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 the Musical Genius RAW novel - Chapter (268)
> 음악천재를 위하여 – 268화 >
“당신은 어때?”
오랜만에 가지는 부부의 시간이었다. 손일선과 임혜라는 함께 와인잔을 기울이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손일선은 아내 임혜라가 묻는 물음이 무엇을 뜻하는지 모르지 않았다.
“현이 정도면 사위로 어떠냐니까?”
“크흠.”
딸 가진 부모 마음이 다 똑같지 않겠는가. 손일선에게 있어서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보석 같은 존재가 바로 유하였다.
“아직 고등학생인데…….”
손일선이 짐짓 뜸을 들이자 임혜라가 재촉하듯 되물었다.
“그러니까 나중에 말이야, 먼 훗날.”
“당사자들의 의견이 중요한 것이겠지.”
“에이, 장인의 의견도 중요하지. 그렇게 긴가민가하다가 놓친다니까?”
제일그룹의 호랑이라고 불리며 왕회장의 뒤를 잇는 손일선이었다. 임원들 또한 눈을 마주하기 어려워할 정도로 타고난 카리스마로 제일그룹을 휘어잡는 그가 아닌가. 그 누구 앞에서도 이렇게 말문이 막힌 적은 없었다.
그러나 그도 집에서는 달랐다. 아무리 제일그룹의 손일선이라고 할지라도 결국 아내 앞에서는 한없이 작아지는 이 시대의 남편이었으니.
“현이 정도면 아주 뛰어난 사윗감이지.”
손일선의 평가는 객관적이었다. 강현은 대한민국에서 내로라하는 수재들조차도 이루지 못한 업적을 불과 약관도 되지 않은 나이에 이룬 청년이었다.
음악에 관심이 없다고 할지라도 강현이 이뤄낸 결과물들은 그야말로 클래식 역사에 획을 긋고 있었으니.
더군다나 VH컴퍼니를 비롯한 아버지와의 비사를 알고 있는 그였기에 강현이 더욱 대단해 보였다.
한낱 소년이라고 그를 얕잡아봤던 인물들이 어떻게 되었는가. 자신의 아버지가 했던 말이 사실이라면 강현은 이미 재계의 거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혜안이 깊었다. 사윗감으로서 부족할 리가 없었다.
“오늘 아버님도 약속이 있으셔서 안동으로 가셨고 유하도 늦게 온다니까, 오늘 우리 둘이서 오붓하게 시간을 보내볼까?”
임혜라의 노골적인 시선에 손일선의 목울대가 크게 출렁였다.
이 난관을 어떻게 피해 나가야 할까 싶은 찰나.
“다녀왔습니다!”
구세주가 등장했다. 눈에 넣어도 아깝지 않을 외동딸의 등장에 손일선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 * *
“어떡해―!”
손유하는 이불을 있는 힘껏 얼굴까지 끌어 올렸다. 마치 술을 마신 것처럼 얼굴은 아직도 화끈화끈한 기색이 역력했다. 할아버지가 고뿔에 걸린 게 아니냐며 걱정할 정도였으니 오죽할까.
“저질러 버렸어.”
아직도 입술에 닿았던 촉감이 생생하다.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푸딩을 한입 베어물었다고 하더라도 그만큼 부드러울 수는 없었을 것이다.
키스를 하는 동안 머릿속에는 누군가 종을 울리는 것처럼 청아한 새소리가 울려 퍼졌다.
가로등 불빛은 카메라의 스포트라이트처럼 그 순간을 영원토록 기억하게 만들었다.
“유하야.”
그때 유하의 방으로 그녀의 어머니 임혜라가 들어섰다.
“감기약 좀 들고 왔어, 혹시 모르니까 먹고 자자.”
임혜라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유하의 이마에 손바닥을 가져다 대었다.
“열은 그다지 없는데…….”
자신의 이마와 비교해도 그다지 열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유하의 얼굴은 금방이라도 터질 것처럼 달아올라 있었다.
