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 the Musical Genius RAW novel - Chapter (172)
> 음악천재를 위하여 – 172화 >
“신이 우리를 도왔군.”
바바라의 입에서 능숙한 유대어가 흘러나왔다.
과거 독일 남동부 작센주(州)에서 시작한 광산업이 이토록 커질 줄 누가 알았을까.
예부터 광산업은 신의 선택을 받아야 한다는 말이 있었다. 특히 금맥을 찾는 일은 비단 노력으로만 되는 것이 아니었으니.
“탄야, 이 보고서가 사실인가?”
탐사팀장 켈릭의 보고서에 따르면 지심의 순도는 물론이거니와 예상 매장량과 분포도가 상당했다.
하물며 구리맥은 세계 최대 규모에 이르렀으니. 예컨대 신의 선택을 받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바바라 님, 탐사팀장이 현재 방사형으로 수차례 재조사를 거듭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조사를 거듭하면서 범위가 점점 더 넓어져 입을 다물지 못하겠다는군요. 분명 역사상 최대 규모의 구리맥을 발견한 것은 물론이거니와 일전 네팔 투르프카에 버금가는 금맥을 동시에 찾은 것이 확실합니다.”
“믿기지 않는군, 꺼져가는 불씨가 이렇게 살아날 줄이야.”
바바라 채광의 평가를 두고는 부정적인 말들이 시장에 나돌 때였다.
그도 그럴 것이 수년 전, 투르프카 지역을 이후로 가시적인 성과를 이룩하지 못했으니.
오죽하면 증권가에서 속된 말로 바바라 셀이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로 바바라 채광의 주가가 연일 하한가를 기록하지 않았던가.
그룹의 임원단에서는 바바라 채광을 매각하자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으니 더 말해봐야 입만 아프다.
“연일 상한가를 기록하는 주가 때문인지 증권가가 상당히 고조되어 있습니다. 월스트릿에서는 ‘황금의 수요일이 돌아왔다고.’ 저들끼리 말한다고 합니다.”
“황금의 수요일이라.”
수년 전 강현의 도움으로 네팔 투르프카 지역의 금맥을 찾지 않았던가.
당시 증권가는 온통 바바라 채광의 황금 이야기로 가득했다. 그랬던 그 날이 지금 또다시 재현된 것 같았으니.
그때였다.
“바바라 님, 채광업의 주가와 관련해 특이한 사항을 포착한 것이 있습니다만.”
“특이한 사항?”
“예, 아시다시피 바바라 채광의 주가가 연일 하한가를 기록하는 상황에서 월스트릿의 매니저들 또한 비관적으로 판단하지 않았습니까? 오히려 바바라 채광의 주가가 에베레스트 정상에 올랐다고 표현했을 정도였으니까요. 헌데 그러한 상황에서 마치 보란 듯 주식을 긁어모은 이가 있었습니다.”
바바라의 갈색 눈동자가 묘하게 빛났다. 작금의 발견은 우연의 연속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탐사팀장 켈릭 조차도 구리맥과 금맥을 동시에 발견했으리라고는 상상조차 못 했으니 말이다.
모두가 위태롭다고 말할 때, 홀로 난파선에 오른 자가 있다니 그는 과연 누구일까.
* * *
“오빠, 나 정말 긴장되는데.”
녀석이 왜 이럴까, 이촌동 저택을 한두 번 찾은 것도 아닌데 얼굴에 긴장한 기색이 역력하다.
모르는 사람이 봤다면 상견례라도 하러 가는 줄 알겠다.
이촌동 저택의 붉은 담벼락 앞에 도착하자 손유하가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어쩌면 얼음여왕의 성격이 지난 삶과 달라진 게 아닐까.
“유하야, 입맛에는 맞니?”
문득 며느리 사랑은 시아버지라는 말이 떠올랐다. 저녁 식사 자리에서 아버지는 유하를 향해 계속해서 말을 건네셨다.
혹여 타지생활을 오래 한 입맛에는 맞지 않을까 걱정하는 것이 누가 보면 정말 며느리인 줄 알겠다.
“정말 맛있어요, 아버님.”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밥알이 튀어나올 뻔했다. 어째 외국 생활을 오래 할수록 점점 능청스러워지지 않는가.
정극에서나 할법한 대사를 손유하는 다소곳한 새색시처럼 손으로 입을 가린 채 말하는 것이었으니.
어머니는 물론이고 상석에 앉아계시는 할아버지 또한 그 모습에 미소를 숨기시지 못한다.
“그래, 며칠 전에 유하가 한국대학교를 찾아갔다고?”
“예, 할아버지. 현이 오빠가 보고 싶어서 공항에서 도착하자마자 집안 어른들한테 인사만 드리고 곧장 찾아갔어요.”
“홀홀, 할애비가 자세히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구나. 예부터 싸움 구경 다음으로 재미난 게 사랑 이야기라고 하지 않느냐.”
생전 밥상머리 앞에서 긴 이야기를 하지 않으시던 할아버지 또한 능청스럽게 눈을 빛내신다.
