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ife of an actor of a former idol RAW novel - chapter 276
“임정선에게 속고 또 속는다. 지금까지 다 속은 건가, 느끼는 순간 엔딩 크레딧이 올라온다. 이 영화를 보면서 내가 바보가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BBC. 이야, 이 기자 뭘 좀 아나 보네. 어디 보자…. 이름이?”
선민 형의 목소리를 들으면서도 나는 제대로 눈을 뜨지 못하고 있었다. 지끈, 아침부터 계속해서 머리가 아팠기 때문이었다. 대체 왜 이렇게 머리가 아프지. 어젯밤에는 비공개 파티에 참여해서 술을 좀 마셨다. 하지만 이렇게 숙취가 느껴질 만큼 많이 마신 것도 아닌데….
공식 시사를 시작으로 일정은 빠르게 흘러갔다. 많은 카메라 앞에 섰고,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끊임없이 이야기를 들었고, 계속해서 웃어야 했다. 며칠 전 여유롭게 영화를 보고 다니면서 놀았던 것이 아주 오래전의 일인 양 아득하게만 느껴졌다.
“연진아? 이거, 코멘트 어때?”
“아, 표현이 재밌네요.”
“그렇지? 다른 것도 많아.”
“네….”
나는 그저 답을 하며 고개를 끄덕이기만 했다.
“참, 감독님이 전화 주셨어. 칸에서 멀리 있지 말라고 연락 왔대.”
“아, 그래요?”
“무슨 뜻인지…. 알지?”
“그럼요.”
칸을 떠나지 말라…. 폐막식에서 상을 주겠으니, 가지 말고 꼭 참석하라는 귀띔. 뭐, 새로운 일도 아니다. 내가 기억하는 과거에서 이 영화는 칸에서 감독상을 수상했던 영화니까.
그런데….
“남우 주연상은, 정연진.”
순간 커다란 환호와 박수가 터져 나왔다. 나는 여전히 머리가 아픈 것을 느끼며 표정을 유지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그래서 무엇을 들었는지,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연진아….”
옆에 앉아 있던 임정선 감독이 나를 부르며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는 나를 부둥켜안았다. 나는 엉거주춤한 자세로 나보다 작은 임 감독의 포옹을 받았다.
“…네?”
“야, 뭐 하고 있어. 너라고, 너.”
“네?”
귓가에 들려오는 임 감독의 말이 무슨 뜻인지, 그제야 이해했다. 아니, 이게 말이 되나? 내가, 칸 영화제에서 최우수 남자 배우상을 받는다고? 이게 현실이라고? 아니, 꿈인 거 같은데….
임 감독은 나를 놓아주었고, 곁으로 다가온 석진현과 송정구 선배가 차례로 나를 안았고, 축하의 말을 했다.
아…. 진짜 현실이라고?
“뭐 하고 있어, 녀석아. 어서 무대로 나가야지. 상 받아서 와. 멋진 말도 좀 하고.”
임 감독이 나의 등을 두드리며, 무대로 나갈 것을 종용했다. 나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지나치는 모든 사람이 박수를 쳐 주고 있었고, 손을 내밀었다. 그들의 손을 잡아 주고, 빨간색의 카펫이 깔린 계단 앞에 섰다.
계단으로 한 걸음을 옮기며, 생각했다. 아침부터 머리가 아팠는데…. 이상하게도 지금, 이 순간에는 아프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표정을 만들어 내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입꼬리가 올라가고 있었다. 점점 더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무대에 올라 트로피를 받고, 마이크 앞에 섰다. 후우, 크게 숨을 한 번 내쉬었다.
“Merci Beaucoup”
메르시 보꾸, 이렇게 발음하는 게 맞았나? 모르겠다. 일단 인사는 해야 하는 거니까.
“임정선 감독님께,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제게 이런 멋진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영화와 관계된 이들의 이름을 하나씩 내뱉으며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그리고 지금부터는 내가 지금, 이 순간에 하고 싶었던 말을….
“제게는 아주 특별한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 시간 속의 나는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못했습니다. 외로웠지만, 외로움을 알지 못했고, 슬펐지만, 슬픔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 시간이 지금의 내게는 없지만, 그 시간이 남긴 흔적들은 여전히 내 안에 존재합니다.”
