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mer King RAW novel - Chapter 50
049 남궁세가(4)
인정하지 마, 이 새끼야!
이 인간은 창피함을 몰랐다. 황보장성은 정말로 사돈을 맺어야 하나, 갈등이 깊었다. 대화할수록 피곤이 첩첩산중이었다. 길게 대화를 하지도 않았다. 짧은 대화인데, 왜 이렇게 피곤해.
“제 아들과 철호를 부탁드립니다.”
“대결을 볼 생각도 없군.”
“보나 마나 제 아들이 우승합니다.”
“제발 입조심 좀 하게.”
황보장성이 보기에 무진은 생각 없이 사는 사람의 전형이었다. 뒤를 돌아보지 않는 자 같았다. 화약고를 가문으로 데리고 들어가는 건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그러나 되돌리기에는 보는 눈이 너무 많았다.
‘의도한 거라면?’
황보세가를 전면에 내세워 함부로 건드리지 말라는 의도가 담겼다면.
“명성루의 오리 훈제구이가 그렇게 맛있다더군요. 어이쿠, 이런! 군침이 돌아서 못 참겠네.”
의도가 있긴 개뿔!
이 인간한테 뇌에 주름이 있기를 바라선 안 되었다. 그냥 무뇌를 고스란히 인증해 주었다.
“철호야.”
“왜요?”
“왜긴, 억울하면 강해져라. 약한 놈이 이를 갈아 본들, 네 이빨만 상해.”
“절대 당신 뜻대로 되진 않을 겁니다.”
“당신?”
“아저씨!”
아저씨도 기분이 나쁘긴 한데, 맞는 말이라 일단 참았다. 하물며 듣다 보면 피가 되고, 살이 되고, 투지가 생기는 훈계였다.
“우리 아들 만나기 전에 떨어지지 마라.”
“사강에서 붙을 겁니다.”
“어쭈, 사강 이전은 다들 개밥인가 보구나! 하긴 널린 게 개방 거지에 도토리들이지. 넌 밤톨은 되겠다.”
“누가 그렇다고 했습니까.”
철호의 반박은 늦어 버렸다. 무진의 언성이 커졌을 때 주변의 시선은 싸늘하게 식어 있었다. 개중 사강 이전에 철호와 붙어야 하는 대전 상대는 투기를 불태웠다. 이로써 철호는 붙는 상대마다 각오를 다져야 할 것이다.
‘네 나이 때, 적은 많을수록 좋지.’
-자기 일 아니라고 막 말하는군.
‘미래의 철왕이잖아. 철은 두드릴수록 강해지는 법이야.’
-그러다 뒈진 놈들이 더 많지.
‘설마?’
-미래는 바뀌는 법이야.
‘언제는 운명이라며.’
무진은 철왕이 된 이후에 철호를 봤다. 당연히 그 이전에 어떤 고초와 시련을 겪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철왕의 성향만은 알고 있었다. 그처럼 앞뒤 꽉 막힌 벽창호가 되려면 보통 시련으론 어림도 없었다. 아마 뒈지기 직전, 즉 생사의 기로를 여러 번 겪었을 것이다.
현재로선, 완성되지 않은 철왕을 단련하려면 인위적으로 시련을 만들어 줄 필요가 있었다. 특히 비교당할수록 얘가 힘을 발휘하는 성향이었다.
시기와 질투의 왕, 그 이름은 바로 철왕이었다.
‘내 아들이 호적수가 되어 줄 거다.’
재능만 놓고 보면 철호가 아들보다 우위지만, 아들에겐 자신이 있었다. 영약과 벌모세수로 재능을 넘어섰다고 봐야 했다. 그리고 이번 소호채 토벌이 도움이 되었다.
‘확실히 많이 죽여야 성장해.’
사람을 죽이지 않은 무인은 온실 속의 화초에 불과했다. 많이 죽일수록 무공과 성향은 단단해진다. 그렇다고 아무나 막 죽이고 다니라는 뜻은 아니다. 죽을 놈만 확실하게 죽이면 된다.
다 죽이면 그땐?
무림은 그런 놈들이 많아서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죽여도, 죽여도 계속 수급이 잘되었다.
-정파에 적을 두었으면서 사람을 죽이라니, 네놈에겐 전왕이 아니라 혈왕이 어울린다.
‘활인은 어렵거든. 그리 말하는 놈치고 오래 사는 놈을 못 봤어. 나는 내 아들이 오래 살기를 바라거든.’
사람을 살린다.
활검, 활도, 활권.
말은 좋다.
