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3662
Chapter 431화. (1부 완결.)
그때 김혁권이 물어왔다.
“그런데 반은 왜 숨긴 겁니까?”
“이번에도 정신없이 빠져나오게 되면 챙길 틈이 없을 거 같아서요.”
“한 번 된통 당하더니 준비가 철저해 지십니다.”
“그 준비에 애들 간식도 포함되어 있고요.”
태수가 중간에 도시에 들려 구입한 간식 상자를 가리켰다.
전에 왔을 때 빈손이었다며 아이들에게 눈총을 받았던 탓이다.
이번엔 어떤 뒷말도 나오지 않도록 준비했다.
그런데 그걸 위해 온 길은 아니었다.
얼른 대화를 끝내고 결정을 내리고 움직여야 했다.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트럭이 마을에 도착했다.
빠앙!
운전 중인 정민수가 대뜸 경적을 울렸다.
출발할 때 김혁권이 경적을 울린 걸 따라한 게 틀림 없었다.
그 소리에 놀라 나온 사람들 얼굴은 의아함으로, 그리고 다시 환함으로 변했다.
“어이고, 이게 누구야!”
“이젠 차도 끌고 다니나?”
“날이 더워진다 싶어서 올 때 됐다 싶었는데, 진짜 왔네?”
“하하. 계절만 바뀌면 무조건 오는 구먼.”
마을 사람들이 우르르 다가와 이번에도 격하게 환영해줬다.
태수와 세 사람은 나란히 서서 마을 사람들에게 고개 숙여 인사했다.
“다녀왔습니다.”
“그래. 잘 왔어!”
마을 사람들도 크게 화답해줬다.
그런 시간은 잠깐이었다.
태수는 전노식 촌장의 집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 속엔 노인 삼인방, 그리고 전노식 촌장, 구승헌 사장이 함께였다.
그들 앞엔 군사위성으로 촬영된 사진들이 늘어져 있었다.
그리고 태수가 전한 소식에 다들 충격을 받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전 노인이 인상을 구기면서 다시금 물었다.
“그 말이 사실이냐!”
“사진으로 보셨듯이 진짭니다.”
“밑에 테러리스트들이 깔렸다더니, 그럼 어떻게 올라온 거냐?”
전 노인은 날카로운 질문을 건넷다.
태수는 차분하게 답했다.
“오합지졸들이더군요. 경계도 하지 않고, 긴장감도 별로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그쪽이 구멍이겠어.”
“막상 전쟁이 시작되면 어떻게 돌변할지 모릅니다. 그리고 군용 트럭이 아니라서 그냥 놔둔 걸지도 모를 일입니다.”
태수는 자신이 느낀 그대로를 말했다.
운이 좋았다고도 할 수 있었다.
산길에 접어들 당시 테러리스트들이 보이지 않았던 탓이다.
숨어서 지켜보고 있으면 발견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마을에 들어선 이상 상관없었다.
그때 구승헌 사장이 자책 가득한 표정으로 말했다.
“제가 괜히 문제를 키운 거 같습니다.”
“구가야.”
“네. 둘째 어르신.”
“철광을 노리고 오는 건 시정잡배들이야. 정규군은 무관하다지 않나.”
안 노인이 침착하게 구승헌 사장을 달랬다.
태수가 가져온 정보를 그만큼 신뢰하고 있었다.
오가는 호칭이 자연스러운 걸 보니 많이 친해진 모양이었다.
그게 문제가 아닌 터라 태수가 다시 상황의 심각성을 알렸다.
“저 산 위에서 한판 붙을지, 아니면 이 마을에서 붙을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래서 도망가잔 거냐?”
“네. 설득하고 얼른 모시고 가려고 왔습니다.”
태수가 굳게 말한 순간 조 노인이 퉁명하게 한 마디 했다.
“오랜만에 집에 오면서 술 한 병도 안사오나.”
“내려가면 상자로 사드릴게요.”
“이놈아. 아직도 우리를 모르나?”