그랬다.
과거의 시간은 더는 존재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었다. 그 시간들은 존재하지 않았지만, 내게는 많은 것을 남겼다는 것.
은 그런 의미에서 내게는 더욱 특별한 작품이기도 했다. 칸 영화제에 올 수 있어서도 아니고, 내게 이런 상을 받을 수 있도록 해 줘서도 아니었다.
그저 을 촬영할 때는 몰랐던 것들을 지금, 이 순간에 알게 되었다. 안상현이 겪은 일들이 지현상을 통해서 남겼던 흔적들처럼….
나만 알고 있던 과거가 남긴 흔적들로 인해서 지금의 내가 존재할 수 있음을…. 안상현을 연기하면서 어렴풋이 느꼈던 것들이, 생생하게 다가왔다.
그리고 이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은, 영화와 관련된 이야기라고 받아들일 수도 있겠지.
나는 배우니까.
또 다른 삶을 살아 볼 수 있는 배우니까.
“그렇기에 생은 아름답습니다. 힘들었던, 슬펐던, 외로웠던 기억들도 오늘을 살아가게 만드니 말입니다. 여러분의 모든 오늘이 아름답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하고 싶은 말을 다 했다. 환하게 한 번 웃은 후에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그래, 모든 것이 아름다웠다.
진심으로 모든 것이 아름다웠다.
그리고….
“에이, 이진아. 이진이 손은 지지가 아니지만, 이걸 입에 넣으면 지지가 되는 거야.”
나는 자기 손가락을 입으로 가져가는 아이를 손을 막으면서 말했다. 아이는 행동이 막혀서인지, 금세 입을 삐쭉이고 눈이 울먹울먹해졌다.
앗, 울리면 안 되는데…. 나는 급하게 아이의 손에 내 손가락 하나를 쥐여 줬다. 아이는 내 손가락을 꼬옥 쥐더니, 다시 방긋방긋 웃기 시작했다. 아이의 손바닥을 통해서 따뜻한 온기가 전해졌다. 아이와 함께하는 모든 순간은 이렇게 뭉클한 구석이 있었다.
“어우, 우리 이진이 누구 닮아서, 이렇게 힘이 세지? 응? 오빠 닮아서 그렇다고? 그렇지, 그렇지. 오빠 닮았지이.”
정이진.
작년 10월에 태어나 이제 6개월이 된 내 여동생이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럽고, 예쁘고, 씩씩하고, 귀엽고, 소중한 아이. 그리고 태어나자마자 대한민국에서 가장 핫한 신생아가 되기도 했다.
다른 이유가 아니었다. 나 때문이었다. 산부인과의 분만실 대기실에 아버지와 함께,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는 모습이 사진으로 찍혔다. 그리고 SNS를 타고 퍼져 나가고, 결국에는 기사화가 되었다.
처음에는 정연진 사고 친 거 아니냐는, 정말 어처구니가 없는 루머도 돌았다. 하지만 이진이가 태어남과 동시에 소속사를 통해서 동생의 존재를 알렸다.
그리고 많은 축하를 받았다. 이진이와 관련된 댓글은 꼼꼼하게 살펴보기도 했는데, 그중에서 가장 좋았던 것은 “태어나니 오빠가 정연진이라니 부럽다”라는 댓글이었다. 이진이에게 오빠가 정연진이라는 것이 부러움의 대상이 되었다는 것이 좋았다.
그것은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알려 주는 이정표가 되었다. 이진이가 늘 오빠를 자랑스러워할 수 있도록,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것.
“오빠 닮았지? 그지? 그지이?”
딸랑이를 들어 올려 아이에게 흔들어 주자, 꺄꺄꺄 웃음을 터트렸다. 아이의 눈이 가느스름해지면서 살짝 휘었다. 내가 웃는 사진을 볼 때의 모습과 눈이 똑같이 생겼다. 정말이다. 내 동생 이진이는 나를 똑 닮았다.
