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782
782화 계획은 성공한 셈
진양은 흡족스러운 얼굴로 눈앞에 펼쳐진 장관을 지켜보았다.
그가 원하던 게 바로 이런 것이다.
치고받고 육탄전을 벌이다니.
얼마나 격조 없는 행위란 말인가!
잠깐 다른 생각에 빠진 사이.
허공진경 전수자는 어느덧 저항을 완전히 포기한 모습으로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꺼져가는 생기 속에 힘겹게 입을 열었다.
“진양, 이번엔 네가 이겼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유성우가 사방에서 날아들어 허공진경 전수자의 몸을 덮쳤다.
눈부신 빛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작은 뼛조각 하나조차 찾아볼 수가 없었다.
진법의 변화는 조금씩 잦아들기 시작했다.
별들도 조용히 빛나기만 할 뿐, 더 이상 유성우가 되어 떨어지진 않았다.
그러나 진양의 표정은 썩 밝지 않았다.
이번엔 네가 이겼다?
어딘가 이상하다.
상당히 거슬리는 말이었다.
누가 죽기 직전에 ‘이번엔’이라는 말을 쓴단 말인가?
그 말은 곧 다음도 있다는 뜻이나 마찬가지니까.
어째서 다음이 있는 것처럼 말을 했단 말인가?
어째서 완전히 저항을 포기했단 말인가?
수많은 생각들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리고 진양의 표정은 점점 더 구겨져 갔다.
‘법상! 그래, 저건 놈의 본존이 아닌 법상이었던 거야!’
지금으로선 그럴 가능성이 컸다.
그리고 빠져나갈 길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에 저항을 완전히 포기하고 죽음을 선택한 게 분명했다.
그렇다.
이것이 바로 그가 남겨둔 최후의 보루였던 것.
진양은 상대를 무조건 함정에 밀어 넣을 수 있을 거라고 자신했었기 때문에 이런 일을 벌인 것이다.
단순히 상대가 마지막 기회를 놓칠 수 없어 달려든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이제 보니 그에겐 법상이라는 최후의 보루가 남아있었던 것이었다.
어차피 법상은 죽어도 본존은 살아있으니 말이다.
법상은 수도사에게 상당히 중요한 존재다.
만약 파괴되면 본존도 다시 돌이킬 수 없을 만큼 큰 피해를 입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조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그렇지 않다.
법상이 파괴된 황영이 멀쩡한 것으로 보아 전조 내에 법상 파괴로 인한 피해를 복구할 수 있는 별도의 방법이 마련되어있는 듯했다.
전혀 생각지 못한 상황이었다.
상대는 애초부터 죽음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위치에 있었던 것이었다.
뒤늦게 깨닫고 나니 등을 타고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혹여나 하는 마음에 한층 더 신중하게 행동했던 게 다행이었다.
만약 아무 생각 없이 녀석에게 습득 능력을 사용했었다간 오히려 반격을 당할 수도 있던 상황이다.
힘이 다하여 모든 것을 체념한 것처럼 보여도 법상의 숨이 붙어있는 한 최후의 일격 정도는 가능하다.
바로 자폭이다.
법상을 자폭시키면 순간적으로 엄청난 위력이 뿜어져 나오는데, 그 위력은 법상 수도사조차 치명적일 정도로 무시무시하다.
어쩌면 진양은 목숨까지 위협을 받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거리도 짧고, 찰나의 순간인 만큼 흑옥 신문으로 위력을 상쇄할 기회조차 없었을지 모른다.
아쉬움에 당시 상황을 돌이켜보긴 했으나 당시로선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하는 수밖에 없었다.
일단 상대의 법상을 파괴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좋은 결과였다.
더 이상 아쉬워할 여유는 없었기에 진양은 성낙진판을 정리하여 집어넣었다.
한시라도 빨리 연나 일족의 사람들과 만나 이 사실을 알려야 한다.
만약 상대가 아직 살아있다면 법상 파괴로 인한 피해에서 금방 회복하고 곧장 이곳으로 달려올지도 모른다.
그땐 상대도 순순히 다시 함정에 빠져주진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허공은 상대의 주무대다.
진양이 아무리 최선을 다한다고 하더라도 상대를 꺾는 건 불가능할 것이다.
연나 일족의 사람들과 합류한 진양은 짧게 한마디 했다.
“일단 돌아가서 얘기를 나누시죠.”
