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3661
Chapter 430화.
인사를 마친 태수는 천천히 돌아섰다.
그리고 앞만 보며 걸어갔다.
뚜벅, 뚜벅.
그렇게 입구로 다가간 태수는 가림막을 걷어 올렸다.
그리고 나가려는 찰나였다.
제임스가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닥터 최.”
“…….”
“지금 그 걸음이 나와 인연의 마지막 걸음이라도 갈 수 있나?”
갈림길을 의미했다.
선택은 태수에게 맡기고 있었다.
“…….”
태수는 잠시 우두커니 서 있었다.
그리고 곧 가림막을 내리고 제임스를 향해 돌아섰다.
마주한 제임스 표정에 가느다란 미소가 지어졌다.
그런데 그때였다.
스윽.
태수는 뜬금없이 지갑을 꺼내들었다.
그리고 그 속에서 NGO ID카드를 꺼냈다.
척.
바닥에 조심히 내려놓았다.
이어서 태수는 그 자리에서 제임스를 향해 정중하게 절을 올렸다.
차분히 절을 마친 태수가 묵직하게 말했다.
“베풀어주신 은혜, 죽는 날까지 품에 간직하고 살겠습니다.”
그 말이 끝이었다.
사락.
태수는 가림막 밖으로 나섰다.
햇볕이 쨍쨍했다.
태수는 잠시 제임스의 진료 텐트를 바라봤다.
“고맙습니다.”
진심이었다.
그 혼잣말을 끝으로 태수는 숙소로 향했다.
미련도 후회도 없었다.
오히려 개운했다.
마음이 시키는 대로 했더니 거짓말처럼 고민이 없었다.
역시 아버지 말씀이 최고였다.
30분 후.
태수는 홀로 NGO본부 건물 현관 밖으로 나왔다.
등에 배낭 하나 짊어진 점이 달라졌다.
그런 태수의 좌우가 썰렁했다.
정민수와 김혁권은 끝내 만나지 못했다.
태수는 오히려 미소 지었다.
“억지로 가는 건 내가 싫어.”
그때 저쪽에서 브레드 김의 모습이 보였다.
그는 커다란 배낭을 메고 있었다.
“브레드, 됩니까?”
“의약품.”
“저도 챙겼는데……. 사이즈가 상당히 차이나네요.”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까. 그보다 우리만 가는 건가?”
브레드 김이 묻자 태수는 어깨를 들썩거렸다.
“아마도요. 그런데 차를 구해야지 않을까요?”
“저기 보이는 도시에서 중고차 팔잖아. 차 한 대 사지 뭐.”
“겁나 바가지던데요.”
“이럴 때 한 번 당해주고 그러는 거지.”
“그건 또 그렇습니다. 가시죠.”
태수가 힘차게 말했다.
그리고 브레드 김과 나란히 위병소로 걸으며 주변을 둘러봤다.
태수도, 브레드 김도, 어쩌면 마지막으로 눈에 담는 모습일 수 있단 생각을 하는 모양이었다.
한 번 더 보고, 또 한 번 둘러봤다.
내가 여기 있었다는 생각이 드는지 가늘게 미소 지었다.
그렇게 NGO본부 건물과 멀어져가던 중이었다.
끼익.
옆에 일반 소형 트럭이 한 대 멈춰 섰다.
창문이 내려가더니 선글라스를 낀 김혁권이 보였다.
“어?”
“응?”
태수와 브레드 김이 놀라 바라봤다.
턱.
김혁권은 팔을 창틀에 걸치며 껄렁껄렁하게 한 마디 했다.
“야, 타.”
“기왕이면 좀 폼 나는 차로 그런 거 하시지. 트럭으로……. 자세 안 나오게 말입니다.”
“걸어서 거기까지 갈 분들 모시러 왔으면 감사하다고 인사부터 하는 게 순섭니다.”
“저기 앞에 도시에서 중고차 사려고 했습니다.”
태수가 퉁명하게 반발하자 김혁권이 선글라스를 아래로 내리며 말했다.
“그럼 스포츠카로 삽시다.”
“그거 타고 산길 올라갔다가 하체 아작 날 텐데요.”
“내려올지 확신도 없는데 그냥 밀고 올라가죠.”
