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684
684화 만나보는 건 어떻소?
장정의는 조심스럽게 청란을 바라보았다.
말을 걸긴 해야 하는데 문제는 상대의 이름을 모른다는 점이었다.
진양이 급하게 떠나느라 그런 것까지는 얘기해 주지 않았던 것이었다.
“저……. 소저?”
“왜요?”
청란이 미간을 찌푸리며 진양을 바라보았다.
왠지 모르게 진양이 평소와는 다르게 느껴졌던 것이었다.
“다소 사적인 질문 하나만 해도 되겠습니까? 아무한테도 얘기하지 않아 주셨으면 합니다.”
“말해 보세요.”
“혹시 대제께서는 대제희님을 시집 보내실 생각은 없으신 겁니까?”
장정의는 조심스럽게 질문을 꺼냈으나, 어딘가 부적절하다고 느꼈는지 황급히 질문을 바꿨다.
“그러니까 제 말은 대제희께서 마음에 두신 사람이 있느냐 그 말입니다.”
“네?”
청란은 한층 더 이상하다는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오늘따라 뭔가 상태가 더 안 좋은데?’
이어서 그게 뭐 대수냐는 듯한 말투로 대답했다.
“폐하께서는 다시 전하를 시집보내실 의향은 없으실 겁니다. 오히려 전하를 오랜 시간 신조에 남겨두고 싶어 하시죠. 전하의 마음이라면 저 역시도 감히 가늠할 수가 없어서 잘 모르겠습니다.”
대답을 마친 청란은 순간 무언가 깨달았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
“호호호! 뭐가 이렇게 부자연스러운가 싶었더니. 그 질문 때문이었군요.”
청란은 박장대소하며 진양의 어깨를 두드렸다.
“어, 그런 게 아닙니다. 오해에요…….”
진양은 멋쩍은 얼굴로 애매하게 부정했다.
장정의는 이어서 청란이 돌아가고 난 뒤에도 묵양을 불러다가 지금까지 있었던 일들에 대해 꼬치꼬치 캐물었다.
특히 대제희와 관련된 일에 대해서 말이다.
굳이 숨길 만큼 중요한 사실은 아니었기에 묵양은 순순히 그가 묻는 말에 전부 대답해 주었다.
예를 들면 북방 국경지대에서 진양이 직접 탕을 끓여 그녀에게 가져다주었던 것과 같은 일들 말이다.
물론, 일념의 바다에의 일과 같이 중요한 일에 대해서는 일체 함구했다.
듣는 사람에 따라 다소 답답하게 느껴질 수도 있었지만, 어찌 된 일인지 장정의는 들을수록 더욱 활짝 미소를 짓고 있었다.
장정의는 대제희에 대해 들은 것들을 천천히 정리해 보았다.
‘하긴, 사형도 이제 꽤 나이가 차긴 했지.’
물론 수도사에겐, 특히 진양 같은 강자에겐 나이는 중요하지 않다.
청란의 반응으로 보아 진양은 이제껏 단 한 번도 이러한 질문을 한 적이 없는 듯했다.
‘그렇다면 좋은 셈하는 치고 사형께 선물이나 하나 남겨드려야지.’
대제희가 장차 자신의 형수가 된다는 사실에 장정의는 자신도 모르게 자꾸 웃음이 새어 나왔다.
한편, 옆에선 묵양이 못마땅하다는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진양의 사제라고 했었나? 아무리 봐도 모자란 녀석이 따로 없군. 더 볼 것도 없이 싹수가 노란 녀석이야.’
* * *
같은 시각.
진양은 다 시들어가는 백맥용과 죽음의 기운이 짙게 깔린 대장로와 마주 앉아있었다.
“어르신, 앞으로는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아니면 다시 방법을 찾아보시는 건 어떻겠습니까? 지금 상황에서 갑작스럽게 돌아가신다면 분명 많은 사람들이 이 사실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전씨 가문 역시 속수무책일 것이고요.”
진양은 조금이라도 그를 더 살려놓고 싶었다.
특히 황씨 가문과 골치 아픈 일로 엮이게 된 이후로는 더더욱 그랬다.
