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lip to Martial Arts RAW novel - Chapter 35
35화. 위기탈출(3)
놈들의 은신술은 참으로 대단했다. 수라검신의 경험이 없었다면 결코 놈들을 발견할 수 없었을 것이다. 주변 상황을 점검하는 도중에 땅의 일부가 물결친다는 느낌을 받았다. 보통 사람이라면 무심코 넘겼을 아주 작은 변화였다.
‘그림자가 움직여?’
움직이는 것은 땅이 아니었다. 땅 위에 늘어진 그림자가 움직인 것이었다.
저녁을 먹고 나왔을 때가 해질녘이다. 해가 서산으로 뉘엿뉘엿 넘어가려고 할 때였다. 당연히 지붕의 그림자가 길게 꼬리를 만들며 땅바닥을 색칠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데 지붕선이 파도를 타는 것처럼 꿀렁 움직였다. 아주 작은 움직임이었고, 잠깐이지만 땅이 출렁이는 것 같은 느낌을 준 것이다.
지붕선에 모습을 감추며 사람이 움직이고 있다는 뜻이다.
‘놀라운 놈들이야. 지붕을 타고 움직이는데도 인기척도 없고 소리도 없이 움직이고 있어.’
낙빈루에서 지원자를 살해하던 놈도 기와에 먼지가 지워진 흔적만 남겼을 뿐 기와 밟는 소리를 내지 않았다. 개천혈교의 자객들은 상당한 수준의 실력자들인 것이다.
하긴 적진 한 복판이라 할 수 있는 백정맹이 있는 낙양에서 백정맹 지원자를 죽이려는 놈들이니 실력자들을 보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 소리 없이 지붕을 타고 움직이는 놈들이라면 개천혈교의 자객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그것도 내 기감에도 걸리지 않는 상당한 수준의 실력자들이다.
지붕선을 따라 움직이던 그림자가 멈추더니 갑자기 지붕선에서 분리된다. 분리된 그림자에서 날카로운 선들이 튀어나온다. 칼이다!
분리된 그림자가 땅 위의 그림자를 향한다. 그 그림자는 당비취의 그림자였다.
‘그림자가 두 개? 위험해!’
말을 할 시간도 없다. 당비취가 내 말을 듣고 움직이는 것보다는 놈들의 검이 훨씬 빠르다. 일류살수 두 놈이 섬전처럼 빠른 속도로 노리는 기습이다. 놈들에게 등을 보이고 있는 당비취가 피할 수 있는 공격이 아니다.
– 쉬익─
나 역시 전력을 다해 몸을 움직인다.
– 턱─ 채앵─ 서걱─ 파앗─
– 콰당─
“아야, 뭐야? 무비야…?”
어깨와 몸통으로 당비취를 밀쳤다. 내 움직임을 보면서 어깨를 으쓱거리면서 신난 표정을 짓고 있던 당비취의 눈이 갑자기 커졌다. 당비취는 공력을 실어 움직인 내 몸을 막지 못 하고 그대로 내 몸에 튕겨나가며 바닥에 굴렀다. 그리고 그 순간 붉은 피가 튀었다.
한 놈의 검은 막았지만 다른 놈의 검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혼자였다면 한 놈을 쳐내고 한 놈은 피할 수 있었다. 그러나 당비취를 밀어내야 했기에 피할 수가 없었다.
“비취야, 적이야! 정신 바짝 차려.”
다행히 급소는 피했다. 수라지옥보 덕분이다. 보법인 수라지옥보를 펼치면서 놈의 공격을 흘려내지 않았다면 팔 하나가 잘렸을 것이다. 어깨를 베인 정도로 그친 것은 천만다행이다.
땅바닥에 뒹굴면서 놀란 표정을 짓던 당비취는 바로 검을 고쳐 잡으면서 응전태세를 갖추었다.
“놈들이 더 있었네.”
“지금 막 도착한 놈들이야. 아마 동료와 합류하려다가 우리의 전투를 보고 기습을 노렸던 것 같아.”
먼저 도착한 놈들이라면 아까 두 놈과 함께 협공을 했을 것이다. 그것이 더 확실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두 놈이 죽은 뒤에 놈들이 기습한 이유는 뒤늦게 합류했기 때문이다. 그림자 움직임으로 볼 때 지붕을 통해 움직이다가 우리의 전투를 본 모양이다.
다시 만들어진 2대2의 구도.
“무비야, 연막탄 써?”
“아냐, 이놈들에게는 안 통해. 우리가 사용한 방법을 봤을 거야.”
지붕을 통해 이동했으니 연막탄이 골목길에 터지고 앞의 두 놈을 해치우는 과정을 적나라하게 보면서 접근했을 것이다. 살수에게 같은 수법이 두 번 통할 리가 없다.
더구나 두 놈은 노련한 놈들이다. 놈들은 인기척을 감추면서 접근한 다음에 예고도 없이 당비취부터 제거하려고 했다. 각자 한 명씩 우리를 공격한 것이 아니라 당비취를 둘이 협공으로 공격했다. 확실하게 한 명을 제거한 다음에 나를 상대하겠다는 뜻이다.