“올라가기 전에 퍼진다니까요. 뒤에 타겠습니다.”
태수는 대충 말하며 브레드 김과 적재함으로 향했다.
텅!
한 번에 올라탄 태수와 브레드 김은 황당한 표정으로 변했다.
정민수가 대자로 누워 있던 탓이다.
스윽.
태수는 적재함 밖으로 고개를 내밀며 큰 소리로 알렸다.
“혁권씨, 적재함에 거지가 타고 있는데요.”
“놔둬요. 밥만 먹이면 부려먹기 좋아요.”
“하인입니까? 그럼 상관없……. 미, 민수야. 일어났어?”
태수가 어색한 표정을 짓는 건 정민수가 뚱한 얼굴로 바라보고 있어서였다.
브레드 김은 분위기를 직감하고는 적재함에서 내려 조수석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 순간 정민수의 스산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거지? 하인?”
“난 넌 줄 모르고 한 말이었지.”
“넌 산에 올라가면 조심해라. 내가 끌고 가서 7박 8일 동안 두들겨 팰 수 있으니까.”
“상상은 자유니까 알아서 하고……. 그런데 괜찮겠어?”
“네가 가는데 내가 어딜 못 가. 아니, 내가 앞서는 거고 네가 날 따라오는 거지.”
정민수는 이상한 부심을 부렸다.
태수는 그냥 그런가보다 했다.
“그래. 그렇다고 하자.”
“야, 대충 넘어가지 말고.”
“싫어. 귀찮아.”
벌러덩.
이번엔 태수가 적재함에 드러누웠다.
그 순간 정민수가 얼른 옆에 누우며 밀어냈다.
“내가 자리거든?”
“거 자식.”
태수가 슬쩍 옆으로 옮겼지만 둘이 눕기 넉넉했다.
그때 브레드 김의 목소리가 앞에서 들려왔다.
“혁권씨가 다 싸웠냐고, 출발해도 되겠냐고 묻는데?”
“출발!”
“오케이!”
부웅.
작은 트럭이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10미터나 갔을까?
끼익!
트럭이 갑자기 급정거했다.
그 충격에 벌떡 일어난 태수와 정민수가 인상을 팍 찌푸렸다.
“왜 멈춰요!”
“앞에 뭔데요?”
그때 뒤에서 친숙한 영어 목소리가 들려왔다.
“헤이, 그만 떠들고 이거부터 좀 받아.”
“어? ……오즈마!”
“여기도 있어.”
텅.
“이작손!”
놀랄 일은 그 뿐이 아니었다.
저쪽에서 종이상자를 하나씩 어깨에 짊어진 의료진들이 다가오고 있었다.
다가온 그들은 상자를 적재함에 올리며 한 마디씩 했다.
텅.
“참 고집도.”
텅.
“애들이 그렇지 뭐.”
닥터 존슨, 닥터 베네딕트, 닥터 갈리온 등등.
그간 같이 수술하며 울고 웃었던 의사들이었다.
그들뿐이 아니었다.
“누나를 이렇게 고생시키나요?”
텅.
“케이시!”
“나는 안 보이나 봐요.”
“엘런?”
간호사들도 중간중간 등장해 상자를 적재함에 올렸다.
점점 앞이 막히자 닥터 쿠엔틴이 크게 소리쳤다.
“빨리 상자부터 정리해야할 거 아니야. 소울을 어디다 흘리고 흐리멍덩하게 있어?”
“꾸띠!”
“빨리 정리하지 않으면 상자에 치여서 갈지도 몰라.”
“아, 네.”
당황한 태수와 정민수는 일단 정신을 차리고는 상자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크기와 무게가 제각각이었다.
파견 때마다 상자를 끼워 맞춰본 경험이 있어 이리저리 잘 정돈했다.
상자를 들고 온 의사들 중엔 닥터 슈미트와 닥터 월릭도 있었다.
태수와 정민수는 허리를 굽힌 채 잰 걸음으로 다가가 받아야 했다.
“이, 이리 주십시오.”
“그냥 내려놓으세요.”
조심하는 태수와 정민수였지만 그들은 달랐다.
“…….”
“…….”
가만히 바라만 보고는 뒤돌아 다시 제자리로 돌아갔다.
정민수는 의아해했다.
“한 말씀도 없으시네.”
