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1006
01005 [착륙] =========================
함께 하늘호에 탑승한 각국 정상들에게는 아쉬운 일이지만 화성에 첫 발을 내딛은 인간이라는 영예는 선발대가 출발하기 전에 테라포밍으로 변화한 환경이 인간에게 어떤 영향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파견된 조사단들이 챙겼다.
사실 처음으로 위성 궤도에 오른 사람이라든가 달에 발을 내딛은 사람보다 아무래도 급조되기도 했고, 곧바로 금성이나 다른 태양계 내의 천체에도 사람들이 보내질 테니 여러모로 중요성이 희석된 느낌도 있긴 하다. 그러나 다른 행성의 개척이라든가 우주 개발 같은 것에 평생을 바친 과학자들에게는 무엇과도 비할 수 없는 영예이니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우주 탐사의 규격과는 어울리지 않는 대규모 인원으로 조사단을 편성해서 보냈다. 이것도 형진이 신이라는 사실을 각국 정상들에게 밝히지 않았다면 서로 자기 나라 사람을 보내려고 암투를 벌였으리라.
기동상륙지원선이 해안에 접근한다. 본래 이동식 항만으로 쓰이기 위해 만들어진 함선이지만 규모가 있는 만큼 무작정 육지에 접안할 수는 없는 일이라 어느 정도 깊이가 있는 곳까지 접근한 다음 나머지는 부교로 연결해서 상륙하게 된다. 물론 선발대가 사용하는 차량의 대부분은 이미 부양형 자동차로 개조된 상태라 마치 공기부양정식으로 직접 상륙하는 것도 가능하기는 하지만, 선박과 육지 사이를 매번 차량 등으로 이동하려면 번거로운 것도 사실이라 기본적인 시설이 완성될 때까지는 당분간은 부교를 설치한 상태 그대로 유지하게 될 것이다.
임시 항만의 설치가 완료되자 본격적인 하역이 시작되었다. 소형 운반선인 스파이더들은 벌써부터 항만 입구에 착저시킨 폐선 주위에 암석을 가져다 쌓는 일을 시작하고 있었다.
형진이 희망과 생명, 리페를 데리고 각국 정상과 보좌진, 그리고 기자단이 있는 선실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바로 그때였다.
“기다리시게 해서 죄송합니다. 우리도 슬슬 하선하도록 하죠. 혹시 퍼스널 모빌리티를 가지고 온 분 계십니까?”
안 그래도 이제나 저제나 하며 바깥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 가운데 몇 명이 손을 들었다.
“보시다시피 아직은 도로니 뭐니 하는 것이 없는 관계로 이동이 다소 불편할 수 있습니다. 여분의 퍼스널 모빌리티를 준비했으니, 사용하실 분들은 이쪽으로 와주십시오.”
기자들이나 보좌진들이라면 몰라도 이곳에 있는 정치인들의 대부분은 평소에 길조차 없는 곳을 자기 다리로 걸을 일이 별로 없는 쪽이다. 기본적인 테라포밍이 이루어진 상태이긴 해도, 지면의 대부분은 우둘투둘한 암석이 흩어져 있는 사막의 그것에서 크게 변화하지 않은 모습이라 퍼스널 모빌리티가 없으면 이동만으로도 금새 피로해질 수 있다. 실제로 현재 하역 작업을 시작한 선발대 역시 퍼스널 모빌리티를 사용하고 있는 중이다.
각국 정상들 가운데서도 매우 젊은 편에 속하는 인물 하나가 서슴없이 앞으로 나서자, 다른 이들도 조금 머뭇거리는 느낌으로 리페에게서 퍼스널 모빌리티를 받아갔다. 젊은 층에게 어필하기 위해 나름대로 퍼스널 모빌리티를 연습한 모양이긴 하지만 충분하지는 않았던 모양인지 역시 불안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각국 정상들을 시작으로 보좌진과 기자단들에게 퍼스널 모빌리티를 나누어 주는 일을 마치자, 형진은 그들을 이끌고 갑판으로 나아가 부양판에 올랐다. 그냥 날아내려도 되지만 가뜩이나 무릎도 안 좋은 각국 정상들에게는 고문 같은 일이 될 테니 조금 느긋하게 이동하기로 했다.