아이의 사랑스러움을 견딜 수 없었다. 그래서 아이를 안아 올렸다. 아이가 태어난 직후에는 너무 작아서, 정말 너무 작아서 손을 가져다 대는 것도 무서웠다.
혹시나 내가 아이를 떨구지는 않을까, 내 손에 있는 무언가가 아이에게 영향을 미치면 어쩌나 싶어서…. 하지만 이제는 아이를 안아 올리는 것이 익숙해졌다. 아이의 등을 토닥이면서 입을 열었다. 나는 아이를 재우며 이야기를 하는 것을 좋아했다. 아이가 나중에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많은 이야기를 해 주고 싶었다.
“칸에서 돌아왔을 때의 일이야. 칸 이야기는 이제 지겹다고? 에이, 이진아. 그래도 오빠가 지금도 가장 많이 듣는 말이 ‘칸의 남자’라는 말인데…. 지겨워하면 안 되지…. 그런데, 이건 칸에 관련된 이야기는 아니야. 들어 줄 거지?”
작년 5월 칸 영화제에서 최우수 남자 배우상을 수상한 소식은 실시간으로 대한민국에도 전해졌다. 이 경쟁작으로 초청받았기에, 수많은 매체의 기자들이 칸에 왔었다. 그리고 칸 영화제의 폐막식은 영화 전문 채널을 통해서 실시간으로 중계되기도 했다.
그 영광스러웠던 순간은 영상으로, 사진으로, 기사로 많은 이들에게 전해졌다. 그리고 나는 ‘칸의 남자’라는 수식어를 하나 더 얻었다. 정말 감사한 일이었다.
연기로 상을 받는 것은 늘 감격스럽다. 과거의 그 어느 날에 진짜 연기로 최우수상을 받았던 그때부터 단막극상, 그리고 칸의 배우상까지. 어느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내 연기가 상을 받을 만한 연기라는 인정을 받는다는 것. 그것이 중요했기에….
은 과거와 같이 이번에도 역시 임정선 감독이 감독상을 받았다. 그리고 칸 영화제 폐막 직후에 국내에서 개봉했다. 청소년 관람 불가 판정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최종 스코어는 870만을 기록했다.
칸 영화제에서 2개 부분에서 상을 받은 영화라는 것이 초반의 흥행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그리고 이후에는 내가 청년 안상현과 노인 안상현을 동시에 연기했다는 것이 알음알음 알려지면서 재관람으로 이어졌다. 또한 우정 출연에 이름을 올린 기태준은 대체 어디에 나왔냐는 의문 역시도.
제작사와 소속사에서는 처음에는 정진건이라는 배우의 존재는 밝히지 않았다. 크레디트에도 존재하지 않는 배우. 노인 안상현을 연기하는 것이 누구냐는 것에 대해서 의견이 분분했다.
하지만 칸의 시사회에서 장은혜 기자처럼 신기하게도 먼저 눈치채는 사람들도 있었다. 장은혜 기자는 고맙게도 먼저 기사를 내지 않았다. 다만 ‘노인 안상현에게 집중하면 보이는 것들’이라는 기사를 썼다.
공식적으로는 정진건에 대한 코멘트를 하지 않자, 온라인에서는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노인 안상현을 연기하는 것도 정연진이라는 주장은 처음에는 어그로 취급을 당했다. 차라리 노인 안상현이 기태준이라는 것이 더 맞겠다는 반박까지도 있었다.
그러나 증거를 제시하는 이들이 점점 더 많이 늘어났다. 입소문은 영화의 흥행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 이야깃거리가 많은 영화라면 더더욱 입소문을 타기 마련이었고…. 그것이 흥행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마침내 임정선 감독이 영화 캐스팅의 비하인드를 풀었다. 다시 한번 온라인이 뒤집혔고, 나는 주변 사람들에게서도 많은 연락을 받았다. 어떻게 그렇게 감쪽같이 숨길 수 있냐고….
“이진아, 기억나? 다혜 언니 말이야. 그 예쁜 언니 기억나니?”
등을 토닥이는 손길이 조금 조심스러워졌다. 이진이의 눈에 잠기운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다시 조심조심 토닥이면서, 말을 이었다.