조 노인이 묻자 태수는 답답한 심정을 담아 답했다.
“알아도 상황이 이런 걸 어쩝니까. 안 그래요, 구 사장님?”
“…….”
“지금 침묵하시면 안 되거든요?”
태수가 재촉했지만 구성헌 사장은 끝내 답이 없었다.
그는 머릿속에 고민이 가득한 모양이었다.
이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갈등은 딱 두 가지 밖에 없었다.
가냐, 마냐.
그걸 고민하고 있단 자체가 문제였다.
태수는 다시 구승헌 사장을 설득하려 입을 열었다.
“무슨 고민을 왜 하십니까. 당장 나가야죠.”
“최 선생님, 이벤번에 나가면 저희는 어디로 가야 합니까?”
“그……. 그……. 흐우!”
“살고 봐야 한다. 글쎄요. 사는 거 같이 살아야 사는 거 아닙니까.”
구승헌 사장의 철학적인 말에 태수가 반대로 물었다.
“사는 거 같이 사는 게 뭡니까?”
“여긴 우리 집입니다. 우리 마을입니다. 내 집에서 쫓겨나는 일은 이제 싫습니다.”
“사장님, 제가 이런 말씀까지 안 드리려고 했는데요.”
태수가 운을 떼려하자 구승헌 사장이 막아섰다.
“그럼 하지 않으시면 됩니다.”
“아니, 한국에 있는 애들은요!”
“음. 그러네요.”
“그렇죠?”
“네. 애들이 놀만한 걸 좀 연구해봐야겠습니다.”
구승헌 사장이 흔들림 없이 말하자 태수는 복장이 터졌다.
“아으, 좀! 그러니까…….”
태수는 다시 노인들을, 또 전노식 촌장을, 재차 구승헌 사장을 설득해봤다.
그러나 결론은 꼼짝하지 않는단 말만 반복해서 들었다.
태수는 무전기를 들며 밖의 상황에 희망을 걸었다.
“태수입니다. 민수, 그쪽 상황은 어때?”
– 공장장님하고 반장님하고 산에 올라가셨어.
“야밤에 산에는 왜?”
– 참호 파야 된다고. 다른 분들은 대장간에서 칼 만들어야겠다고 하신다.
정민수의 허탈한 대답이 들려온 후였다.
바로 이어 브레드 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여기 여성분들은 행주대첩을 재현하실 예정인 모양입니다. 돌 줍고 계십니다.
– 아니, 무슨 전투민족이야? 애들은 서로 호신술 알려준다고 뒤엉켜 있고. 뭐 이래!
김혁권은 어이가 없는 모양이었다.
곳곳에서 들려온 소식들 모두 결론은 똑같았다.
태수는 그냥 드러누웠다.
“아, 이제 나도 몰라.”
“이놈아. 넌 우리가 그냥 늙은이로 보이냐?”
“네?”
벌떡.
태수가 일어나 바라보자 노인 삼인방 눈빛이 차갑게 빛났다.
“살면서 한 번은 도망가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지.”
“그 소원이 이번에 이뤄지겠구나.”
“최가야. 도망가고 싶으면 얼른 일어나라.”
조 노인은 오히려 태수를 놀렸다.
전노식 촌장이 뒤를 이어 태수에게 말했다.
“최 선생, 우리 알지? 우리 피가 보통 피가 아니라고.”
“저는 현역 출신에 예비군에 민방위까지 이수했습니다. 나라에선 필요 없다는데, 여기선 쓸 만할 거 같습니다.”
구승헌 사장도 의욕을 보였다.
태수는 방금 김혁권의 무전 내용이 귓가를 다시 맴도는 거 같았다.
‘전투민족 맞네.’
그냥 속편하게 생각했다.
어차피 설득해서 안 먹힐 걸 예상하고 있었다.
그래서 비상식량도 넉넉하게 들고왔다.
다음날부터 한인 마을은 전쟁 준비에 들어갔다.
태수와 남궁현철의 눈이 똑같이 한쪽으로 쪼르르 움직였다.
