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 the Musical Genius RAW novel - Chapter (218)
> 음악천재를 위하여 – 218화 >
토미는 무대 위에 오르자 숨이 멎을 것만 같았다. 대기실에서 삭였던 긴장감이 다시 턱 끝까지 차오르는 느낌이었으니.
것도 그럴 것이 수많은 청중들 사이에는 눈빛이 형형한 음악가들이 대다수이지 않은가.
그들 앞에서 연주를 한다는 것은 마치 벌거벗은 채 무대 위에 서 있는 느낌이었다.
덥석.
그때 사브리나가 토미의 손을 지그시 잡아주었다. 토미의 눈이 크게 떠지며 사브리나를 바라보자 그녀는 조심스레 입모양으로 말했다.
‘내가 있잖아.’
‘괜찮아.’
그제야 토미의 긴장이 거짓말처럼 종적을 감췄다. 오히려 그 빈틈 사이로 알 수 없는 설렘이 차오르는 듯했다.
강현은 그런 두 사람의 모습에 엷은 미소를 짓고는 한 발자국 앞으로 나섰다.
“마에스트로의 제안으로 인해 먼저 무대에 오를 수 있게 되어 큰 영광입니다. 저희 트리오가 청중 여러분께 들려드릴 곡은 자작곡이며, 미술계의 거장이라 알려진 미타르켈의 은하수를 보고 악상을 얻어 초안을 만들어낼 수 있었습니다.”
자작곡이라는 말에 좌중이 술렁였다. 무대에 오르기 전까지는 참가자들이 어떠한 곡을 연주할지 비밀리에 붙여졌기에 교수들 또한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아무렴, 여태껏 음악회에서 자작곡을 선보일 정도로 배짱 좋은 학부생은 역사상 없었기에.
하물며 평범한 학부생이라면 급부터가 다른 음악인들의 등장에 긴장을 머금을 만도 하건만 강현의 얼굴에는 그런 기색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오히려 청중들 한 명 한 명과 시선을 마주치는 것처럼 눈빛을 교환하고 있지 않은가.
“바이올린과 첼로, 두 종류의 악기가 서로 어울려 낼 수 있는 화음에 대해 많은 고민을 거듭했습니다. 청중 여러분들께서도 저희 트리오의 자작곡이 마음에 드셨으면 좋겠군요. 그럼, 트리오의 Dreamlike Spirit에 여러분을 초대하겠습니다.”
세 사람의 시선이 서로 교차한다. 청중들은 흥분 어린 시선으로 세 사람의 모습을 좇고 있었다. 과연 어떠한 음악이 흘러나올지.
이윽고 은빛 머리카락이 출렁이며 곡의 시작을 알렸다.
첫 주자는 사브리나.
감미로운 선율이 음악 홀에 울려 퍼졌다.
거침없는 보잉과 화려한 기교는 없었지만 담백하게 뻗어나가는 선율은 첫사랑의 시작을 느끼는 것처럼 알 수 없는 오묘한 감정을 피어오르게 했다.
흐드러지게 피어난 억새밭을 가로지르는 바람처럼 시원스레 스쳐 지나가는 음색.
청중들은 소문으로만 무성하던 사브리나의 연주를 보고는 눈과 귀를 떼지 못했다.
은빛 머리카락이 출렁거리며 춤을 추는 듯한 모습과 자신의 악상을 고스란히 선율에 실어 보내는 명연주는 거장들의 입안을 바짝바짝 마르게 하기 충분했으니.
그 순간 또 다른 바이올린의 음색이 옆을 나란히 했다.
사브리나의 바이올린에 호응하듯 강현의 환상이 화답하기 시작했다.
시원스레 뻗어 나간 바람을 다시 돌이켜 불러오듯 환상이 노랫소리를 만들어냈다.
눈발이 서린 밤하늘에 발자국을 남기듯 시리도록 여운을 남기는 선율의 연속.
강현의 트릴이 세차게 울었다. 마치, 서로 다른 악기를 연주하는 것처럼 화음을 넣고 있지 아니한가.
분산화음과 얼음계단 위를 걷는 것처럼 미끄러지듯 이어지는 글리산도 주법, 끝없이 이어지는 레가토에 이르기까지.
각자의 곡을 연주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두 대의 바이올린이 서로 마주 보고 호흡하고 있었다.
얼마나 서로 호흡을 맞춰왔는지 셀 수가 없을 정도로 완벽한 연결이 아닌가.
곧이어 현과 현 사이에 틈이 없는 것처럼 손가락이 자유자재로 움직였으며 신호를 보내듯 트릴이 울었다.
