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lip to Martial Arts RAW novel - Chapter 13
13화. 주먹은 멀고, 젖은 가깝다
중간중간 들은 부모님의 대화로 볼 때 홍진탁은 두 눈에 이상이 생긴 모양이다. 호박씨가 박힌 두 눈을 치료했지만 꽤 깊이 박힌 호박씨 때문에 눈이 많이 손상되어 반맹인 수준이 되었다고 한다.
‘아깝네. 내공이 조금만 더 있었어도 두 눈깔을 관통시켜서 뇌까지 찔러줬을 텐데.’
내공이 적다는 것이 이렇게 아쉽다. 지금 내 몸에 축적된 내공은 1년 치가 넘는다. 남보다 두 배로 기를 받아들이는 덕에 벌써 1년 반 정도의 내공이 쌓인 상태다. 하지만 고작 2년도 안 되는 내공이 얼마나 힘이 있겠는가.
‘5년 치 정도의 내공만 있었어도 두 눈을 모두 완전히 박살낼 수 있었는데.’
하지만 반맹인 정도로 만든 것도 나쁘지 않은 소득이라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소심하게나마 복수를 한 것에 만족한다.
이상하게도 나는 부모님에게 잘 해드리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부모님에게는 어린아이와 같은 정신상태로 자꾸 복종하게 된다. 옛 시인이 그런 말 했다. 복종하고 싶은데 복종하는 것은 자유보다 달콤하고, 행복하다고. 지금 내 정신세계와 마음이 딱 이렇다. 부모님에게는 한 없이 복종하고 싶은 마음이다. 그리고 그것이 내게는 행복이다.
신생아라 그런가? 분명 삼십대를 겪은 나였지만 이상하게도 부모님 앞에서는 한 없이 아기와 같은 마음이 되었다. 분명 정신연령은 나보다 어린 부모님인데도, 부모님의 말을 잘 듣는 착한 어린이가 된 느낌이었다. 그건 나도 신기했다.
어머니의 말에는 자동적으로 ‘네! 어머니!’하고 경어가 튀어나왔다. 이 모든 것은 두 분의 몸을 유전적으로 물려받으면서 두 분과 정신이 동기화되었기 때문이라는 것 외에는 설명할 길이 없었다.
다시 열심히 이유식을 먹고 젖을 가까이 하면서 젖빨기에 집중한 결과 신체는 무럭무럭 자라나고 있었다.
이제는 꽤 능숙하게 이동이 가능해졌다. 아직 발만 이용해 홀로 걸을 수준은 안 되지만 물건을 잡고 일어선 다음에 물건에 의지하면서 걷는 것은 가능해졌다. 그래서 이제는 포복으로 이동하지 않아도 되는 수준이 되었다.
‘내게 보행기 따위는 필요 없지.’
신생아가 일어설 정도로 다리에 힘이 생기면 보행기를 마련해준다. 보행기는 신생아의 걸음 익히기를 도와주는 보조도구다. 물론 보행기는 신생아 전용이 아니다. 근력이 약한 노약자나 환자들도 보행기에 의존해 걸음을 옮기기 때문이다. 성인용 보행기도 다양한 종류가 있다. 따지고 보면 환자나 장애인용 휠체어도 일종의 보행기에 속하는 물건이다. 바퀴를 굴려서 사방으로 이동을 돕는 물건이니 말이다.
이 시대에도 보행기는 있다. 다만 현대 한국의 보행기와는 형태가 많이 다르다. 전후좌우 사방으로 문제 없이 이동이 가능한 회전형 바퀴를 달고 있는 보행기는 없다. 이곳에 있는 보행기라는 것은 바퀴가 안 달린 보행기다.
막대기를 이용해서 만든 보행기는 신생아가 서서 손으로 잡을 수 있는 형태의 조악한 사각형 보행기다. 단순히 신생아가 서있을 수 있을 정도의 지지대를 제공하는 수준이다. 그러나 신생아들의 힘은 생각보다 강하다. 바퀴가 달리지 않은 보행기를 신생아는 밀고 다니면서 방 안 구석구석을 돌아다닌다.
내가 보통의 아기였다면 내게도 보행기를 만들어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물건을 이용해서 잘 걸어 다니는 것을 보자 두 분은 보행기 제작을 포기한 것 같았다.
“무비에게는 보행기가 필요 없어 보이는데요.”
“그런 것 같소. 무비가 뭐든지 빠르지 않소. 저러다 곧 걸을 것 같소.”
이 시기가 되면 다리 근육만큼 발달한 것이 혀다. 옹알이가 제법 수준급에 오른다. 이제는 발음이 꽤나 원음에 비슷하게 나온다.
“응마, 믐마!(엄마, 밥 주세요.)”
이제 내 발음은 꽤나 정교해진 상태다.
‘이제는 발음연습 좀 해야겠는데.’
