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1005
01004 [착륙] =========================
하늘호는 조금은 느긋한 모습으로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러나 겉으로 보이는 모습과는 달리, 실제로 이동하는 속도는 무시무시할 정도라서 순식간에 주위의 푸른 하늘은 별빛이 가득한 어두운 우주로 바뀌고 말았다.
단순히 물 위를 다니는 선박이라도 대규모 선단을 운용하는 데는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게 마련이다. 배는 자동차 같은 것과 달라서 급브레이크나 드리프트 같은 조작이 불가능하므로 잠시만 넋을 놓고 있어도 어어 하는 사이에 큰 충돌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새롭게 우주 사양으로 개조된 화물선들의 조작은 그것보다는 쉬운 편이다. 허나 적대적인 우주의 환경은 물론이고, 기존의 운송 수단이 우스워지는 무지막지한 속도까지 감안하면 작은 실수만으로도 큰 사고가 날 수 있다. 물론 사고에 대비해 여러 가지 대책을 마련해 놓긴 했지만 그래도 사고가 막 일어나도 상관 없다는 얘기는 아니다.
“근데 말이야.”
하늘호 안에서도 이번에 행사에 참가한 귀빈이나 기자들이 머무는 곳과는 격리된 특별한 장소에서 우주 공간을 줄지어 나아가는 선단을 바라보며 와인잔을 기울이던 희망과 생명이 문득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지금 개발 중인 게이트를 사용한다면 굳이 이런 식의 퍼포먼스를 보일 필요는 없지 않아?”
그건 일견 타당한 의견이었다. 만약 게이트가 지구와 화성 사이에 개통된다면, 굳이 이런 식으로 대규모 선단을 띄워서 왕래하는 식의 거추장스러운 일은 할 필요가 없어진다. 그저 양방향의 게이트를 건설한 다음, 컨베이어 벨트에 보내고자 하는 물자를 실어보내면 그만이니까.
“효율면에서야 그게 편하지.”
“그런데 왜 굳이 이런 방법을?”
형진은 희망과 생명에게 얼굴을 가져가 그녀의 입술에 묻은 와인을 혀로 살짝 핥고는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그래서는 모처럼 발전한 지구의 기술이 거기서 멈출 수도 있거든.”
사실 이번 선단을 계획하면서 지구상의 국가들이 얻은 반사적 이익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묻혀 있던 지하자본이 끌어올려지고 지금껏 불황으로 멈춰있던 산업 설비들이 미친 듯이 돌아가기 시작했으며, 인건비고 뭐고 사람이 없어서 못 쓰는 지경으로 활황을 구가하고 있는 중이니 말이다.
더 무시무시한 것은, 이것이 고작 시작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달과는 달리 화성을 비롯한 태양계 내의 행성 개발은 이제 막 시작했을 뿐이고, 계획대로라면 최소한 두세 세대는 계속 지금과 같은 상황이 이어지게 될 것이다.
여기까지는 희망과 생명도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는 일이었지만, 그녀가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형진은 지구의 기술 그 자체를 지적했다.
“이상한데?”
고개를 갸웃거리는 그녀의 물음에 형진은 어깨를 으쓱거렸다.
“뭐가?”
“그럴 거였다면, 애초에 저 우주선 같은 것도 내주어서는 안 됐던 것 아니야?”
“저건 어쩔 수 없어. 지구가 지닌 현재의 기술 수준으로는 백년 단위의 시간은 흘러야 비로소 행성 개발에 나설 수 있을 테니까. 신의 기준으로 본다면 그 정도의 시간은 별 것 아닐 수도 있겠지만, 본래 인간이었던 나로서는 역시 조급증을 억누르기 어렵다고나 할까.”
“하지만 네 말대로라면 기술 발전에 역효과가 날 텐데.”
“물론 그런 점도 감안을 해야지. 음… 어떻게 비유를 하면 좋을까.”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던 형진은 자신이 들고 있는 커피 잔을 바라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저 우주선들은 말이야. 이를테면 커피숍의 스탬프 같은 거야.”
“스탬프?”
“그런 거 있잖아. 몇 잔을 마시면 한 잔 공짜, 이런 거. 도장 열 개 모으면 케이크 공짜라든가.”
희망과 생명은 얼굴을 찌푸렸다.
“뭔가 납득이 안 가는 비유인데.”
“그런가.”
형진은 피식 웃어 버렸다.
“그럼 예를 하나 들어볼까.”
“어떤?”
“자, 여기 열 칸에 도장을 찍을 수 있는 쿠폰이 있어. 그리고 여기에는 칸은 열두 칸이지만 미리 도장 두 개가 찍혀 있는 쿠폰이 있어. 물론 도장을 다 찍었을 때 주어지는 보상은 같아. 이걸 사람들에게 나누어 준다고 생각하면 어느 쪽이 더 사람들을 가게로 끌어들이는 효과가 높을까.”
