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590
590화 끼어들긴
“한동안은 여기서 머물도록 하세요. 겉보기에는 우리가 우세인 것 같지만 사실은 손실이 상당하거든요. 추굉심 그 사람 아마도 지금 콧대가 하늘로 솟구쳐있을 거예요. 며칠 뒤에 다른 상황이 벌어진다면 어쩔 수 없겠지만,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는다면 사신망사에 함정이 숨겨져 있다는 사실을 퍼뜨리도록 하세요. 두 공법에 대한 얘기는 하지 마시고 다른 정보에 대해서라면 출처부터 시작해서 모두 사실대로 말해버리세요.”
가희는 진양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랬다간 당신에게도 피해가 갈 텐데요.”
“소저, 소저께서 진실을 말한다고 해서 누가 믿어줄 거라 생각하는 건가요?”
진양이 씨익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걱정 말고 그냥 얘기하세요. 추굄심이 제 말을 믿을지 안 믿을지 한번 살펴보자고요. 만약 안 믿는다면 이도로 상주문을 보내 이익과 손해에 대해 얘기하도록 하시고요.”
생각을 하고 난 뒤, 가희의 얼굴에도 미소가 번졌다.
정보의 출처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면 아마 모두들 그녀의 말에 귀를 기울일 것이다.
하지만 하루 종일 취사장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먹기만 하는 자가 뿌린 정보라는 게 알려진다면 어떨까?
당연한 얘기겠지만 아무도 믿지 않으려고 할 것이다.
“그건 그렇고 청란 소저는요? 아까부터 안 보이는 것 같은데. 설마 소저께서 연기했다는 걸 전혀 모르는 건 아니겠죠?”
“아닐 거예요. 다른 건 몰라도 실력에 대해서는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니까요. 그 정도 힘으로는 절 다치게 할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을 거고요. 당시에는 이해 못 했어도 천천히 생각해 보면 이해할 겁니다.
그리고 청란이라면 아마 지금쯤 곤장을 맞으러 갔을 거예요. 제가 그렇게 하라고 시켰거든요.”
“곤장…….”
며칠 전 가희가 곤장으로 수백 명을 골로 보내는 걸 직접 보았다.
그때를 생각하니 아직도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기분이었다.
아마 추굉심도 이 일에 대해서는 들은 바가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앞으로 더 이상 이번 일을 가지고 가희의 발목을 잡거나 귀찮게 하진 않을 것이다.
물론 걱정할 필요는 없다.
청란의 실력을 생각해 보면 곤장쯤은 간지러운 수준에 불과하니 말이다.
* * *
한편, 청란은 형벌장으로 직접 벌을 받으러 왔다.
그러나 반나절을 기다려도 형벌을 집행할 사람이 나타나지 않고 있었다.
같은 시각.
뒤쪽 막사에선 형벌 집행자들이 반쯤 울상이 되어 오 장군에게 빌고 있었다.
“장군, 이를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아무리 전하의 명령이라곤 하지만 누가 감히 청란 대인께 곤장을 때릴 수 있단 말입니까? 장군. 전 죽고 싶지 않습니다…….”
오 장군 역시 난처한 건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상부의 명령이라곤 하지만 누가 감히 순천사에게 손을 댈 수 있단 말인가?
한참의 고민 뒤.
오 장군이 쾅- 하고 탁자를 내려치며 말했다.
“군법이 그런 걸 별수 있겠느냐? 그 누구도 군법 앞에선 예외는 없다. 그저 명대로 하면 될 것을 무슨 잔말이 그리 많느냐? 그저 졸병으로 여기고 형을 집행하면 되는 것 아니냐?”
오 장군은 아예 자리를 피해버렸다.
자리에 남은 사람들은 서로의 눈치만 볼 뿐, 그 누구도 오 장군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표정이었다.
“대인들, 그러니까 오 장군께선 평범한 졸병으로 여기고 형을 집행하라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모든 이들의 시선이 먼저 말을 꺼낸 자에게 향했다.
“그런 눈으로 보실 것 없습니다. 생각해 보시지요. 벌을 받으러 온 게 평범한 졸병이었다면 어떻게 하셨을 것 같습니까?”
그러자 또 다른 누군가 이해했다는 듯 큰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그렇습니다. 오 장군의 말씀대로 군법 앞에선 모두가 평등한 법이죠. 그저 법대로 처리하면 그만입니다.”