“그러게.”
태수는 짐작 가는 바가 있어 씁쓸하게 대답했다.
그리고 다시 정리를 이어갔다.
그렇게 얼추 정리를 마치고 난 후였다.
뒤를 돌아본 태수는 흠칫 놀랐다.
제임스가 홀로 서 있던 탓이다.
시선을 마주하자 제임스가 차갑게 한 마디 했다.
“괘씸한…….”
“…….”
“내가 그 정도 밖에 안 되는 사람인가, 아니면 닥터 최가 그거 밖에 안 되는 사람인가.”
“제가 부족한 거죠.”
태수는 쓰게 미소 지으며 답했다.
그때였다.
휘릭!
무언가 펄럭이며 태수에게로 날아왔다.
간신히 바닥에 떨어지기 전에 붙든 건 NGO ID카드였다.
“어? 제임스.”
“나는 처음부터 큰 세상에 살았는 줄 아나?”
뜬금없는 질문이었다.
그러나 태수는 조금 전 대화의 연장선이란 걸 직감하고 답했다.
“아……. 니요.”
“그리고 내가 물어봤지. 언제 인연을 끊겠다고 했나?”
“네?”
“물어본 거였다고. 그렇게 해도 갈 거냐고, 물은 거라지 않나.”
제임스는 인상까지 찌푸려가며 재차 설명했다.
다시 그때를 곱씹은 태수가 멈칫했다.
“제가 너무 앞섰던 거 같기도 하고…….”
“많이 앞섰어. 괘씸해서 그냥 보내려고 하다가……. 하지만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야. 다신 내가 돌아볼 일 없을 줄 알아.”
“죄송합니다. 제임스.”
“미안하면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내 앞에 나타나도록.”
“썰.”
태수는 찡긋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 표정을 본 제임스도 가늘게 미소 지었다.
그리고 소리쳐 말했다.
“미스터 김, 출발해.”
“챙겨주셔서 감사합니다. 다녀올게요!”
빠앙!
크게 경적을 울린 후 트럭이 다시 출발했다.
태수와 정민수는 지켜보고 있는 제임스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그러면서 정민수가 조용히 물었다.
“너 ID 카드까지 던지면서 때려치운다고 했냐?”
“엉뚱한 상상은 적당히 해.”
“그럼 저와 당신은 가는 길이 다릅니다. 막 이랬어?”
“자식, 적당히 하라니까……. 야, 손 흔들어.”
“어? 응.”
태수의 지적에 정민수는 멈췄던 손을 얼른 다시 흔들었다.
제임스는 투덕거리는 태수와 정민수를 보며 잔잔히 미소 지었다.
그렇게 트럭이 멀어진 후였다.
“후후. 진짜 돌아설 줄이야.”
“이거 죄송해서 어떻게 합니까. 제가 괜히 알려서 말입니다.”
스윽.
클라크 대령이 조용히 나타났다.
제임스는 그를 바라보며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이 일로 닥터 최가 무얼 지향하는지 확실히 알았습니다.”
“전 솔직히 걱정이 앞섭니다.”
“저들이 선택하고 떠난 길이니까 돌아오는 길도 잘 찾아올 겁니다.”
“네. 무사히 돌아올 겁니다.”
클라크 대령도 고개를 끄덕이며 무운을 빌었다.
그 사이 제임스는 남몰래 미소 지었다.
‘다들 자진해서 나설 줄이야.’
의료진들이 먼저 제임스를 찾아왔었다.
제임스는 기왕이면 풍족하게 보내자고 해서 상자 전달이 진행된 거였다.
짧은 시간 폐쇄적인 NGO 의료진들이 마음을 열었다.
그래서 그런지 제임스는 산속 마을 사람들이 왜 저들을 반기는지 알 거 같았다.
트럭은 달리고 달려 한인 마을로 향했다.
운전을 교대로 하며 최대한 피로를 풀었다.
갑자기 출발한 탓에 전혀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탓이다.
그 사이 해는 하늘 높이 솟았다가 서쪽으로 기울었다.
노을이 질 무렵.
트럭은 서낭당을 지났다.
부웅.
그런데 적재함에 쌓인 의약품 상자가 반으로 줄어있었다.
마을에 도착하기 전이라 태수가 하나씩 세어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