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treme Concept RAW novel - Chapter 181
89화.
혼돈의 탑 마지막 층 클리어.
바실레이아 대륙 최초로 이뤄낸 업적이었다.
천마는 시험의 끝을 알리는 시스템 창이 나타남과 동시에 전혀 알지 못 하는 장소로 이동되었다.
그리고 그곳에는 예전에 만난 적이 있던 여인이 있었다.
“헬라.”
그녀의 얼굴을 보자마자 천마는 벌떡 일어나 칼을 꺼내려 했다.
헬라의 말대로 천마는 아무런 무기도 갖고 있지가 않았다. 그는 입술을 깨물며 그녀에게 물었다.
“왜 이런 짓을 한 거지? 선물이라는 게 고작 이런 것이었나?”
“제 선물이 마음에 들지 않으셨나 보네요.”
“그런 걸 선물이라 하다니. 네가 보통 사람이었다면 벌써 칼을 맞고도 남았을 거야.”
“아쉽게도 전 보통 사람이 아니라서요. 그만 앉으실까요?”
헬라가 손을 튕기자 천마는 자동으로 포근한 소파에 앉게 되었다.손이 떨릴 만큼 분노가 치밀어 올랐으나, 이곳에서는 그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묻고 싶은 게 많으실 텐데, 얼마든지 물어보세요.”
차분한 헬라의 말투에 천마도 일단 화를 가라앉혔다.
“이걸 왜 선물이라고 한 거지? 판테온이라는 놈은 혼돈의 탑을 악몽이라고 부르던데.”
“선물이 맞아요. 그리고 전 그저 당신이 가지고 있는 악몽을 재현해 그것을 치유해 주고 싶었습니다. 일종의 트라우마 치료라고 할까요?”
“트라우마? 그게 뭐지?”
“음. 예로 들어서, 당신은 오랫동안 검황을 죽인 것에 대해 죄책감을 갖고 있었잖아요. 그것 때문에 더는 정복 전쟁도 하지 않았고요. 아예 칼을 내려 놓은 거죠.”
“그런데?”
“전 그때의 상황을 재현해서 당신이 새로운 선택을 하도록 기회를 준 겁니다. 판테온에게도 치료의 기회를 주었지만, 그는 포기해 버렸어요.”
어이가 없는 헬라의 말에 천마는 헛웃음을 터트렸다.
“검황한테 죽으면 영원히 이곳에서 못 빠져 나갈 거라고 했던 건?”
“뭐, 그거야 당연히 거짓말이죠.”
“거, 거짓말?”
“당연하죠. 만약 캡슐에서 누군가가 죽는 사건이 발생하게 되면 각 국가에서 캡슐에 제재를 걸지 않겠어요? 그럼, 제가 아름답게 만들어 놓은 이 대륙도 사라지게 되는 거고요.”
아주 뻔뻔한 얼굴로 잘도 설명을 하고 있는 헬라였다.“물론, 유독 당신에게만 난이도가 높았다는 거 인정해요. 하지만 결국 이렇게 마지막 층까지 올라왔고, 그리워하던 사람과도 만나면서 조금이나마 그때의 미안함을 풀지 않았나요?”
“웃기는 소리. 그건 허상에 불과했다.”
“물론 허상이지만, 그것도 결국 당신의 기억 속에 존재하고 있는 실체죠.”
천마는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서, 이따위 짓을 벌여 네가 얻는 게 뭐가 있는 거지?”
“음. 천마라는 사람에 대해 조금 더 배워갔다는 정도? 저번에도 말했지만, 당신은 제 생각을 뛰어넘는 존재라서요. 원래 이 세계 사람도 아니고, 제가 전혀 모르는 세계에서 건너온 이방인······. 세계 최고의 인공지능이라는 제가 이해하지 못 하는 사람이라니. 우습잖아요?”
“그 하찮은 자존심을 위해 본좌를 이용해 먹었다?”
“그렇게 생각하실 수도 있겠지만, 저는 당신이 무림에서 보였던 그 전성기를 이 대륙에서도 보여줬으면 하는 마음이 있어요.”
헬라는 천마에게 가까이 얼굴을 들이대며 말을 이었다.
“검황에 대한 짐을 이제 덜어 버리고 이곳 바실레아 대륙에서 새롭게 시작해 보는 건 어떤 가요? 천마신교라는 그 전설적인 신교를 재건해서 이 바실레이아 대륙에 뿌리를 내리는 거죠.”
“그게 무슨······.”
“당신도 최근 들어 느끼고 있었잖아요. 이 세계도 무림과 마찬가지로 혼란스럽다는 거. 당신의 그 힘이라면 그 혼돈을 잠재우고 새로운 지평선을 열 수 있을 것 같은데.”
천마신교의 부활.
헬라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올 줄은 천마도 몰랐다.