하물며 어머니와 아버지는 자세를 앞당긴 채 귀를 쫑긋 세우고 계셨다. 유하는 부끄러운 척 내숭을 떠는가 싶더니 이내 운을 띄웠다.
“첫눈에 마주치자마자 마치 시간이 멈춘 것 같았죠.”
평소 포커페이스라고 자부했지만, 지금만큼은 얼굴이 홍당무처럼 붉어졌다.
아무렴, 지난 삶에서는 여자친구는커녕 제대로 된 연애조차 한 번도 못해본 삶이었으니.
허나 손유하는 마치 로맨스 영화의 줄거리를 읊듯 나와의 이야기를 아주 디테일하게 말해낸다.
말솜씨도 장난이 아닌 게 여태까지 긴장을 한 것은 전부 연기임이 틀림없었다.
지금만 봐도 그렇다. 결정적인 장면에서는 식탁 위의 시선을 이 잡듯 사로잡는 것이 아닌가.
“그 순간 현이 오빠가 제 손깍지를 꽈악 거머쥐었어요.”
“어머머!”
“그래서 그다음은?”
저녁 식사는 이미 뒷전이었다. 어머니는 소녀처럼 두 손을 불끈 쥐고 있었고 아버지는 흡사 영화의 하이라이트 장면을 기다리는 것처럼 재촉하신다.
하물며 할아버지는 흐뭇한 미소를 감추지 못하고 계셨으니. 그때였다.
“더 말하고 싶지만, 현이 오빠가 부끄러울 테니 여기까지만 할게요.”
손유하는 부끄러운지 볼을 붉히며 고개를 숙였다. 어머니는 이야기의 끝을 듣지 못해 영 아쉬운 눈치다.
동시에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시선이 나에게로 향하지 않는가. 마치 네 놈도 사내 녀석이었구나 하는 표정이다.
“어머님, 설거지 저도 도와드릴게요!”
어머니와 가정부 아주머니의 틈바구니로 손유하가 불쑥 들어섰다. 아까부터 얼굴에는 그런 유하를 사랑스러워하는 미소가 가시질 않는다.
“유하야, 네가 깎게?”
“나 사과 잘 깎아, 오빠.”
웬걸 살아생전 얼음여왕이 과일을 깎는 모습을 다 보게 될 줄이야.
과일상을 들고 거실 소파에 다소곳이 자리하는 것이 양반집 규수가 따로 없다.
종전에 했던 말이 거짓이 아닌 듯 사과 또한 반듯하게 잘 깎아낸다. 한 줄기의 실타래처럼 군더더기 없이 매끄럽게 깎인 사과를 보며 할아버지가 감탄을 터뜨렸다.
“유하가 이렇게 사과를 잘 깎는 걸 보니 지금 당장 시집을 가도 손색이 없겠구나. 강 서방,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나?”
“장인어른 말씀이 백 번 천 번 옳으십니다. 제가 살면서 사과를 이렇게 잘 깎는 사람은 집사람 말고는 처음 봤습니다. 유하가 생긴 것만 이쁜지 알았는데 이렇게 손재주도 좋으니 아무리 봐도 일등 신붓감이 틀림없습니다.”
그 말을 들은 손유하의 얼굴이 홍시처럼 붉어진 가운데 사과를 깎는 손놀림은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아무래도 코가 단단히 꿰인 것만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은 착각일까.
* * *
“바바라 회장이 방한을 한다고?”
대통령 비서실이 아침부터 들썩였다. 예기치 못한 정보 때문이었으니.
현재 미 증권가의 가장 핫한 키워드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바바라 그룹의 회장이 한국을 찾는다는 것이 아닌가.
“방한 이유는?”
“아직 정확하게 밝혀진 이유는 없습니다. 밝혀진 정보에 의하면 수행원은 백 명을 넘길 것으로 예상되며, 바바라 그룹의 전세기를 타고 올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미 국내 그룹들도 정보를 입수하고는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는 실정입니다.”
바바라 회장이 누군가, 유대계로 광산업과 철도업에 손을 뻗은 것도 모자라 미국 부동산 업계에서 가장 큰손으로 불리는 인물이었다.
하물며 투자의 귀재라고도 불릴 정도로 깊은 혜안과 명석한 지혜를 가졌다고 알려져 있다.
결정적으로 현재 미국 내 그룹 시가총액 서열 중에서도 순위를 다투고 있는 지금, 대통령 비서실이 이토록 기민하게 반응하는 이유는 당연했다.
외환위기라는 거대한 태풍이 휩쓸고 지나간 지금 외국계 기업의 투자유치는 무엇보다 중요하기에.
“바바라와 연결점이 있는 인물이 국내 총수 중에서 누가 있는지 지금 당장 보고하도록!”
다급한 물음에도 그 누구도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아무렴, 바바라 회장은 미국 내에서도 만나기 힘든 인물이 아닌가.
