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ce Genius Top Star RAW novel - Chapter 62
도준의 질문에 진성현 실장이 잠시 고민에 빠진 듯 이마를 긁적거렸다.
“이제는 말씀해주실 때도 됐잖아요.”
도준이 백정아와의 식사 자리를 박차고 나오던 날. 진성현 실장은 생각이 많았다.
‘백 본부장이나 백 본부장 같은 사람이 이 바닥에 한둘이었던가. 그럼 그 사람들한테 유혹을 받는 배우는?’
유혹을 받는 배우도, 넘어가는 배우도 너무나 많았다. 힘이 약해서 어쩔 수 없는 경우도 많았지만, 그만큼 배우의 화려함이 그 권력과 닿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도준은 그 앞에서 배우로서, 사람으로서 존중받고자 했다. 찰나의 고민도 필요치 않아 보였다.
물론 도준이 이미 유명한 배우여서 가능한 일이기도 했지만, 도준보다 더 잘나가는 배우라고 한들 도준처럼 강단 있기는 힘들었다.
진성현 실장은 그간 이 업계는 ‘어쩔 수 없다’ 생각하며 지나친 많은 일들이 부끄러워졌다.
다음 날, 도준은 혹시 모를 백정아 본부장의 보복에 대비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당연한 얘기였다.
백정아 본부장 성격에 이 일을 그냥 넘길 리 없었다.
‘업계가 조금이라도 바뀌려면, 도준이 같은 배우가 더 많아져야 해.’
그러기 위해선 도준이 더 잘돼야 했다. 백정아 본부장 같은 인물에 가로막혀선 안 됐다.
도준과 얘기를 나눈 진성현 실장은 우선 소나무 엑터스 대표에게 사실을 알렸다.
SG 쪽에서 도준뿐만 아닌 소나무 엑터스에 어깃장을 걸 수도 있었다. 실제로 그렇게까지 일이 커지진 않았지만, 당시에는 그렇게 되는 문제까지 생각해야 했다.
소나무 엑터스 대표는 여느 대표와 마찬가지로 돈이라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드는 사람이었다.
그렇지만 기획사 일을 오래 해온 사람이기도 했다. 다른 사업과 달리 기획사는 사람인 배우가 자산이었다.
배우는 어떻게 관리하냐에 따라 그 수명과 가치가 천차만별로 달라졌다.
백정아와 잠시 틀어지게 되더라도 소나무 엑터스의 간판 배우이자 가장 많은 매출을 내고 있는 도준을 지키는 게 맞았다.
게다가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소나무 엑터스 대표는 그 일 이후, 어차피 도준에게는 일을 안 줄게 뻔한 SG 쪽이 아닌 SG의 경쟁사들과 더 돈독한 관계를 가지려 애썼다.
그러던 중 결국 SG 계열사인 뉴 베이커리 쪽에서 도준의 모델 계약 해지를 요구해왔다. 진성현 실장은 곧바로 뉴 베이커리의 모델이 된 이혜석을 의심하게 됐다.
그가 본격적으로 이혜석의 뒤를 캔 것은 그때부터였다.
‘백정아 본부장이 계속해서 도준의 앞길을 망치려 들 텐데······ 내버려 둘 수만은 없지.’
두 사람의 관계나 문제가 될 만한 부분을 알아내는 건 어렵지 않았다. 백정아나 이혜석, 두 사람 다 구설에 오를 만한 사건 사고를 몰고 다니는 스타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주변만 둘러보아도 당장 박혜서가 이혜석과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다.
다들 그저 쉬쉬했을 뿐이었다. 백정아는 밝혀 봐야 자잘한 구설 정도로는 흔들리지 않을 지위를 가지고 있기도 했다.
그러나 진성현 실장의 생각은 달랐다.
‘한 번 구설에 오르면, 그게 뭐든 다른 일들도 줄줄이 나오게 돼 있어.’
대한민국 네티즌이 얼마나 연예인과 재벌가 가십을 좋아하는지, 집요하게 파고드는지 연예계에 오래 있어온 만큼 누구보다 잘 아는 진성현 실장이었다.
그런 가운데 진성현 실장은 백정아 본부장이 구설에 오를 결정적인 사진을 얻게 됐다.
이혜석 무리 중 하나가 진성현 실장이 다른 이를 내세워 내민 미끼를 문 것이다. 무리 내에서 은근한 무시를 받고 있던 이였다.
진성현 실장이 말하지 않았기 때문에 도준도 진성현 실장이 얻은 자료가 무엇인지, 어떠한 경로로 얻게 되었는지 알지 못했다.
그저 지금이 백정아 본부장을 구설에 올릴 적기가 아니겠냐 묻는 진성현 실장에게 대답을 한 게 전부였다.
이 일로 이혜석이 누구보다 피해를 볼 것을 알았지만, 진성현 실장은 박혜서의 일을 알고 있었으므로 전혀 문제될 게 없었다. 그는 무고한 피해자가 아니었으니까.