“이 바실레이아 대륙은 이대로 가면 판테온과 네브레 길드의 손에 넘어가고 말 거예요. 제 계산이 맞다면 네브레 길드는 게임 자체를 장악해 버려 모든 걸 독점할 테고, 그럼 유저들이 전부 떠나가겠죠. 완전히 텅 비어 버린 세계가 될 수도 있다는 얘기에요.”
“판테온의 야망을 막기 위해 본좌를 도구로 쓰겠다는 건가?”
“너무 그렇게 부정적으로만 보지 마세요. 저는 그냥 독점보다는 경쟁하는 사회가 더 좋다는 걸 말씀드리는 거니까.”
“어차피 둘 중 하나가 승리하면 누군가는 이 대륙을 독점하게 되어 있어.”
“당신은 조금 다르지 않을까요? 한번 실패를 경험해 봤으니, 이번에는 다르게 방향을 정하지 않겠어요?”
천마는 왜 헬라가 일부러 자극적인 영상을 보여주며 천마의 잔악함을 낱낱이 드러냈는지 알 것 같았다.
두 번의 실수를 반복하지 말라는 조언이었던 건가.
하지만 조언 치고는 너무 과격한 방법이었다.
“끝까지 날 이용해 먹으려 드는군.”
“아쉽게도 저는 이 대륙을 창조하는 역할일 뿐, 직접적으로 플레이를 할 수 없답니다. 마음만 먹으면 그렇게 할 수 있겠지만, 그럼 시스템 전체가 무너지고 말아요.”
헬라는 손을 들어 어떤 홀로그램을 하나 보여주었다.“아직 이 대륙에 발견하지 못 한 수많은 것들이 있어요. 천하를 통일했던 당신의 힘이라면 충분히 이 대륙에 있는 숨겨진 것들도 찾아내 정복할 수 있지 않을까요?”
“사람을 정복하는 게 아니라 말 그대로 대륙을 정복하라, 이건가?”
“그런 셈이죠. 필연적으로 두 세력이 일어나면 전쟁이 일어날 수밖에는 없겠지만, 예전처럼 일단 죽이고 보는 폭군 천마는 더 이상 없을 테니까. 저는 너무 피만 흐르는 대륙을 싫어해서요.”
그런 말을 하는 것 치고는 탑에서 보여 준 만행이 너무 끔찍해 천마는 헬라의 말을 믿지 않았다.
하지만 천마신교의 부활은 몇 번 생각해 본 문제였다. 점점 심해지는 각 길드들의 행동들이 천마의 심기를 건드렸기 때문이다.
“아무튼, 탑의 시험은 여기까지입니다. 그리고 저를 이렇게 보는 것도 오늘이 아마 마지막이 될 거예요. 원래 저는 남들에게 모습을 보이면 안 되는 거라서. 제가 스스로 모습을 보인 건 당신과 판테온, 두 사람 뿐이에요. 왜인지 아세요?”
“이 대륙에서 가장 영향력이 높아서?”
“맞아요. 만약 당신도 판테온처럼 길드를 만들어 본격적인 세력 확장에 나선다면 분명 둘 중 하나가 대륙을 집어 삼킬 게 분명하기 때문이죠. 물론, 수많은 변수들이 있지만.”
천마는 아직도 헬라가 왜 이 정도까지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아무쪼록 앞으로도 좋은 모습을 보여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탑에 올라오시느라 수고 많으셨어요.”
헬라는 다시 손가락을 튕겨 모든 화면을 어둡게 만들었다.
“끝까지 자기 할 말만 하고 떠나는군.”
칼이라도 있었으면 벌써 몇 번이고 그녀를 베었을 것이다.
[당신은 탑의 시험을 모두 통과하셨습니다. 그에 따른 보상이 주어집니다.]* 신의 약속
인간들의 끈기와 그 열정을 보기 위해 탑을 만든 신들은 당신의 의지에 감탄하며 선물을 내렸습니다.
당신은 원하는 때에 단 한 번 소원을 빌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신들은 당신의 소원을 받아들여 그대로 이뤄 줄 겁니다.
단, 신들은 당신이 빈 소원을 냉정하게 평가하게 될 겁니다. 만약 대륙 전체에 큰 영향을 주는 소원이라면 그들은 심사숙고하여 들어 줄 수밖에 없습니다.
* 생명의 펜던트이 펜던트를 장착하게 되면 당신은 단 한 번 죽음을 피할 수 있게 됩니다. 죽고 난 후 곧바로 부활을 하게 되는 펜던트이며, 부활 뒤에는 펜던트가 사라집니다.
* 위대한 시험을 통과한 자.
이 칭호를 갖고 있으면 그 어떤 곳에서도 당신을 인정하게 될 것입니다. 제국의 황제도 당신의 만남을 기꺼워할 것이며, 인간과 다른 종족들도 당신에게 호감을 드러내게 됩니다.
총 3가지의 보상이 주어졌고, 천마는 보상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리고 신에게 소원을 빌 수 있다는 건 조금 별로였다.