놈들의 의도는 훌륭했다. 나라도 그렇게 했을 것이다. 놈들은 냉철한 놈이고 노련한 놈들이다. 이런 놈들을 상대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난감하군. 이놈들하고 이대로 싸우면 적지 않은 부상을 입을 것 같은데.’
또 다시 찾아온 위기. 여전히 놈들을 죽일 자신감은 있지만 놈들에게 당할 부상이 걱정이다. 이미 어깨에 작은 부상을 입었다.
조금이라도 유리하게 싸우려면 가진 자원을 모두 활용해야 한다.
기습에 실패한 두 놈은 신중한 태도로 우리의 빈틈을 노리고 있다. 우리 역시 긴장한 표정으로 놈들의 움직임을 살피고 있다.
[비취야 공격용 독이 뭐가 있어? 이 골목에서 사용 가능한 것.] [독분하고 독탄.]다수의 전투와 난전 중에는 꽤나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무기지만 일류 살수 두 놈에게는 별 효과를 보기 어려운 무기다. 놈들이라면 쳐내거나 호흡을 멈추거나 호신강기로 방어할 수 있다.
[방어용 독은?] [독연!]역시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호신강기로 충분히 뚫을 수 있는 놈들이다.
[암기 종류는 뭐가 있어?] [폭우이화침하고, 천뢰구, 당가최심정.] [천뢰구? 천뢰구가 있어? 그 귀한 게 있어?] [하나 있어.] [좋아 잘 들어. 일단 한 놈을 제거해야 해. 안 그러면 우리 둘 다 크게 위험해.]놈들을 경계하면서 당비취에게 천뢰구 사용법을 설명하자 당비취가 크게 놀란다. 그녀의 두 눈이 커지는 것이 어지간히 놀란 모양이다. 하지만 내가 강력하게 요청하자 어쩔 수 없이 응하는 당비취.
내가 먼저 한 놈을 향해 몸을 날리고 당비취가 뒤따라 다른 놈을 향해 몸을 날린다.
– 휘릭─ 휘릭─
– 쉭─ 촤라락─ 쉭─
내 묵룡신검이 우측 놈을 공격할 때 당비취가 던지는 물건 하나. 당문 최고 암기 중 하나인 천뢰구다. 그런데 당비취가 던진 천뢰구는 당비취의 상대를 향해 던진 것이 아니다. 내 뒤통수를 겨냥하고 던졌다.
그 순간 내 검은 우측 자객의 검을 내리치고 있었다.
– 챙─
놈은 비웃음을 날리며 내 검을 막아냈다. 그 순간 수라지옥보를 펼치던 내 몸이 살짝 옆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내 머리통이 있었던 자리에서 터지는 천뢰구.
– 펑─ 쉬쉬쉭쉭─
천뢰구가 폭발하면서 수십 개의 파공강침이 발산한다.
– 파파파팍─
“끄아아악!”
내 검을 여유 있게 방어하던 놈이 고슴도치가 되어 비명을 터트린다. 놈은 얼굴 전체에 파공강침을 맞고 쓰러졌다. 두 눈에도 박혔으니 실명을 한 상태. 이것으로 한 놈의 전투력은 사라졌다.
– 채앵─ 촤라락─
같은 시각 왼쪽 자객은 당비취의 사복검을 막아내며 뒤로 조금 물러선다. 물러서는 왼쪽 자객의 눈에 놀람이 가득하다.
“저, 저? 이호가 당하다니?”
“성공이야! 무비 네 전략이 이번에도 먹혔어.”
좌측 자객을 공격한 뒤에 얼른 후퇴한 당비취는 쓰러진 우측 자객을 보면서 환호성을 터트린다.
당비취가 가지고 있는 폭우이화침하고, 천뢰구, 당가최심정은 훌륭한 암기지만 당비취의 실력으로 펼친다면 놈들은 어렵지 않게 쳐내거나 피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놈과 당비취의 일대일 대결이었다면 당비취의 어떤 암기도 놈들은 쳐내거나 피했을 것이다.
그래서 내가 선택한 전략은 놈들이 피할 수 없도록 하는 협공. 내 목숨을 담보로 도박을 건 것이다.
당비취는 놈들에게 천뢰구를 던지지 않았다. 놈들에게 천뢰구를 던졌다면 놈들은 분명 천뢰구를 피했을 것이다. 그래서 내 뒤통수에 겨냥하고 던지라고 했다. 내 뒤통수에서 터지는 천뢰구라면 누구도 피할 수 없다.
당비취는 어이 없는 눈빛으로 위험하다고 말했고, 나는 시간을 잘 맞추면 가능하다고 설득했다. 내가 네 발을 뗀 시점에 던지라고 했다. 당비취는 정확한 시간에 정확한 위치로 천뢰구를 발사했다. 못 피하면 내가 죽고, 피하면 적이 죽는 도박수다.
결과는 대성공. 이렇게 해서 한 놈을 제거했다.
