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655
655화 음, 맛있다
진양 일행은 다시 밖으로 나온 호객꾼의 안내를 받아 삼 층으로 향했다.
그곳에서는 염소수염을 기른 점잖은 중년 남자가 미소를 지은 채 진양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진양 일행을 발견한 그건 곧바로 포권을 취하며 이들을 맞이했다.
“차루의 대장거인 왕덕복이라고 합니다. 실례가 많았습니다.”
진양이 자리에 앉으며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왕덕복? 여기 이장거의 이름이 왕덕복이었던 것 같은데.”
“대장거께서는 현재 외출 중이십니다. 그래서 제가 대장거를 대신하는 중입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왕덕복은 차분하게 말을 이어갔다.
“혹시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공자님의 존함을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처음 뵙는 분 같아서요.”
“진양이라고 한다. 내가 누구인지는 알 것 없고, 지금부터 묻는 말에나 대답하거라. 만약 쓸데없이 시간을 끌거나 허튼수작을 부리려 한다면 차루를 날려버릴 테니까 생각 잘하는 게 좋을 게다.”
왕덕복이 뭐라고 말을 하려고 했으나 진양이 손을 들어 그를 막았다.
“최근에 교인 여동(女童)과 다소 모자라 보이는 당나귀를 잡아들인 적이 있느냐?”
“공자님,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도무지…….”
그러나 그의 말이 끝나기도 무섭게 진양의 손바닥이 날아들었다.
이어서 진양은 그를 발로 거칠게 짓밟으며 짙은 살기를 발산했다.
“헛소리할 시간 없어. 묻는 말에나 대답해.”
왕덕복이 뭐라고 말을 하려는 순간, 방 안에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어서 그의 첩신호위가 바닥에 엎어졌다.
그의 사지는 기괴한 모양으로 뒤틀려있었고,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빈사 상태가 되어있었다.
“다시 한번 묻겠다. 최근에 교인 여동과 다소 모자라 보이는 당나귀를 잡아들인 적이 있느냐?”
“어, 없습니다! 절대 없습니다요! 교인 여동이라면 수백 년 동안 본 적도 없습니다요. 어린 교인은 해수면 부근에서는 절대로 잡을 수가 없습니다. 게다가 저희는 직접 교인을 잡아 온 적은 없습니다. 그저 넘겨받은 물건을 다시 팔아넘길 뿐입니다.”
진양의 무시무시한 살기에 왕덕복은 곧바로 알고 있는 모든 사실을 털어놓았다.
한참 동안 그를 노려보던 진양은 천천히 그를 밟고 있던 발을 치우며 물었다.
“현재 정천사에서 이 일을 두고 조사를 벌이고 있다. 정천사의 일품 외후이신 한 대인께서 직접 나서서 말이지. 아마 네 두목도 이 사실을 너희에게 얘기했을 거라 생각한다. 이 정도면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 건지 너희도 잘 알고 있겠지?
혹여나 실수로 잡아들였다면 조용히 돌려보내도록 하거라. 허나 끝까지 숨긴다면 무슨 일을 당하게 될지 나도 장담할 수 없다.”
진양은 왕덕복을 일으킨 뒤 가볍게 옷매무새를 정리해 주며 말을 이어갔다.
“물론 너희들이 관련되어있지 않다고 해도 누가 이 일에 개입되어있는지는 스스로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이번 사건은 정천사만 나서서 조사하고 있는 게 아니다. 이건 너희 대장거도 잘 알고 있을 거다. 그리고 이런 일을 벌인 게 너희와 같은 일을 하는 녀석들이라는 것도 알고 있을 거고.
어쨌든 이번 일을 벌인 녀석들은 반드시 죽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제 나는 다음 녀석을 찾아가 사건에 대해 조사할 것이고. 내 말 무슨 뜻인지 잘 알겠지?”
왕덕복은 간신히 웃음을 쥐어짜며 고개를 끄덕였다.
“공자님 말씀이 맞습니다. 누가 이런 일을 벌였건 간에 조정에 맞서는 자들의 말로는 죽음뿐이겠죠. 저희 역시 신조의 일원으로서 이러한 자들을 색출해내는데 일조하는 것이 맞다고 봅니다.”