입 안에서 혀를 굴려가며 발음연습을 하기 시작한다. 확실히 발음연습을 하자 혀를 굴리는 동작이 한결 부드러워진다.
“아이고, 우리 무비가 서있네. 다리 안 아파?”
방 안으로 들어오던 아버지는 내가 벽을 짚고 서있는 모습을 보면서 활짝 웃었다. 어머니는 곤하게 주무신다.
“아빠?”
순간 나도 모르게 아빠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요새 며칠 발음연습을 한 결과 엄마 아빠라는 말이 혀 안에서 잘 굴러다녔는데, 아버지를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말이 튀어나온 것이다.
“뭐, 뭐라고? 무비야, 지금 뭐라고 한 것이냐? 내게 아빠라고 한 것이냐? 하하하, 이럴 수가? 나를 보고 아빠라고 하다니. 여보 여보! 진매! 진매! 일어나 보시요.”
“우웅… 상공! 왜요? 나 지금 무비에게 젖먹이고 졸려서 자던 중인데요.”
어머니는 아직도 내게 젖을 물린 후에는 기가 빠지는지 종종 잠을 주무시곤 했다. 보통 산모가 젖을 물린 후에 잠을 자면 깨우지 않는다. 산모도 푹 쉬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흥분한 아버지는 주무시고 있던 어머니를 흔들어 깨웠다.
“무, 무비가 말을 했소. 나보고 아빠라고 불렀던 말이요.”
“어머? 무비가요? 그게 정말인가요?”
두 눈이 동그랗게 커지는 어머니. 부모에게 아이의 첫 언어구사는 대단한 사건이며 역사적 사건이기 때문이다.
“틀림 없소. 내가 이 두 귀로 똑똑히 들었소. 무비가 아빠라고 말했단 말이요.”
“그래요? 벌써 말을 하다니. 무비가 말도 빠르네요. 그런데 정말 아빠라고 한 것 맞아요? 엄마라고 한 것이 아니고요?”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내가 한 말이 무엇인지 확인하기 시작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등으로 소름이 확 올라왔다. 내가 뭔가 잘못 했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깨달았기 때문이다.
“다른 아이들은 엄마라는 말부터 먼저 한다던데. 이상하네. 무비는 아빠라는 말부터 먼저 하다니.”
어머니는 내가 ‘아빠’라고 말한 것에 대해서 조금은 섭섭해 하는 눈치다.
나는 속으로 머리를 쥐어박고 싶었다.
‘이런! 어머니가 섭섭해 할 만도 하지. 맹수들도 밥주는 사육사에게는 부모처럼 대하는 법인데, 삼시세끼 밥을 주는 분에게 실망을 안겨주다니.’
어머니의 실망이 이해가 된다. 내게 섭섭한 마음이 들 것이다.
나는 내가 왜 아빠를 먼저 말했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발음연습이 문제다.
보통 신생아가 ‘엄마’라는 말을 할 때까지 아기는 ‘엄마’라는 낱말을 2만 번 이상은 듣는다고 한다. 다른 말로 하면 2만 번 정도는 들려주어야 신생아가 엄마라는 말을 한다는 뜻이다. 입 밖으로 단 두 음절을 내뱉는 것이 이렇게 힘들다.
사실 어머니라고 하는 분들은 아기가 태어나기 전부터 엄마라는 말을 들려준다. 뱃 속에 있을 때부터 엄마라는 단어를 들려준다.
「아가야! 엄마가 노래 불러줄게.」
「아가야! 오늘은 날씨가 좋단다.」
아기를 뱃 속에 품고 있는 동안에도 엄마들은 아기와 대화를 쉬지 않는다. 열 달 동안 수천 번 수 만 번을 들려준 낱말이 ‘엄마’다. 아기가 태어난 후에도 가장 많이 들려주는 낱말이 ‘엄마’다.
이런 이유로 옹알이 시기를 지난 신생아는 대부분 ‘엄마’를 먼저 발음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멍청하게도 나는 아빠를 먼저 내뱉았다. 이건 내가 실수한 것이 맞다.
“하하, 분명 아빠라고 말했소. 내가 두 귀로 똑똑히 들었단 말이요.”
“정말요?”
“하하, 믿기 어려운가 보군요. 무비야. 다시 말해 봐라. 아빠 하고 말해 봐. 아빠!”
아버지는 기대감이 가득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며 ‘아빠’를 다시 말하라고 부탁한다. 옆에서 어머니도 내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면서 내가 말을 하기는 기대하는 눈치다.
나는 갈등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이것이… 신생아의 정신을 주화입마에 빠트린다는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퀘스트인가? 어떻게 하지?’
‘아빠’라고 다시 말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나는 후폭풍을 고려해야 했다.
