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ll Search Gets Done RAW novel - Chapter 208
209. 탐색자 (4)
곡소리가 절로 나왔다.
차원을 뚫고 빛의 속도로 몰아치는 혜성들과, 우주의 산사태, 그리고는 위아래로 날아와서 나를 압착하고 갈아버리려는 달과 화성까지.
탐색자는 마치 이러한 상황이 익숙하기만 하다는 듯, 여유롭고 노련하게 온갖 종류의 스킬을 쉴 틈 없이 연계해왔다.
《솔라 스톰(Solar Storm).》
궁지에 몰린 나를 향해, 태양 그 자체라고 볼 수 있는 혼돈의 화염이 폭풍처럼 덮쳐왔고.
《딥 스페이스 블랙 스타(Deep Space Black Star).》
마치 심우주의 가장 깊숙한 곳에서부터 새어나오는 듯한 극저온의 냉기가 해일처럼 몰려왔다.
– 주인님! 이러다, 정말로 죽을 수도 있어요!
“괜찮아. 안 죽어.”
– 하지만, 느껴져요. 주인님의 몸이 이미 한계에 도달했다는 걸요.
수십만개의 체질과, 수백만 개의 재능, 수억 개의 기술을 사용하여 우주적으로 짓눌러오는 압박을 견뎌내고 있었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이 점차 무용지물이 되어갔다.
저항 및 면역 스킬들은 차례차례 돌파되었고, 재생 및 회복 스킬들은 간단히 억제되어갔다.
탐색자의 공격을 맞받아치기 위한 공격들은 수 싸움이나 속성 싸움에서 밀려버리거나, 단순히 더 강한 위력의 스킬에 파묻혀버리기 일쑤였다.
“고작해야 1%의 차이야. 극복하지 못할 이유가 없어.”
나에게 존재하는, 탐색자가 이양해준 40%의 힘.
그리고 탐색자가 이야기해준, 자신에게 남아있는 42%의 힘.
《미물이여. 그 2%의 차이는 결코 작은 것이 아니다.》
“음?”
《현재의 너는 1,099,511,627,875개의 스킬을 사용할 수 있지만, 나는 4,398,046,511,019개의 스킬을 사용할 수 있다.》
“허허…….”
《3,298,534,883,144. 이 수만큼의 극명한 차이는, 미물을 짓밟는 일에 있어서 차고 넘치는 양에 해당한다.》
확실히 그랬다.
약 1조 개의 스킬을 사용할 수 있는. 그것도 ‘결정화된 전지력’을 이용해 급조한 1억 개 정도의 스킬만 다룰 수 있는 내가 약 4조 개의 스킬을 온전히, 그것도 노련하게 퍼부어대는 존재를 상대로 이길 수 있는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았다.
스킬의 개수라는 단순한 하드웨어의 차이뿐만 아니라, 사용 경험과 노련함이라는 극명한 소프트웨어의 차이까지도 존재했다.
“아직 해볼 수 있는 건 많이 남아있어…….”
그렇지만, 차근차근 나아간다.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방법이 없으면 방법을 찾아내고, 천천히 한 걸음 한 걸음 버티며 앞으로 나아갈 뿐이다.
나는 여전히 양쪽에서 나를 짓눌러오는 달과 화성을 바라봤다.
촥.
우선, 달 쪽으로 뻗은 손으로 무색의 마나를 터뜨렸다.
“위 쿼크 붕괴(Up Quark Decay).”
투확!
거대한 질량의 달이, 소리 소문도 없이 가루로 변해버렸다.
가루로 변했지만, 아직은 원래 달이 가지고 있던 형체를 취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가루는, 천천히, 그리고 뭉게뭉게 밀가루처럼 번져갔다.
화성 쪽으로도 팔을 뻗었다.
나에게 자비 없는 스킬들을 쏟아 붓던 탐색자가 불현듯 나에게 외쳤다.
《멈춰라!》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놈의 말에서는 약간이지만 격앙된 감정이 느껴져 왔다.
“내가 왜 그래야 하지?”
《그것은, 그렇게 쉽게 사용하면 안 되는 힘이다.》
“니가 나 하나 잡겠다고 달이랑 화성 꽂아 넣는 건 괜찮고?”
