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ersatile herald genius RAW novel - Chapter 197
197화 외전. 공동 작업 (1)
* * *
민예와 예준의 일상은 아침 7시부터 시작되었다.
“너 언제까지 잘 거냐?”
“5분만 더…….”
“그러다 전에 지각했던 거 생각 안 나?”
이불을 빼앗아 가려는 예준.
민예는 이불을 사수하려 애쓰다가 결국 빼앗기고, 하는 수 없이 침대에서 일어났다.
“아…… 더 자고 싶은데.”
결국 포기하고 눈을 비비고 일어나곤 했다.
간단한 목욕을 하고 머리를 말리고 교복으로 갈아입고는, 1층 식당으로 향했다.
“잘 먹겠습니다!”
“잘 먹겠습니다.”
휴대폰으로 뉴스를 읽으시는 아빠.
앞치마를 두르고 음식을 차려주는 엄마.
언제나 그렇듯 평온한 풍경이었다.
테이블에는 너비아니나 돌김, 시저샐러드 등, 양식과 한식이 섞여 있는 구성.
엄마는 일류 요리사 수준은 아니지만, 예전에 처음 요리를 할 때보다는 훨씬 솜씨가 나아져서 먹을 만했다.
아빠는 뉴스를 읽다가 갑자기 뭔가 떠오른 듯 말했다.
“민예야, 오늘 웹툰 제출하러 가는 건 잊지 않았지?”
“아. 그거요? 네. 학교 끝나자마자 갈 거예요.”
예준의 소설을 웹툰화하는 작은 프로젝트. 완성된 원고를 레이버 웹툰 본사에 가져가 보여 주는 일은 어느샌가 우리의 일이 되어 있었다.
“미리 얘기는 해 두었으니까, 임형택이라는 사람을 찾아 가면 돼.”
“그냥 아빠가 보여주고 계약하면 안 돼요? 어차피 보호자 동의가 필요할 텐데.”
“전에도 얘기했지만 자기 작품을 매력적으로 피칭하는 것도 프로한테는 필수적인 능력이야.”
“알았어요. 하면 되잖아요. 그럼 확실히 유럽 여행 가는 거 허락해 주시는 거죠? 한 달 동안?”
“런칭이 무사히 결정되면 약속은 당연히 지키지.”
“알았어요. 맡겨 두세요. 어려울 일도 아닐 거 같고. 이 세련된 작화를 보기만 하면 바로 오케이하겠죠.”
“응. 자신감이 넘치니 다행이네.”
식사를 마치고 민예와 예준은 마당에 주차된 검은색 벤츠에 올라 탔다.
차문을 정중하게 열어 주는 정준 아저씨. 40대 중반이 넘은 그는 예나 지금이나 부잣집 집사를 보는 듯 예의 발랐다.
“오늘은 좀 일찍 나오셨군요.”
“네. 요 잠꾸러기를 깨우느라 고생 좀 했죠.”
민예를 손가락질하며 말하는 예준.
흥 하고 코웃음을 치고는 민예는 차에 올라 탔다.
둘은 사이가 썩 좋지 않았다.
차를 타고 갈 때 가끔 말을 섞기는 하지만, 대부분은 단답으로 끝나고는 했다.
“무슨 책 읽어?”
“샤를 보들레르. 악의 꽃.”
외국 시인의 시집을 읽는 예준의 모습을 볼 때마다, 민예는 고개를 젓곤 했다.
도저히 이해를 할 수 없는 녀석이라고.
민예는 대신에 정준과 얘기를 나누는 것을 좋아했다.
20년이 넘게 엄마의 수행 기사로 일해 오면서 많은 썰을 알고 있었기에.
아빠가 미국에서 벌였던 많은 일들, 며칠을 들어도 질리지 않는 것이었다.
엄마 아빠가 로스엔젤레스에 살던 시절 썸을 타던 이야기.
옆집 살던 여자가 현재인 할리우드 탑 여배우인 샐리 코스트너였다는 둥, 데지니와 함께 일하며 주림픽을 만들었다는 이야기나, 마벨의 스테인 리는 물론 지금은 감독으로 대성공한 로대주 둥.