“이해했다니 다행이구나. 잘 기억하거라. 내 이름은 진양이다. 누구든 내가 찾는 자를 내게 데려오기만 한다면 앞으로 남만부터 남해까지, 더 나아가 사해까지도 안전하게 다닐 수 있도록 보장해 주겠다. 그리고 동해 해족의 영역에서도 안전할 것이라고 보장하마. 뿐만 아니라 신조 내에서도 너희들이 반란을 꾀한 것만 아니라면 한 대인께 잘 말씀드려 편의를 봐주도록 하겠다.”
“무슨 말씀이신지 잘 알겠습니다. 물론 이번 일은 저희와는 정말로 관련이 없긴 합니다만, 다른 사람들도 그런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만약 수상한 정황이 발견된다면 즉시 보고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볼일을 마친 진양 일행은 차루를 빠져나왔다.
묵양이 머리를 긁적이며 물었다.
“이게 끝이야?”
“물론이지. 그럼 여기서 뭘 더 하겠어?”
“정말로 저 녀석들이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믿는 건 아니지?’
“허허……. 내가 여길 고른 이유가 단순히 가장 가까워서 그런 줄 아는 거야? 원래 사업의 규모가 클수록 고정적으로 물건을 대주는 사람이 있는 법이라고. 그 녀석들은 아마 아직까지도 동해를 어슬렁거리고 있겠지. 그렇기 때문에 방금 저 녀석들은 아무런 관련이 없을 거고.”
“그럼 여긴 왜 온 건데?”
진양은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묵양을 쳐다보았다.
굳이 설명하기 귀찮다는 표정이었다.
옆에 있던 도파가 눈치 빠르게 대신 설명을 이어갔다.
“묵양 대인, 뒷골목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생각 이상으로 많은 것들이 연관되어있고, 또 은밀하게 이루어집니다. 저희가 방금 방문한 곳은 그나마 수면 위로 드러나 있는 곳이지요.
만약 저희가 일일이 돌아다니며 조사를 한다면 엄청난 시간이 소요될 겁니다. 그러니 스스로 조사를 하게 만든 겁니다. 이렇게 하면 적어도 정천사보다는 빠르게 진상에 대해 파악할 수 있으니까요.”
진양은 자신이 하려던 대답이 바로 그거였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인간과 해족은 가까운 관계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척을 진 사이도 아니다.
때문에, 조정에서도 겉으로는 해족 인신매매를 반대하는 입장을 보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수요가 있으니 공급이 있는 법.
물론 상당히 은밀하게 이루어져야 하는 일인 만큼 모든 것들이 사방으로 거미줄처럼 복잡하게 얽혀있을 것이다.
이걸 하나씩 전부 조사하고 다니는 건 엄청난 시간 낭비다.
그래서 거미줄 위를 오가는 거미들에게 스스로 조사하도록 한 것이다.
이러한 자들을 가장 쉽게 부릴 수 있는 무식하면서도 확실한 방법.
그것은 바로 위협과 회유, 그리고 보상이다.
인신매매단은 각자의 방법으로 서로 정보를 주고받는다.
때문에, 지금쯤이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건의 심각성을 인지하게 되었을 것이다.
이대로 입을 다물고 있는다면 수많은 사람들에게 원한을 사게 되는 셈이다.
특히 조정에 노여움을 사는 일은 결코 이들이 바라는 일은 아닐 것이다.
뒷골목 세력들이 살아남을 수 있는 건 조정에서 모든 것을 알고도 눈을 감아주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되면 이들을 회유는 쉬워진다.
먹을 수 있는 떡은 한 조각뿐인데 이걸 여러 사람이 나눠야 한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더 갖기 위해서는 옆에 있는 자들이 죽어야만 한다.
경쟁자를 제거할 절호의 기회가 왔는데 가만히 손가락만 빨고 있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설령 찝찝하다며 빠진다고 해도 누군가는 할 일이었기 때문이다.
진양은 계속해서 명단에 적힌 곳을 방문했다.
그렇게 한 바퀴를 돌았으나 생각보다 수확이 없었다.
무엇보다 아직 제대로 된 실마리조차 발견하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뒤에서는 생각 이상으로 큰 파장이 일어나고 있었다.
뒷골목 세력들이 사방을 누비고 다닐 수 있는 건 당연히 배후에 버티고 있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들도 각자 정보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눈치를 챘을 것이다.
