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1007
01006 [외출] =========================
“음… 곤란한데.”
아름다움이란 시대나 공간, 문화나 습성 등에 따라 그 기준이 천차만별로 바뀌게 마련이다. 지구에서만 보더라도 어떤 곳에서는 여린 체격과 하얀 피부가 아름답게 여겨지는 반면, 또 어떤 곳에서는 크고 풍만하며 살집이 많고 보기 좋게 그을린 피부를 아름답게 여기기도 한다. 단순히 단일한 종족으로만 이루어진 행성 위에서도 이런 편차가 생겨나는데, 그것이 서로 다른 우주의 서로 다른 종족 간에 비교되는 경우라면 말할 필요도 없는 일이다.
하지만 이처럼 서로 관점에 따라 바뀔 수밖에 없는 기준임에도 불구하고 보는 순간 아름답다고 생각해 버리는 종족이 있다. 바로 유익족 알마네아가 그것이다.
물론 이들의 아름다움은 단순히 얼굴이나 몸매 같은 것만을 놓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를테면, 사람이 창공을 나는 독수리를 멋지다고 생각하는 것이나, 평원을 빠른 속력으로 질주하는 치타의 근육에 찬탄하는 것과 비슷한 경우라 할 수 있다. 비온 뒤 맑게 개인 하늘 아래 싱그러운 물방울을 머금고 있는 꽃이라든가, 요요하게 빛나는 달 아래 반짝이는 불꽃을 머금은 채 날아오르는 반딧불의 행렬처럼 문화나 종족에 상관없이 아름답다고 여기는 그런 느낌. 그것이 바로 알마네아의 아름다움이다.
“어쩌지.”
네아는 바로 그러한 유익족 알마네아 중에서도 가장 아름답다고 칭해지는 인물이다. 게다가 그녀는 형진에 의해 모종의 신체적 변화마저 겪어서 기존의 알마네아와는 차별화된 존재가 되었다. 풍경과도 같은 아름다움이 아니라, 인간으로부터 신이 된 형진의 기준으로 놓고 봐도 더 할 나위 없는 아름다운 신체를 가지게 되었다는 얘기다.
유익족 알마네아가 형진의 손아귀에 떨어진 이후, 그런 알마네아를 대표하는 신분으로 별궁에 머물고 있는 네아의 거취는 다른 이들에게 관심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객관적인 지표를 놓고 보더라도, 형진의 손버릇은 그리 좋다고 하기 어렵다. 물론 그렇다고 싫다는 대상을 다짜고짜 몰아붙이는… 식의 경우가 없었다고는 말하기 어렵지만 어쨌든 기껏 그의 취향에 맞게 신체에 변화마저 일으켜 놓고 사실상 방치에 가까운 상태로 놓아두고 있는 모습은 누가 보더라도 뭔가 납득하기 어려운 점이 있었다.
스스로는 그런 생각이 별로 없더라도 다른 이들, 이를테면 같은 유익족 알마네아라든가 그녀를 보고 다른 종족으로부터 보내진 여성들은 이미 그녀를 형진의 열한 번째 부인으로 납득하고 있는 모양새다.
처음에는 다른 이들이 그런 식으로 자신을 보고 있다는 사실조차 알아차리지 못했던 네아지만, 시간이 흐르고 은근슬쩍 물어오는 식의 상황이 겹쳐지면서 그것도 옛날 얘기가 되어 버리고 말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네아로서도 형진이 왜 자신에게 손을 대지 않는지 조금 의아할 수밖에 없다. 그에게 그럴 의향이 있다면 자신은 거부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다. 유익족 알마네아의 최고 장로라는 신분은 물론이거니와 다른 여러 가지 제반 상황을 놓고 봐도 그건 부정할 수 없는 일이다.
물론 그건 어디까지나 의문이 든다는 얘기지, 그가 손을 대지 않아서 조바심이 난다거나 하는 식의 얘기는 아니다. 솔직히 말하면 조금 안도하는 느낌이 있는 것도 사실이고. 본래 난태생인 유익족 알마네아 그대로라도 짝을 짓는 행위는 신중할 수밖에 없는데, 이제는 신체마저 이전과 달라진 상태이니 어느 정도는 두려운 마음이 이는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일이다.
“아무래도 혼자서는 결정하기 어렵겠어.”