부양판이 천천히 내려앉자, 각국 정상들은 서로 손을 맞잡은 채로 화성으로의 첫 발을 내딛었다. 명백한 보여주기식 퍼포먼스였지만 그런 식의 행동을 해야 먹고 살 수 있는 자들이니 그러려니 할 뿐이다.
“사전에 조사단이 인간에게 위해 요소가 있는지 확인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 개인 행동은 삼가 주시기 바랍니다. 또한 선발대의 하역 작업 등에 방해가 되는 행동도 자제해 주십시오. 이 두 가지를 지켜주신다면 자유행동을 허락하겠습니다.”
형진의 말에 사람들은 얼른 찬성의 뜻을 보였고 이내 몇 개의 그룹으로 나뉘어 마침내 내딛은 화성의 모습을 살피기 위해 흩어졌다.
“넌 안 가?”
“뭐하러. 귀찮게스리.”
“하긴.”
형진에게는 별로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일이었지만 누군가는 경건한 모습으로, 또 누군가는 감탄을 금치 못한 채 화성의 모습을 지구에 남아있는 이들에게 전하느라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사실 이렇게 지상에 내려선 상태에서는 별로 특별한 것이 없다. 고작해야 멀리 눈 덮인 산봉우리가 있는 산들이 하늘을 떠받치는 기둥처럼 우뚝 솟아있는 모습이 조금 신기한 정도랄까.
“비켜요! 위험하니까 비키라고!”
하역 지점으로 다가갔던 몇몇 정치인들이 부양형 자동차를 모는 인부들의 고함소리에 흠칫 밀려나는 모습이 보인다. 어차피 형진이 뻔히 지켜보고 있는 상황이라 갑질 같은 걸 할 수는 없을 테지만, 그걸 알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고함을 지르는 모습을 보니 평소에 정치가들에게 쌓인 게 좀 많았던 모양이다.
인부의 고함에 주춤주춤 물러나는 정치인들의 모습은 실시간 중계로 지구 각지에 퍼져 나갔다. 모르긴 해도 오늘 화성에 도착한 이들 가운데 가장 사람들에게 얼굴이 알려지게 될 인물은 저 사람이 아닐까 싶다.
처음 화성을 찾은 조사단들이 과학자 위주였다면, 이번에 온 선발대 인원의 대부분은 기술자들이 많았다. 그것도 나름대로 각 분야에서 십여 년 이상의 경력을 쌓은 스페셜리스트들이다. 하지만 그렇게 노련한 이들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긴장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서호주 인근의 사막지대에나 해안에서 예행연습을 하기는 했어도 이곳은 지구와는 엄연히 다른 곳. 어떤 예기치 못한 사태가 일어날지 모르는 당연한 일이다.
항만이 내려다보이는 야트막한 언덕 위에서는 다시 한 번 지질과 토양을 조사하는 작업이 진행 중이다. 건설을 총괄할 지휘부가 자리 잡을 간이 건물을 설치하기 위해서다. 초음파 등으로 다시 한 번 지질이나 지하수의 상황을 확인한 다음, 지면을 다지고 평탄화시키는 작업이 끝나면 화물선에 싣고 온 모듈화된 건설 지휘부 건물이 자리 잡게 된다. 물론 그렇다고 형진이 만드는 건물 같은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컨테이너 형식의 조립식 건물 정도지만 말이다.
모두가 열심히 일하는데 슬렁슬렁 구경만 하고 돌아다니는 것이 뭔가 좀 그랬던 모양인지 정치인들 가운데 몇몇이 인부들의 일을 도와주려 했다가 방해된다고 한 소리 듣고 물러나야만 했다. 사실 도움이 아예 안 된다고 할 수준은 아니었겠지만, 미리 계획된 일정에 맞춰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판에 높으신 분이 끼어들면 이래저래 방해가 될 뿐이다. 하지만 뻘쭘해져서 물러난 이들이 있는가 하면 나름대로 도움이 될 만한 일을 찾아서 움직이는 이들도 있었다. 이를테면 청소나 식사 준비, 배식 같은 일이 그것이다.
