리를 낼 뻔했다. 닮았다는 것은 눈치챘다. 그러나 저게 정연진이라고?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생각했다. 지금까지 촬영하면서 그런 이야기가 흘러나오지 않을 수 있었을까? 에이, 그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런데… 만약에 그게 사실이라면?
전수민은 다시 똑같은 글자를 하나하나 다시 장은혜의 손바닥에 썼다. 전수민은 확신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하…. 그래, 그럴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어쩌면….
가정만으로도 소름이 끼쳤다.
장은혜는 다시 스크린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
이 영화가 무척이나 흥미로워지기 시작했다. 원래도 흥미로웠지만, 지금 이 순간에 최고조를 찍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흥분으로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임정선과 정연진.
그들은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지?
모든 것이 아름다웠다
장은혜는 스크린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아니, 잠깐의 눈을 깜박이는 것도 할 수 없었다. 지독하게 폭력적이고, 지독하게 잔인했다.
그리고 알 수 있었다. 이 장면들은 절대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으리라는 것을. 속이 메스꺼워지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눈을 돌릴 수 없었다.
스크린 속의 두 명의 지현상. 노인이 된 지현상이 범죄를 저지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위로 청년 지현상의 모습이 오버랩되었다. 그 둘은 아주 열정적으로 사람을 죽이는 행위를 반복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행위 자체는 기계적이었다.
“왜….”
입 밖으로 아주 작은 의문이, 소리가 되지 못한 채 던져졌다. 임정선 감독은 탐미적인 영상을 추구하기도 했다. 참으로 잔인한 장면도 감탄이 나올 만큼 아름다운 장면으로 잘 뽑아 내던 임 감독은 이번 영화에서는 다른 선택을 했다.
살인의 순간을 날 것 그대로 찍어 냈다. 피가 튀었다. 사방으로 피가 튀는 모습이었으나, 그 어떤 기교도 없이 그 장면을 사실적으로 찍어 냈다.
질척했고, 쉬이 모든 것이 더러워졌다. 외려 그것이 공포를 느끼게 했다. 퍽퍽퍽, 벽돌을 들고 사람의 후두부를 내리치는 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귀에 들려왔다. 그 소리에 어깨가 빳빳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더욱 무서운 것은 그 어떤 감정도 느끼지 못하는 듯한 지현상의 시선이었다. 노인 지현상과 청년 지현상은 같은 눈을 하고, 같은 일을 하고 있었다.
눈동자는 공허했고, 감정 한 톨 보이지 않았다. 무수히 많은 표정을 담고 있었지만, 그 어떤 감정도 내비치지 않은 모습. 그것이 묘했고, 또 보는 이로 하여금 알 수 없는 감정을 일으켰다.
감독은 이것은 뻔한 일이라는 듯이 너무나 쉽게, 범인을 공개해 버리는 쪽을 택했다. 이것은 범죄 스릴러가 아니라는 것을 명백하게 알리고 있었다. 그리고 곧이어 그 이유를 밝혔다.
아이가 나왔다. 웅크리고 있는 아이의 머리는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늘 유쾌하게 웃었던 아비가, 늘 다정했던 어미가 아이의 눈앞에서 살해당했다. 총을 들고 있던 악마들은 벽돌로 아비를, 어미를 그리고 마을 사람들을 죽였다.
아이는 끊임없이 그 장면들을 되새겼다. 울음조차 터뜨리지 못했다. 그리고 하나씩 기억을 지워 냈다. 아니, 누군가에게로 옮겨 냈다.
“… 아니야, 아니야….”
아이의 목소리는 여전히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었고, 고통스럽게 들렸다. 아이는 울지 않았다. 하지만 그 표정에서 더 큰 고통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안상현이고, 너는…. 너는…?”
아이는 일어서서 허공을 쳐다보며 물었다. 그리고 다시 아이가 답했다.
“나는…. 나는 지현상이야.”
순간 아이의 표정이 묘하게 바뀌었다.
“그래, 너는 지현상이구나….”
그렇게 말한 아이는 세상 해맑게 웃었다. 조금 전까지 아이가 보여 줬던 고통스러운 얼굴은 씻은 듯이 사라져 있었다. 그 표정이 어쩐지 더욱 섬뜩하게만 보였다.
그리고 그 웃음과 함께 모든 것을 이해할 수밖에 없었다. 어째서 이런 일들이 벌어진 것인지…. 지현상의 탄생이 불러올 참사에 순간 아찔해졌다.
장은혜는 그제야 이 영화를 통해서 임정선 감독이,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전쟁.
우리는 정말 쉽게, 그리고 빨리 이 땅에서 벌어졌던 전쟁을 지워 냈다. 아니, 어쩌면 잊었다는 것이 맞을 수도 있겠다. 전쟁을 겪은 세대가 아직 많이 생존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쟁 자체가 이 땅 위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모두가 그 전쟁을 잊었다.
