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960
960화 출구는 이쪽
“자, 이 몸이 특별히 새로운 집을 하사하노라. 응신전이 질리면 가끔씩 이곳에 가서 지내도 좋아. 뭐, 그렇다고 너무 고마워할 필요는 없고.”
향괴는 직접 보고도 믿을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진양은 그런 녀석의 반응은 무시한 채 궁전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그곳에 있던 제향도 연화시킨 뒤 다시 제자리에 가져다 놓았다.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이곳에 있는 궁전은 아무 이유 없이 세워진 게 아니다.
분명 향사의 제자들이 수련을 목적으로 세운 곳이 분명했다.
아마 이곳에 남아있는 향은 참고용으로 남겨둔 일종의 교과서로, 이 외의 것들은 지금까지 전해지지 않고 모두 사라진 듯했다.
순목은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는 듯했다.
그래서 목숨 걸고 이곳으로 들어오려는 게 분명했다.
“혹시 다른 궁전은 없을까?”
“그건 저도 잘 모릅니다. 전 아무것도 모릅니다.”
향괴는 혹여나 자신의 태도가 불손하게 보이기라도 했을까 덜컥 겁이 났다.
그래서 한마디 덧붙였다.
“대인, 저는 단 한 번도 응신전을 벗어나 본 적이 없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것도 전부 향사의 제자들에게 전해 들은 것밖에 없습니다. 그러니까, 제가 순수하게 알고 있는 건 없다 그런 뜻이지요.”
진양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결국 그게 그거잖아. 쓸데없이 말을 돌리긴.’
“그래도 총 몇 개의 궁전이 있는지 정도는 알고 있겠지?”
“열두 개입니다.”
향괴는 망설임 없이 곧바로 대답했다.
진양은 녀석이 분명 무언가 숨기고 있을 거라 확신했다.
그러나 그를 다그치지는 않았다.
어차피 그가 향계에 들어온 가장 큰 목적은 이미 달성했다.
이 외에 얻는 것들은 그저 부수적인 수입일 뿐, 얻어도 그만이고 못 얻어도 아쉬울 건 없다.
진양은 빠른 속도로 구름 위를 가르며 보이는 궁전이란 궁전은 전부 연화시켰다.
진양이 궁전을 연화시킬 때마다 향괴의 표정은 굳어졌다.
그러나 감히 진양을 막을 순 없었다.
‘도대체 어떻게 저렇게 정확하게 궁전의 위치를 파악해내는 거지?’
그동안 여러 개의 궁전을 연화시켰으나 궁전에 있는 ‘교과서’들 중 응신향같이 영성이 깃든 건 단 하나도 없었다.
그렇게 절반이나 되는 궁전을 줍고 나니 문득 좋은 생각이 하나 떠올랐다.
오랜 세월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궁전이 완벽하게 보존될 수 있던 건 단순히 좋은 재료로 지어졌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아마 향사의 기운이 남아 세월의 흔적을 어느 정도 막아준 게 분명했다.
진양은 궁전에 남아있는 기운을 깨닫거나 느끼는 것이 불가능했다.
확실하진 않지만, 실력이 낮은 탓인 듯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기껏 주운 궁전들을 장식품으로 쓸 순 없는 노릇이다.
응룡에게 받은 제기조차 골고루 사용하고 있는데 이런 좋은 물건을 그냥 놀릴 순 없다.
그래서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이걸 어디에 쓸 수 있을까?
그렇게 생각하다 보니 자신의 폐허 도궁이 떠올랐다.
꽤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폐허 도궁은 여전히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확실히 스스로의 힘만으로 재건하기엔 어느 정도 무리가 있다.
그러다 문득 떠오른 생각이 혹시 그곳에 다른 물건을 넣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였다.
연화시킨 물건은 온전히 진양에게 속한 물건이므로 이론상으론 안 될 것도 없다.
‘한번 해 보지. 시도해 본다고 해서 닳는 것도 아니잖아.’
진양은 곧바로 흑옥 신문을 꺼냈고, 신문을 열어 응신전을 제외한 나머지 다섯 개의 궁전을 던져넣었다.
이어서 궁전에서 빛이 뿜어져 나오며 진양은 느낄 수 없는 은은한 기운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다섯 개의 궁전은 빛이 되어 밤하늘을 가르는 유성처럼 북동쪽으로 날아갔다.
그러자 형언할 수 없는 신비로운 변화가 폐허 도궁 내에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폐허 도궁의 재건 속도가 눈에 띌 정도로 빨라졌다.