잠시 거울에 자신의 모습을 비춰보던 네아는 결국 작은 한숨과 함께 그렇게 중얼거리고 말았다.
지금 그녀가 이렇게 거울 앞을 서성이는 이유는, 모처럼 초대된 왕성 라이언하트에 입고 갈 옷을 고르기 위함이다. 그녀만 초대된 것은 아니다. 지금 머물고 있는 별궁에서 함께 기거하는 모든 여성들이 불려졌다. 특별하게 혼자 초대되었다거나 한 것이 아니니 그리 긴장할 필요가 없을지도 모르겠지만 암묵적으로 별궁 안에 머무는 여성들의 대표격으로 움직이는 처지이니 조금 더 신경을 써야만 한다.
사실 이번에 왕궁에 불려진 이유는, 그녀들로 하여금 이제나 저제나 하며 가슴 졸이게 만드는 신녀 선발이라든가 그것을 빙자한 형진의 처첩을 간택하는 식의 일과는 거리가 멀다.
공식적으로 그녀들을 초대한 이유는 달이의 돌잔치이다.
형진에게는 이미 여러 아이들이 있지만 미엘과 하엘 사이에서 난 흑요호 아이들은 이미 나이를 무색하게 만들 정도로 가파른 성장을 이어가고 있는 중이다. 아란이 데려온 아이들 역시 자식으로 받아들였지만 역시나 아기라고 할 나이는 지난지 오래다. 그런 관점에서 보자면, 앞으로도 꽤 오랜 시간 동안 아기라는 타이틀을 이어갈 것이고 이후로 태어날 아기들의 선두주자 격인 달이에게 그만큼 관심이 집중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럴 의향이 있다면 형진은 달이의 첫돌을 두 우주에 사는 모든 이들로 하여금 경축하게 만들 수도 있다. 그가 가진 주신이라는 이름의 타이틀은 단순히 명목상으로 붙여진 것이 아니라 그 정도의 일은 농담처럼 할 수 있는 힘이 뒷받침되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축하하는 이들의 입장에서는 이게 뭔 일인가 싶긴 해도, 강요하려고 마음먹는다면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는 얘기다.
그러나 형진은 주위의 가까운 이들만을 불러들이기로 결정했고, 네아를 비롯한 별궁의 아가씨들은 그러한 자리에 자신들이 초대되었다는 사실을 무척이나 기꺼워했다. 잘하면 어째 얘기가 이어지지 않고 있는 신녀의 자리라든가, 그것을 넘어서 새로운 부인으로의 간택이라든가 하는 식의 얘기가 진전될 조짐일지도 모른다고 지레짐작해버리는 것이다.
네아는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자신들을 이곳으로 보낸 종족의 후원을 잔뜩 받아 단단히 힘을 넣고 참석하게 될 다른 아가씨들에게 뒤지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만약 그런 일이 생기게 된다면 아가씨들을 통솔하는 지금의 입장에도 문제가 생길 테니까.
잠시 망설이던 네아는 꺼내놓은 옷을 던져두고 어디론가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유익족 알마네아는 등에 날개가 돋아있기 때문에 아무래도 일반적인 인간이 입는 것과는 형태가 다른 옷을 입을 수밖에 없다. 게다가 그녀를 시작으로 체형 변화가 일어난 탓에 기존에 즐겨 입던 옷 같은 것이 한순간에 쓸모없어지는 사태까지 맞이했다.
여기까지 만으로도 곤란한 판에, 이번에 초대받은 자리는 흔히 생각되어지는 축제나 파티와는 성격마저 달랐다.
새로 태어난 아이가 별 탈 없이 첫 번째 생일을 맞이하는 것을 기념하는 이런 식의 잔치는 알마네아는 물론이고 대부분의 다른 종족에서도 유례를 찾을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식의 잔치 대부분은 참석하는 이가 가까운 친지에 국한되는 경우가 많다. 즉, 이것은 바꿔 말하면 이번에 돌잔치에 초대받았다는 사실 자체가 별궁의 아가씨들을 어느 정도 가족으로 인정하고 있다는 얘기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봐야 추측에 불과하긴 하지만.
네아는 황혼의 성물 앞에서 잠시 심호흡을 하고는 어디론가 이동했다. 참고로 별궁에 머무는 아가씨들 중에서 황혼의 성물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네아 뿐이다.