아버지가 쌓아 온 인맥은 듣기만 해도 어메이징했다.
‘와. 대박이다. 그렇게 안 보이는데 아빠가 그렇게 핫했단 말이야?’
놀라워 하는 민예에 비해 예준은 시큰둥한 편이었다.
연예인이나 아이돌 이런 얘기에는 항상 그랬다.
‘힙스터 자식.’
아빠에 대한 얘기를 듣고 있으니, 어느새 차는 가연 예고에 도착했다.
지금은 설립된 지 거의 30년이 넘는 명문 예술고등학교.
학비가 워낙 비싸 예전에는 거진 집 좀 사는 애들만 다녔다고 하지만, 아버지가 거액의 돈을 재단에 기부한 이후 차상위계층 애들도 장학금을 받으며 다닐 수 있는 곳이 돼 있었다.
“그럼 오늘도 좋은 학교 생활 보내시죠. 예준 도련님. 민예 아가씨.”
“네. 갔다 올게요~”
시집을 손에서 놓지 않는 예준과 함께 주차장을 나오는 민예.
자전거를 타고 오는 한 여자애를 발견했다.
갈색으로 염색한 긴 생머리를 휘날리는 얌전한 얼굴의 여자애.
“희진아~.”
김준희 작가의 딸로 유명한 김희진이었다.
입학식 때 처음 보고 얘기를 먼저 건 이래 민예의 단짝 친구였다.
“그럼 먼저 간다.”
책을 읽으며 먼저 비탈길을 올라가는 예준.
녀석을 보내고 민예는 희진과 함께 학교 본관으로 향했다.
민예와 희진. 모두 어머니를 닮아서인지 학교 안에서는 미인으로 유명했다.
그래서 주변의 시선이 쏟아 지고는 했지만 민예에게는 익숙한 일이었다. 희진은 얌전한 아이라 아직 불편해 하고 있는 것 같기는 했지만.
1학년 1반 미술반.
자리에 앉아 짝꿍인 희진과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고 있을 때, 희끗희끗한 머리를 한 중년 여교사가 들어왔다.
김윤정.
이 학교에는 거의 20년을 근무해 온 베테랑 미술 교사.
정년퇴직까지는 얼마 남지 않은 분이었다.
가차 없는 과제 감평 시간을 혐오하는 학생이 많기는 했다.
엄마 말로는 그 정도면 많이 약해진 편이라는 얘기가 있긴 했지만.
‘그럼 20년 전엔 대체 얼마나 심했던 거야?’
뭐. 이런 저런 말이 많기는 하지만 눈썰미는 좋은 분이었다.
가끔 자기한테 말을 걸어오며 귀찮게 할 때만 빼면 말이다.
“민예야, 부모님은 요즘 어떻게 지내시니?”
“늘 비슷하긴 하죠. 아. 맞다. 쌤한테 안부 좀 전해 달라고 하시더라고요“
이렇게 말 한마디 해 주는 것만으로 굉장히 좋아하셨다. 부모님의 담임을 맡았었다는 것 자체를 평생의 자랑거리로 생각하는 느낌이었다.
1교시 미술 시간.
“오늘 미술 시간은 초상화 그리기를 할 건데, 다들 준비물은 빠짐없이 가져왔지?”
“네!”
학생들은 무리 지어 미술실로 이동했다.
민예의 짝은 물론 희진이었다.
“먼저 모델 좀 부탁해도 되지? 금방 끝내고 바로 바꿔 줄게.”
“응.”
민예는 자신 있는 얼굴로 도화지에 선을 긋기 시작했다.
민예는 한 가지 유용한 재능을 갖고 있었다.
바로 왠만한 것은 러프 스케치 없이도 바로 그려 낼 수 있다는 것.
복잡한 그림도 머릿 속에서 구상하는 데 시간을 좀 들이면, 스케치 없이 그리는 것이 가능했다.
거의 5살 때부터 매일 같이 그림만 그려 왔던 덕분에, 자연스레 터득한 능력 쯤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고작 10분 만에 과제를 끝내 버리는 민예.