《그 힘은 네놈이 살고 있는 이 세계를 지탱하는 기초 골격에 해당하는 힘이다. 섣불리 사용했다간, 이 세계 자체가 붕괴해버릴 수 있으니.》
“뭐 어때.”
《뭐라?》
“너 때문에 이미 다 망하게 생겼는데.”
《너희를 걱정해서 하는 말이 아니다. 이 세계는 신선한 생명 에너지의 훌륭한 재배지 중 하나. 너와 같은 미물의 어리석은 판단 하나에 의해 이 재배지가 붕괴하게 둘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니까…….”
촥.
화성을 향해 다른 한 손을 뻗었다.
“내가 알 게 무엇이냐.”
그리고 그 끝에서, 무색의 마나가 터져 나왔다.
“아래 쿼크 붕괴(Down Quark Decay).”
푸확!
그리고 동시에, 달이 그랬던 것처럼. 화성 또한 화성모양의 가루가 되어버렸다.
나를 짓누르던 달과 화성이 소멸되었다.
《이런 어리석은……!!》
사실 탐색자가 하는 말을, 나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놈에게 4조개의 스킬이 있어도, 놈은 그 스킬을 100% 사용하지는 못하고 있었다.
그 이유는, 그 스킬들 중에는 우주를 구성하고 있는 기본적인 규칙에 접근하는 것들이 존재했고 그것들을 조금이라도 잘못 건드린다면…… 내가 살고 있는 지구를 포함하여, 이 우주 자체가 소멸해버릴 수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찬물 더운물 가릴 때가 아니었다.
“꼬우면 너도 쓰던가.”
그런 것들은 어디까지나, 결국 잘못 건드렸을 때의 이야기이고.
“잘 건드리면 별 상관이 없는 일이다.”
뭐지?
탐색자의 노성이 뱉어진 이후, 내 주변으로 몰아치는 수많은 우주적인 공격이 일거에 멎어 들었다.
그때 나는 확인할 수 있었다. 탐색자의 동공 없는 눈이 내가 아닌, 달이 가루가 되어 사라졌던 방향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아원자 변환(Subatomic Conversion).》
탐색자의 이어지는 말과 함께, 달의 가루들은 다시 모이고 모여, 하나의 형체를 이루기 시작했다.
“너…… 뭐하냐?”
《네놈이 파괴한 달을 복구시키는 중이다.》
“어째서 굳이 그러한 짓을?”
《어리석은 미물이여. 달이 사라진 지구는 더 이상 생명 에너지가 재배되지 않는 장소로 바뀌기 때문이다.》
“니가 달로 나를 때리지 않았으면, 애초에 달이 파괴되지 않았겠지.”
《어리석고 또 어리석도다. 하찮은 미물이여, 다시 말하겠다. 그러한 능력은 결코 섣불리 사용되어서는 안 되며 잘못 사용할 경우 네놈의 세상에 분명한 악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가루가 되었던 달은 순식간에 재생되어갔다.
그리고 그 찰나의 시간 동안, 탐색자의 움직임이 잠시 멈춰있었다.
나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파아앗!
탐색자의 코앞까지 접근한 나는, 놈에게 ‘벼락의 지휘자’를 들어 올리며 또 다른 종류의 스킬들을 캐스팅해나갔다.
– 주인님, 탐색자의 주변으로 보호막이 엄청나게 깔려있어요. 느껴지는 바로는 만에서 십만 겹 정도의 종류는 되어 보여요.
머릿속에서 시리우스의 분석이 이어졌다.
가까이에서 본 탐색자의 모습은 확실히 그러했다.
원소 속성, 복합 속성, 순수 자연의 에너지, 인위적 발생 에너지…… 분류를 나누기도 어려운 수많은 종류의 보호막이, 탐색자의 주변으로 펼쳐져 있었다.
‘확실히 다르다.’
지금까지 봐왔던 덧없는 자들은 스킬이나 마나같은, 일반적인 헌터들이 사용하는 개념을 전혀 다루지 않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탐색자만큼은 내가 아는 그 스킬이라는 개념을 사용하고 있었다.
어쩌면 헌터들이 사용하는 스킬이라는 힘의 근원은, 탐색자의 권능에서부터 비롯한 것이 아닐까?