그런 식으로 바쁘게 움직이다보니 순식간에 시간이 흘러가 버렸다. 화성의 하루는 지구와 비슷한 수준이지만, 지구와는 아무래도 시차가 있을 수밖에 없다보니 금새 날이 어두워지고 만 것이다.
하늘을 바라보니 두 개의 달이 보인다. 물론 지구의 그것과는 다른 모습이다. 동그란 모습을 하고 있는 지구의 달과는 달리 화성의 위성인 포보스와 데이모스는 길가의 돌멩이 같은 울퉁불퉁한 모습을 하고 있고, 그 중 하나인 포보스는 하루 동안 무려 화성 주위를 세 바퀴나 돌 정도로 무시무시한 속도를 지니고 있다.
“돌아가실 분 있으십니까?”
결국 나중에는 입고 있던 양복도 걷어붙인 채 청소 같은 잡일을 돕다보니 녹초가 된 모양새였지만, 형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정치인은 하나도 없었다. 국가 원수쯤 되면 하루 일정이 분 단위로 정해져 있을 텐데 괜찮은 건가. 애초에 이렇게 화성으로 날아온 것 자체가 예정에 없는 일인데.
결국 그대로 하루 묵어가는 결과가 되어 버리고 말았다.
화성에서의 첫 번째 밤이 다가오자, 긴장감 가득한 모습으로 작업에 열중하던 사람들은 컨테이너가 성벽처럼 쌓여있는 해안가에 모여 식사와 함께 휴식을 취했다. 예정에 없던 육체노동에 지친 정치인들은 잠시 사람들과 어울리는 듯 하다가 이내 배정된 숙소로 들어가 곯아떨어지고 말았다. 하기야 항상 책상 앞에만 앉아 있다가 한나절이나 정신없이 육체노동을 했으니 몸살이나 나지 않으면 다행이다.
“살펴 보지 않아도 괜찮을까?”
희망과 생명의 말에 형진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권능으로 낫게 해주는 거야 간단한 일이지. 하지만 때로는 직접 체험해 봐야 알 수 있는 일도 있으니까.”
“하긴.”
본래 화성은 지구보다 중력이 약하다. 이것은 바꿔 말하면 같은 신체 능력으로도 더 무거운 물건을 들 수 있다는 뜻. 하지만 저중력이라는 것이 무조건 좋은 것만도 아니다. 기존에 익숙해져 있던 지구의 중력과 다른 상황에 처하게 되면 실수가 나올 수밖에 없는 일이니까. 게다가 지구의 중력에 맞게 만들어진 장비들 역시 예상치 못한 고장을 일으킬 수도 있다.
게다가 낮은 중력 하에 계속해서 노출되면 잠시나마 지구와의 차이 때문에 수퍼맨이 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던 신체가 천천히 약해진다. 단순히 근력이 약화되는 것만이 아니라, 골밀도를 비롯한 신체의 강도 그 자체가 저하되는 사태가 초래될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의 화성은 그런 문제 또한 해결이 된 상태다. 인간이 중력 제어의 기술을 과연 언제 습득할 수 있을지는 형진도 아직 예상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초고속 항해를 가능하게 해주는 기관과 더불어 결계를 통한 태양풍의 차단, 그리고 중력 제어의 기술만큼은 아주 오랫동안 미라지 코어에 의해 독점될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화성에서의 하루가 지나고 아침이 되었다.
전체적으로 화창했던 어제와는 달리, 오늘은 구름이 끼고 바람도 세차게 부는 편이다. 익숙하지 않은 육체노동 때문에 몇몇 정치인들은 역시나 몸살이 나고 말았다. 형진이 잠깐 살펴보면 나을 일이긴 하지만 욕심을 부린 대가이므로 모른 척 놔두고 지구로 돌아갈 채비를 했다.
