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 the Musical Genius RAW novel - Chapter (165)
> 음악천재를 위하여 – 165화 >
“금전적 가치를 묻는 것입니까?”
그라모폰에는 세 명의 악마가 있다.
“바이올리니스트 현의 첫 앨범은 두말할 것 없이 명반이었습니다.”
그라모폰지의 대표이자 주필主筆을 겸하고 있는 단테가 엷은 미소를 지었다.
바이올리니스트 현의 첫 번째 앨범은 클래식 비평가들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하물며 전 곡이 독주곡과 협주곡 그리고 교향곡으로 나누어진 자작곡이지 않았던가.
반세기 동안 그러한 형태의 앨범은 본 적도 들은 적도 없었다. 마치 정적이었던 클래식의 바다에 센세이션을 일으킨 것만 같았으니.
“클래식 평론가로서 바이올리니스트 현의 자작곡은 무수한 가치를 내재하고 있다 말할 수 있습니다. 비단 클래식 분야뿐만이 아니라 영화와 나아가서는 상업적인 부분에서도 지대한 영향력이 있지요. 아시잖습니까, 할리우드의 유명 영화감독들이 현에게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에요.”
강현에게 홀린 인물은 비단 할리우드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하물며 저희 그라모폰에도 현의 열렬한 팬은 많습니다. 특히 클래식에 관해서는 날카로운 비평과 평론을 아끼지 않는 수석 편집장 애덤 위쇼와 샤론이 대표적이지요. 평소 아시아 지역을 전담하지 않던 그들이 앞다투어 한국으로 날아간 것만 봐도 알 수 있잖습니까?”
단테는 그들의 마음이 십분 이해되었다. 강현의 독주회에서 또 다른 자작곡들이 연주된다고 발표되지 않았던가. 자신 또한 그라모폰의 대표가 아니었더라면 모든 일을 내팽개치고서라도 한국으로 날아갔으리라.
“이천 석이 넘는 규모의 콘서트홀이 단 십 분 만에 매진되었다고 들었습니다. 오케스트라 공연도 아닌 바이올리니스트의 독주회일 뿐인데 말이에요. 그 정도 파급력을 지니려면 유럽에서도 이름난 거장이 아니면 불가합니다. 더군다나 클래식의 불모지라 불리는 아시아에서는 더욱 엄청난 센세이션 아니겠어요?”
단테가 볼을 실룩였다. 입꼬리의 끝이 살짝 올라간 것이 그가 얼마나 기분이 좋은지 말해주고 있었다.
“분명 이번 현의 독주회는 클래식계뿐만 아니라 여러 방면에서 바람을 몰고 올 거예요. 유럽의 명가인 EMA뿐만 아니라 도이치까지 직접 나섰으며 수많은 관계자들이 한국을 찾았습니다. 그만큼 발표되지 않은 현의 자작곡이 매혹적인 것이겠죠.”
하물며 진녹색의 눈동자는 마치 미소 짓는 것처럼 이채를 띄고 있지 않은가.
“다시 첫 번째 질문으로 돌아가죠.”
“네?”
“현의 자작곡에 대한 금전적인 가치를 물으셨죠. 제 대답은 간단합니다.”
그라모폰의 첫 번째 악마가 망설임 없이 되물었다.
“반 고흐가 되살아나 다시 그림을 그린다면 어떻게 평가받을 수 있을까요?”
* * *
‘인사를 대신해서 첫 번째 곡을?’
유럽의 거장들을 비롯한 클래식의 유명인사들은 자세를 앞당겼다. 설마하니 인사를 대신해서 곧장 연주를 시작할 줄은 몰랐기 때문.
그만큼 곡에 대단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이리라.
의심과 탐닉이 뒤섞여 흐르는 눈동자 사이로 두 개의 스트라디바리가 들어왔다.
허나 그들의 의심은 활과 현이 맞닿는 순간 거짓말처럼 흥분으로 점철되었으니.
사아아아.
청중들은 저도 모르게 숨을 집어삼켰다.
마치 혹한의 달과 작열하는 태양을 바라보듯 환상과 환희가 서로 대조적인 선율을 연주하고 있었다.
겉으로 치장된 화려함이나 고난도의 기교가 아니었다. 마치 서로가 정면승부를 하듯 오로지 선율에 의존한 연주였지만 어느 것과도 비교할 수가 없었다.
그만큼 청중들의 눈과 귀는 이미 환상과 환희에 뺏겨 있었다.
퍼러러럭!
검은 턱시도의 끝과 붉은 드레스의 끝자락이 펄럭일 때 활과 현은 매섭게 번들거렸다.
두 사람은 서로를 마주 보고 바이올린을 켜고 있었지만 두 눈은 감고 있었다.
그때 강현이 먼저 눈을 반개하는 것이었으니.
활이 현을 거칠게 타고 내려갔다. 마치 말발굽 소리를 형상화한 것처럼 환상이 재빠르게 치고 나가는 것이 아니겠는가.