문득 그러한 의문이 들었다.
그러나 다른 생각에 잠겨있을 여유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치지지지직.
마치 전류가 튀어 오르는 것처럼, 들어 올린 창끝에서 무수한 종류의 소립자들이, 우주의 기본적인 구조를 이루고 있는 가장 원초적인 구성 물질들이 위협적으로 방출되어나갔다.
그리고 이것은, 모두 탐색자가 꺼리는 것들이었다.
“반-양성자 익스플로젼(Anti-Proton Explosion).”
카가가가가가가가각!!
소름 끼치는 소리가 들리며 탐색자가 있던 일대에 존재하는 모든 종류의 물질에 존재하는 무수한 반입자들이 충돌하기 시작했다.
“메타 핵력 블라스트(Meta Nuclear Force Blast).”
쿠과과과과과과과곽!!
까맣기만 한 우주 배경 복사를 바탕으로, 공간에 새하얀 빛이 가득 차올랐다.
그 빛들은 공명하며 흡사 초신성의 대폭발과 같은 찬란한 광채를 분출했다.
잠시 탐색자가 기생 되어 있는 안인식의 상태에 대한 걱정이 들었다.
그러나 나는 마음을 굳게 먹었다.
이제 안인식은 내 삶에 있어서 누구보다 중요하며 소중한 지인 중 한 명이었다.
그는 앞으로 나와 함께 수많은 사업을 이끌어가며 협업해야 할 중요한 비즈니스 파트너이자 동반자였다.
하지만 그러한 것도, 모두 무사히 탐색자를 제거한 뒤 지구로 귀환했을 때에나 가능한 이야기였다.
마음이 아픈 일이지만, 지구 전체의 운명과 소중한 지인인 안인식의 목숨을 저울질할 경우 당연히 전자가 우선시되어야 했다.
《크윽, 이놈……!!》
문득 탐색자의 주변으로 일어나는 새하얀 폭발의 안쪽으로. 뭔가 이상한 게 보이기 시작했다.
마치 우주 속의 또 다른 우주 같은…….
아주 찰나의 시간 동안 관측할 수 있었던 것은, 막 탄생한 소우주였다.
쿠콰하아아아아악─!!
엄청난 굉음이 우주 전체에 메아리치는듯했고, 소우주는 급속도로 팽창해나갔다.
파아아악!!
그러나 그 위로, 탐색자의 손길이 스쳐 지나가며 팽창은 멈췄다.
소우주는 팽창하던 속도보다도 더 빠르게 수축해나갔고 하나의 점이 되어 소멸해버렸다.
《당장 이러한 행위를 관두도록 해라!》
새로운 우주가 탄생할 정도의 대폭발도, 결국 점차 멎어 들기 시작했다.
그 위로 탐색자의 모습이 드러났다.
“방금 건 조금 아팠나 보군?”
《그렇다. 방금의 것을 수습하느라, 약간의 생명 에너지의 소진이 발생했다. 또한, 네놈에게 더 이상 의 시간을 주면 곤란하다는 판단 또한 확실히 서게 되었으니.》
탐색자가 기생한 안인식은 마치 기절한 것처럼 축 쳐져 있었고, 그 위쪽으로 탐색자의 거대한 본신이 매달려있었다.
다른 덧없는 자들의 것들과 같이, 시커먼 생명 에너지로 이루어진 놈의 본신은 온 사방으로 새하얀 기운을 뿌려대며 그 존재를 과시하고 있었다.
처음과 달리 그 모습이 압도적으로 커져 있었으며 뿜어져 나오는 기운 또한 숨을 쉬기 힘들 정도로 압도적인 위력을 풍겨왔다.
그런데 문득 그 모습을 바라보니 아랍 전래동화 속 램프의 요정이 떠올랐다.
그런데 아예 기생체에서 빠져나오려면 빠져나와 버리지, 끝까지 안인식을 붙잡고 있는 모습이 조금 의아했다.
《어쩔 수 없이 추가적인 생명 에너지의 손실이 발생할 수도 있겠지만. 그 외에 별다른 수는 없을듯하군.》
탐색자의 본체가 마치 기도를 하는 자세처럼 두 손을 마주 잡았다.