뉴욕에서 비행기를 타고 오는 동안 너무 고생을 한 것은 아닐까 미안했다.
얼핏 다 큰 것 같아 보여도 아직 고등학생에 불과하다. 남들이 부러워할 정도로 총명하며 똑부러진 아이였지만 아직 임혜라의 눈에는 작디작은 애기처럼 보이는 딸이었다.
그런 아이를 머나먼 이국땅에서 홀로 유학생활을 하게했으니 내색은 하지 않아도 많이 외롭고 힘들 것이다.
“많이 아프면 엄마가 지금이라도 주 박사님을 부를까?”
“호호 할아버지요?”
“그래, 호호 할아버지라는 말 너무 오랜만이다.”
어렸을 적 유하가 왕회장만큼이나 따랐던 할아버지 주치의였다. 임혜라는 그 옛날을 떠올리며 잠시 분위기에 젖었다.
“아, 아니에요. 진짜 괜찮아요.”
유하는 평소답지 않게 당황하며 손사래를 쳤다. 그 모습에 임혜라가 눈을 가늘게 뜨며 손유하의 모습을 살폈다.
감기에 걸린 것치고는 목소리도 깨끗했으며 열기 하나 느껴지지 않았다. 반면 얼굴은 설익은 홍당무처럼 밑만 발갛게 달아올라 있지 않은가.
“그러고 보니 현이 만나고 왔다면서?”
유하는 속으로 뜨끔했지만 표정을 지워내고는 아무렇지 않은척 고개를 짧게 끄덕였다. 하지만 눈치가 빠른 임혜라가 그 찰나를 놓칠 리가 없었다.
“설마 현이가 너한테 뽀뽀라도 한거니?”
어머니.
죄송하지만 주객이 전도되었는걸요.
유하는 뒷말을 삼키며 자신의 어머니를 방에서 내보냈다.
그제야 확신에 찬 임혜라가 ‘했구나, 했어!’라며 짓궂은 장난을 치는 게 아닌가.
한편 모녀간의 대화를 엿듣고 있던 손일선 또한 합세해서 ‘뭐? 뽀뽀를 했다고?’라며 헐레벌떡 뛰어왔다.
어찌나 계속해서 장난을 치는지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제일그룹의 마나님이라고는 상상 못 할 정도였다.
한참이나 부모님과 시름을 했던 손유하가 다시 침대에 풀썩 걸터앉았다.
“오빠가 기억하겠지?”
다시 볼이 한층 붉어졌다. 분명 자신의 고백을 강현 또한 들었다. 술에 취해 있었지만 그 순간만큼 강현의 또렷한 눈빛은 잊을 수가 없었다.
자신의 물음에 입맞춤을 끝내고 강현이 나지막하게 대답하지 않았던가.
-유하야, 난 항상 네가 좋았어.
유하가 이불을 있는 힘껏 꽈악 말아 쥐었다. 세상 그 어떤 프러포즈보다도 달콤한 대사였다.
* * *
스피오 스피오 맴맴―!
강현은 매미 울음소리를 들으며 잠에서 깨어났다.
아직도 누군가 머리를 망치로 때린 것처럼 숙취가 심했지만 어젯밤의 기억만큼은 결코 잊을 수가 없었다.
한순간 정말 청년 시절로 돌아간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인생을 통틀어 그만큼 두근거렸던 적은 없었다. 혹시나 유하가 자신의 심장소리를 들을까 조마조마했을 정도다.
“현아, 오늘은 어디를 가니?”
어머니가 외출 준비를 마친 강현을 향해 물었다. 마음 같아서는 유하를 만나고 싶었지만 선약이 있다고 한 그녀였다. 결국 강현은 본래의 스케줄대로 움직이기로 마음먹었다.
“여의도에 잠시 다녀올 생각이에요.”
“여의도?”
“네, 거기서 만나야 할 분이 있거든요.”
강현은 차고에 주차된 애마에 시동을 걸었다.