비록 전씨 가문의 대장로는 다소 뻔뻔한 사람이긴 했지만 그래도 협력의 대상으로서는 충분히 매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허허……. 진 선생도 겁을 먹을 때가 다 있구려.”
대장로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황씨 가문의 사람을 죽이고 나니 뒤늦게 겁이 난 것이오?”
“겁나긴요. 아무리 그래도 지금 상황에서는 제 털끝 하나 못 건드릴 겁니다. 설령 법상 강자가 죽었다 하더라도 말이죠.”
“허허, 왜 이렇게 겁대가리가 없는가 싶었는데. 다 믿는 구석이 있었던 것이었구만. 그런데, 황씨 가문이 사건에 휘말리고 싶지 않아 한다는 건 또 어떻게 안 것이오?”
“왜냐하면 황씨 가문 역시 황 장군이 정말로 황씨 가문의 사람인지, 그리고 누군가에게 이용당한 것인지 확신이 없을 테니까요. 아무리 그래도 서열로 따지자면 전씨 가문보다 한층 더 위에 있는 자들인데. 아무 때나 경거망동하게 행동할 바보들은 아니지 않겠습니까?”
“응? 그게 무슨 말이오?”
대장로가 무언가 떠오른 듯 물었다.
“반응을 보아하니 대장로께선 이러한 법상 공법을 쓸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는지 알고 계신 모양이군요. 그렇다면 말씀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미안하지만 말할 수 없소.”
“그럼 질문만이라도 할 순 없겠습니까?”
“묻는 건 가능하지만 어쨌든 난 대답할 수 없소.”
“상관없습니다. 그걸로도 충분하니까요.”
진양은 자세를 바르게 하고 대장로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그리고 질문 공세를 퍼붓기 시작했다.
“전조의 사람입니까?”
“신조의 사람입니까?”
“어느 문파의 사람입니까?”
그렇게 스무 개 정도의 질문을 한 진양은 갑자기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설마 여자란 말입니까?”
순간 진양은 죽은 황 장군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리고 무언가 생각난 모습이었다.
“나는 아무것도 말할 수 없소.”
대장로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후련하다는 마음도 들었지만, 한편으로는 유감스럽기도 했다.
만약 진양이 전씨 가문의 사람이었다면 이렇게까지 근심과 걱정을 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니 말이다.
하지만 전씨 가문의 사람이 아니라고 해도 상관은 없다.
그럼 전씨 가문의 사람이 되면 그만이니 말이다.
“혹시 도려(道侶, 반려자)가 있소?”
“아뇨. 갑자기 그건 왜요?”
“내 첫째 현손녀와 만나보는 건 어떻겠소? 신문 경지고 나이는 이제 겨우 이백여든 살밖에 되지 않았소. 아름답고 조신한 건 당연하고 온화한 성품을 가진 아이라오. 이 정도면 진 선생에게는 과분할 것 같은데 말이오!”
“겨우 이백여든 살이라뇨! 뻔뻔한 사람인 건 알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 정도로 뻔뻔할 줄이야. 그러니까 지금 저보고 저랑 나이 차이가 세 배나 나는 사람이랑 만나보라는 겁니까? 말도 안 되는 소리!”
대장로는 넋이 나간 듯 입을 쩍 벌린 채 진양을 바라보았다.
진양이 겨우 백 살도 채 되지 않았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은 것이다.
순간 대장로의 마음속에 꺼져가던 불씨가 다시 살아나며 강렬하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남은 가족들과 후손들을 위한 일이라면 이 정도면 충분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 정도면 더 이상 그가 개입하지 않아도 알아서 해결해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었다.
만약 진양을 전씨 가문의 사람으로 만들어두지 못하고 죽어버린다면 편히 눈을 감을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물론 진양과 난우가 서로 가까운 사이인 건 맞지만 그게 전부다.
전씨 가문은 집안도 크고 이루어놓은 업적도 많았기 때문에 난우가 단시간 내에 이곳으로 녹아들기엔 다소 어렵다.
게다가 혹여나 전씨 가문의 사람들 중 누군가 작정하고 그와 척을 지기라도 한다면?
다시는 난우를 전씨 가문의 사람으로 되돌릴 수 없을지도 모른다.
때문에라도 반드시 진양을 전씨 가문의 사람으로 만들어야만 한다.