“그거야…”
어차피 비어 있는 열 칸의 공간에 도장을 찍어야 보상을 받을 수 있는 것은 똑같다. 하지만 과연 사람들이 인식하는 쿠폰의 가치 또한 같을까.
“예상했겠지만, 실제로는 두 개의 도장이 미리 찍혀 있는 쿠폰 쪽이 훨씬 효과가 좋아. 결과적으로는 똑같은 가치의 쿠폰이지만, 미리 두 개의 도장을 찍어놓은 것으로 인해 사람들은 그것에 실제로는 없는 가치를 부여하게 되는 거지.”
희망과 생명은 그럴 듯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결국 저 우주선들은 미끼라는 거야?”
형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현재의 상황에서 인류를 우주로 내모는 기폭제이자, 미끼가 되는 셈이지.”
그리고는 다시 이렇게 덧붙였다.
“하지만 말이야. 저 우주선은 결국 미라지 코어가 운영권을 틀어쥐고 있는 거나 다름없어.”
“기관을 독점하고 있으니까.”
“그렇지. 하지만 과연 우주 개발이라는 과실을 맛본 인간들이 그것으로 만족할까?”
형진은 씩 웃었다.
“본래 인간이었던 내가 말하긴 좀 그렇지만, 인간은 끊임없이 탐욕 하는 존재야. 주어진 사료에만 만족하는 가축과는 다르거든. 일단 맛을 보고 나면, 그것을 누군가가 틀어쥐고 있다는 사실에 만족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더욱 더를 외치게 마련이지.”
“권능을 사용할 수 없으니, 결국은 과학에 더욱 매달려서 미라지 코어를 따라 잡으려 들 거라는 얘긴가.”
“물론 간단하게 이뤄질 만한 일은 아니야. 하지만 이미 불씨는 뿌려졌고, 잡신들을 비롯해서 그 불꽃을 더욱더 키워낼 만한 장작은 잘 마른 채로 여기 저기 던져져 있지. 태양계 내의 행성 개척이 궤도에 오르고, 인구와 생산능력이 폭발하게 되면 기술의 발전은 더욱더 빨라질 수밖에 없어. 정 안 되면 잡신들 중에 적당한 자를 골라서 미라지 코어의 경쟁자를 만들어내도 되는 일이고.”
희망과 생명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그리고 마침내 현재의 우주선을 따라잡을 만한 정도로 발전하면, 그때 게이트를 내놓겠다는 건가.”
“일단은. 물론 그건 태양계 내의 이동이 아닌 다른 항성계 간의 이동에 쓰이게 되겠지만.”
“항성계 내의 이동에는 결국 기존의 우주선이 계속 쓰이게 될 거란 얘기군.”
“모처럼 만들었는데 한 순간에 고철이 되면 그것도 불쌍한 일이잖아. 게다가 과학이나 기술이 그 정도 수준에 도달하면 알큐비에레 드라이브를 능가하는 다른 무언가를 만들 수도 있겠지. 물론 이것도 그때 가서의 일이겠지만.”
사실 미라지 코어가 선발대의 우주선에 제공한 기관은 하늘호의 그것에 비해 성능이 떨어진다. 그래서 태양계 내에서라면 각 행성들 사이를 순식간에 이동할 수 있는 하늘호와는 달리, 지금 화성으로 향하는 선단은 훨씬 느린 속도로 이동하고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봐야 기존의 우주선에 비하면 하늘과 땅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의 차이가 있다.
잠시 노닥거리며 선단에 동행한 기자들이나 하늘호에 동승한 기자들이 지구로 보내는 실황 중계를 지켜보고 있자니, 어느 틈엔가 그들의 시야에는 표면적의 절반 가까이가 푸른 바다로 뒤덮인 행성 하나가 나타났다.
“저게 그 화성이라니.”
“말 그대로, 저게 그 화성이야.”
그들의 시야에 들어온 행성의 모습은 이전에 화성이라고 하면 떠올렸던 붉은 빛의 사막 행성과는 전혀 달랐다. 북반구의 대부분이 푸른 바다로 뒤덮인 채, 흰 구름이 물결치듯 소용돌이치고 있는 모습은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생동감이 넘치고 있었다.
화성을 테라포밍하기 위한 기본적인 과정은 달의 그것과 비슷했다. 태양풍을 막아낼 결계를 만들고 다시 주변의 소행성으로부터 물을 끌어들여 바다를 만드는 일련의 과정은 달을 테라포밍하는 과정의 반복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비슷했다.
“그렇다면, 화성 역시 또 하나의 미끼가 되는 셈이네.”
“그 말대로야.”
결계의 구축을 비롯한 대부분의 과정 역시 미라지 코어의 협력으로 이루어진다. 그 위에 시설물을 올리고 사람들이 살 수 있도록 만드는 과정 자체는 화성 개발의 주체인 믹타에서 주관하게 되겠지만, 좀 심하게 말하면 그저 만들어둔 밭에 씨앗을 뿌리는 정도의 일 밖에는 되지 않는다.