하지만 전쟁은 수많은 흔적을 남겼다. 안상현은 전쟁을 잊었지만, 지현상이 남아서 끊임없이 죄를 되풀이하고 있었다. 마지막까지도 안상현에게 그 전쟁을 기억하라는 듯이….
전쟁이 남긴 것들.
그 상흔들이 눈에 보이지 않게 감추어져 있어도, 어디에선가는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말하고 있었다.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는 전쟁과 그 상흔에 대한 보편적인 이야기….
“진짜, 미쳤네…. 임정선이나 정연진이나…. 정연진의 닮은 저 배우나….”
장은혜는 곁에 있는 전수민에게도 들리지 않을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영화는 빠르게 진행되었다. 한 장면을 보고, 그다음 장면에서 다시 속는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되니 더욱 몰입할 수밖에 없었다.
모든 것을 알게 된 안상현은 산으로 도주했고, 결국 전요한의 쏜 총알에 맞아 그 자리에서 사망했다. 안상현을 연기하는 배우의 얼굴에서 수많은 이야기를 발견했고, 그 자체로도 인상적이었다.
스크린을 가득 채우고 있는 안상현의 몸에서 흘러내린 피는 아이러니하게도 참으로 아름답게 표현되고 있었다. 지금까지 와는 다르게 엄청나게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스크린을 장식했다. 진짜 임정선 감독 지독한 양반이었네….
그리고 장은혜는 다시금 떠오른 의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안상현이 과거 우발적으로 발포해서 간첩으로 오인한 이를 죽인 것이 트리거가 되어서 지현상이 다시 등장했다.
그렇다면 전요한은? 과연 이후에 어떻게 되었을까? 그에게도 내면에 잠들어 있는 지현상이 있었을까? 안상현은 무고한 이가 아니었지만, 그들은 지현상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전요한이 안상현을 무고한 이로 판단했다면, 지현상을 죽이는 순간 함께 죽은 안상현에 대해서 전요한은 어떻게 판단했을까?
아니, 아니지…. 이건 너무 많이 간 생각이지…. 장은혜는 고개를 흔들어, 생각을 떨쳐 냈다.
영화의 마지막은 정연진이 연기하는 청년 안상현의 첫 출근이었다. 영화의 시작이 노인 안상현의 정적이었던 출근길이었던 것과는 대조되게, 화면 속의 모든 것이 생동감이 넘쳤다. 똑같이 눈이 오는 날이었고, 화면은 정적인 것처럼 보였지만 묘하게도 생동감이 넘쳤다.
그리고… 역설적이게도 설레게 했다. 안상현의 첫걸음에, 설렘이 묻어났고, 그 모습을 보고 있는 장은혜마저도 그 설렘을 느끼게 만들었다. 그 걸음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설레게 만들었다.
시발…. 이게 뭐야.
안상현이 흥얼거리던 노래가 커다란 음악이 되어서 스피커를 통해서 전해졌다. 그리고 서서히 화면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커다란 환호와 박수가 터져 나왔다.
장은혜는 꽉 쥐고 있던 손을 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저 앞에서 함께 영화를 보고 있던 감독과 배우들이 일어나 관객들을 향해서 인사했다. 감격스러운 순간이었다.
하지만 장은혜는 그들 보다는 여전히 올라가고 있는 크레디트에 집중했다. 배우, 배우의 이름을 봐야만 했다.
[An Sang Hyun, Ji Hyu Sang / Jung Yun Jin]그리고 마지막까지도, 노인 안상현을 연기한 배우의 이름을 크레디트에서 찾을 수 없었다.
저 앞에서 관객들을 향해서 인사하고 있는 정연진의 잘생긴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순간 눈이 마주쳤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정연진이 찡긋, 윙크를 해 왔다. 그 순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수민이 말이 맞았나 보네….”
의심이 사실이었다는 것을. 와, 진짜 사기꾼이었어. 장은혜는 마음이 급해졌다. 이걸 어떻게 써야 할지…. 그들의 장단에 맞춰 줘야 하기는 하는데, 손끝이 간질거렸다.
상영이 끝나고, 장은혜는 프레스룸을 향해서 뛰었다. 드레스와 힐이 거슬렸지만, 지금은 어서 그곳으로 가야 했다. 그 순간, 스마트폰이 울렸다. 마음이 급한데, 누구야.
[장 기자님, 설마 스포일러하실 건 아니시죠?당분간만 엠바고 부탁드릴게요
장 기자님만 눈치채신 것 같더라고요
부탁드립니다]
정연진의 얄미운 문자 메시지였다.
와 씨, 장은혜는 눈을 꾹 감았다. 튀어나오려는 욕을 참으며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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