그러나 방심할 때는 아니다. 아직 한 놈이 남았다.
“두 번째 전략!”
“알았어.”
– 쉭쉭쉭─
당비취의 손에서 암기가 발사되었다. 폭우이화침이다.
– 틱틱틱팅팅팅─
남은 자객이 당비취의 폭우이화침을 쳐낸다. 동시에 내 검이 놈의 허리를 노리고 움직인다.
“크흑!”
폭우이화침을 쳐내야 하는 놈은 내 검까지 동시에 방어할 능력이 없었다. 놈의 허리가 깊게 베인다. 2대1의 장점이 이거다. 한 명을 막는 동안 다른 한 명의 공격을 막기 어렵다.
“다시 한 번!”
– 쉭쉭쉭쉭─
당비취의 손에서 다시 한 번 암기가 발사된다. 이번에는 당가최심정이다. 당비취의 손에 끼워진 네 개의 못 모양 암기가 발사되자 은빛을 반짝이며 날아간다. 동시에 내 검이 다시 한 번 놈을 노린다. 동시에 다른 방향에서 이루어지는 협공. 내 검을 막으면 당비취의 당가최심정에 당할 것이고, 당가최심정을 쳐내거나 피하면 내 검에 당한다.
– 팅팅팅팅─
놈은 당가최심정을 쳐내면서 몸을 날려 내 검을 피하려 했다. 그러나 놈들의 회피법을 아는 내게 통할 수법이 아니다.
– 서걱─
“크어억!”
놈의 가슴이 깊게 베였다. 이것으로 놈도 끝났다. 이어지는 우리 둘의 협공에 놈은 최후를 맞이했다. 천뢰구에 당해 쓰러진 놈 역시 확실하게 목숨줄을 끊어주었다.
“헉헉, 대단해.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는 거야? 자기 뒤통수로 암기를 발사하게 하다니.”
“너의 실력을 믿으니까. 정확한 시간에 암기를 발사한다면 피할 수 있으니까.”
내가 주먹을 들면서 꽉 쥐는 모습을 보여주자 당비취가 씨익 웃는다.
“고마워. 내 실력을 믿어줘서. 어쨌든 덕분에 어려운 적을 해치웠네.”
나 혼자였다면 놈들에게 당했을 것이다. 그러나 당비취의 능력 덕에 쉽지 않은 적들을 차례대로 해치울 수 있었다.
내가 놈들의 시체를 확보하는 사이에 당비취는 백정맹으로 달려가서 자객에 대한 사건을 알렸고, 백정맹 감찰대에서 인원들이 나와서 자객들을 조사했다.
“이들을 지금 단 둘이서 해치웠단 말인가?”
백정맹 감찰대주 악문추가 현장에 도착해서 놈들을 확인하더니 믿기 어렵다는 표정으로 우리 둘을 쳐다본다.
“이들은 일류급 중에서도 거의 끝자락에 달하는 실력을 지닌 놈들로 보이는데. 이놈들이라면 나도 네 명을 감당하는 일이 쉽지 않은데, 어찌 갓 스물에 불과한 두 사람이 이들 여섯을 해치웠단 말인가? 일대일로도 어려운 상대거늘?”
악문추는 우리 둘이 6명을 해치웠다는 사실을 쉽게 믿으려 하지 않았다.
“무비의 전략 덕분이었어요.”
당비취는 내가 꾸민 전략을 악문추에게 설명했다. 당비취의 설명을 들은 악문추는 6명의 시체를 하나씩 꼼꼼하게 확인하면서 당비취의 말을 점검해 나갔다.
‘역시 꼼꼼하다니까.’
여섯 구의 시체를 모두 확인한 악문추는 고개를 끄덕이며 비로소 우리 둘의 말을 인정했다.
“확실히 당 소저 말대로군. 두 놈은 산공독 때문에 제대로 반항도 못 하고 어이 없이 당했고, 한 놈은 검이 부러졌을 뿐만 아니라 손바닥이 파열되었군. 현 소협이 내리치는 힘 때문에 손바닥이 찢어졌어. 한 놈은 당 소저의 사복검에 당했고. 그리고 천뢰구에 당한 놈은 근거리에서 터지는 바람에 피하지 못 하고 고스란히 강침이 다 박혔군. 놈들의 실력이라면 아예 천뢰구 자체를 피할 수 있는 실력일 텐데 말이야. 두 사람이 참으로 대단하군. 이들을 모두 해치우다니.”
악문추는 시체를 꼼꼼하게 확인한 후에 당비취의 말이 모두 사실임을 확인했다. 주변의 전투 흔적까지 확인하고 상황을 복기한 악문추는 고개를 끄덕이며 우리 둘을 칭찬했다.
당비취는 악문추의 칭찬에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렇게 우리 둘이 악문추의 칭찬을 받는 것으로 이번 자객 사건이 마무리되는 줄 알았다.
그러나 그 생각은 내가 악문추를 너무 만만히 본 안일한 생각이었음이 바로 드러났다. 악문추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내 정체를 파고들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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