“다혜 씨가 말이야…. 정말 그럴 줄 몰랐어. 오빠보다 더 용감한 사람이었더라고. 하긴, 오빠는 겁쟁이니까.”
작년 여름 우리는 공식적으로 열애를 인정했다. 아니,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고 해야 하나…. 다혜 씨의 집 근처에서 데이트하는 장면을 파파라치가 찍었다.
나는 공개 연애에 상당히 부정적인 입장이었다. 오랜 연예계 생활을 하면서 어쩔 수 없이 연애 사실이 밝혀진 커플이 끝까지 좋았던 것을 몇 보지 못했다. 그래서 가급적이면 오래도록 사실을 숨기고 싶었다.
처음으로 좋은 사람과 하는 좋은 연애. 관계가 깊어지는 것이 좋았고, 그녀와 함께하는 시간이 좋았다. 너무나 소중했기에, 더욱 비밀로 하고 싶었다. 그래서 다시 막아 보려고 했지만….
“연진 씨. 우리 그냥 밝히죠.”
“네?”
“그냥 밝히자고요. 우리 연애한다고 전 국민이 다 알게 해요. 아니, 이제는 전 세계가 다 알게….”
“진짜요?”
“왜요? 밝히면 안 되는 이유, 있어요?”
김다혜, 그녀는 용감했다. 사실 열애를 시인하고 나면, 남자 배우보다 여자 배우 쪽이 더 타격을 받게 되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런 것은 신경 쓰지 않는다고 했다.
“나는요…. 정연진이 김다혜 거라는 걸 사람들이 다 알았으면 좋겠어요.”
그녀는 내 눈을 바라보면서 그렇게 말했다. 나는 거절할 수가 없었다. 공개 연애에 부정적이라고는 했지만, 사실 나 역시도 같은 마음이었으니까. 김다혜가 내 사람이라는 걸 세상이 다 알았으면 했으니까.
열애 사실을 인정하자, 반응은 뜨거웠다. 다행히도 응원하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잘 어울린다는 소리를 듣는 것이 행복했다. 우리는 연예계를 대표하는 공식 커플이 되었다. 김다혜의 이름 옆에 내 이름이 붙었다. 나는 그것이 좋았다.
“자, 이제는 슬픈 이야기. 오빠가 오늘부터는 드라마 촬영을 시작해…. 그래서 이진이랑 같이 있을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들 거야. 슬프다. 그지?”
오늘부터 KBC 대하드라마의 촬영이 시작된다. 총 50부작으로 제작되는 정통 사극으로, 사실 처음에는 출연 제의를 받고 고민이 많았다. 사극은 에 출연했던 것이 전부였던 데다, 50부작 정통 사극은 아무래도 부담이 컸기 때문이었다.
“이 오빠가 말이지…. 이번에는 세종 대왕님이 될 거야. 나중에 이진이가, 우리 예쁜 이진이가 조금 더 자라면 그때는 한글도 배우고, 우리나라 역사도 배우고 그러지 않겠어?”
그랬다. 이번 드라마의 출연을 결정한 것은 이진이가 상당히 많은 영향을 미쳤다. 아이에게 보여 주고 싶었다. 오빠가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지 궁금해하는 날이 왔을 때, 보여 줄 만한 작품을 찍고 싶었다.
지금까지 출연했던 모든 작품이 소중하기는 했다. 작품을 고르는 데 있어서도 상당히 신중을 기했고, 연기를 하는 것도 최선을 다했다. 그러나 이진이가 조금 더 자랐을 때, 그 작품들을 보여 줄 수 있는가는 다른 이야기였다.
“이진이는 오빠 좋아하니까…. 오빠 나오는 드라마도 재밌게 볼 수 있겠지? 그렇지?”
나는 몇 번이나 아이에게 나를 좋아하는지, 확인했다. 내 말이 재밌었을까? 아이는 그저 웃기만 했다. 이진이가 지금의 내 말을 알아들을지는 확신할 수 없다. 그러나 먼 훗날에, 드라마를 보게 되는 날에, 이때 이런 이야기를 했었다고 다시 이야기해 줄 수 있겠지.