여의도로 향하는 까닭은 간단했다. VH컴퍼니 본사를 방문하기 위해서였으니.
일전 VH컴퍼니 본사를 찾았을 때와 마찬가지로 머리에는 모자를 눌러쓴 뒤였다.
시간이 지나면 대중들의 관심이 사그라들 것이라 생각했지만 오산이었다. 오히려 팬클럽의 가입 숫자는 날이 지날수록 늘어났으며 제일 갤러리로 강현의 콘서트를 바라는 문의전화가 매일 쇄도하고 있었다.
하물며 언론에서도 하루가 머다 하고 강현의 이야기를 내보내는 판국이니 그야말로 정신이 없을 정도였다.
그나마 다행인 건 대부분의 기사가 국위선양과 관련한 칭찬 일색이라는 것 정도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여의도에 위치한 VH컴퍼니 데스크를 맡고 있는 김현아는 오늘도 어김없이 VH컴퍼니를 찾은 수많은 사람을 응대하고 있었다.
대부분이 선약을 잡지 못한 사람들이었는데 개중에는 김현아 또한 알고 있는 유명인물들도 있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VH컴퍼니 수뇌부와 미팅을 할 수 있는 권한은 그렇게 쉽게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오죽하면 여의도에 이런 말이 떠돌겠는가.
‘대통령을 만나는 것보다 VH컴퍼니 김상국 이사를 만나는 게 보다 어렵다.’
그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방금전 한 사람에게 축객령 아닌 축객령을 내렸다. 로비에서 하루 온종일을 기다려도 김상국 이사를 만나기는 힘들 것이다. 그때였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모자를 눌러쓴 사내였다. 왠지 모르게 낯이 익는 것은 착각일까. 그때 모자 속에 드리워진 사내가 피식 웃어 보였다.
모자의 기다란 챙 아래 드러난 사내의 눈빛과 미소에 김현아는 저도 모르게 눈을 크게 떴다.
“김상국 이사님께 강현이 기다린다고 좀 전해주세요.”
“네, 네! 지금 당장 연락드리겠습니다!”
그가 누구인지는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아무렴,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강현의 이름을 모르는 것은 거짓말이나 다름없기에.
하물며 일전에 이미 경험하지 않았던가. VH컴퍼니의 김상국 이사가 그를 아주 깍듯하게 모시는 것을.
“커피가 더 맛있어졌는데요?”
김상국이 내온 커피를 마시며 강현이 부연했다. 김상국이 머쓱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커피잔을 들어 보였다.
“대표님께서 루왁커피를 전면 금지하신 이후부터 저희 사내에서는 인스턴트 커피가 유행이랍니다. 이게 쉬워 보여도 만드는 사람 손맛에 의해서 완전히 바뀐다니까요? 웬만한 다방은 명함도 못 내밀 정도로 맛있는 커피입니다.”
김상국의 자랑이 과장이 아닐 정도로 입맛에 딱 맞았다. 강현은 커피로 입가심을 하고는 김상국을 찾아온 이유에 대해서 털어놓았다.
“사실 오늘 이사님께 드릴 말씀이 있어 찾아왔습니다.”
강현의 진지한 목소리에 김상국은 커피잔을 잠시 내려놓은 채 자세를 앞당겼다.
“앞으로 VH컴퍼니의 일이 아니라 다른 일을 해보시는 것은 어떠십니까?”
“예?”
뜻밖의 이야기였다. 설마하니 해고통보를 하기 위해서 찾아온 것일 줄이야.
김상국은 자신이 여태껏 강현에게 밉보인 것이 있나 싶어 곰곰이 생각했다. 하지만 자신의 성정상 상사가 싫어할 만한 일을 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제 말은 김상국 이사님께서 정계에 입문해 보시는 게 어떻겠냐는 의견을 여쭈는 것입니다.”
“정계라니요?”
“갑작스러운 일도 아니실 텐데요. 이미 왕회장님께도 몇 번이고 들으셨던 이야기가 아닙니까.”