무엇보다 정천사의 밀정들이 마치 목줄 풀린 미친개처럼 조금이라도 냄새가 나면 달려들어 물어뜯는 이 상황에서 아무것도 모르는 게 오히려 더 이상한 것이다.
그렇게 수면 위에서 살벌한 조사가 이루어지는 동안 수면 아래에서도 소리 없는 전투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이건 어쩌면 조정에 잘 보일 수 있는 기회다.
때문에, 배후의 인물들은 결코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었다.
무엇보다 경쟁자를 쉽게 쳐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 아닌가?
아무래도 많은 사람들이 몰려 포화 상태인 뒷골목 세력의 세계에서 한 사람이라도 더 쳐낼 수 있다면 그만큼 자신은 더욱 많은 이득을 가져갈 수 있다.
그래서였을까?
진양은커녕 정천사조차도 평생 눈치채지 못할 세세한 것들까지 파헤쳐지기 시작했다.
심지어 양기밖에 되지 않는 조무래기들조차 정보를 캐내고 다녔다.
작은 정보라도 쓸모 있는 정보라면 그에 맞는 보상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일주일 뒤.
정보의 전달이 극도로 느린 세계였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달려들어 조사를 하니 놀라울 정도의 효율이 나왔다.
누가 해족을 납치했는지, 동해에서 군도를 지나 대영까지는 어떻게 왔는지, 그리고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든 것들이 낱낱이 밝혀졌다.
그리고 중간 과정에 조금이라도 연루된 자들은 도망칠 틈도 없이 모두 잡혀들어왔다.
물론 그렇다고 조사가 무조건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건 아니었다.
대황에 도착하기 무섭게 백리칠이 도망쳐버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가 어떻게 도망쳤는지부터 시작해서 심지어 도망친 방향까지도 파악이 완료되었다.
이어서 남은 단서를 찾는 것도 이젠 시간문제였다.
‘역시 단순히 칼을 들고 위협하는 것보다는 보상으로 격려하는 게 효율은 더 좋단 말이지.’
이제 남은 건 범위를 축소하고 방향만 알아내면 끝이었다.
진양은 중간에 한안명의 이름을 팔아가며 뒷골목 세력들을 위협하는 데 써먹었다.
아마 이쯤 되면 이 소식도 한안명의 귀에 들어갔을 것이다.
그러나 한안명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다.
공짜로 떠먹여 주겠다는데 마다할 사람이 누가 있단 말인가?
하지만 그렇다고 걱정이 전혀 안 되는 건 아니었다.
이 정도로 난리를 피우고 있는데도 백리칠이 나타나지 않는 걸로 봐선 누군가 백리칠을 납치한 게 아닐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만약 누군가 납치를 했다면 사건의 심각성을 깨닫고 조용히 그들을 풀어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뒷골목 세력 내부에서 서로가 담합을 하고 끝까지 버틸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었다.
물론 그렇다고 가능성이 높은 건 아니지만 말이다.
게다가 언젠가는 밝혀질 일이다.
괜히 버티다가는 뒤늦게 후회해봐야 소용이 없다.
* * *
어느 산속에 자리 잡고 있는 장원.
멀리서 들려오는 물소리와 가까이서 들리는 새소리가 분위기를 한층 더 평화롭게 만들어주었다.
장원 뒤편에 있는 작은 뜰 안에는 일 장 정도 되는 큼직한 맹수가 허공에 매달린 채 향긋한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선 어딘가 다소 모자라 보이는 당나귀 한 마리가 신나게 맹수의 고기를 뜯고 있었다.
꽤 거대한 크기의 맹수였으나 눈 깜짝할 사이에 삼분지 일이 사라졌다.
나귀의 옆에선 아직 젖살도 빠지지 않은 한 아이가 있었는데, 그녀는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인상을 쓰며 말했다.
“나귀야, 분명 절반씩 나눠 먹기로 했잖아. 좀 천천히 먹어.”
그녀는 말을 마치기 무섭게 자신의 머리보다도 더 큰 팔겹살을 들고 먹어 치우기 시작했다.
“음, 맛있다. 바다에서 먹었던 것보다 훨씬 맛있어.”
그러나 나귀는 들은 척 만 척 계속해서 식사를 이어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