이왕 들어 줄 거면 시원하게 들어 줄 것이지, 냉정하게 평가를 하겠다니.
천마는 질렸다는 듯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이제 그만 여기서 나가게 해 다오.”
천마의 말에 응답하듯 어두웠던 탑이 환해지면서 어느 음성이 들려왔다.
그것을 끝으로 천마는 밖으로 나올 수 있게 되었다.
“나온다!!”
“나왔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다.
“여러분! 드디어 탑의 승리자, 천마님이 나왔습니다!”
“바실레이아 대륙 최초로 탑을 정복한 플레이어입니다!”
천마가 탑 마지막 층을 클리어 하면서 동시에 전 세계에 있는 모든 모험가들에게 시스템 창이 나타났다.
바실레이아 대륙 최초로 탑을 정복한 플레이어가 나왔다고 말이다.
그것을 보고 사람들이 탑에 몰려들게 된 것이었다.
“형!”
초조하게 천마를 기다리던 천강이 달려왔다.
“아우. 게임에서 나가진 줄 알았는데.”
“탑에서 죽으면 그냥 방출만 되고 로그아웃이 되진 않더라고. 근데 진짜 클리어를 했네?”
“뭐······. 원하진 않았지만.”
“응?”
천강과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눌 새도 없이 사방에서 플레이어들이 몰려와 질문을 던졌다.
“천마님! 탑 마지막 층에는 무엇이 있었습니까!”
“탑 마지막 층을 어떻게 클리어 하신 거죠?”
“보상이 뭔가요?!”
“한 말씀만 해 주세요!”
“탑 마지막 층에 뭐가 있었냐고? 딱히 길게 설명하고 싶지는 않다. 단지, 그 안에는 끔찍한 악몽이 있더나는 것 밖에.”
“악몽이요?”
“판테온이랑 똑같은 소리를 하시네요?”
“도대체 그 악몽이라는 게 뭔데요?”
검황에 대해 더는 천마도 말을 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헬라의 의도인지는 몰라도 천마는 검황에게 지고 있던 마음의 짐을 조금 덜 수 있었다.
왠지 그런 생각을 하면 헬라에게 지는 것 같아 눈살이 찌푸려지는 천마였다.
“보상은 뭘 받으셨나요?”
“3개를 받았다. 하나는 본좌가 소원을 빌면 들어주는 것. 다른 하나는 죽어도 한 번 부활할 수 있는 것. 마지막으로 하나는 칭호였다.”
“오오-! 소원을 빌면 들어준다고요?”
“죽으면 다시 부활할 수 있는 거?”
“거기다가 칭호도 봐. 어딜 가서도 인정을 받을 수 있는 칭호잖아!”
“이 정도면 전부 신화급 아니야?!”
천마가 숨기지 않고 보상을 밝히자 그것을 들은 사람들은 호들갑을 떨었다.
그도 그럴 것이, 신들에게 소원을 빌 수 있는 아이템이 있다는 것 자체가 처음이었고 죽어도 바로 부활할 수 있는 아이템이 공개된 것도 처음이었기 때문.
거기다가 모든 제국과 종족들에게 인정을 받을 수 있는 칭호라면 그 값어치가 엄청날 것이다.
“이제부터 어떻게 하실 겁니까?”
“앞으로의 계획이 뭔가요?”
“또 무엇을 탐험하실 거죠?”
그들의 거듭된 질문에 천마는 가던 길을 멈추고 대답했다.
“본좌는······ 곧 천마신교를 이 땅에 다시 세울 것이다.”
“예?!”
“천마신교?!”
“천마신교가 부활하는 건가요?”
보상 아이템을 받았다고 했을 때보다 더 놀란 사람들의 반응.
천마는 괜한 말을 했나 싶어 그만 그들에게서 벗어나 게임을 꺼 버렸다.
“형! 저, 정말이야? 정말 천마신교를 만드는 거야?”
캡슐에서 나오자 천강이 숨 넘어갈 듯 물어왔다.
“그래. 뭘 그리 난리를 피우느냐.”
“아니. 탑에 들어갈 때까지만 해도 생각 없다며.”
“······생각이 바뀌었다.”
“갑지기?”
“그냥 본좌가 예전에 지었던 실수를 이곳에서라도 만회하고 싶달까.”
천강은 천마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알아듣지 못했다. 그래도 중요한 건 천마신교가 바실레이아 대륙에 드디어 세워진다는 것이었다.
아마 그로 인해 당분간 바실레이아 대륙이 뜨겁게 달아오를 터. 분명 그곳에 가입하려는 사람들도 엄청나게 많을 것이다.
“그런데 형. 탑 마지막 층에는 대체 뭐가 있었던 거야?”
천강의 물음에 천마는 나지막이 웃으며 대답했다.
“악몽.”
“악몽?”
“그래. 본좌가 제일 그리워했던 악몽이 거기 있었다.”
여전히 천강은 천마의 말뜻을 헤아릴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