“그럼 수고하십시오.”
“맡겨 주십시오.”
현장 감독을 맡은 책임자와 악수를 나눈 형진은 표시도 못 내고 끙끙 앓고 있는 정치인들을 이끌고 범선에 올라 다시 지구로 향했다.
천천히 고도를 높이는 하늘호 안에서 화성의 모습을 지켜보던 형진은 자신의 옆에 선 희망과 생명에게 말을 건넸다.
“별장 하나 지을까?”
“여기에?”
“응.”
“상관은 없지만, 갑자기 왜?”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리는 희망과 생명의 모습에 형진인 씩 웃으며 말했다.
“화성에도 당신 신전 하나쯤은 있어야 하지 않겠어?”
“신전?”
“응. 신전. 희망과 생명의.”
겉으로는 별장, 속으로는 신전이라는 형태가 되는 셈이다. 애초에 신전이란 신에게 봉헌되는 건물 아닌가. 재단이라는 형태로 지구에도 교단이 어느 정도 갖추어졌으니 신전 정도는 갖춰두는 것이 좋다.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어서?”
“그냥. 선물이라고나 할까.”
“흥.”
희망과 생명은 콧방귀를 뀌었지만 싫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오히려 가만히 그의 어깨에 다시금 머리를 기대온다.
가만히 그녀의 머리카락에 입을 맞추고 있자니, 말없이 뒤쪽에 서있던 리페가 다가와 그의 허리를 냉큼 껴안아 버린다.
“딱히 별장 같은 건 없어도 상관없지만, 굳이 준다면 사양하지는 않을게.”
“쿡.”
뭐랄까. 츤데레의 정석 같은 리페의 말에 형진은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본신으로 말하기는 역시 부끄러워서 아바타의 입을 빌린 모양이지만, 그래봐야 그녀의 말이라는 건 마찬가지다.
“화성에도 결국 씨앗이 뿌려졌구나.”
웃고 있는 형진의 모습을 감당하기 어려웠던 모양인지 희망과 생명이 다시 그렇게 말했다. 아무래도 말을 돌리려는 모양이지만 모른 척 그녀의 말을 받는다.
“그래. 이제 시작인 셈이지.”
씨앗. 그것은 형진의 또 다른 신격을 이르는 말이다.
사실 이건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밤이라는 신격을 얻었을 때부터 사실 그의 남은 하나의 신격도 정해져 있었던 것이나 마찬가지니까. 형진은 반짝이는 별들이 가득한 우주를 밤의 일부분으로 이해했지만, 그 빛들은 또하나의 신격인 씨앗을 가리키는 것이기도 했다.
신이 되고 나서 그가 했던 일 대부분도 사실은 씨앗이라는 신격이 갖춘 의미를 실행하는 쪽에 치중되어 있었다.
밤이라는 신격은 우주를 의미한다. 그리고 그 우주를 생명의 빛으로 물들이는 것. 형진은 그것이 신으로서 자신의 운명이자 책임이라고 생각했으나 어째서 그래야만 하는 건지는 미처 알지 못하고 있었다. 그것이 남은 하나의 신격을 세상에 구체화시키는 수단이라는 것조차 이해하지 못한 채 그는 생명을 우주로 퍼트리는 일을 계속해서 이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밤과 씨앗. 어쩐지 안 어울리는 것 같아.”
“글쎄. 난 아닌 것 같은데.”
형진은 그렇게 말하고는 희망과 생명, 그리고 리페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밤에 씨앗을 뿌리는 역할을 나보다 잘 할 수 있는 신이 있을까?”
“바, 바보. 갑자기 무슨 말을 하는 거야.”
희망과 생명, 그리고 그녀의 아바타인 리페는 얼굴이 붉어진 채로 그의 시선을 피했지만 침대로 자신들을 이끄는 그의 손을 거부하지는 않았다.
========== 작품 후기 ==========
슬슬 외전도 끝맺을 때가 다가오고 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