“궁극적으로는 지구인들의 힘만으로 행성 개척을 완료하는 거겠지만, 그것을 이루기 위한 기술이나 자금도 결국은 충분한 인구와 생산력이 뒷받침 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니까.”
“게다가 맛을 보지 않으면, 그게 맛있는 음식인지 아닌지 알 수 없는 일이고.”
“그럴 듯한 비유야.”
선발대는 화성의 위성 궤도를 크게 한 바퀴 돌면서 대열을 정비했다. 그리고는 선발대에 포함된 선박들에 이상이 없음을 확인하자 조심스럽게 화성의 대기권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화성은 북반구는 바다, 남반구는 대륙이라는 형태로 나뉘어 있다. 이것은 기후 자체에도 큰 영향을 초래해서, 극단적인 대륙성 기후와 해양성 기후가 공존하는 기묘한 행성으로 변화하고 말았다.
계절에서도 차이를 보인다. 화성의 자전축은 지구와 비슷한 수준으로 기울어져 있으므로 계절의 변화가 나타나지만, 공전시의 각속도가 느린 관계로 실제 계절의 길이는 지구의 두 배 정도가 된다.
선발대의 선박들은 줄지어 대기권으로 진입해서 북쪽으로 크게 튀어나온 거대한 반도 형태의 지형 아래쪽에 자리 잡은 대협곡 근처로 향했다.
“저기야?”
“맞아. 강과 바다가 만나는 지점은 예로부터 사람들이 살기에 적합한 장소니까.”
대협곡의 동쪽에는 만년설로 뒤덮인 높은 산 몇 개가 보였다. 실제로는 눈이나 비가 활발하게 내리기 시작한 것도 얼마 되지 않았으니 만년설은커녕 일년설도 틀린 말이다.
대협곡은 그러한 고산 지대로부터 흘러내려온 물을 동쪽의 바다로 옮기는 역할을 한다. 사실 위성 궤도에서 보면 하천이라기보다는 지중해 같은 내해로 보는 편이 맞을 것 같은 느낌이긴 하다.
선단은 그대로 수면으로 하나둘씩 내려앉기 시작했다. 지상에서 봤다면 백 여척에 가까운 대 선단이 내려앉는 모습은 그 자체로 대단한 장관이었다.
마치 화성의 지면에서 올려다보는 듯한 시점으로, 미리 입지를 살피기 위해 도착해 있던 사전 조사단이 촬영한 입체 영상을 홀린 듯이 바라보고 있는 희망과 생명에게 형진이 조용히 속삭였다.
“일단 선발대의 선박 가운데 몇 척을 일부러 가라앉힐 거야.”
“일부러?”
“응. 항만을 조성하기 전에 방파제를 조성할 필요가 있거든.”
일부러 거대한 선박을 가라앉혀서 방파제나 제방을 만드는 건 생각보다 꽤 많이 사용되는 공법 가운데 하나다. 급하게 만들 필요가 있거나, 여건이 갖춰지지 않아서 일반적인 방식으로는 시공이 쉽지 않은 장소에 방파제나 제방을 빠르게 만들기 위한 방법이라고나 할까.
실제로 노르망디 상륙작전 당시 연합군은 급조한 인공항의 방파제로 사용하기 위해 프랑스의 구식 전함인 쿠르베를 일부러 침몰시킨 사례가 있고, 한국에서도 특유의 뻘 지형으로 인해 매립이 어려워지자 폐선 두 척을 일부러 착저시키는 방식으로 공사를 진행한 사례가 있다.
지형의 규모가 규모인 만큼, 한두 척 가지고는 어림도 없다. 곧바로 몇 척의 선박이 사전에 지정된 위치로 이동하고, 운항을 위해 장착했던 기관을 분리하여 다른 배에 싣는 일을 마치자 카운트다운과 함께 가라앉으며 임시 방파제의 기초가 완성되었다.
물론 이것으로 끝이 아니다. 바다가 크고 넓은 만큼 해일이나 너울의 위험성도 크기 때문에 안쪽에 지어질 시설을 보호하기 위해서도 방파제와 제방은 지구의 그것보다 훨씬 더 크고 강력하게 만들 필요가 있다. 그러한 부분의 시공 역시 선발대의 주된 임무 가운데 하나다.
“슬슬 내려가 봐야 겠네.”
형진의 말에 희망과 생명이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이대로 그냥 있으면 안 될까.”
“우리가 움직이지 않으면 각국 정상들도 꼼짝없이 갇혀 있어야 할 걸.”
“하긴… 여기까지 와놓고 화성의 땅을 밟아보지 못하는 건 좀 불쌍한 일이겠지.”
말은 그렇게 해도 아쉬웠던 모양인지 희망과 생명은 살짝 투정을 부리듯 형진에게 입을 맞추고서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형진은 그런 그녀의 모습에 빙긋 웃으며 뒤따라 몸을 일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