《결국 모두 나 스스로가 자초한 일이기도 하다. 그러니 내 손으로 직접 마무리를 지을 것이다.》
그리고 그 손에서부터 예의 그 새하얀 빛 무리가 터져 나왔다.
《미물이여, 태초의 형태로 돌아가라. 그리하여 감히 ‘전지의 권능을 지닌 존재’, 나 탐색자에게 덤벼들었던 스스로의 무지와 무력함에 대하여 자책하고 반성하도록 하며, 나의 대속을 치러낸 것과 나의 차기 육신을 기꺼이 지조할 수 있게 된 일을 가장 뜻 깊은 신광으로 삼도록 하여라.》
탐색자를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이 드넓은 우주 공간 위에서. 단순히 ‘피한다’라는 개념은 성립할 수 없었다.
“크흐윽…….”
화아아아아아아아악─!!
놈의 주시하는 눈동자에 내가 비치고 있는 이상, 어디로 도망치더라도 항상 놈이 존재할 것이기에.
그저 맞서 싸우는 방법 외에는 별다른 도리가 없었다.
《옴니시엔트 스테이시스 필드(Omniscient Stasis Field).》
일순 퍼져 나온 광채는, 주변을 온통 새하얀 공간으로 만들어버렸다.
보이는 건 내 신체뿐.
발을 디딜 땅이 존재하긴 했는데, 이게 땅인지 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탐색자가 마지막으로 사용한 ‘옴니시엔트 스테이시스 필드’는 내가 알지 못하는 스킬이었다.
내가 익힌 1억 개의 스킬 중에도 그것은 존재하지 않았으며, 심지어 그 하위스킬 조차도 뭔지 알 수 없었다.
아마도 이것은 놈과 나의 차이였던 2%에 해당하는 스킬일 것으로 보였는데.
“확인해보면 되겠지…….”
내가 모르는 스킬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것은 언제나 나와 함께했던 ‘스킬 검색’이 존재했기 때문이었다.
“스킬 검색(Skill Search).”
그러나 뭔가 이상했다.
“스킬 검색.”
늘 나오던 스킬창이 떠오르지 않았다.
어째서지?
연신 ‘스킬 검색’을 불러보았지만 익숙하던 메시지 창은 묵묵부답이었다.
혹시 몰라 ‘검토’를 시전해보았다.
‘검토(Re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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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없는 칼날 (Ephemeral Cold Steel)
등급 : A
설명 :
미래와 과거 사이의 틈새로, 영원한 시간을 건너온 검.
지닐시 현재 마력 등급에 비례하여 스킬의 범위와 위력 상승.
근처의 스킬 감지시 6티어 스킬, 크로마틱 인챈트(Chromatic Enchant) 자동 시전.
7티어 스킬, 크로마틱 버스트(Chromatic Burst) 사용 가능.
1시간 이내 재사용시 검이 파괴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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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에 ‘감정’했던 내용이, ‘검토’를 통해 떠올랐다.
다행이었다. ‘검토’가 작동하는 것을 보면 아무래도 일단은 ‘스킬 검색’만 작동하지 않는 모습이었는데…….
잠깐, 설마?
나는 방금까지 사용하던 ‘쿼틱 인터랙션 쉴드’나 ‘토폴로지컬 퀀텀 쉴드’ 등의 10티어 보호막 스킬을 시전해보았다.
그러나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
‘뇌신’, ‘라이트닝 스피어’, ‘갈라지는 번개’, ‘벼락불’…….
모두 사용해보았다.
“감전(Spark)!!”
심지어 1티어의 ‘감전’까지 사용해보았으나…….
아무것도 작동하지 않았다.
나는 ‘감전’의 기본적인 묘리와 작동 원리를 떠올려보려 애썼다.
도대체 이걸 어떻게 하는 거였지?
그러나 전혀 알 수 없었다.
“이런, 시발.”
그리고.
온통 새하얗게 변해버린 세상 속에서.
터벅. 터벅.
나에게 자신의 권능을 나누어주었던 노인.
또는 덧없는 자의 왕. 그리고 ‘전지의 권능’을 지닌 자.
탐색자(Seeker)라 불리는 존재가 내 앞으로 걸어왔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그러한 존재가 기생해버린 안인식이었다.
“안인식 씨?”