설령 누군가 그와 마찰이 일어난다고 하더라도 상관없다.
그건 집안 내의 사람들끼리의 일이니 성질 자체가 달라지는 것이다.
대장로는 여전히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모습이었다.
겨우 백 살도 채 되지 않아 신문 경지에 오르다니!
물론 백 살도 채 되지 않아 신문 경지에 오른 인재는 이 세상에도 널리고 널렸다.
하지만 같은 신문이라도 그 차이는 매우 큰 법이다.
보통 대형 문파나 세력에서 키워진 신문 수도사들은 철저히 세력의 이득에 의해 키워진 자들이다.
이들은 철저하게 세력의 이득을 중심으로 생각하고, 또 움직이기 때문이다.
평범한 자질을 가진 이들은 가지고 있는 자원을 이용하여 속성으로 신문 수도사로 만들어버린다.
최강자가 될 필요는 없다.
적당히 세력의 중추가 되어줄 정도면 충분하니 말이다.
하지만 재능을 가지고 있는 인재는 먼 미래의 이익을 고려하여 조금씩 천천히 기초부터 탄탄하게 키워간다.
이런 인재들은 보통 신해까지 백 년, 영태까지 오백 년, 신문까지 오백 년, 그리고 신문을 열기까지 천팔백 년, 마지막으로 법상에 들어서기까지 천 년이 더 걸린다.
이렇게 길러진 인재들은 속성으로 완성된 ‘보급형’ 수도사와는 결코 비교도 할 수 없는 실력을 갖추고 있다.
겉보기에는 같은 신문 강자일지라도 실전으로 들어가 보면 확연한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이러한 수련의 원리는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는 상식이다.
그러나 약자들은 이미 힘겹게 정상에 오르는 것만으로도 너무나도 많은 시간을 허비했기 때문에 더 이상 기초를 다지고 경험을 쌓을 기회가 없었던 것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나의 정상에 오르고 나면 곧바로 다음 정상으로 눈을 돌린다.
이미 지나온 것들을 되돌아보며 성찰할 여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대장로는 오랜 시간을 살아온 만큼 상대를 정확하게 알아보는 안목을 가지고 있다.
진양은 분명 자신의 힘을 강력하게 제어하고 있음에도 대장로조차 아무런 진원의 파동을 느낄 수가 없었다.
물론 그건 진양이 자신이 가진 모든 힘을 해안에 숨겨두었기 때문이긴 하지만 대장로는 이런 사실을 알 턱이 없었다.
하지만 그래도 진양이 그 누구보다 단단한 기초를 가지고 있다는 점만은 알아보았다.
적어도 전씨 가문에 있는 최고봉의 천재들보다 삼 할 정도는 더 훌륭한 수준이었다.
심지어 그가 가진 육신의 기반은 이미 그의 안목으로는 꿰뚫어 보는 것조차 불가능할 수준이었다.
신문 역시 마찬가지로 꿰뚫어 볼 수가 없었다.
그저 은연중에 신문으로부터 강력한 위력이 흘러나오고 있다는 것만 느낄 수 있을 뿐.
하지만 그마저도 빙산의 일각에 불과할 것이다.
지금까지 살아오며 수많은 신문 수도사들을 보아왔지만 단 한 번도 이 정도의 경지에 오른 사람은 본 적이 없었다.
지금까지는 진양이 모종의 법보를 이용하여 자신의 기운을 숨기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진양에게선 진원이나 기혈의 파동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자신이 착각한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이제야 완전히 깨달았다.
이건 착각이 아니라 진짜였다.
심지어 진양은 상당히 총명하기까지 했다.
자신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는데, 고작 몇 가지 질문만으로도 단서를 찾아내는 모습만 봐도 그렇다.
물론 그가 일부러 티를 냈기 때문에 눈치를 챈 것도 있겠지만, 어쨌든 그가 전씨 가문의 일원이 된다면 큰 보탬이 된다는 사실은 일말의 의심의 여지조차 없었다.
진양이 배후에 어떤 세력을 업고 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반드시 진양을 전씨 가문의 사람으로 묶어놔야만 했다.
그렇게 한다면 적어도 만 년, 아니, 수만 년 동안은 전씨 가문이 몰락할 일은 없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