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781
781화 당했다
허공의 중심.
허공진경의 전수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어딘가에서 쏘아진 빛이 어두운 허공을 비추고 있었다.
피어오른 연기가 사방으로 퍼지며 공간 자체가 진득해진 기분이었다.
한 오래된 제단이 허공에 나타났다.
나송은 한 손에 자금색의 금속 같은 향을 들고 있었다.
그의 미간은 잔뜩 찌푸려져 있었다.
“제자 나송, 선조의 법가(法駕)를 맞이하러 왔사옵니다.”
나송은 들고 있던 향을 제단에 놓인 향로에 꽂았다.
이어서 피를 조금 흘려 향에 흘렸다.
순간 금속 같은 향이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향에서 뿜어져 나온 연기 사이로 얼굴이 보이지 않는 한 여인이 천천히 떠오르기 시작했다.
여인이 가볍게 손을 휘젓자 허공을 가득 채우고 있던 연기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진득하던 느낌도 모두 사라졌다.
그러나 날아서 도망가던 허공진경의 전수자는 여전히 허공에 굳은 채로 있었다.
그의 둔법은 무용지물이 되어버렸다.
나송은 꽤 큰 밑천을 들여 연나 일족의 축유술을 펼쳤고, 자신의 피로 선조의 허상을 불러냈다.
상고 인족 십이사 중 한 사람인 향사.
비록 오래전에 죽었고, 또 겨우 한 방울의 피로 불러낸 만큼 허상도 흐릿했으나 연나 일족이 이곳에 준비해 둔 것들을 한 단계 강력하게 만들어주기엔 충분했다.
이곳의 공간은 현철만큼 단단해졌다.
마치 허공진경 전수자의 둔법을 폐지시킨 것처럼.
허에서 실로 바꾸는 능력을 폐지시킨 것처럼.
그의 모든 능력을 사용할 수 없도록 만들었다.
온몸의 실력을 모두 공허함으로 만들어 허공진경의 공법을 사용할 수가 없었다.
나송은 제단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의 얼굴은 백지장처럼 창백했다.
이런 종류의 축유술은 혈맥이 중요하다.
그는 직계 혈맥, 상당히 진한 혈맥을 지니고 있다.
그러므로 오직 그만이 펼칠 수가 있었고, 이런 위력을 낼 수 있었다.
“이젠 당신들께 맡깁니다…….”
나송은 한 알의 단약을 복용한 채 계속해서 제단 앞에 무릎을 꿇었다.
한 줄기의 연기가 날아왔고, 허공에 둥둥 떠있던 제단은 사라져버렸다.
허공에는 세 명의 노인이 있었다.
그 중 한 사람은 나송과 상당히 닮은 남자였다.
이들은 각각 네 방향에서 허공진경 전수자를 중앙에 두고 있었다.
“감히 연나 일족의 사람을 죽이다니. 천 년 이래 가장 진한 혈맥을 가진 가족을 죽이다니. 만 번을 찢어 죽여도 시원치 않을 놈이구나.”
“이만 죽음을 받아들이거라!”
“아무 말씀 마시지요.”
나씨 이공자(二公子)가 굳은 표정으로 손에 들고 있는 향로를 후 불었다.
그러자 향로에 꽂힌 향이 그의 양기에 의해 불이 붙었다.
그러나 세 노인은 더 이상 아무 말 하지 않았고, 각자 한 조각의 원뿔형 향 조각을 꺼내 생기로 불을 붙였다.
순간 굳어진 허공 속을 연기가 가득 채웠다.
그리고 허공진경의 전수자를 둘러쌌다.
연기는 곧장 진법을 이루었다.
무수히 많은 번개의 허상이 강물처럼 몰려오며 허공진경의 전수자에게 쏟아졌다.
허상 같던 그의 몸은 연기로 만들어진 번개의 강에 의해 씻겨졌고, 마치 정말로 번개의 강에 빠진 것처럼 온몸에 번쩍였다.
그리고 천천히 진짜 모습을 드러냈다.
마른 체형에 얼굴에는 금속으로 만든 면구를 쓰고 있었다.
그는 실력으로 버티며 그곳을 뚫고 나왔다.
그러나 연기로 만들어진 거대한 괴수와 마주하게 되었다.
괴수를 향해 힘을 써보아도 소용이 없었다.
흩어지는가 싶다가도 금세 다시 회복이 되었기 때문이다.
수많은 허공진경의 진법이 있지만 이곳에서는 쓸 수가 없었다.
그야말로 속수무책이었다.
잠시 뒤.
