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 Sale. Fallen Lady. Never Used RAW novel - Chapter (555)
EP.555 에필로그
자유로운 숨결은 열흘의 방종으로 신화에 남을 업적을 새겼다.
그. 아니, 그녀인가? 아무튼 자유로운 숨결이 남자와 여자를 오가는 것은 물론, 가끔 후타나리의 모습을 취하며 신도들과 자주 몸을 섞는 것은 본인의 성향도 있겠지만…일부는 과거의 일화가 아직도 전해져 내려오기 때문이리라.
신은 신도에게 삶의 방식을 제안하며, 신도는 신앙으로 하여금 신에게 정체성을 제안하는 법.
서로가 서로의 영향을 받아 가며 성장하는 것이 신과 신도의 관계다.
즉, 너무나도 유명해져 버린 열흘간의 국가적 난교 파티로 자유로운 숨결의 신성에 호색한이라는 설정을 새겼다고 보면 된다.
그렇다면 신격에 이르지 못한 인간은 어떠한가. 나와 내 여자들이 무려 보름…15일간의 폐관을 깨고 세상 밖으로 나왔을 때의 반응을 상상해 보았다.
“역시 감탄하겠지?”
“글쎄요. 미친놈 쳐다보듯 보지 않을까 싶네요 당신.”
엘리샤가 나를 미친놈 쳐다보듯 바라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리고는 방금 막 첫 경험을 마친 처녀(아님)처럼 어기적거리는 움직임으로 아직도 꿀잠 중인 이리스 옆에 널브러졌다.
지난 보름간 제대로 쉬지도 못한 강행군이 버거운 모양.
“하아. 순환하는 생명께서는 대체 얼마나 대단한 축복을 내려주신 거길래….”
연신 투덜대면서도 이리스의 평평한 가슴팍에 얼굴을 묻고, 꾸벅꾸벅 조는 엘리샤. 실로 평화로운 광경이었다.
지난 보름간 좋긴 좋았지만 솔직히 몸도 마음도 지친 건 사실이었기에 멍하니 그 광경을 바라보며 힐링 받는 것도 잠시.
이제 막 잠든 두 사제 대신, 반대로 막 깨어난 카를라와 타를라가 내 양옆에 팔짱을 끼며 달라붙었다.
“주인님. 많이 피곤하시면 같이 주무세요. 뒷정리는 저희가 할게요.”
“맞아요. 이럴 때 안주인이자 전 집주인이 나서야 하는 거죠.”
밝게 빛나는가, 탁하게 흐려져 있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 똑같은 루비색 눈동자를 가진 둘을 향해 피식 웃어주었다.
“아니. 좀 더 이러고 있으려고.”
딱 좋은 탈력감과 만족감이 나른하게 전신을 감싼다.
정말 오랜만에 느껴보는 현자 타임. 익숙하지만 낯선, 동시에 평온한 기분에 몸을 맡겼다.
그러자 슬금슬금 다가와 머리를 들이미는 카를라. 반사적으로 그 백금색 정수리를 쓰다듬고 있자니, 주춤거리며 타를라도 머리를 들이민다.
“타를라?”
“…….”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돌린 타를라였으나, 그 안에 담긴 의미는 너무나 명확해 몰라보기 힘들 정도였다.
반대쪽 손을 조심스레 타를라의 머리에 올려놓았다.
움찔.
귀를 잡힌 고양이처럼 흠칫한 타를라. 하지만 머리카락을 살살 쓸어주자 그 경계심 또한 사르륵 녹아내린다.
“…아버님 이후로 처음이네요.”
“그래?”
“네. 또 다른 제가 말해주지 않던가요?”
“카를라는 의외로 자기 이야기를 잘 입에 담지 않았거든. 뭐, 나도 숨기고 있던 게 많았고 말이야.”
그렇게 우리는 서로에 대해 깊이 알아가는 걸 주저한 채, 너무 가까워지고 말았다.