“실례합니다. 아무도 안 계세요?”
“아… 어서 오세요.”
아름다운 꽃이 만발한 작은 정원. 그 안에서 어쩐지 멍한 표정으로 자리에 앉아있던 여성 하나가 네아의 기척을 느끼고는 화들짝 놀라 몸을 일으킨다.
놀란 것은 네아 역시 마찬가지. 본래 이곳의 주인이 아니라 엉뚱한 신과 마주하게 된 그녀는 화들짝 놀라 급히 예를 취한다.
“알마네아의 장로 네아가 황혼과 망각님을 뵙습니다.”
“반가와요. 네아님. 이리 와서 앉으세요.”
“가, 감사합니다.”
왕성 라이언하트를 드나들면서 이런 저런 신들을 많이 만나본 네아였지만 황혼과 망각은 이래저래 대하기 어렵다. 어쩐지 음침한 느낌마저 전해지는, 신이 맞나 싶을 정도로 존재감이 옅은 편이지만 그녀 역시 강력한 힘을 지닌 대신 가운데 한 명이다.
“그런데… 어쩐 일로…”
“그게, 꽃과 바람님을 만나 뵐 수 있을까 싶어서.”
“걔는… 자리를 비웠어요.”
“그렇군요.”
“…”
“…”
대화가 끊겨 버리고 말았다. 어색한 건 둘째 치고 어떻게 대화를 이어가야 할지조차 난감하다. 그렇다고 꽃과 바람이 없다고 일어서기도 뭐하다. 여신임에도 불구하고 황혼과 망각은 어쩐지 위태위태한 느낌이랄까. 훅 하고 불면 그대로 사라지는 것 아닐까 싶은 느낌이라 불안하기도 하고, 이래저래 난처하다.
“혼자… 계시는 거에요?”
조심조심 네아가 묻자, 황혼과 망각은 쓴웃음을 지으며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부터 방구석폐인급의 신이었던 그녀지만, 그래도 주위에 친구들이 여럿 있었다. 보호와 균형, 꽃과 바람, 비와 낭만 같은 신이 바로 그런 친구들이다. 그 친구들이 있었기에 그녀는 형진과 만날 수 있었고 지금 이렇게 대신의 반열에 오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관계도 최근에 들어서는 많이 바뀌었다.
시작은 보호와 균형이었다. 본래부터도 의존적인 성향이 강했던 그녀였으나 형진과 만나게 되면서 그렇지 않아도 심각하던 의존증이 폭발, 지금은 친구들과 만나는 시간마저 별로 없을 정도로 형진과 찰싹 붙어서 지내는 중이다.
그녀의 성향이야 원래부터도 잘 알고 있었던 일이고, 그래서 친구들은 서운해 하기 보다는 비로소 짝을 찾은 그녀를 축하해 주었다.
황혼과 망각도 친구의 행복을 기원하는 쪽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보호와 균형의 그런 변화가 다른 이들에게도 찾아왔다는 점이다.
시작은 비와 낭만이었다. 형진의 딸인 다희에게 휘둘리는 일상을 보내던 그가 어느 순간부터 그 소녀와 뗄 수 없는 관계가 되어 버렸다.
또다른 친구인 꽃과 바람 역시 마찬가지였다. 전부터 은근슬쩍 관심을 보여 왔던 신뢰와 헌신이 각고의 노력 끝에 마침내 그녀와 맺어지게 된 것이 최근의 일.
그렇게 각자 짝을 찾아 흩어지게 되자, 황혼과 망각은 홀로 남겨지게 되었다. 원래부터도 교우 관계가 넓지 않던 그녀에게 있어서 지금의 사태는 극복하기 어려운 상황일 수밖에 없었고, 결국 이렇게 우두커니 혼자 시간을 보내는 처지가 되어 버린 것이다.
네아가 그런 신들의 관계를 모조리 꿰뚫고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그녀가 보기에도 지금의 황혼과 망각은 뭔가 그냥 내버려둘 수 없는 모습이었다.
“며칠 뒤에 왕자님의 돌잔치가 있는 건 아시죠?”
“네. 알아요.”
“여신님께서도 참석하시나요?”
“네. 일단은.”
그렇게 대답하며 살짝 쓴웃음을 짓는 여신의 모습을 본 네아는 아무래도 안 되겠다는 생각에서 팔을 걷어붙였다.