눈보라속의 발걸음처럼 트릴이 계속되던 그 순간.
토미의 활과 현이 맞닿았다.
두 다리로 첼로를 지탱한 토미의 눈은 지그시 감겨 있었다. 얼굴에는 긴장이라곤 한 톨 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어깨 위에서 피어오른 열기를 그대로 손을 지나 활 끝에 보내는 것이었으니.
물 흐르듯 이어진 자세의 끝에서 해묵은 감정이 버려졌다.
여태껏 고정관념에 사로잡힌 채 연주를 하던 토미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마치, 새로운 지평을 열어버린 것처럼 그는 첼로라는 악기를 새로이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있었다.
알버트 교수는 두 눈을 부릅뜬 채 그 광경을 목도했다. 두 대의 바이올린이 토미를 위한 곡인 것처럼 다리를 만들어주었고 첼로가 완연히 자신의 모습을 꽃피우고 있었다.
모두 느꼈으리라. 그의 첼로로 인해 음악 홀에 은하수가 펼쳐지고 있다는 사실을.
* * *
알버트 교수의 동공은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트리오의 무대가 끝났음에도 수많은 청중들이 여운에 잠겨 있었지만 그중 단연코 알버트 교수가 가장 여운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것도 그럴 것이 그는 토미를 지도했던 첼로 전공의 교수가 아니었던가. 문득
‘두 사람의 재능을 이용하고 마음껏 탐닉해라.’
토미에게 했던 조언이 생각났다. 당시에는 그저 자신이 정한 한계에 가로막힌 토미가 조금이라도 가능성을 봤으면 좋겠다는 마음에서 한 조언이었다. 헌데.
꿀꺽.
이토록 대단하게 자신의 연주를 선보일 줄이야. 믿기지가 않았다. 불과 한 달도 되지 않는 시간동안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지 않은가.
마치, 은하수를 연상시키듯 고고하게 펼쳐진 그의 첼로는 거장들의 눈과 귀를 단숨에 사로잡을 만큼 몽환적이었으니.
그제야 강현의 말이 떠오른 알버트 교수였다.
‘저희 트리오에 가장 필요한 건 토미입니다.’
왜 강현과 사브리나라는 천재들이 토미를 선택했는지 의문이었다.
하지만 트리오의 연주를 보고 나서야 진정으로 깨달을 수 있었다. 강현의 말은 토미를 띄워주기 위한 과장도 일말의 거짓도 아니라는 것을.
말 그대로 방금 전 연주는 첼로를 전공하고 있는 학부생들 중 토미만이 할 수 있으리라.
그 오묘한 차이를 한 평생 첼로를 연주했던 자신보다 단숨에 꿰뚫어 보다니 알버트는 머리에 찬물이 쏟아지는 감정을 느끼며 우두커니 앉아있었다.
“스펜서, 자네의 제자는 역시 엄청나군.”
“제자라…….”
새뮤얼 총장의 물음에 스펜서는 엷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과연 자신이 강현의 오롯한 스승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에게 음악적 영감과 지휘적 역량을 길러준 것은 사실이나 처음 봤을 때부터 완성되어 있던 보석을 마주한 느낌이었으니.
새뮤얼, 자네가 옳았어.
영국으로 향하는 비행기에서 품었던 마음처럼 보석을 마주한 뒤 자신의 음악적 가치관 또한 바뀌었다.
마음 같아서는 지금 당장에라도 런던 심포니에 입단시키고 싶지만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보석의 가치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세차게 빛을 발하며 이름을 떨치고 있었다. 왕립음악학교에서의 생활이 끝나면 그는 분명 더욱 성장하리라.
하물며 그 보석을 노리는 거장들이 얼마나 많은가. 세계 각국의 거장들은 물론이고 은퇴했던 전설마저도 그 보석의 마력에 매료되어 다시 지휘봉을 들었을 정도였으니.
스펜서 또한 마찬가지였지. 만약 강현이 아니었다면 다시 바이올린을 켜는 일은 없었을지도 몰랐다.
스펜서는 소망했다. 될 수 있다면 그의 스승이 되고 싶다고.
마지막 자신의 음악적 가치관을 완성시킬 수 있는 아이였으니. 하지만 그것은 스펜서 인생 최대의 욕심이리라.
“먼저 일어나보겠네, 나 또한 이제 연주를 준비해야 하니.”
스펜서는 평소답지 않게 긴장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새뮤얼 총장은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의아하게 고개를 갸웃거렸다. 스펜서가 저런 표정이었던 적이 있었을까 싶었기에.