주변에서는 늘 그렇듯 탄성이 흘러 나왔다.
“헐…… 민예 벌써 다 그렸어?”
“진짜 그냥 쓱쓱 그리네?”
“와. 대박. 속도 뭐야…….”
명암, 질감까지 디테일까지 다 챙긴 괜찮은 초상화.
이제 막 러프 스케치를 끝낸 애들이 보기에는, 당연히 놀라울 수밖에.
민예에게는 별 감흥이 생기지 않을 정도로, 주변의 부러운 시선에는 익숙해져 있었다.
* * *
하루 수업을 끝내고 1학년 3반으로 향했다.
아무리 싫어도 예준과 함께 레이버 웹툰 본사에 찾아 가야 했으니까.
아빠는 자꾸 예준이랑 사이 좋게 지내라고 하긴 하는데…….
그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어릴 적부터 늘 그래 왔다.
각자 부모님한테 칭찬 받는 걸 볼 때마다 이상한 경쟁심이 싹 텄다고 할까. 그러다 보니 어느새 초등학생 때부터 이어진 라이벌 같은 것이 되어 있었다.
“응? 벌써 갔다고?.”
하지만 1학년 3반으로 가보니 이미 하교하고 없다는 얘기가 들려왔다.
혹시. 얘. 나 버리고 혼자 차 타고 간 건 아니겠지?
‘치사한 놈. 그러면서 혼자 계약 따냈다니 뭐 어쩌니 개소리 하는 거 아냐?’
부리나케 계단을 내려가고 있을 때 멀리서 피아노 소리가 들려왔다.
사람의 발길을 잡아 끄는 감미로운 피아노 소리다.
‘음악실에 간 거였구만.’
녀석은 가끔 같은 반 학생에게 피아노 과외를 해 주곤 했다.
어떻게 하면 피아노를 잘 치나 고민하는 학생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면서.
음악실 앞으로 가니 예준의 모습이 보였다.
집에서는 귀가 닳도록 들은 쇼팽의 야상곡.
긴 손가락으로 멋드러지게 치고 있다.
옆에서는 머리 긴 여학생이 예준을,
선망에 가득 찬 얼굴로 쳐다보고 있었다.
분명 피아노보다 다른 욕심이 있어서 과외해 달라는 게 분명하다.
뭐……. 그렇게 사귀든 말든 내가 신경 쓸 건 아니지만.
민예는 음악실 문을 힘껏 열고 들어가 외쳤다.
“야. 피아노 그만 치고 나와.”
“응? 오늘은 과외 때문에 30분 늦을 거라 얘기 안 했나?”
“됐고 그런 건 나중에 하고 가자. 아니면 따로 판교까지 버스 타고 오던지.”
“알았어. 성질 급하기는…… 민지야. 미안해. 과외는 내일로 미뤄도 될까?”
“응. 당연하지. 잘 갔다와~.”
여학생은 수줍은 얼굴로 말했다.
예준은 학교에서 굉장히 인기가 많았다.
키 180센티에 엄마의 이목구비를 빼다 닮은 이 녀석.
객관적으로 봤을 때 여학생들한테 인기는 많을 만했다.
둘은 정준의 차에 타고 곧 바로 판교로 향했다.
* * *
판교. 레이버 웹툰 본사.
레이버 웹툰은 전세계 웹툰 업계를 선점함으로써,
글로벌 컨텐츠 회사가 되어 있었다.
덕분에 지금은 만화라고 하면 한국의 웹툰이 가장 규모가 컸고, 일본의 출판 만화가 그 뒤를 따르는 실정이었다.
또한 국내 웹소설 원작 웹툰들이 대거 해외에서 히트를 치면서, 케이팝보다도 훨씬 높은 매출을 기록하고 있었다.
만화 한류의 첨병인 레이버 웹툰 본사. 기존의 본사 빌딩을 증축해 지금은 50층이 넘는 으리으리한 빌딩을 사용하고 있었다.
바로 리셉션 데스크로 향했다. 첨단 IT 회사의 자회사 답게 리셉션 데스크에는 도우미 언니 대신 음성 인식 로봇이 자리하고 있었다.