“저… 실은 어떤 옷을 입고 가야 좋을지 몰라서 꽃과 바람님께 조언을 구할까 했거든요.”
사실 고작 이런 용무로 여신을 찾는다는 것 자체가 불경한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네아는 최근 꽃과 바람이 비슷한 용무로 누군가에게 도움을 준 일을 알고 있었다. 거절하면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밑져야 본전이라는 느낌이랄까. 물론 이런 발상을 떠올릴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이미 네아라는 인물이 왕성 라이언하트를 중심으로 움직이는 신들과 밀접한 관계에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만 말이다.
“그렇군요. 확실히… 그 아이라면 그런 부분에 밝은 편이죠. 연락을 취해 드릴까요?”
“아뇨. 자리를 비우신 걸 보면 바쁘신 모양이니, 그냥 나중에 찾아뵐게요. 대신…”
“대신?”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같이 가지 않으시겠어요?”
“제가요?”
“네.”
황혼과 망각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잠시 고개를 갸웃거렸다.
“전… 그런 쪽에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은데요.”
보시다시피 외모를 꾸민다든가 하는 쪽은 특히 더.
그런 식의 말을 중얼거리는 황혼과 망각에게 네아는 간절한 표정으로 부탁했다.
“여신님께서도 주신님이나 그분의 가족들과 오래 알고 지내신 편이죠?”
“그렇게 오래는 아니에요. 다른 신들보다야 낫긴 하지만.”
말 그대로다. 엘리시온의 다른 잡신들보다야 낫지만, 그렇다고 친밀하다고 하기는 좀 애매한 그런.
“역시! 부탁드려요. 모처럼 가족 행사에 초대받았는데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이었거든요. 부탁드립니다. 도와주세요.”
“…”
네아의 간절한 말투에 살짝 당황해 버렸다. 하지만 딱히 뭔가 중요한 일이 있는 것도 아니고, 고작해야 여기서 멍하니 앉아 있는 상태가 전부이니 거절할 말을 찾기도 어렵다.
“도움이… 별로 안 될 것 같은데… 그래도 괜찮다면…”
“감사합니다!”
네아는 기쁜 표정으로 방긋 웃으며 감사의 뜻을 표했다. 그리고, 황혼과 망각은 어쩐지 멍한 표정으로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아름답다.
뭐랄까. 음침하기 이를 데 없는 자신과는 뭔가 확연하게 다른 아름다움을 네아는 가지고 있었다. 보는 순간 시야가 밝아지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분명 그녀에게도 추종자들이 있다. 하지만 그녀 스스로가 자신의 힘이 지닌 위험성을 경계하고 있는 탓에, 다른 교단처럼 많은 이들을 받아들이지는 못하고 있는 형편. 황혼의 성물 같은 것을 통해 많은 양의 공헌도를 벌어들이고 있기는 하지만, 대신이라 불리는 다른 신들에 비해 교단의 규모는 상대적으로 왜소할 수밖에 없었다.
다른 여신들과 함께 지낼 때야 그녀들의 발랄한 성격에 이끌려 함께 움직이기도 했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서 능동적으로 추종자들과 어울려 지내는 일 또한 황혼과 망각으로서는 쉽게 행동으로 옮기기 어려운 면이 있었다. 애초에 그 정도로 능동적이었다면, 그녀가 방구석폐인이라고 불릴 이유도 없었을 것이다.
“자, 가요. 여신님.”
“어디로…”
“일단 옷가게부터요. 그리고 가는 김에 달콤한 것도 좀 먹고… 음, 아무튼 가요. 얼른요.”
“…”
그래서일까. 네아의 모습이 더욱 눈부시게 느껴지는 것은. 날개가 달린 이 아름다운 아가씨가 지금 보여주는 행동은 단순한 변덕일지도 모르지만, 오늘 하루쯤은 그 변덕에 기대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떠올리고 만다.
========== 작품 후기 ==========
얼렁뚱땅 벌써 2월도 다 가고…
신작은 말씀드렸던 대로 무료 연재로 시작할 예정입니다.
심각한 내용이나 커다란 반전 같은 것 없이 그냥 일상물 가까운 느낌으로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이 될 것 같습니다. 물론 간보다가 프리미엄으로 가지도 않을 거구요. 그러니까 큰 기대는 하지 마세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