덕분에 결혼까지 한 지금도 카를라의 어린 시절 같은 건 잘 모르거든.
내 말에 일리가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타를라.
“하긴. 저라도 그랬겠죠. 분명 저는 당신에게 변치 않는 애정 말고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았을 거예요. 그렇기에 무어라 묻지도, 먼저 말을 꺼내지도 않았겠죠.”
“…이젠 아냐. 그때와 달리 주인님에게 미움받을 거라는 걱정은 떨쳐냈으니까. 주인님은 언제나 날 사랑해 줄 거야. 그렇죠 주인님?”
“결혼까지 했는데 당연하지. …그리고 이건 너도 마찬가지야 타를라.”
“네…?”
자신의 이름이 나올 줄은 몰랐는지 뻣뻣하게 굳은 타를라. 그녀의 머리를 지그시 눌러, 내 어깨에 기대게 만들며 말을 이었다.
“그럴 생각이 아니었으면 이 고생해 가며 되살리지도 않았을 거야. 뭣보다 나는 이제 완전한 드래곤이 되어버렸잖아?”
“음. 완벽한 설명이네요. 마음에 들었어요.”
더는 말하지 않아도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는 타를라. 드래곤의 집착과 애정은 그만큼 유명한 것이다.
그렇게 양옆으로 를라를라 샌드위치를 끌어안은 채 멍하니 주변을 둘러보았다.
어느새 서로를 끌어안은 채 새근새근 잠든 엘리샤와 이리스.
조금 떨어진 곳에서는 ‘흥! 파랑 삐졌어!’ 를 시전하는 솟구치는 파랑과 진땀을 흘리며 자신의 폭주를 사과하는 헬레나가.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연구의 실마리를 얻은 건지, 이오나의 모유를 빨고 무언가 메모하기를 반복하는 페이까지.
평소에도 자주 보던 모습이지만, 이상하게 오늘따라 그 느낌이 사뭇 다르게 다가온다.
“…그런가.”
지금까지의 일상과 지금의 차이는 단 하나. 결혼식뿐이다.
정식으로 부부가 됐다는 것 하나로 마음이 이렇게나 들뜨는 것이다.
하지만 내 감상을 무어라 곡해한 걸까. 얌전히 손길을 즐기던 카를라가 돌연 짓궂은 미소로 입을 열었다.
“왜 그러시나요 주인님? 새삼 몰락영애를 잔뜩 수집하셨다는 게 실감 나서 막 가슴 벅차고 그러시나요?”
“몇 번이고 말했던 건데 나한테는 그런 이상한 취향 없다니까?”
“말은 그렇게 하지만 이렇게 증거가 뚜렷하잖아요.”
“…….”
맞는 말이긴 해. 지금 생각해 보면 다들 한때 몰락했던 사람들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어떤 일을 겪었건, 얼마나 길을 헤맸건 마지막에는 이렇게 웃을 수 있지 않는가.
별거 아닌 일로 떠들고, 장난치고, 서로를 끌어안은 채, 새로운 내일을 향해 나아갈 수 있게 된 것이다.
문득 지구에서 들었던 유명한 말이 떠올랐다.
타인은 지옥이라고 했던가.
하지만 사람이 사람으로 인해 무너질 수 있다면, 반대도 성립해야 하는 것이 이치에 맞겠지.
타인은 누군가의 구원이 될 수 있다.
카를라와 타를라뿐만이 아니다. 엘리샤, 이리스, 페이, 이오나, 헬레나, 솔라리, 파랑…그리고 나까지.
모난 퍼즐 조각이 서로의 빈틈을 채워주며 하나의 그림이 되듯.
우리의 삶은 서로의 삶이 엮이는 것으로 완성되었다.
그리고 이는 앞으로 더욱 장대하고 아름다운 작품이 될 것이다. 곧 아이가 태어나고, 그렇게 태어난 아이는 우리의 인생에 색채를 더할 테니까.
우리 또한 부모로서 아이의 인생 속 커다란 퍼즐 조각이 될 것이다.