* * *
진양 일행이 떠난 뒤.
허공 너머로 두 사람이 빛에 휩싸인 채 아직 여파가 가라앉지 않은 전장으로 다가왔다.
한 사람은 황영이었고, 나머지 한 사람은 허상에 가려진 사람이었다.
“쥐새끼 같은 놈. 벌써 도망갔을 줄이야…….”
허공진경 전수자는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그래서, 이게 그대의 진짜 계획이란 말이오?”
황영의 미간이 잔뜩 찌푸려졌다.
“법상을 포기하고 진양의 목숨과 상자를 가져올 수 있다면 적어도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닐 것이라 판단했었소. 그 녀석 우리가 예상한 것보다 훨씬 더 멀리 보고 예상하고 있는 게 분명하오. 아마 다시 같은 상황이 벌어진다고 하더라도 크게 다를 건 없을 것 같소.
상황이 이렇게까지 흘렀는데 그대는 아직도 그 녀석이 한낱 신문 경지밖에 되지 않는 애송이로 보이는 것이오?”
황영은 입을 꾹 다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신문 경지에서 법상 강자를 죽이다니.
어떤 방법을 썼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신문 수도사가 법상 강자를 죽였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그를 더 이상 신문 수도사처럼 대해선 안 된다.
“이곳의 기회는 날린 듯하니 이만 떠나는 게 좋겠소. 남은 건 이제 그대에게 걸어보는 수밖에.”
“경매에 참여할 생각이오?”
“어려울 것 같소. 법상이 파괴되면서 기운의 역류가 일어났소. 당장은 강제로 억누르고 있지만, 한시라도 빨리 해결하지 않는다면 돌이킬 수 없는 피해로 남게 될 것이오. 게다가 유령 비경을 설령 찾아낸다고 하더라도 그곳은 일 년에 단 한 번밖에 들어갈 수 없는 곳이오. 다른 시기에 들어갔다간 꼬박 일 년을 그곳이 다시 열리길 기다려야 하오. 만약 기다리지 않고 강제로 나오려고 했다간 허공에서 길을 잃게 될 것이오.
게다가 그곳엔 살아있는 생명체라곤 단 하나도 없소. 그대는 그곳이 그저 평범한 유랑(流浪) 비경이라고 생각하는 것이오?”
허공진경 전수자는 한마디를 남긴 뒤 모습을 감추었다.
황영은 그가 사라진 곳을 말없이 한참 바라보다가 이내 사라졌다.
* * *
나송의 얼굴은 상당히 창백했다.
연나 일족의 비전인 축유술을 사용하여 선조의 허상을 불러냈다.
아무래도 큰 부담이 갈 수밖에 없었다.
나송의 둘째 형인 나씨 이공자와 다른 세 노인의 안색도 그다지 썩 좋지는 않았다.
함께 공법을 펼치긴 했으나 꽤 큰 부담이 갔었던 듯했다.
“진 선생, 어떻게 되었소?”
안전한 곳에 도착하기 무섭게 나송이 다급하게 물었다.
“계획은 성공했습니다. 다만, 허공지경 전수자는 아직 죽지 않았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오?”
“예상대로 놈이 진법 안으로 뛰어들긴 했는데, 막상 놈을 소멸시키고 보니 문득 법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게다가 상대는 법상 회복에 도움을 주는 공법이나 보물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나송은 억지로나마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 정도면 나쁘지 않은 결과군. 법상을 잃었으니 분명 상당한 힘을 잃었을 것이오. 설령 회복할 방법이 있다고 해도 최소 몇 년은 걸릴 터. 또다시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때는 반드시 놈을 죽일 수 있을 것이오.”
“결론적으로 이긴 건 맞죠. 게다가 당신들의 방법으로 놈들을 제압할 수 있다는 것도 증명을 했고요.”
진양이 그를 위로하며 말했다.
나송은 비록 귀한 대접을 받으며 자라긴 했으나 여느 높은 집안의 자제들과는 달랐다.
비록 경험이나 수련은 다소 부족할진 모르지만 세상 돌아가는 도리에 대해서는 꽤 잘 알고 있는 모습이었다.
게다가 그는 연나 일족 전체를 통틀어 어머니의 원한을 갚겠다는 의지가 가장 강한 사람이다.
진양의 시선이 곁에 있는 이공자와 세 노인에게 향했다.