허공진경의 전수자는 만신창이가 되었다.
온몸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고, 마치 불길에 그을린 것처럼 새까맣게 변해있었다.
그러나 그는 웃고 있었다.
“향사의 수단은 높은 경지에 이르렀거늘. 그에 비하면 너희는 아직 멀었다. 겨우 연나 일족의 혹신향(惑神香)으로 나의 영혼과 이성을 미혹하다니…….”
“선조와의 차이는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크지만, 혹신향 하나로 네 목숨을 취하기엔 충분하다.”
나씨 이공자가 무표정으로 차갑게 말했다.
향사의 전승은 이미 절반 이상이 사라졌다.
강력한 위력을 자랑하는 신물도 전부 사라졌다.
그러나 남아있는 부분은 결코 무시할 수준은 아니다.
혹신향은 본래 영혼이나 이성을 미혹할 때 쓰는 용도지만, 지금 이 순간 만큼은 상대의 영혼과 이성, 심지어 육신마저 그것이 가짜라는 것을 분별해낼 수 없도록 만들기에 충분했다.
상처, 죽음.
모든 것이 가짜에서 비롯되었으나, 전부 진짜가 되어버렸다.
허공진경 전수자는 차갑게 웃으며 한 손으로 자신의 오른팔을 붙잡았다.
“연나 일족이라니. 진짜 연나 일족일 것이라곤 생각지도 못했구나…….”
말을 끝마치기 무섭게 허공진경 전수자의 왼쪽 팔을 뜯어버렸다.
이어서 왼팔은 부서지며 선혈로 변했고, 그의 온몸을 감쌌다.
굳어진 공간에 물결이 일어나며, 허공진경 전수자의 몸에서 기운의 파동이 순식간에 수십 배 늘어났다.
“연나 일족이여, 언젠간 또다시 만날 것이다.”
“큰일이다! 어서 놈을 잡아야 됩니다!”
눈 깜짝할 사이에 허공진경 전수자는 한 줄기의 빛이 되었고, 빠른 속도로 나씨 이공자 뒤쪽으로 날아 허공 너머로 사라져버렸다.
뒤에 있던 자들은 순식간에 떨어져 나가 버렸다.
한참 허공을 가르던 허공진경 전수자는 갑자기 멈춰 섰다.
그는 굳은 얼굴로 사방을 쳐다보았다.
멀리 허공 너머 별빛이 반짝이는 모습이 보였는데, 빛나는 게 어딘가 이상했다.
별빛은 사방에서 빛나기 시작했고, 점점 더 밝아졌다.
그리고 마침내 자색의 그믐달이 하늘 높이 떠올랐다.
차가운 하늘 위로 오래된 달빛의 기운이 소리 없이 흩뿌려졌다.
허공진경의 전수자의 몸에선 점점 더 많은 기운이 흘러나왔고,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당했다.’
이곳은 애초에 허공이 아니라 진법 내의 공간이었던 것이었다.
도대체 누가 이런 무시무시한 진법을 펼쳐놓았단 말인가?
상고(上古)의 잔월(殘月)을 진안으로 쓰려면 족히 수십 개의 도기로 절점(節點) 삼아야 하거늘!
그의 몸이 심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전혀 말도 안 되는 수준이었다.
현재 그의 실력으로 진법 공간을 돌파하는 건 불가능하다.
무엇보다 이 진법은 허공 가운데 대황 이상의 위력을 내뿜을 수 있다.
앞서 마주했던 모든 것들, 산봉우리로 이루어진 진법은 연나 일족이 심혈을 기울여 만든 작품들이었다.
심지어 세 강자 사이에 한 젊은 사람이 나타난 것까지 전부 함정이었다.
일부러 젊은 사람을 뚫고 가도록 유도한 것이 분명했다.
진정한 함정은 바로 이곳이다.
그런데, 이곳을 제 발로 걸어들어오고 말았다.
그는 문득 깨달았다.
연나 일족의 포위를 뚫은 순간 이미 진법에 들어섰다는 사실을 말이다.
단지 그때는 발견하지 못했을 뿐이다.
그렇게 진법이 변화를 일으키고 충분히 위력을 발휘하기 시작하고 나서야 발견했다.
하지만 너무 늦고 말았다.
갑자기 한 개의 별이 강하게 빛을 뿜어냈다.
작은 점에 불과했던 빛은 순식간에 방원 수백 리에 달하는 거대한 빛으로 변했다.
빛은 빠른 속도로 그를 향해 다가왔다.
그와 동시에 은은한 빛을 뿜어내던 다른 별들도 강한 빛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이어서 수많은 별빛이 유성우처럼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 * *
같은 시각.