안심할 수 있는 울타리가 되어줄 것이며, 많은 것을 가르치는 선생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친근하게 때로는 엄하게 아이가 장성하는 모습을 지켜볼 것이다.
언젠가 지금의 우리처럼, 또 다른 조각을 만나 새로운 그림을 그리는 날까지.
“아.”
그제야 내가 아까부터 느낀 기분 좋은 위화감의 본질을 깨달았다.
과거를 돌아보면 힘들어도 좋았다. 현재는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러우며, 불확실한 미래마저 낙관적인 기대로 빛났다.
나 혼자라면 몰라도 다 같이 힘을 합친다면 어떠한 고난이라도 극복할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이 전신을 가득 채운다.
“그런가.”
나는 지금의 나를 정의했다.
“나는 행복하구나.”
그 한마디를 내뱉는 순간. 시스템을 잃은 이후로 본능에 휘둘리던 심장이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정신은 육체라는 한계를 벗어나 한없이 넓은 곳으로 뻗어나갔으며, 막연하던 세상의 규칙은 한층 선명하게 다가온다.
지금까지의 깨달음과는 질적으로 다른 무언가. 문득 고고한 군림과의 결전에서 잠깐 닿았던 대마법이 떠올랐다.
해피 엔딩.
지금이라면 내 영혼을 불태워 발돋움하지 않아도 그 이치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굳이 시험해 보지는 않았다. 마음이 일며 자연스레 들끓던 마력을 가라앉히고, 어느새 전신을 휘감은 서광을 꺼뜨렸다.
대신 경악한 표정으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내 여자들. 나의 행복을 향해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자, 잠시만요 주인님! 지금 그건 설마…?”
“…놀랍네요. 방금 그건 분명 아버님에게서 종종 느껴지던 세상의 요동이었어요 얀델.”
“당신? 제가 잠깐 잠든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요?!”
“흐아암…주인이 또 야한 일 하다가 깨달음을 얻은 게냐…?”
“후배님. 내가 잘 몰라서 그러는데 현자 타임의 현자가 그 현자야?”
“뭐야 뭐야! 아니, 내가 직접 알아볼게! 피 좀 빨게 해줘 얀델 학생!”
“주여. 혹시 형제님께서 자유로운 숨결 님의 신화를 뛰어넘은 덕에….”
“그건 아냐. 지금은 고대도 아니고, 남편에게서는 신력도 안 느껴지잖아? 그냥 난데없는 깨달음이야!”
“흐, 흥! 역시 얀델이다에요! 이 정도는 해야 저 솟구치는 파랑을 가질 자격이 있다에요…!”
각자 한마디씩 했을 뿐인데 소란스러워지는 실내. 순식간에 내 주변을 둘러싼 모습에 한차례 키득이고서야 입을 열었다.
“하고 싶은 말이 정말 많긴 한데…그 전에 잠깐 내 이야기를 들어줄래?”
“…….”
“…….”
“…….”
그 말에 서로를 바라보며 의아한 표정을 짓는 여인들. 다들 같이 생각이었는지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내게 시선을 집중한다.
의도적으로 묻어두고 있던 이야기.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가장 근본적인 비밀.
하지만 지금이라면 말할 수 있다.
“나는 사실 외계인이야.”
“…….”
“…….”
“…….”
아까와 똑같은 침묵이지만, 싸늘함마저 느껴질 정도의 온도 차. 이 와중에 농담이 나오냐는 질책이 담긴 시선이다.
“이걸 안 믿네….”
뭐, 괜찮겠지. 우리에게 시간은 많으니까. 지금은 이런 반응마저도 사랑스러울 뿐이다.
지금껏 다들 내게 콩깍지가 씐 것이라 생각했지만, 나 또한 만만찮게 모두에게 콩깍지 씌였나 보다.
팝니다. 몰락영애. 한 번도 안 쓴.
그 매혹적인 문구에 홀려 바로 사겠노라 다짐한 그날부터 말이다.
完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