“와, 저기 함정 파는 거죠?”
“그러네요.”
그리고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지금 칼 만들고, 또…….”
“암기 만드시네요.”
또 있었다.
데구르르.
다른 쪽을 바라보자 더욱 황당해 했다.
“구덩이 아니, 참호를 여러 군데 파네요.”
“비상식량도 넣어놓는 센스까지.”
“이게 당혹스러운 건 제가 이상한 게 아니죠?”
“전 지금 제가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두 사람이 멍한 표정으로 둘러볼 때였다.
정민수가 다가와 물었다.
“저 정도면 바위로 계란 칠 수 있을까?”
“그럼 그냥 깨져.”
“아, 그렇지. 반대네. 계란으로 바위 칠 수 있을까?”
정민수는 다시 정정해서 말했다.
말실수도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긴장하고 있었다.
태수는 냉정한 시선으로 봤다.
그럼 결론은 간단했다.
절레절레.
“계란만 산산조각 날 거야.”
“그럼 어째.”
“광현씨에게 엽총 있고, 공장장님이 소총 몇 정 챙겼는데 총알이 많지 않고……. 몰라. 무슨 대책이 있는지 도저히 모르겠어.”
태수는 생각할수록 머리가 아파왔다.
그렇지만 아주 절망적이라고 볼 수 없었다.
마을 주변 산속에 크고 작은 천연동굴들이 있었다.
정말 대책이 없어진다면 그쪽으로 피신하는 방법도 있었다.
그런데 이들은 그럴 생각이 없어 보였다.
태수는 곧 몸에 힘을 끌어올렸다.
“그래. 내가 안 된다고 생각하면 더 안 되겠지.”
“된다고 생각하면 되고?”
“하늘이 천둥, 번개, 우박까지 선물해줄지도 모르잖아. 그럼 저도 일단 움직이겠습니다.”
태수는 정민수, 남궁현철을 놔두고 마을 사람들에게 향했다.
여기까지 왔는데 손 놓고 구경할 순 없었다.
다들 대위기를 앞두고 차분히 대비 중이었다.
그 속에서 한민족의 자긍심이 엿보였다.
적을 두고 물러서지 않는 배짱만큼은 아마 전 세계에서 최고이지 않을까 생각됐다.
태수는 병원으로 돌아와 무전기를 켰다.
주파수까지 맞춘 후 클라크 대령을 호출했다.
“여기는 닥터 최, 레드폭스 응답바랍니다.”
약속한 시간인 터라 바로 반응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 치직. 레드폭스 수신. 잘 도착했는지.
“네. 잘 도착했습니다.”
– 치직. 병아리 몰이는 예정대로 진행 중인지.
“한 판 붙겠답니다.”
태수가 답함과 동시였다.
무전기의 소리가 갑자기 부산해졌다.
– 치직, 치직. 재송신 바란다.
“한 판 하자고 준비 중입니다.”
– 치직. 규모 파악 했다고 알림. 참새 한 무리, 비둘기도 한 무리, 좁쌀도 상당하고, 빨간 콩은 매운 맛이 강하다고 통보!
태수는 머릿속으로 암호를 독해하며 이해했다.
중국군이 화력이 세다고?
“알려줘도 병아리들은 반응이 없을 거 같습니다.”
– 치직. 다시 병아리 몰이를 진행하라. 그게 좋은 걸 왜 모르는지.
“꼼짝 하지 않을 걸 어쩝니까. 일단 상황보고는 여기까지. 내일 오전부터 무전 풀로 개방합니다.”
탁.
태수는 무전기를 끄며 어깨를 들썩였다.
“제가 그냥 안 된다고 하는 게 아니라니까요.”
해가 졌지만 전쟁대비는 계속 되고 있었다.
한편으로는 이해도 됐다.
쫓기는 삶에 얼마나 지쳤을까.
이젠 버텨보고 싶을 터였다.
태수는 문득 생각했다.