형벌 집행을 책임지는 장수들이 먼저 자리를 뜨자 남은 사람들도 같은 얘기를 하며 한 사람씩 자리를 떠났다.
그렇게 결국 백인장(百人長) 두 사람만이 남게 되었다.
두 사람은 씁쓸한 표정으로 서로를 쳐다보았다.
“어쩔 수 없죠. 그냥 적당히 사람을 보내 집행합시다.”
잠시 뒤.
굵직한 쇠몽둥이를 든 삼원 경지의 병사 둘이 청란이 기다리고 있는 형벌장으로 왔다.
“대인, 군법이 군법인 만큼 저희도 어쩔 수 없다는 점 양해 부탁드리겠습니다.”
중앙에 선 백인장이 먼저 포권을 취하며 예를 갖추었다.
그리곤 한걸음 물러서며 대기하고 있는 병사들에게 큰 소리로 말했다.
“군법에 따라 형을 집행한다!”
기다리다 지친 청란은 형벌대에 누워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병사들이 가까이 다가왔지만, 그녀는 여전히 눈을 뜨지 않고 있었다.
병사들은 쇠몽둥이를 높이 들어 힘껏 그녀의 볼기를 내려쳤다.
펑-!
사람을 때리는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커다란 굉음이 터져 나왔다.
그러나 청란의 볼기는 멀쩡했다.
그녀는 여전히 형벌대에 누워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잠시 뒤.
형벌을 모두 마친 병사들은 손을 심하게 떨고 있었다.
온 힘을 다 쏟아부어 때린 탓이었다.
“대인, 형벌 집행이 끝났습니다. 그럼 소인은 이만 물러가도록 하겠사옵니다.”
백인장은 두 병사를 데리고 도망치듯 형벌장을 빠져나갔다.
이어서 잠에서 덜 깬 모습으로 청란이 몸을 일으켰다.
“이게 끝이야?”
생각보다 시시하긴 했지만 어쨌든 정식으로 형벌도 받았으니 문제 될 건 없었다.
청란은 곧장 빛이 되어 사라졌다.
* * *
같은 시각.
추굉심은 지휘관 막사 상석에 앉아 마치 자신이 지휘관이 된 것처럼 심취한 모습으로 이런저런 명령을 내리고 있었다.
* * *
취사장.
진양은 늘 하던 대로 괴수 고기로 탕을 끓이면서도 가희와 계속해서 상의를 이어나가고 있었다.
먼저 가희에게 요국 사람들의 명단을 만들게 한 뒤 거기서 한 사람씩 제외시켜 나갔다.
진양은 우선 자소도군의 이름을 제외시켰다.
애초에 진양의 명단에 그는 존재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일단 직접 성불시킨 건 둘째치고 그가 다시 살아서 되돌아올 확률은 거의 무에 가깝다.
그가 정말로 사신법을 익혔다면 죽지 않고 비생비사의 상태로 살아있었어야 정상이다.
그러나 예전에 마주했던 그는 분명 죽은 사람이었다.
생기도 완전히 끊어졌고 습득 능력도 정상으로 발동했기 때문에 이것만큼은 확실했다.
진양은 조용히 명단에 적힌 이름을 살펴보았다.
‘직접 한 사람씩 전부 확인을 해야 하나?’
사실 그게 가장 간단하면서도 정확한 방법인 건 맞다.
아무리 강한 강자라도 시신은 반드시 남기는 법.
그리고 강자가 남긴 시신답게 아무런 처리가 되어있지 않아도 족히 수만 년 동안은 썩지 않고 남아있다.
그러니 직접 가서 습득 능력을 사용해보면 모든 걸 파악할 수 있다.
하지만 진양은 금세 단념해버렸다.
장정의처럼 무덤 도굴에 도가 튼 것도 아니고, 장정의처럼 목숨이 여러 개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장정의는 현재 진양이 알고 있는 사람들 중에 몽의를 제외하곤 가장 훌륭한 무덤 도굴 솜씨를 가진 사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덤을 도굴하는 과정에서 수도 없이 죽음을 맞이했다.
때문에, 진양이 직접 나서는 건 아무래도 매우 위험할 듯했다.
게다가 진양은 장정의와는 달리 양심 있는 사람이다.
어떻게 무고한 사람의 무덤을 마구 파헤치며 다닐 수 있겠는가?