본체의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혹시라도 기생되어있던 탐색자가 빠져나갔고, 기절했던 안인식이 깨어난 것은 아닐까 싶었다.
“미물이여.”
그러나 그것은 안인식이 아니라 탐색자가 맞았다.
안인식이 저따위의 말을 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곳은 모든 것의 진실한 본질의 형태가 겉으로 드러나는 공간. 이것이 바로 너와 나의 진짜 모습이다.”
“본질의 형태…?”
“덧없는 자들의 본질은 무(無)와 허(虛)에서 비롯된 것. 그것은 너에게 이양된 나의 권능 또한 마찬가지이다.”
“그 말은…….”
“그렇다. 너에게 이양된 나의 권능이 지금 이 공간에 들어와 있는 순간만큼은 존재하지 않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의미이다.”
그 순간.
탐색자는 자신의 등에 매달린 곡괭이를 뽑아들었다.
그것은 안인식이 즐겨 사용하는 도구였다.
반면 나에게는…….
내가 들고 있던 ‘덧없는 칼날’이나 ‘벼락의 지휘자’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았다.
“쓰읍!”
쐐애애애액!
고민할 틈은 없었다.
카강!
본능적으로 검을 뽑아들었다.
그것은 허리춤에 매달려있던 쇄도 길드의 보급 검이었다.
이건…… 예전에 위압자로부터 당했던 정신 공격 따위가 아니었다.
“정신 공격이 아닐까 생각했는가? 당연히 아니다. 이것은 엄연히 현실. 너는 현실 속에서 죽을 것이다.”
“나를 죽이면, 내 몸을 빼앗는 데에 애로사항이 생기는 것이 아닌가?”
“어쩔 수 없다고 판단했다. 가능하면 신선한 육신을 가져가고 싶었지만, 죽어버린 육신도 사용 자체는 가능하니.”
“미친…….”
“나와 그 형질이 워낙 비슷한 육신이다 보니 설령 죽은 것이라 할지라도 잘 닦아서 사용하면 별다른 문제는 없을 것이다.”
츠카앙!
나는 내 머리위로 떨어져 내렸던 곡괭이를 온 힘을 다해 밀쳐냈다.
그리고는 반 바퀴 몸을 돌리며 수평으로 베어 들어갔다.
뿌득.
“커흑!!”
너무 무리한 움직임이었다.
현재 이 몸은 아무래도 F급의 신체능력이 아닐까 싶었다.
오랜만에 돌아온 감각에 적응이 되지 않아, 그만 무리한 동작을 펼치고 말았다.
“너무나도 미천하여 눈을 둘 여지가 존재하지 않는군. 애처롭고 불쌍한 미물이여. 이대로 그만 죽음을 맞이하라.”
올 F의 접수원이었던 나와는 달리, 안인식은 E급 헌터였다.
아무리 좆밥싸움이라고는 했지만, F급과 E급의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
도저히 이길 수 있을 리가 만무했다.
킹! 키기깅!
내 머리를 찍어버리기 위해 떨어져 내리는 곡괭이에는 자비가 없었고, 나는 뒤틀린 허리 근육을 부여잡은 채 그 공격 하나하나를 피해내고 쳐내며 바닥을 뒹굴었다.
“크허억! 젠장……!!”
안인식이 휘둘러오는 자비 없는 곡괭이의 일격들을 어찌저찌 피해내고 있긴 했지만.
“끝이다. 미물이여.”
결국 마지막으로 떨어져 내리는 곡괭이만큼은 피할 수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마지막 일은, 그저 비명을 지르는 일뿐이었다.
“씨바알!!!!”
그리고 그때였다.
– 주인님…….
내 앞으로, 아주 희미한 형태가 나타났다.
“시리?”
그 형태는 시리우스였다.
그녀는 이 ‘옴니시엔트 스테이시스 필드’라는 새하얀 공간을 뚫고 들어온 것이었다.
“너…… 어떻게?”
순간 무수한 생각이 스쳐 지나갔고, 한 가지 가능성을 떠올렸다.
내 마음속에 깃들어있던 그녀는 이 공간의 영향을 받지 않고 있었던 것.
– 삼키세요…….
그리고 그녀는 내 입으로 무언가를 흘려 넣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