“그래도 참, 제가 정계에 입문하기에는 워낙 정치를 잘 모르다 보니.”
“에이, 김상국 이사님이 대한민국 정계를 모른다면 그 누가 잘 알겠습니까. 제일그룹 전략기획실의 수장직으로 있을 때부터 웬만한 정계의 비사들은 전부 알고 계시지 않으셨습니까. 더군다나 VH컴퍼니의 이사로 계시면서 대외적으로 더욱 발이 넓어지셨을 테니 그야말로 제격이 아니겠습니까.”
김상국은 고민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도 그럴 것이 정계 입문에 관련된 얘기는 왕회장에게도 숱하게 들어왔었지만 그때마다 완곡한 거절의 뜻을 표하곤 했기 때문이다.
헌데 설마하니 강현의 입에서 정치권에 도전하라는 말이 나올 줄이야.
“저는 김상국 이사님을 정계의 도구로 쓸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그저 김상국 이사님이 원하시는 세상을 만드는 것을 옆에서 도와드리고 싶다는 생각뿐입니다.”
지난 삶 강현은 김상국이 국무총리로서 얼마나 많은 업적을 이뤘는지 알고 있었다.
강현이 물욕과 권력을 위해 정치권에 뛰어들었다면 김상국은 전혀 반대의 인물이었다. 제일그룹 장학생 출신이었지만 그의 성정과 가치관은 성군과 닮아 있었다.
“대표님, 부탁이 있습니다.”
“말씀하세요.”
“지금 당장 정계에 입문하라는 말을 듣기에는 제가 지닌 자리의 책임감이 큽니다. 저를 믿고 따라온 부하직원들도 있으니까 말입니다. 삼 년 동안의 유예를 주십시오. 그동안 VH컴퍼니를 맡아 일하며 정치권에 대한 제 자신의 가치관을 좀 더 고민한 뒤 결정하겠습니다.”
“당연합니다. 이사님이 당장 VH컴퍼니를 관두시게 되면 전문경영인을 찾느라 골치가 아픈 건 결국 저의 몫일 테니까요.”
강현은 3년이란 세월이 그리 길지 않을 것이라 확신했다.
지난 삶 강현이 마주했던 김상국 국무총리의 성정을 반추해 본다면 그는 타고난 정치인이었기 때문이다.
모르긴 몰라도 대한민국에서 감투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성인군자였으니.
“그나저나 대표님. 올해 VH컴퍼니의 투자수익이 얼마이신지 아십니까?”
“보고는 받았습니다만, 아무래도 제 손에 쥘 수 있는 숫자가 아니다 보니 큰 실감은 하지 않고 있습니다.”
“혹시 사업을 확장하실 계획은 있으십니까?”
강현은 고개를 저어 보였다. 물욕은 이미 버린 지 오래였다. VH컴퍼니 또한 삼촌들이 동주 화학을 망치는 꼴을 볼 수 없어 할아버지들이 시작하셨던 일이 아니었던가.
“앞으로 VH컴퍼니에서 벌어들이는 수익 중 일부로 재단을 설립할 계획입니다. 대한민국의 음지에서 살아가는 불우한 이웃들과 자신의 재능을 모른 채 살아가는 이들을 지원할 생각입니다.”
“그 말씀을 들으니 남은 삼 년 동안 좀 더 열심히 일해야겠는데요?”
“하하, 지금처럼만 해주시더라도 제가 그 돈을 다 쓰고 죽는 일은 없을 겁니다.”
김상국은 자신의 눈앞에 앉은 강현이란 남자가 얼마나 대단한지 알고 있었다.
동주 화학에서 물려받는 재산을 제외하고서라도 이미 재계 순위권에 이름을 올렸을 정도로 자수성가한 대단한 천재였다.
한편 강현은 모르고 있었다. 김상국이 남은 3년 동안 얼마나 VH컴퍼니의 명성을 드높일지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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