미국의 대부호로 알려져 있으며 철저히 계산적인 성격 탓에 사교모임은커녕 그룹끼리의 교류도 없다시피 한 인물이다 보니, 국내 그룹총수가 그를 알고 있을 리 만무했다.
“갑작스럽게 결정된 방한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오늘 중으로 바바라 그룹 측에서 방한 이유에 대한 입장표명을 할 것으로 예상되나 정확한 사유는 밝히지 않을 수도 있다는 예상이 있었습니다.”
한 마디로 바바라의 속내를 아무도 모른다는 뜻이다.
“도대체 무슨 투자를 하려고 연도 없는 작자가 미국에서 한국까지 찾아온다는 거야? 이렇게도 정보통이 느려서야 대한민국 최정예 집단이라고 말할 수 있겠나!”
그때였다.
“저 실장님, 이건 사적인 정보입니다만.”
“사적인 정보?”
“일전에 포브스지에서 바바라 회장을 인터뷰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방문하고 싶었던 나라를 골라달라는 질문에 이례적으로 한국을 뽑았습니다. 인터뷰어가 한국을 방문하고 싶은 이유에 대해서 물으니 친구가 그 나라에 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친구라니?
“헌데 들리는 소문에는 그 친구가 바로.”
“바로?”
이어지는 뒷말에 정적이 내리깔렸다.
“바이올리니스트 현이라고 합니다.”
* * *
“오빠, 운전 정말 잘하네.”
손유하는 여전히 내가 운전하는 모습을 어색하면서도 신기해하는 눈치다.
운전을 잘한다고 칭찬까지 하지 않는가. 아무렴, 수십 년 경력의 베테랑인데 이 정도도 못해서야 쓰겠나.
공항이 가까워질수록 줄어드는 속력과 함께 아쉬움이 더해졌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국제공항에 사람들로 가득하다.
바쁘게 이동 중인 사람 중에는 일반인들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기자들은 물론이고 경호원들이 도처에 깔려 있었다.
이토록 공항이 들썩인 까닭은 바로 금일로 예정된 바바라 회장의 방한 때문이었다.
국내 기자들을 위해 VIP 통로가 아닌 공식 입국장을 이용하겠다는 뜻을 사전에 밝힌 그였다.
“유하야, 조심히 가야해.”
두 분 할아버지들이 함께 나오기에는 기자들이 너무 많아 손유하의 배웅은 내가 전담하게 되었다.
모자를 푹 눌러썼기 때문일까, 아니면 바바라 회장의 입국을 기다리는 것 때문일까 나를 알아보는 사람은 없었다.
“오빠, 종종 미국에 놀러올 거지?”
“초대만 해준다면 방학 때 꼭 놀러 갈게.”
손유하가 마치 어린아이처럼 해맑은 미소를 지어 보이며 새끼손가락을 걸어 보인다.
어떨 때는 얼음여왕 같이 도도하다가도 또 이럴 때 보면 한없이 귀엽지 않은가. 팔색조 매력을 지닌 그녀다웠다.
티켓팅을 하기 전까지 유하와 함께 공항을 걸었다. 언제부터였는지 이미 손깍지도 낀 상태였다.
“참, 미쉘이 오빠 한 번 더 보고 싶어 해.”
“미쉘?”
“그때 학교에서 봤던 내 친구, 카밀라라는 애도 있는데 오빠 팬이야. 이미 앨범도 여러 장 샀다고 자랑을 하더라고. 오빠, 미국에서도 인기 엄청 많은 거 알아?”
웬걸 내가 미국에서도 먹히는 외모였었나. 아무렴, 앨범이 잘 나온 덕분일 것이다. 하지만 손유하의 생각은 전혀 아닌 것 같았으니.
“나 없다고 한국에서 한눈팔면 안 돼!”
순간 지난 삶 마주했던 얼음여왕의 모습이 오버랩됐다.
암요, 누구 말인데 내가 한 귀로 듣고 흘리겠는가. 출국시간이 다가올수록 손목시계를 바라보는 고갯짓도 아쉬워만 갔다.
다행이라면 공항 내의 모든 시선이 바바라 회장에게 쏠려있어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오빠, 내가 갑자기 찾아왔는데도 이렇게 잘해줘서 고마워.”
손유하가 우물쭈물하며 망설이는 모습은 무척이나 귀여웠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손유하의 어깨를 잡고 내 쪽으로 끌었다. 계산된 포옹이 아니라 본능적인 포옹이라고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유하의 볼이 금세 복숭아처럼 물든다. 그때였다.
어?
알 수 없는 수군거림이 뒤편에서 들려오는 것 같았으니. 하지만 손유하는 그럴수록 내 허리를 더욱 있는 힘껏 감싼다. 마치 놓지 않겠다는 듯이.
그 뒤로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수군거림은 이내 발소리까지 동반해서 들려왔다.
그제야 시선 너머로 수십 명의 인영이 들어왔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 머릿속에 한 가지 가설이 떠올랐다.
그 순간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이 나를 향해 걸어오던 바바라 회장과 시선이 마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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