‘아빠라고 말하면 아버지는 나를 정말 예뻐할 거야. 내게 모든 것을 쏟아 부으면서 나를 키우려 하겠지. 어쩌면 아빠를 먼저 말했다는 이유로 미래의 훈육용 회초리를 피하는 부수적인 성과를 거둘 수도 있고. 무시무시한 아버지들의 폭력에서 벗어날 확률이 증가하지.’
하지만 어머니의 섭섭한 마음을 생각하니 아빠라고 다시 말하는 것이 꺼려졌다.
나는 나를 바라보는 어머니의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묘한 눈동자였다. 아빠라고 다시 말하기를 기대하는 눈빛 속에, 묘한 섭섭함이 포함된 듯한 눈동자.
벽을 짚고 서서 고개를 돌리며 어머니를 바라보던 내 시선이 좀 더 아래로 향했다.
어머니의 젖가슴! 밥에 진심인 내게 삼시세끼 따뜻한 식사를 제공하는 축복의 샘.
24시간 언제 어디서나 나오는 편리한 이동성과 휴대성의 상징인 젖.
이유식은 단점이 많다. 신생아가 달라고 할 때 바로 제공이 불가능하다. 이유식을 만드는 시간이 꽤 걸리는 것이다. 당장 줄 수 있는 것은 차갑게 식은 이유식뿐이다. 이 시기에는 이유식을 데우는 것도 꽤 어려운 일에 속한다. 외부에 나간 상태라면 따뜻한 이유식을 주기가 불가능에 가깝다.
반면 모유는 24시간 따뜻하게 데워진 식사를 제공한다. 어디서나 가능하고, 1초면 제공이 가능하다.
어머니의 가슴을 바라본 나는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 알 수 있었다.
‘주먹은 멀고, 젖은 가깝다.’
아버지의 훈육용 회초리는 먼 훗날의 일이다. 당장 내게 필요한 것은 삼시세끼를 해결해야 하는 젖이다. 그러니 ‘아빠가 좋아, 엄마가 좋아’의 정답은… 어머니다.
“엄마!”
“꺄악! 무, 무비가 지금 뭐라고 한 거야. 무비야 뭐라고 했어? 다시 한 번 엄마라고 말해 봐.”
내가 아빠 대신 엄마라고 말하자 어머니의 눈이 휘둥그레 커지며 비명을 지른다.
눈이 초승달처럼 휘어지는 것이 좋아 죽으려 한다.
저렇게 좋으실까?
고작 립서비스 한 마디에 어머니는 지금까지 내게 보였던 어떤 표정보다 기쁜 표정을 보이신다.
한 번 더? 원 모어 타임? 그게 뭐 힘든 거라고.
“엄마! 엄마 마마마! 엄마!”
내 입에서 엄마 3연발이 나오자 어머니의 눈 모양이 더욱 가느다란 초승달이 되었다.
“꺄악! 우리 무비가 엄마라고 했어요. 우리 무비가 처음 한 말이 엄마라고요.”
“하하, 이거 참! 분명 아까는 아빠라고 했는데.”
“상공이 잘못 들은 거 아니에요? 엄마라고 말한 건데, 아빠로 잘못 들을 수 있는 거죠.”
“그런가? 아닌데. 분명 내 두 귀에 아빠라고 들렸는데.”
“하지만 지금 들으셨잖아요. 분명하게 엄마라고 말하는 것.”
“아까는 아빠라고 했는데.”
이러다 두 분 사이에 금이 가겠다.
“엄빠!”
나는 두 분이 다 마음에 들도록 엄마와 아빠의 절충안을 발음했다.
“응? 지금 무비가 뭐라 말한 거지?”
“엄빠라고 말한 거 같은데요. 무비가 빠라는 말도 하는 것 같은데요? 혹시 상공이 엄빠를 아빠로 들으신 거 아녜요?”
엄빠면 엄마도 아니고 아빠도 아니지. 아니, 그 둘이 모두 되기도 하는 절묘한 낱말이지.
“그런가?”
“엄마! 엄빠! 맘마!”
“아유, 그래 우리 무비 맘마 줘요? 엄마가 줘야지. 우리 똑똑한 무비가 무럭무럭 자라도록 젖을 줘야지. 자 맘마 먹자. 많이 먹으렴.”
어머니는 초승달 눈웃음을 한 환한 표정으로 내게 젖을 물렸다.
– 쑤욱─
역시 어머니의 젖은 따뜻하고 부드럽고 풍만하고 평화로웠다.
‘신생아는 엄마를 선택해야 하는 거야. 주먹보다는 젖이 더 가깝거든.’
3회 차 인생 최초의 말은 비공식적으로는 ‘아빠’였으나 공식석상에서는 ‘엄마’로 수정되었다.
그것이 삼시세끼를 제대로 얻어먹기 위해 내가 선택한 해결책이다.
엄마를 발음한 이후 다음날부터는 아빠도 발음하면서 아버지의 기분을 풀어드렸다. 그리고 발음연습을 한 덕에 내 언어실력은 빠르게 향상되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