수많은 무덤 중에 살자비와 관련된 무덤은 오직 하나, 다른 건 전부 무고한 사람의 무덤일 뿐이다.
기껏 공을 들여 요족 강자의 명단을 만들어내긴 했으나 한참을 쳐다봐도 마땅한 대안이 떠오르지 않았다.
잠시 고민하던 진양이 입을 열었다.
“소저, 이게 슬슬 때가 된 거 같아요. 추굉심 그 인간의 콧대가 한참 높이 솟아 있을 때 한 번쯤 찬물을 끼얹을 때가 된 거죠.”
“좀 걱정이 되네요. 지금까지 얘기해 준 것들은 추굉심이 믿건 안 믿건 전부 진실이잖아요. 진양이 이러한 정보들을 알아냈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는다면 요족들도 이를 알아차리게 될 거라고요.”
가희는 진양이 나서지 않았으면 했다.
살자비에 대한 진상은 이미 모두 드러난 상태다.
단지 상고 요문으로 쓰인 내용을 완전히 해독할 수 있는 사람만 없을 뿐.
해독 역시 그저 시간문제에 불과하다.
지금까지 진양이 알아낸 공법은 총 세 개의 공법.
사신망사, 사신법, 그리고 망사법까지.
누구든 나중에 해독할 때 이러한 방향으로 해독하다 보면 진양의 말이 사실이었다는 걸 알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요족과 관련된 요국의 사람들은 진양을 씹어먹지 못해 안달이 날 것이다.
어쩌면 일부 혈기를 주체하지 못한 녀석들은 진양을 죽이기 위해 달려들지도 모르는 노릇이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아무리 멍청하다고 해도 그 정돈 아니겠죠. 아무도 제 얘기를 믿지 않는 상황에서 저를 공격한다면 그건 대놓고 인정하는 꼴이나 마찬가지니까요.”
진양은 개의치 않다는 듯 손을 내저었다.
적어도 지금 당장은 안전 문제로 걱정할 필요는 없다.
어차피 찾아오는 것들은 전부 가까이 다가오지도 못하는 약골들 뿐이다.
설령 고수가 찾아온다고 하더라도 문제 될 건 없다.
전부 다 뒤집어씌우면 그만이니까.
가희를 안심시킨 뒤 진양은 조용히 소식을 기다렸다.
추굉심은 현재 의욕이 상당히 넘치는 상태다.
지금까지는 전선에서 공을 세울 기회가 전무했던 상황이었으나 이젠 아니었다.
기회가 주어졌으니 당연히 의욕이 넘칠 수밖에.
병부의 고위 관리들은 신조의 제도에 따라 전선에서 군대를 지휘할 수 없게 되어있다.
그 역시 문신의 일원이었기 때문에 기껏해야 장수들을 불러다가 혼내거나 의견을 내는 것이 전부였을 뿐이다.
기껏해야 공로를 세운다고 해봤자 건의를 올리는 것이 전부일 뿐, 실질적으로 공을 세우는 건 장수들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건의를 올려봐야 직접 집행하는 자들이 따라오지 못한다면 아무 의미가 없다.
그래서 병부의 사람들은 책임만 지고 공로를 세우지 못하는 상황에 익숙해진 상태였다.
그나마 장수들의 권력을 제한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니었다면, 그리고 이를 이용하여 이득을 볼 수 없었다면 병부는 유명무실한 곳이 되어버렸을 것이다.
추굉심은 회의를 마치고 떠나는 장수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그는 대제의 명령과 태자의 뜻에 따라 이곳에 왔다.
이런 좋은 기회는 날이면 날마다 오는 것이 아니었다.
그렇게 그가 한참 기쁨에 취해있을 때.
한 병사가 들어와 대제희가 왔다는 소식을 전해주었다.
순간 미간이 찌푸려졌으나 곧바로 다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걸 왜 내게 말하는 것이냐? 전하께서 오셨으면 당연히 안으로 모셔야 하는 게 아니더냐?”
그는 곧바로 상석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뒤이어 들어온 가희에게 다가가 예를 갖추었다.
“전하, 건강은 좀 어떠십니까? 분부하실 일이 있으면 사람을 시키거나 소인을 부르시지 뭐하러 직접 오셨습니까?”
겉으로는 미소를 짓고 있었으나 사실 속으로는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있었다.
‘한창 잘 되어가고 있는데 쓸데없이 끼어들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