분명 아무도 모를 것이다. 오늘 그의 연주는 단 한 명의 청중을 위한다는 사실을.
* * *
다가오는 겨울이 무색하게도 화창한 햇살이 창가를 드리웠다.
이제는 종적을 감춰 버린 단풍을 아쉬워하며 강현은 머리맡에 뭍은 물기를 털어냈다.
한창 사색에 잠겨 다가오는 겨울의 악상을 맞이할 즈음.
“으으음냥.”
강현의 침대 위에는 언제나 그랬듯이 주근깨 소년이 잠들어 있었다. 음악회가 끝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여전히 강현에게서 음악을 배운다고 방을 전세 낸 토미였다.
“사아브리나아…….”
도대체 무슨 꿈을 꾸는 것인지 연신 사브리나의 이름을 부른다. 강현은 토미의 곁으로 다가가 그의 얼굴을 지그시 바라봤다. 분명 악몽은 아닌 듯하다. 주근깨가 홍조를 머금고 붉은 깨가 되어 있었으니.
“일어나, 인마.”
해가 중천에 뜨지 않았는가. 덮고 있던 이불을 들어 올리자 찬 바람에 토미가 화들짝 놀라며 눈을 떴다. 마치, 겨울잠에서 갑자기 깨어난 다람쥐 같다.
강현은 그 모습에 미소 지으며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음악회는 어떻게 되었냐고?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강현의 트리오가 대상을 수상했다. 마에스트로 스펜서와 함께 공동대상을 말이다.
왕립음악학교 음악회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라고 했다. 그만큼 스펜서의 바이올린 연주는 강현조차도 놀라움을 금치 못할 정도로 대단했으니. 그나저나.
“너희들 왜 그렇게 딱 붙어 있냐?”
식당에 도착한 사브리나와 토미가 서로 맞은편에 앉는 것이 아니라 옆자리에 딱 달라붙어 있었다.
강현이 베이컨을 포크로 찍어 먹으며 물어보자 토미가 입에 머금고 있던 스프를 토해낼 것처럼 당황한다. 반면 사브리나는 아무렇지 않게 대꾸하는 것이었으니.
“좋으니까.”
토미의 주근깨가 금세 붉게 물들었다. 강현은 사브리나의 대답에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짧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식사를 재개했다.
아무렴, 트리오로 세 명이서 함께 다닌 시간이 얼마인데 두 사람 사이의 오묘한 감정의 끈을 눈치 채지 못했겠는가. 그나저나.
“토미, 그런데 네 취향은 연상이라고 하지 않았어?”
“내, 내가 언제……!”
“장난이야.”
식당에서 나온 두 사람이 서로 손을 맞잡는 모습을 보자 드디어 토미에게도 봄날이 왔다는 사실이 확연히 드러났다. 주변의 시선이 두 사람에게 몰리는 것은 당연했다. 아무렴, 사브리나는 그만큼 왕립음악학교내에서 유명인사였으니.
더군다나 지난 음악회 이후로 토미 또한 유명인의 대열에 합류하지 않았던가.
깐깐하고 까칠하기로 유명한 알버트 교수가 토미의 첼로를 인정했을 정도였으니.
헌데 두 사람의 모양새가 특이하다. 강현은 사시나무처럼 부들부들 떨고 있는 토미의 손깍지를 거세게 말아쥐고 있는 사브리나를 보며 장군감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두 사람과 헤어진 강현이 홀로 걸음을 옮겼다. 왕립음악학교의 입구와 맞닿은 정원을 거닐며 악상을 정리하고 있을 때였다.
“눈?”
눈이 오지 않기로 유명한 영국에도 어느새 겨울의 증거가 하늘 아래로 떨어지고 있었다.
겨울이 찾아와서 일까 왠지 모르게 마음 한구석이 시려지는 것 같았다.
강현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어 보였다. 지난 삶을 포함하면 혼자 살았던 기간을 셀 수 없을 정도인데 이 정도 외로움쯤이야. 그때였다.
어.
강현은 자신의 눈을 의심하며 옷소매로 재차 눈가를 비벼댔다.
시야가 점점 선명해질수록 마음속 한쪽에 자리했던 시린 것이 단숨에 사라지고 저도 모르게 눈가에 설렘이 차올랐다.
이유는 간단했다. 단 한 명의 소녀가 자신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기에.
꿈이라도 꾸는 것이 아닌가 의심이 될 즈음.
“오빠아―!”
아주 듣고 싶은 목소리와 함께 붉은 머플러를 한 유하의 모습이 눈에 들어찼다.
강현에게도 겨울의 봄날이 찾아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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