‘이번에도 피하긴 어렵겠지.’
총을 드는 일을 의미했다.
아버지 말씀 속에 답이 있다.
그 순간 마음이 시키는 대로.
그렇게 결정했다.
그리고 또 하루가 지났다.
전쟁 시작이 예상되는 디데이였다.
세상은 고요했다.
저벅, 저벅.
걸어 다니는 소리가 들릴 정도였다.
이런 적막은 풀벌레조차 울지 않는단 소리였다.
태수의 시선이 산으로 향했다.
‘천지봉?’
한인 마을에서 붙여준 이름이라고 했다.
그 천지봉이 거점으로 활용될 고지일 터였다.
그리고 로이스를 응급처치하고 구조했던 바로 그 설산이기도 했다.
적막은 기약 없이 이어졌다.
계속 된 긴장감에 배가 고프지도 않고, 화장실 생각도 없었다.
다들 집안에서 조용히 대기 중이었다.
먼저 기폭제 역할을 할 생각은 아무도 없었다.
지금도 이대로 그냥 지나갔으면 하는 바램을 품는 게 당연했다.
그런데 결국 이들의 소망은 먼지가 되어버렸다.
콰과과광!
엄청난 규모의 폭음이 울렸다.
그리고 그게 시작이었다.
투다다다. 퍼버버벙!
산에서 화려한 불꽃들이 폭죽처럼 사방에서 터졌다.
태수와 김혁권이 창문을 통해 바라보고 있었다.
“젠장. 시작은 지대지 소형 미사일 아니었습니까?”
“중국군이 포문을 연 거네요.”
“돈도 썩어나지.”
“아니라서 한 발 밖에 안 쏜 모양입니다.”
두 사람은 거의 중계하는 대화가 오갔다.
그런데 그런 여유도 잠시였다.
콰과광!
마을 어딘가에 폭탄이 떨어졌다.
놀라운 건 어디서도 비명이 들려오지 않았다.
임산부들은 가장 안전한테 몸을 숨기고 있었다. 그 외에도 여성과 아이들이 있지만 악소리 한 번 나오지 않았다.
“대단합니다.”
“전투민족이라니까.”
콰과광!
“생각보다 빨리 이쪽으로 타격이 오네요.”
“그럼 이동해야죠.”
그 말과 동시였다.
무전기가 울리며 전 노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 모두 산개해라. 폭탄에 눈이 없으니 각별히 주의하도록 해.
– 어른 말 들어 나쁠 거 없다.
– 안전한 곳에 최대한 숨어. 괜히 나와서 돌아다니다가 총 맞지 말고.
안 노인과 조 노인의 무전소리가 이어서 들려왔다.
그 순간 태수는 쓴 미소를 지었다.
“무전기를 더 챙겨왔는데……. 이렇게 쓰이네요.”
“그래도 부산한 거 보다는 낫습니다. 그…….”
김혁권이 뭔가 말을 하려할 때였다.
휘이잉. 텅!
앞마당에 무언가 떨어졌다.
그걸 본 태수의 눈이 휘둥그레 떠졌다.
“피해!”
와락!
태수는 그대로 김혁권을 밀치며 함께 몸을 날렸다.
그와 동시였다.
콰과과광!
천지를 뒤흔들 듯한 폭발음이 귀를 강타했다.
그리고 돌로 지어진 벽이 우르르 무너졌다.
“크아악!”
누군가의 비명소리가 따갑게 울렸다.
그리고 무너진 집에서 먼지가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곧 먼지가 걷혔다.
집은 반파 되어 두 면이 폭삭 무너지고 다른 두 면도 일부 손상을 입었다.
그런데 움직임이 없었다.
태수와 김혁권은?
보이지 않았다.
띠릭.
– 태수, 혁권씨, 응답바랍니다!
– 최가야. 싹퉁바가지야.
– 뭐야. 어떻게 된 거야!
– 가까운 사람 누구야. 빨리 가봐!
무너진 집안에서 무전소리만 들려왔다.
-외전 1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