진양은 잔월 위에 선 채 장관을 바라보며 감탄사를 내뱉고 있었다.
“나름 공들여 만든 진법인데. 이렇게 써보는 것도 정말 오랜만이군.”
대황에서는 상고 잔월 때문에 감히 쓸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그러나 이곳은 아니다.
아무런 거리낌 없이 최대한의 위력으로 펼치고 있으니 상쾌한 기분마저 들 정도였다.
처음부터 그는 허공진경 전수자와 정면으로 맞설 생각이 없었다.
상대는 무려 두 경지나 차이가 나고, 또 경전을 익힌 사람이다.
훼멸구의 폭발조차 마음대로 피할 수 있는 상대를 죽이는 건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얼마 전 진양은 일부러 진품을 토대로 만든 모조품 상자를 꺼내 보였다.
누군가 진품을 위탁했다는 것을 상대가 알도록 한 것이다.
그리고 일부러 허술한 변장을 사용하여 상대가 눈치채도록 했다.
홀로 나서서 미끼가 된 것처럼 보이게 하고, 함정을 판 것도 상대에게 알리기 위해서였다.
물건은 이미 진양의 손에 있으니, 오늘이 지나면 다시 되찾을 방법도 없다.
미끼도 던졌고 함정도 쳐놓으며 대놓고 복수를 하겠다는 뜻도 드러냈다.
자신이 있으면 덤벼보라는 듯이 말이다.
과연, 기회를 놓칠 수가 없었기 때문일까?
상대는 나타났다.
그러나 산맥에 설치된 진법, 거기에 연나 일족의 네 고수와 축유술로 소환한 선조의 허상까지.
이 모든 것들이 전부 대국을 위해 깔아둔 판일 줄은 예상치 못했던 것이었다.
연나 일족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허공으로만 들어선다면 모든 것이 끝날 것이라고 생각했다.
허공 안에서는 그 누구도 허공진경의 전수자를 막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진양이 노린 것이 바로 이것이다.
그가 허공으로 들어가려는 순간을 노려야만 그를 성낙대진 안으로 밀어 넣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진양은 멀리서 진법이 펼쳐지는 것을 지켜보았다.
아름답고 찬란한 빛 사이로 모든 것을 파괴할 듯한 강력한 살기가 서려 있었다.
진법은 이미 상당한 변화를 일으켰다.
이제 막 금술까지 썼고, 거기에 중상까지 입은 허공진경 전수자로선 도저히 도망갈 방법이 없었다.
* * *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뒤.
진양은 진법 안으로 향했다.
진법 허공 안에 무언가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형상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처참하게 박살 난 허공진경 전수자였다.
아직 생기는 남아있었으나 금방이라도 꺼질 것처럼 위태로운 모습이었다.
진양은 검은 벽돌은 든 채 천천히 다가갔다.
상대의 눈에서 반짝이는 빛을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
“설마 내가 최후의 일격이라도 가할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 네 녀석이 어떤 최후의 보루를 쥐고 있을지도 모르는데. 당연히 그럴 리 없지. 난 목숨이 하나뿐인 사람이라서 말이야. 유성우만으로도 충분히 죽일 수 있는데 쓸데없이 내가 나서서 최후의 일격을 가할 필요는 없잖아?
그렇게 쳐다볼 필요 없어. 그냥 보물을 잠깐 꺼내어 갖고 놀던 것뿐이니까. 온 김에 몇 마디 떠들기도 하고 말이야.”
상대의 눈에선 짙은 분노가 피어올랐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진양은 흡족스러운 얼굴로 검은 벽돌을 집어넣었다.
이어서 머릿속으로 생각을 하자 수많은 유성우가 쏟아져 내렸다.
하늘이 번쩍이며 무수히 많은 별빛들이 쏟아져 내렸다.
상당히 아름다운 광경이었으나, 별빛에는 무시무시한 파괴의 힘이 서려 있었다.
상고 잔월에서도 달무리가 방출되었고, 진법의 위력은 극한까지 발휘되기 시작했다.
현시대에 속하지 않은 힘이 지금 이 순간 방출되고 있었다.
아무리 법상 경지에 올랐다 해도 허공진경 전수자가 이런 변화무쌍한 진법의 세계에서 생존한다는 건 불가능할 듯했다.
그의 공법은 비록 적의 공격을 방어하는데 특화되어있었으나, 실상은 방어가 아닌 회피 위주다.
때문에, 회피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내야 하는 상황에선 도저히 살아남을 방법이 없었던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