활을 쥔 오른손이 점차 빨리고 현을 짚은 왼손가락은 마치 춤을 추듯 움직이고 있었다.
그 순간 질주하는 환상을 뒤쫓듯 히로세가 눈을 반개했다.
환희가 환상의 발자취를 따라나가듯 그의 선율을 똑같이 추격하는 것이었으니. 분명 같은 음표의 연속이었지만 마치 다른 곡을 듣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청중들은 손아귀에 땀이 맺히는 것을 느꼈다.
강현과 히로세의 연주 속에서 심장이 두근거리는 것은 물론이고 입술까지 초조하게 메말랐다.
‘미치겠군.’
유럽의 거장이라 일컬어지는 바이올리니스트들은 강현과 히로세의 협연을 보며 모골이 송연해지는 느낌이었다.
치밀하게 짜여 있는 곡의 형태는 마치 바흐의 곡을 연상케 했다.
두 대의 바이올린이 서로를 추격하듯 완벽하게 모방하지 않는가. 푸가와도 닮아 있었지만 종국의 대립에서는 전혀 달랐으니.
서로 거울이 된 것처럼 똑같은 곡을 연주하고 있지만 서로 다른 노래처럼 들리지 않는가.
아마도 기교와 활의 방향을 뒤틀리게 한 것이리라.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히로세의 연륜과 경험은 이미 일본에서 최고의 거장이라 불린 만큼 흠잡을 데 없었다.
하지만 강현의 수준은 놀라움을 넘어선 지 오래되었다. 거장과 함께 합을 맞춤에도 전혀 밀리는 느낌이 없었다. 흡사, 오랜 세월 합을 맞춰온 것 같은 정도였으니.
강현이 지휘자의 길을 걷는다 해서 바이올린 실력이 줄었다는 것은 그릇된 소문이었다.
오히려 수년 전보다 더욱 성장하지 않았는가.
그때였다.
지잉―!
히로세의 환희가 독주를 시작한 것이었으니. 이번에는 강현의 환상이 그 뒤를 맹렬하게 쫓는다. 어찌나 보잉이 빠른지 활의 움직임이 마치 칼날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저러다 현이 끊어지는 것은 아닐까 의심스러웠지만 웬걸 현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번들거리는 것이었으니.
바람에 나부끼듯 펄럭이는 붉은 드레스와 검은 턱시도의 조합을 보며 유럽의 바이올리니스트들은 생각했다.
과연 자신이라면 저 자리에서 서서 저토록 완벽한 전위 대조법을 가리키는 연주를 할 수 있을까.
예컨대 지금 저 자리에 있는 환상과 환희의 주인이 아니라면 저러한 아름다운 선율의 조화를 만들어내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다.
‘선생님.’
강현이 히로세를 바라봤다. 첫 번째 곡의 피날레를 장식해야 할 시간이 다가온 것이었으니. 히로세가 이 곡의 연주에서 가장 좋아하는 부분이기도 했다.
히로세의 왼손 피치카토가 더욱 강렬하게 현을 건드렸다.
히로세의 얼굴에는 진한 감동이 벅차오르고 있었다. 강현과 함께 연주를 하고 있을 때면 시렸던 어깨와 팔이 과거 전성기 때처럼 돌아간 기분이었으니.
히로세의 선율이 끝에 닿는 그 순간.
강현이 환상의 현을 강하게 내리그었다. 매섭게 가로지르는 활의 짓눌림 마저 서늘하고 투명한 선율을 일으키는 것이었으니.
청중들은 연주의 끝에서 온몸을 관통하는 한줄기 시원한 바람을 맞이했다.
* * *
유럽의 명가 EMA의 대표 오스틴은 마른 입술을 쓸었다. 첫 번째 연주가 끝났지만 기나긴 여운이 한없이 아쉽게만 느껴졌다.
환상적인 꿈을 꾼 것만 같은 기분이 들 정도였으니. 비단 오스틴만이 겪는 일이 아니었다. 다른 청중들 또한 같은 표정이지 않은가.
‘무조건 계약해야 한다.’
오스틴은 벌써부터 강현의 두 번째 앨범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첫 번째 앨범부터도 20세기의 대미를 장식하며 화려한 데뷔를 하지 않았던가.
클래식 신인이 그토록 세계적인 관심을 받은 경우는 전무후무하다시피 했다. 특히나 판매고 또한 예상을 훌쩍 뛰어넘지 않았던가.
세계 유수의 오케스트라도 아니고 이름난 거장의 앨범도 아닌 것을 감안하면 이례적이다 못해 기적 같은 일이었다.
분명 지난 80년대와 90년대는 팝과 락 밴드의 전성기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비틀즈를 시작으로 이글스, 빌리조엘과 그린데이, 그리고 아이리스에 이르기까지.
특히나 강현은 이미 수년 전 아이리스의 타이틀까지 작곡하지 않았던가.
당시 강현의 프로듀싱을 도왔던 프랑스 작곡가 겸 싱어송라이터 미셸 피콜리는 강현을 두고 희대의 천재라고 평가했었다.