진양은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응신전도 폐허 동궁 안으로 던져넣었다.
확실히 효과는 있었다.
예상보다 훨씬 더 효과가 있는 부분도 있었고, 예상했던 것과는 다른 부분도 있었다.
왜 그런 건지는 구체적으로 알 수 없었지만 크게 상관은 없다.
어쨌든 효과가 있다는 게 중요했으니까.
진양은 신문을 다시 회수한 뒤, 계속해서 다음 궁전을 향해 날아갔다.
* * *
어느덧 긴 잠에서 깨어난 장정의는 시간을 확인해 보았다.
생각보다 꽤 많은 시간이 흘렀다.
‘지금쯤이면 다 끝났겠지?’
설령 진양이 순목을 죽이지 못했다 하더라도 상관없다.
녀석은 진양을 당해낼 수가 없으니 분명 멀리 도망쳐버렸을 것이다.
“좋아! 그럼 다시 출발해 볼까!”
장정의는 양탄자를 챙긴 뒤 졸린 눈을 비비며 나무 문으로 향했다.
관문을 넘어 다음 공간에 도착하자 긴 나무 자와 목탄의 모습이 보였다.
이어서 세계가 빠른 속도로 늘어나는 것이 느껴졌다.
조용히 이 모습을 바라보던 장정의의 얼굴에 미소가 피어올랐다.
“하하하! 겨우 이 정도에 갇히면 스승님을 뵐 면목이 없지!”
장정의가 발걸음을 내딛는 순간, 발아래 도문이 피어올랐다.
이어서 도문으로 이어진 길을 향해 양손에 결인을 맺으니 지척천애 금제가 펼쳐졌다.
꽤 빠른 속도였다.
심지어 진양보다도 한 단계 더 빨랐다.
그렇게 끝없이 펼쳐진 길을 건너 다음 관문 앞에 서고 나니, 어느덧 나무 자와 목탄의 모습을 사라지고 없었다.
장정의는 아쉬움을 뒤로한 채 관문을 넘어 다음 공간으로 향했다.
이번에는 수천 개의 나무 문이 세워져 있는 공간이 나타났다.
아무리 살펴도 사람의 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장정의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살피는 듯하더니, 이내 하나의 문을 골라 다가갔다.
그리고 둔세향을 하나 꺼내 피웠다.
진양이 만든 둔세향과는 색깔도, 모양도 다소 다른 것이었다.
장정의는 이내 모습을 감추었다.
그리고 반 시진 뒤.
동해 해저의 어딘가에서 장정의는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눈을 떴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건 너무한 거 아니야? 향사 정도 되는 고수면 수많은 사람의 존경을 받던 사람이잖아. 이런 사람이 후손을 골탕 먹일 생각이나 하다니!”
너무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장정의는 자신이 어떻게 죽게 된 것인지조차 파악하지 못했다.
얼굴을 만져보니 다행히 수명은 그다지 많이 깎이지 않은 듯했다.
잠시 고민하던 장정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좋아. 한 번으로 안 되면 여러 번 부딪쳐보면 되는 거잖아!’
* * *
같은 시각.
대영 동도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한 작은 마을.
장포로 자신의 얼굴을 완전히 가린 순목은 이곳을 거닐고 있었다.
너무 많은 수명을 소모한 탓인지 장포 사이로 보이는 그의 얼굴엔 세월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사방을 경계하며 시끄러운 시가지를 걷다 보니 이제서야 이곳이 현실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한참을 걷던 그는 화들짝 놀라며 한 좌판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곳에선 한 젊은이가 모락모락 김이 피어오르고 있는 찻잔을 든 채 천천히 차를 음미하고 있었다.
젊은이는 순목의 시선을 느꼈는지 고개를 들고 미소를 지어 보였다.
순간 순목의 눈동자가 심하게 떨렸다.
이어서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주체할 수 없는 무언가가 터져 나왔다.
“혹시…….”
젊은 좌판 상인이 뭐라고 말을 하려는 순간.
순목은 빛이 되어 시가지의 방어 금제를 뚫고 어디론가로 날아가 버렸다.
젊은 상인은 멍한 눈으로 순목이 사라진 곳을 바라보며 하려던 말을 계속해서 중얼거렸다.
“……필요한 게 있으면 천천히 둘러보시죠…….”