누구나 바라는 이상향이다. 그러나 머뭇거림의 증표다. 사람을 살리려는 간절함이 냉철함을 빼앗는다. 그러면 다 죽는다. 결국, 살리지도 못하고 잃기만 한다. 그런 놈들이 적지 않다. 완벽해질 때까지는 때론 이기적이어야 했다.
살아야 다음을 기약하고 협을 펼치지. 죽고 나면 협이고 나발이고 말짱 도루묵이잖아.
활인은 뛰지도 못하는 애송이가 지향해선 안 되는 영역이다. 비겁하다고? 잔인하지만 현실은 비겁한 놈들이 더 오래 산다.
“송호문의 강태진과 백선문의 주정산은 대회장으로 나오기 바랍니다.”
아들의 대결이 시작되자 상념을 멈추었다.
-하긴 살아남는 자가 강자이긴 하지.
‘맞는 말이야.’
죽어 버린 강자, 그게 어떻게 강자야! 끝까지 살아서 자기 길을 가는 자가 진정한 강자였다.
창피함은 한순간이거든.
대회장의 열기는 가열되어 가지만, 집중도는 시합마다 다르다. 이는 당연했다. 시합에 출전하는 소년의 배후가 무력을 판가름하기 때문이다. 문파의 위명이 높을수록 관심의 강도가 짙어졌다.
송호문.
사실 잘 모른다. 같은 안휘성에 적을 두고 있지만, 어디에 붙어 있는지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 청양? 현의 이름은 알아도, 어떤 문파가 얼마나 오랫동안 자리했는지 토박이들 빼고는 잘 모를걸.
오히려 백 년을 넘기고도 명성을 날리지 못했다면 어지간한 문파로 볼 수밖에 없다. 백 년 동안 상승의 무인 하나 제대로 배출하지 못했다는 의미가 되니.
송호문이 호명되는 순간 관심도가 떨어져야 하는데, 의외로 모두의 이목을 끌었다.
원인은 두 가지였다.
현악검의 패배와 황보세가.
대체 어떤 문파이기에 제갈세가를 물 먹이고 황보세가와 연을 맺었을까? 궁금증이 커져 가는 가운데 송호문의 참가자가 비무대 위에 올라섰다.
육방의 구조로 이루어져 있는 대회장 안에 높은 턱을 만들어 귀빈석을 마련했다.
귀빈석에 앉은 면면은 강호에 적을 올린 자라면 알아볼 수 있는 무인들이었다.
하북팽가 호아도 팽위경.
사천당가 귀왕수 당백기.
제갈세가 현악검 제갈군.
황보세가 백전권 황보장성.
남궁세가의 검패는 최상석에 앉아 있다가 고검(固劍) 남궁진에게 진행을 맡겼다.
소룡대회는 후기지수의 축에도 끼지 못하는 편이다. 나이가 십육 세로 제한되어, 삼십 세 전후의 전성기와 달리 잠재력을 측정하는 대회였다. 그럼에도 차후 무인의 재목이 될 인재를 배출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그들의 시선은 명확하다.
보여 봐라.
재주를.
확인해 주마.
제갈세가의 현악검은 주변의 시선이 맘에 들진 않았지만 피하지 않았다. 그가 자리를 뜬다면 속 좁음을 인정하는 꼴이 된다. 거지 같은 상황이었다. 자신의 허물을 덮으려면 송호문이 분전해야 했다. 허무하게 탈락해 버리면 모두의 웃음거리로 전락할 거다.
빌어먹을 현실이었다.
‘저 망할 새끼!’
제갈군이 화가 나는 이유는 또 있었다. 자신을 안절부절못하게 만들어 놓은 당사자는 자리에 마련된 음식을 느긋하게 처먹더니 자고 있었다.
자신감일까? 아니면 놀리는 걸까?
둘 다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평정심이 흔들렸다. 제갈군은 솟구쳐 오르는 노기를 간신히 다스렸다.
‘떨어지지 마라!’
떨어지면 곤란했다. 반드시 이기고 올라가야 자신과 세가의 체면을 세울 수가 있었다.
“시합을 시작합니다!”
둥둥둥!
북이 연속으로 울렸다.
아버지의 활약으로 원하지도 않은 주목을 받은 태진이었다. 시합장으로 올라가는 동안 무수히 많은 시선은 물론, 여러 말들을 들었다.
‘부담을 덜어 줘도 모자랄 텐데.’
아버지란 작자가 부담감을 팍팍 쌓아 주었다. 원래 이러면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나, 아버지 밑에 있다 보니 간덩이가 많이 부은 모양이다. 첫 실전에서도 그렇고, 그다지 떨리지 않는다. 아버지로 인해 철석간장(鐵石肝腸)의 심장을 얻었다.
병 주고, 약 주고.