그들은 굳은 표정으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진양 역시 딱히 말을 건네진 않았다.
솔직히 그들이 썩 마음에 드는 건 아니었다.
사실 상황이 이렇게 된 건 연나 일족의 자만함 때문이기도 하다.
그들은 한낱 신문 수도사에 불과한 진양 따위가 나설 필요도 없이 스스로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었다.
진양은 비록 유령 선장으로서 명성을 떨치고 있긴 했으나, 실력으로는 큰 명성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때문에, 진양의 계획을 따르기론 했으나 복수에 진양까지 직접 개입하길 원하지는 않았다.
함정을 파고 새로운 계획을 내놓은 것도 사실은 타협의 결과물이다.
찾아온 상대가 본존이든 법상이든, 어쨌든 결과적으로 진양의 계획은 성공했다.
이로써 진양의 실력은 증명된 셈.
그렇기에 네 사람은 딱히 할 말이 없었다.
상당히 어색한 분위기가 흐르는 가운데 나송은 일단 자신의 둘째 형님과 세 노인과 함께 떠나기로 했다.
나송이 씁쓸하게 웃으며 진양에게 포권을 취했다.
“너무 마음 쓰실 것 없소. 만약 우리가 제대로 협조했다면 이번 계획이 성공했을 거란 사실은 나도 잘 알고 있소. 다만…….”
“괜찮습니다. 이 정도로도 만족하니까요. 다만 상대가 법상을 보냈을 줄은 저도 몰랐네요. 그래도 법상을 파괴한 것만으로도 손해는 아닙니다. 적어도 다음에는 법상이 아닌 본존이 나타날 테니까요. 게다가 이번 일로 상대도 큰 피해를 봤을 겁니다. 그러니 결론적으로 보자면 저희의 의도대로 계획은 성공한 셈이죠.”
연나 일족 중에 그나마 제대로 된 사람은 나송 한 사람뿐이었다.
축유술이 제대로 위력을 발휘하지 못한 건 나송 혼자 펼쳤기 때문이다.
다른 연나 일족 사람들이 함께 거들었다면 훨씬 더 큰 효과도 기대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거들지 않았다.
그만큼 대가를 치러야 하기 때문이다.
축유술이 충분히 강했다면 최후의 보루로 남겨두었던 함정은 쓸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어머니의 원한을 갚기 위해 자신을 희생한 나송만 바보가 된 셈이나 다름없는 상황이었다.
“이만 돌아가서 쉬도록 하죠. 후일을 기약하기 위해서라도 충분히 회복해둬야 합니다.”
“알겠소. 그럼 먼저 가보도록 하겠소.”
진양은 먼저 나송 일행을 보냈다.
그리고 둔연을 사용하여 자리를 떠났다.
진양이 다시 나타난 곳은 대연과 대영 사이에 있는 어느 한 산 중턱.
진양은 곧장 동굴 안으로 향했다.
그곳에선 온우백이 대기하고 있었다.
“가자. 슬슬 경매 준비하러 가야지.”
* * *
시간은 흘러 어느덧 경매 일자가 코앞으로 다가왔고, 진양은 저택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며칠 뒤 비경이 열리자마자 진양은 묵양을 데리고 비경 안으로 향했다.
진양은 곧장 성낙진판을 꺼내 땅 위에 내려놓았다.
성낙진판은 조용히 땅속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비경 상공에는 원래는 없었던 별들과 상고 잔월이 떠올라 은은한 빛을 발휘했다.
진양이 가볍게 손짓을 하니 모든 것이 사라지고 다시 원래 비경의 모습이 나타났다.
한편, 묵양도 놀고만 있지는 않았다.
그는 일부러 모두가 볼 수 있도록 여러 장치들을 설치했다.
출입구도 다소 손봤다.
먼저 모든 사람들이 한 곳으로만 들어올 수 있도록 입구를 조정했다.
그리고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여 떠날 때도 함께 떠나도록 출구를 만져두었다.
모든 준비를 마친 진양은 초청장을 가진 사람들이 입장할 수 있도록 비경을 완전하게 개방했다.
진양은 경매장에 머물지 않았다.
어차피 오전 경매는 진양이 개입할 가치조차 없다.
진짜는 오후 경매부터 시작이니까.
모든 계획이 준비되었다.
그리고 변수에 따른 차선책도 모두 마련해 두었다.
이제 조용히 경매 상황을 지켜보는 일만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