***
“사진? 무슨 사진.”
그러니 당연히 그 사진은 진성현 실장에 의해 인터넷에 뿌려진 걸 텐데도 진성현 실장은 새삼 시치미를 뗐다.
사진이 올라간 이후는 진성현 실장이 생각한 대로였다.
한두 군데서 문제를 일으킨 것이 아니다 보니 여기저기 제보가 쏟아졌다. 외부뿐 아니라 회사 내부에서 행한 횡포 또한 만만찮다 보니 회사 내 백정아 자리는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도준은 이번 일로 재벌가가 기업 내에서 얼마나 견고한 존재인지 다시금 깨달았다.
백천 사장의 일까지 폭로되지 않았다면, 그래서 위기감을 느낀 백천 사장이 백정아 본부장으로 여론을 잠재우려 하지 않았다면, 백정아 본부장의 일 또한 그냥 넘어갈 수도 있었다.
‘백정아 본부장만 회사에서 물러나고 상황이 수습 중에 있다지만, 백천··· 그 인간도 결국 똑같아. 아니, 인간이라기엔······ 백 씨 일가 중 누구 하나 돈과 권력에 미쳐 괴물이 되지 않은 자가 없어.’
백천 사장에게 폭행당했다는 폭로글의 진위 여부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누가보아도 그 글은 사실일 가능성이 컸다.
백천, 백정아 남매의 폭력적인 성향은 SG 미디어 사람이면 모두가 알고 있는 것이기도 했다.
도준은 자신의 몸에 흐르는 피가 그들과 섞였다는 생각을 하면 어딘지 모르게 섬뜩해졌다.
못생기고 가난해 불행하다고 스스로를 여겼던 시절도 잠시 있었지만, 어머니와 살며 그렇게 힘들고 평범하게 살아온 것은 어쩌면 너무나 다행인 일이었다.
“······끝까지 안 알려주실 건가요.”
“다 별거 아니더만. 그들의 시기와 질투, 암투를 이용했을 뿐이야. 그렇게만 알고 있어. 괜히 전부 다 알아봐야 다쳐, 인마.”
진성현 실장이 영화 속 주인공을 연기하듯 과장되게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도준을 못 믿어서가 아니었다.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도준을 보호하려는 의도였다.
그 의도를 알아 도준은 피식 웃으면서도 마음이 가라앉았다.
피는 물보다 언제나 진하다더니, 틀린 말일지도 몰랐다.
도준은 자신을 위해 이렇게까지 나서준 진성현 실장에게 진심으로 고마웠다. 수완 좋은 진성현 실장이 아니었다면, 이번 일은 불가능했을 수도 있었다.
‘아직 갈 길이 멀겠지만······.’
도준의 계획의 끝에는 언제나 백정한 회장이 있었다. 백정아 본부장은 생각지 않은 돌부리에 불과했다. 갈 길은 때로 멀게 느껴지기도, 가깝게 느껴지기도 했다.
도준은 생각하며 사진의 출처를 더는 묻지 않았다. 대신 진성현 실장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전했다.
“고마워요, 실장님.”
“뭘, 새삼.”
“그래도 제 일에 저보다 더 발 벗고 나서 주셔서······.”
“도준아.”
“네.”
“전에도 말하지 않았나. 고마운 사람은 나라니까.”
왠지 낯이 간지러워 진성현 실장은 괜히 천장을 보았다.
때마침 종업원이 주문한 고기를 들고 자리로 오고 있었다. 도준은 입가에 은은한 미소를 띠우며 잠시 진성현 실장을 바라보다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근데 얘네 왜 이렇게······.”
주차만 하고 곧바로 들어왔어야 할 막내 매니저가 아직이었다. 막내 매니저와 함께 오겠다던 스타일리스트도 감감 무소식이었다.
덕분에 진성현 실장과 진지한 얘기를 나눌 수 있어 좋긴 했지만, 의아한 것이 사실이었다.
“어?!”
입구로 막내 매니저와 스타일리스트가 함께 들어서고 있었다. 초에 불을 붙인 커다란 케이크와 함께였다.
***
일단 오늘이 도준의 생일은 아니었다. 오히려 무대 인사 일정을 모두 마친 기념으로 도준이 수고한 스태프들을 위해 마련한 자리였다.
전국 방방곡곡으로의 무대 인사 일정 때문에 스태프들이 꽤 지쳐 있었음을 도준도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되레 도준에게 케이크가 들이밀어졌다. 막내 매니저와 스타일리스트, 진성현 실장까지 나선 성화에 도준은 영문도 모른 채 케이크에 꽂힌 초의 불부터 껐다.
“축하드려요, 오빠!”
“형, 수고 많으셨어요.”
“그래, 수고 많았다. 도준아.”
몇 테이블 없는 한우 전문점 내부가 도준 일행 때문에 잠시 시끌시끌해졌다.