절대 약만 주지는 않았다. 약을 줘도 간혹 독약을 주곤 했다. 그런 모진 시련을 이겨 낸 현재의 나는 흔들리지 않았다. 그래, 좋게 생각하면 잘 되라는 아버지의 깊은 뜻……은 개뿔!
드르렁, 드르렁!
코를 골며 자는 아버지, 주변에선 아들의 긴장을 풀어 주려고 일부러 애를 쓴다고 오해할 테지만.
아버지는 잔다면 잔다!
아버지가 보이는 모습을 오해하지 마라. 그냥 보이는 그대로다. 다른 계산이나 잔머리가 깔려 있다는 오해는 금물이었다. 그런 오해가 쌓이면 전혀 다른 계산이 나와 버린다.
‘……설마.’
노렸나?
그렇다. 아버지는 아들인 나마저도 헷갈리게 만드는 인간이다. 어떤 모습이 실체인지 아는데, 안다고 안심할 때 뒤통수를 경쾌하게 후려치곤 했다.
소호채 토벌은 확실히 충격적이었지. 아버지가 그렇게까지 강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었다.
그래서 좋냐고?
앞날이 컴컴하다.
“주변에서 관심 좀 보인다고 우쭐해하지 마라!”
“예, 예.”
아차, 무관심했다.
관심에서 멀어진 상대, 백선문의 주정산은 날이 잔뜩 서 있었다. 이 대회를 기점으로 자신의 이름을 알리고, 문파의 후계를 굳건히 하려는 주정산으로서는 모두의 관심을 받는 태진이 거슬렸다. 저 관심은 자신에게 쏟아져야 마땅했다.
더욱이 송호문이란 간판은 백선문에 비하면 격이 떨어졌다. 운이 좋아 현악검을 이겼을 뿐이고, 황보세가와의 연줄이 없었다면 올라오지도 못했을 것이다.
주정산은 이 모든 거짓을 단번에 걷어 내고 저 녀석이 누리는 관심을 가져오리라 자신했다. 실제로 저 녀석의 나이는 대회에 참가한 출전 상대 중 가장 어리다. 삼 년의 세월은 결코 작지 않은 차이였다.
“간다!”
주정산은 백선문의 공식 검공, 백천검법을 펼쳤다. 초식은 백천일섬을 펼쳤다. 시작과 동시에 속검을 써서 신경을 분산하고, 주도권을 잡은 후 중반식 백천만겁으로 끝장을 내기로 했다.
그렇게 계획을 세웠는데…….
퍼어엉!
쿠웩!
비명이 터지고 비무대 밖으로 나가떨어졌다. 바닥을 내리구른 주정산은 의식을 잃었다.
와아아아아!
함성이 울려 퍼졌다.
“단 일검에 끝났잖아! 고놈 참 물건이네!”
“누가 호부 밑에 견자라고 했어? 저런 견자면 매일 업고 다니겠다!”
“좀 냉정해지자. 일회전에 불과해! 상대는 애송이잖아!”
“여기 오른 애들 전부 지역 대회에서 순위권 안에 든 녀석들이야.”
“백선문은 좀 하는 걸로 아는데!”
단 일합의 승리로 태진의 주목도는 높아졌지만, 평가는 반반이었다. 일회전 대결 대부분은 짧게 끝났다. 길게 끌수록 다음 대결이 어려워지기도 하고, 실력 차가 크기도 했다.
하나, 같은 시합을 봐도 안목이 다르다. 관중석의 상석에 앉아 있는 자들의 눈은 다른 사람들의 눈보다 정확했다.
‘반응속도가 빠르군.’
‘반격이 무리 없이 자연스러워.’
‘호흡이 고른 걸 보니 기본에 충실하군.’
‘과연, 자신할 만해.’
오대세가의 평가는 아까보다 높아졌다. 그러나 가문의 후예와 비교해 한 수 아래로 보았다. 상대가 워낙 약했고, 차이가 크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고수와 하수의 격차는 그만큼 확연히 드러난다.
꽈아앙!
태진의 결과를 곱씹기 전, 대결이 끝났다.
쿠다다당!
바닥을 구른 것은 청송산장의 이소현이었다. 예쁘장하게 생긴 소녀가 검을 휘두르기가 득달같이 무섭게 달려든 야수는 냅다 주먹을 내질렀다. 복부를 내어 준 이소현은 ‘헉!’ 하는 비명과 함께 몸이 붕 떴고, 곧 바닥을 뒹굴었다.
“남철호 승!”
나도 일합이다!
환호를 기대했지만, 정적이 흘렀다.
“잔인한 놈!”
“여자도 가차 없네!”
“누구 자식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