* * *
진양의 궁전 탐색 작업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지금까지는 대략적인 감으로만 방향을 찾았지만, 지금은 폐허 도궁에 자리 잡은 궁전의 위치를 보고 방향을 찾아갈 수 있었기에 작업은 훨씬 더 수월해졌다.
마지막 궁전의 위치는 딱히 계산해 볼 필요도 없었다.
이미 자리 잡은 열한 개의 궁전의 모양을 보고 비어있는 곳을 찾아가 보니 찾을 수 있었던 것이었다.
마지막 남은 궁전을 연화시키고 습득하는 순간.
진양의 몸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그것은 둔세향의 힘이었다.
둔세향의 힘이 진양을 둘러싸는 순간, 진양은 향계 밖으로 튕겨져 나갔다.
사방에 나무 문이 세워진 곳으로 다시 돌아오게 된 것이다.
그와 동시에 향계 내에서 각자 흩어졌던 가주와 나기도 밖으로 튕겨져 나왔다.
가주는 아쉬움 가득한 눈빛으로 향계 입구를 쳐다보는 듯했으나, 이내 진양에게 예를 갖추었다.
“다소 예상했던 것보다 탐색 작업이 금방 끝나긴 했습니다만, 그래도 진 선생께서 만들어주신 둔세향 덕분에 별 탈 없이 다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진양은 차마 자신이 궁전을 모두 챙기며 튕겨져 나왔다는 사실을 얘기할 수가 없었다.
다만, 향계는 진양이 상상했던 것과는 많이 달랐다.
열두 개의 궁전과 구름 속에 살고 있는 몇몇 이수를 제외하면 딱히 특별할 게 없었던 것이었다.
상당히 실망스러웠다.
환사의 환해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형편없는 수준이라고 느낀 것이다.
하지만 반드시 그렇다고만 할 순 없다.
환해는 환사와 화사가 함께 손을 잡고 만들 결과물이니 말이다.
이제 더 이상 향계에 볼일은 없었다.
완벽하게 털고 온 탓인지 미련도 남아있지 않았다.
가주 역시 다시 향계에 들어갈 생각은 없는 듯했다.
과유불급.
욕심이 과하면 화를 불러오는 법.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미루어보았을 때 괜히 욕심을 부리며 다시 같은 문으로 들어갔다가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가주와 나기는 수많은 문 중 하나를 골라 열고 들어갔다.
그 문은 수낭 동굴의 출구로 향하는 지름길이었다.
모두 떠나고 나니 진양은 뒤늦게 순목과 장정의가 떠올랐다.
순목은 이미 오래전에 이곳을 다녀갔으니 이젠 장정의가 올 차례였다.
괜히 왔다가 겁 없이 죽음을 향해 달려들기라도 할까 봐 걱정됐다.
그래서 잠깐의 고민 끝에 향계 입구 앞에 거대한 팻말을 세워두었다.
‘향계 입구. 이 안에 더 이상 값나가는 물건은 없으니 들어갈 필요 없음! 괜히 들어가봤자 목숨만 버리는 꼴이니 돌아가시오!’
팻말을 꽂아둔 진양을 흡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이며 손바닥을 탁탁 털었다.
‘이 정도면 정의 녀석도 충분히 알아보겠지.’
장정의도 알아볼 수 있을 정도라면 다음에 이곳을 찾는 사람도 충분히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정의도 돕고, 이름 모를 다음 방문자도 돕고.
좋은 일을 했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좋았다.
‘이왕 좋은 일 하기로 마음먹었으니 끝까지 깔끔하게 처리해야지.’
진양은 출구 쪽에도 팻말을 세웠다.
‘출구는 이쪽.’
출구 팻말까지 세운 진양은 흡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이며 수낭 동굴 밖으로 향했다.
* * *
진양이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장정의가 다시 나타났다.
그는 처음 지나왔던 길을 따라 다시 수많은 나무 문이 세워진 곳에 도착했다.
이어서 진양이 남긴 팻말을 발견했다.
‘목숨만 버리는 꼴’이라는 단어를 보자마자 이것이 진양이 남긴 팻말이라는 것을 눈치챘다.
물론 이것 하나만 보고 진양이 남겼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었다.
도무지 알아볼 수 없게 휘갈겨놓은 듯한 글씨체의 공이 더 컸다.
어쨌든 이곳은 이미 진양이 다녀간 듯했다.
그렇다면 안에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다는 말은 사실일 것이다.
설령 원래는 있었다 하더라도 이미 모두 진양의 주머니로 들어갔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