“임형택이라는 사람을 찾아가라고 해서 왔는데요.”
“임형택 레이버 웹툰 사업부장님 말씀하시는 건가요?”
“네. 맞아요.”
“예약 일정을 확인하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시기 바랍니다…… 확인했습니다. 스크린에 표시되는 화면 가이드에 따라 이동을 부탁 드리겠습니다.”
둘은 곧 바로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임형택의 사무실이 있는 36층으로 올라갈 때였다.
엘리베이터가 중간에 멈추면서 낯익은 중년 여성이 안으로 들어왔다.
“어? 너는…….”
“김준희 작가님!”
김준희 작가는 20년 넘게 레이버 웹툰에서 일해 온 베테랑 작가였다.
아무래도 편집자와 미팅을 위해서 방문하셨던 모양이다.
김준희 작가는 민예에게 있어 일종의 우상이었다.
일류 웹툰 작가로서 미녀 작가로서 한 시대를 풍미하신 분인 것도 있지만, 미녀지상주의라는 고전 명작을 굉장히 재밌게 읽었기 때문이었다.
“요즘 신작이라도 준비하고 계신가요?”
“뭐. 그런 셈이지.”
“나오면 꼭 읽어 봐야 겠네요. 분명 대작이겠죠?”
“그래. 꽤 야심작이니까 기대해 줘.”
준희는 민예를 기특하게 생각했다. 아버지 작품보다도 자기 웹툰을 훨씬 재밌게 읽었다고 얘기한 걸 들은 순간부터 말이다.
웹툰에 대한 열정을 보면 자신의 학창 시절을 떠올리기도 했다. 그래서 친구의 딸이긴 하지만 자기 딸처럼 웹툰에 대한 많은 것을 가르쳐 주고는 했다.
“근데 옆에 있는 남자애는…… 누구?”
“예준이에요. 제 쌍둥이 남동생“
“아하…… 훤칠하게 생겼네. 엄마 많이 닮았다는 얘기 자주 듣지? 반가워.”
“반갑습니다. 아버지한테 얘기 많이 들었습니다.”
“무슨 얘기를 했으려나? 좀 신경 쓰이긴 한데 아무튼 반가워. 오늘은 둘이서 무슨 일로 온 거야?.”
둘은 오늘 오게 된 용건을 털어 놓았다.
“원고 투고라……. 옛날 생각나네. 좋은 결과가 있기를 바랄게.”
“네. 감사합니다.”
엘리베이터는 36층에서 멈추었다.
둘은 복도를 지나 사업부장 임형택의 방으로 향했다.
복도 벽에 도배돼 있는 인기 레이버 웹툰 표지를 바라 보면서.
기연84 작가의 퇴사왕은 물론이고 주호 스님의 갓과 함께, 김준희 작가의 미녀지상주의 등등은 물론이고 아버지가 작업한 웹툰도 다수 있었다.
“무슨 일로 오셨나요?”
젊은 여비서가 휴대폰을 하다 말고 질문을 던져 왔다.
안내 데스크와 달리 여기는 로봇이 아니라 사람이었다.
용건을 얘기하자 바로 사업 부장의 사무실로 안내해 줬다.
“이쪽입니다.”
처음 들어가 보는 사업부장의 사무실은 굉장히 특이한 편이었다.
수달인지 뭔지 모를 파란 색 만화 캐릭터 피규어가 잔뜩 전시돼 있는 게 보였다.
‘혹시 저 사람이……?’
중역 의자에 앉아 VR 고글을 쓴 채 혼잣말을 하는 남성이 보였다.
무슨 VR을 하는 지는 모르겠지만 손님이 온지도 모르고 몰두하고 있는 모습이다.
“도라이몽 도와줘. 퉁퉁이가 자꾸 괴롭혀~.”
“…….”
“도라이몽~.”
“…….”
“응? 손님?.”
천천히 VR 고글을 벗는 중년 남자.
자신을 한심하다는 얼굴로 내려다보는 민예와 예준을 발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