‘초동 물량을 얼마나 준비해야 할까.’
오스틴은 강현의 두 번째 앨범이 세계적으로 어떠한 판매고를 올리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아직 남은 곡들을 전부 들어본 것은 아니었지만 첫 번째 곡부터 이 정도라면 더 따져볼 필요도 없었다.
“오스틴, 자네도 왔었군?”
“시몬 브륄? 자네 지금 미국에 간 것이 아니었나?”
“뉴욕 오케스트라와는 잠시 미팅을 미뤄뒀네. 이와 같은 공연을 독일의 대표인 내가 놓쳐서야 쓰겠나.”
독일의 클래식 명가 도이치의 대표 시몬 브륄이었다.
클래식 음향과 녹음에 대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두 사람이었다. 마치 서로가 경쟁하듯 시선을 교환하고 악수를 나눴다.
알 수 없는 긴장감이 짙게 깔리는 것 같았다.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 아니겠는가.
오스틴과 시몬 두 사람 다 직감적으로 느끼고 있을 것이다. 강현의 두 번째 앨범은 클래식 역사에 획을 그을 것이라는 걸.
* * *
기나긴 여운을 느낄 새도 없이 고요하던 콘서트홀이 다시금 술렁였다.
바로 무대 위로 백정훈이 올라서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건초염을 앓으며 지휘자의 길로 전향했던 피아니스트가 아닌가.
러시아에서 두문불출하며 세계적인 마에스트로 막심 이바노프의 제자로 들어갔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개중에는 옷소매로 눈을 비비며 얼굴을 확인하는 이도 있었으니.
지휘를 해서일까 아니면 세월이 흘러서일까. 부드러웠던 인상은 다소 날카롭고 무뚝뚝해져 있었는데 또 그것 나름대로 지금의 백정훈과 무척이나 잘 어울렸다.
그가 피아노 의자 위에 앉자 비로소 소문으로만 무성했던 백정훈의 출연이 현실이 되는 순간이었다.
터벅.
검은 턱시도를 차려입은 강현이 걸어 나오자 유럽의 바이올리니스트들의 눈이 대번 커졌다.
그의 손에 들린 바이올린 때문이었으니. 방금 전 히로세와 함께 협연을 펼쳤던 환상이 아니었다. 몇 년 전 잠깐 모습을 보인 뒤 자취를 감춘 과르네리 피오레였으니.
누군가 말하지 않았던가. 스트라디바리가 대양과 깊은 바다라면 과르네리 델 제수는 광활한 대지라고.
수년 전 영화 파기니니의 촬영장에서 직접 피오레의 선율을 들었던 관계자들은 감탄을 넘어서는 경외감을 가지고 이렇게 말을 했다.
그가 직접 피오레를 켰을 때 마치 수백 년 전 살롱의 한 장면에 들어선 것 같았다고.
활이 천천히 현과 맞닿자 침을 꼴깍 삼키는 소리가 반주처럼 들려왔다.
마치 두 개의 얼굴을 지닌 것처럼 어떨 때는 애절한 선율이 귓가를 파고들었고 또 다른 때에는 화려한 선율이 두 눈에 감동을 차오르게 했다.
현혹적인 글리산도에 이어 활이 매섭게 현 위를 가로지르기 시작했다. 마치 현의 첫 번째 앨범에 수록된 여왕의 포르타멘토와 비슷한 시작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 마치 웃음소리를 더하듯 피아노의 선율이 풍부해지는 것이었으니.
백정훈의 기다란 손가락이 피아노 건반 위를 매끄럽게 가로질렀다.
건초염을 앓고 있는 손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유려했으니. 어깨를 타고 팔꿈치를 지나 손가락 끝에 이르기까지 건반을 누르는 하나하나가 예술적인 움직임처럼 느껴졌다.
두 남자의 강렬한 시선이 마주치자 거울을 바라보듯 서로의 입꼬리가 천천히 올라갔다.
청중들은 모두 느낄 수 있었다. 두 연주자가 서로 말을 하지 않아도 서로의 생각을 읽는 것처럼 교감하고 있다는 사실을.
강하게 짓누른 활의 힘만큼이나 건반의 움직임 또한 거칠어졌다. 마치 서로를 탐닉하듯 피아노의 울림과 바이올린의 선율이 서로를 밀고 당기지 않는가.
턱 끝을 타고 흐르는 얄팍한 호흡만큼이나 진한 긴장감이 콘서트홀에 내리깔렸다.
지잉―!
그 순간 화려한 고음이 비상하듯 천장에 닿았다. 청중들은 강현은 물론이고 백정훈의 실력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오랫동안 피아노를 연주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토록 농밀한 연주를 선보일 줄이야.
하물며 두 사람의 모습은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기자들은 지금 이 순간을 사진으로 남기지 못해 아쉬움이 절절했다.
마치 하나의 호흡을 둘로 나눈 것처럼 그야말로 이상적인 한 폭의 그림이었기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