동생이 생기고 나서, 동생을 위한 기준이 생기는 것은 내게 당연하게 되었다. 작품을 선택하는 데 있어서 그것이 절대적인 기준이 되지는 않겠지만, 한 번쯤은 고려할 만한 이유가 되었다는 말이다.
“아, 우리 이진이 자네? 잘 자. 좋은 꿈 꾸세요. 우리 공주님.”
조심스럽게 아이를 아이 침대에 눕혔다. 새근새근 숨을 내쉬는 모습이 한없이 사랑스럽게만 보였다.
이렇게 아이를 가만히 보고 있으면 그런 생각이 들고는 했다. 내가 과거로 돌아와서 다시 삶을 살게 된 이유. 어쩌면… 어쩌면 내 동생, 이진이를 만나기 위해서 아니었을까 하고 말이다.
이진이가 지금 여기 있는 것에는 수많은 조건이 필요했다. 아버지가 내 곁에 계셔야만 했고, 새어머니를 만나셔야 했다. 아이가 이렇게 내 곁에, 우리 곁에 있을 수 있는 것은 과거와 많은 것들이 달라졌기 때문이었다.
나는 아직도 어째서 내게 이러한 기회가 주어졌는지, 알지 못한다. 그리고 그걸 알지 못한 채 살아가게 될 수도 있다. 그러니까 이유는 내가 만들어 내는 것이다.
내게 주어진 기회, 내가 다시 살아가는 이유…. 오늘을 소중하게 여기고, 계속해서 더 열심히 살아가는 이유를 만들어 내는 것. 그것이 내가 살아가는 데 있어서 많은 힘이 되어 주니까.
지금 내게 가장 소중한 존재가 되어 버린 이진이가 오늘을 살아 내는 힘이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몰랐다.
“이따가 보자, 우리 공주님.”
아이의 이마에 입을 맞추고 다시 한번 이불을 덮어 주고, 방을 나왔다. 주방에 계시던 새어머니가 거실로 나오셨다.
“쉿, 이진이 자요.”
“요즘 잠투정 심하던데, 고생했어.”
“에이, 잠투정은요, 무슨. 오빠랑 재밌게 놀았는 걸요.”
“그래, 좋은 오빠니까.”
나는 그저 웃었다. 좋은 오빠라는 말을 듣는 것이 좋았다. 아버지가 결혼하실 즈음에 나는 독립을 선언했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 아버지와 새어머니 두 분에게 잠시라도 신혼을 즐기실 수 있는 시간을 드리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완벽한 독립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아버지는 우리 아파트의 위층이 매물로 나오자, 그곳은 어떠냐고 물어보셨다. 나는 좋았다. 뭐, 가족과 가까이 지낼 수 있으면 좋은 거니까.
“이제 나가는 거야?”
“네. 오늘부터 촬영 시작이라서요.”
“고생하겠다.”
“좋아서 하는 일인걸요. 다녀오겠습니다.”
이진이가 태어나자 그것은 더없이 좋은 선택이었다는 것을 매일 느끼고 있었다. 이렇게 이진이의 얼굴을 보고 나갈 수 있었으니까.
“여어, 연진. 왔어?”
분장을 마치고 세트로 들어서자, 소지혜 감독이 웃으며 나를 반겼다. 시간이 흘러도 변함없는 모습. 이번 사극 의 연출은 사극 외길을 걷고 있는 소지혜 감독이었다.
늘 같은 듯이 보이지만, 매번 새로운 촬영.
연기를 하며 카메라 앞에 선다는 것은 늘 나를 설레게 만들었다.
“레디.”
익숙한 감독의 목소리에 눈을 감았다. 두근, 뛰는 심장 소리가 들렸다.
“사운드.”
“스피드.”
팽팽하게 당겨지는 촬영장의 공기가 좋았다.
“카메라.”
“롤.”
이러한 순간을 느낄 수 있는 배우라는 직업이 좋았다.
“이도. 씬 넘버 하나. 컷 하나. 테이크 하나.”
눈을 떴다.
나는 세종 대왕 이도가 되었다.
연기는 끝없이 이어진다.
내 인생도 그렇게 계속될 것이다.
나는 배우 정연진이다.
“액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