초를 끄고 케이크 커팅까지 하고 나서야 도준 일행은 자리에 제대로 앉아 고기를 굽기 시작했다.
“제가 고마워서 밥 사려고 했던 자린데······.”
“자리는 안 바뀌었어. 축하는 축하고, 밥이랑 고깃값은 네가 내는 거 맞아.”
진성현 실장의 말에 도준이 피식 웃었다.
도준은 케이크 커팅을 마치고 나서야 케이크에 옆에 있던 카드로 자신이 어떤 축하를 받았는지 알았다.
[(조금만 더 힘내면) 천만배우 강도준, 수고 많으셨습니다. 다음에는 진짜 천만배우 가요!]
스타일리스트인 수진이 쓴 듯한 메시지 카드는 발랄하고 귀여웠다.
도준이 계속해서 이어진 관련 스케줄을 정리하며 세 사람에게 고마움을 표하고 싶었듯, 세 사람도 이 자리에서 제대로 도준을 축하해주고 싶었던 것이다.
는 오늘로 개봉한 지 한 달 반이 넘어가고 있었다.
이제 새로운 영화가 올라오고, 뜨거운 여름을 더욱 뜨겁게 달구었던 는 내려갈 시기가 온 것이다.
보통 3주 차면 떨어지는 관객수가 한 달이 넘어서야 떨어졌으니 과연 굉장한 흥행이었다.
관객수만 보아도 알 수 있었다.
안타깝게 천만까지 가지는 못했지만, 980만이라는 예상보다 더 어마어마한 기록을 냈다.
도준의 팬이나 관계자들 모두 ‘초반 상영관이 더 많았다면, 천만은 갔을지도······.’ 하는 아쉬움을 토로할 정도였다.
그러나 도준은 상영관 문제로 대대적인 홍보를 한 덕에 여기까지 관객 수가 올라갔다고 생각했다.
첫 주연 작품에 980만이라는 관객을 동원한 것도 대단한 일이었지만, 축하할 일은 그뿐이 아니었다.
를 통해 도준이 번 돈도 상당했다.
고정 계약료뿐 아니라 러닝 개런티 계약을 했기 때문이었다.
손익분기점이 210만. 최종은 아니었지만, 오늘까지 집계된 관객수가 980만. 고정 계약료 5억을 넘어 러닝개런티로만 7억 7천 이상을 벌어들인 상황이었다.
“케이크는 일단 됐고. 규홍아, 수진아. 일단 꽃등심으로 7인분 시켜놨다. 많이 먹어라.”
“헐. 꽃등심이요? 저 꽃등심 처음 먹어 봐요.”
“뭐?”
마치 자신이 사는 양 진성현 실장이 집게를 들고 고기를 구우며 규홍과 수진에게 어서 먹으라고 재촉했다.
꽃등심은 처음이라는 규홍에 수진이 조금 놀란 표정을 지었다. 진성현 실장도 안타깝다는 듯 규홍을 바라보다가 반쯤 익은 고기를 규홍의 앞접시에 내주었다.
“그럼 더 많이 먹어라. 무조건 많이. 밥도, 술도 먹지 말고 꽃등심부터······.”
“전 어차피 운전해야 해서 술 못 마셔요.”
“대리 부르면 되잖아. 마시고 싶으면 마셔.”
“어허, 강도준! 네가 번 돈이 얼만데 술로 사람을 꼬셔서 고기 못 먹게 하려고······.”
“아니, 그게 아니라······ 규홍이가 술 마시고 싶을 까봐.”
세 사람이 투닥거리며 대화하는 사이 수진은 열심히 핏기도 가시지 않은 꽃등심을 열심히 입 안에 넣고 있었다.
“완전 녹아요! 말할 시간에 드세요. 실장님.”
***
늦은 아침 눈을 뜬 도준은 부은 눈을 비비며 욕실로 들어섰다.
어젯 밤, 결국 꽃등심 15인분을 헤치운 네 사람은 2차로 횟집에 가 매운탕을 안주 삼아 술을 마셨다.
네 사람의 작은 축하자리치고는 꽤 거액의 돈이 나갔지만, 도준은 자신을 위해 수고해준 이들에게 쓴 돈이 하나도 아깝지 않았다.
‘이제 호철이랑 강산이도 봐야 할 텐데······ 또 오래 못 봤네.’
도준은 칫솔에 치약을 묻히며 생각했다. 마주한 거울 속 얼굴은 눈이 잔뜩 부어있음에도 잘생긴 얼굴이었다.
‘새삼 잘생겼네.’
오랜만에 느껴 보는 여유였다. 이제 와 관련해서 남은 스케줄은 제작진들과 함께 술자리를 갖는 것 정도였다. 스케줄이라기보다는 사적인 만남이었다.
“···어?”
거울을 보며 이를 닦던 도준은 당황하고 말았다.
끝
ⓒ 천태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