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is a dimensional bag RAW novel - Chapter 200
200화
천마가 등선한 지도 어언 50년이 지났다. 그리하여 혈마의 준동이 일어났던 때는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
마계, 마왕성에 봉인했던 잊힌 망령을 풀어 줬다는 누명을 쓰고 강호에 숨어 들어왔던 두 마계 대공은 그제야 전면에 나서기로 결심했다.
“천마가 죽은 것은 확실하겠지?”
“클클클, 놈의 행적이 끊어진 세월이 50년이네. 또한 놈은 필멸자인 인간이야. 벌써 죽고도 남았을 시간이고.”
교만의 벨페고르, 탐욕의 마몬, 마계 대공으로서 전성기를 누렸던 그때와는 달리 지금은 굉장히 초라한 형색. 그들이 현재 강호에서 가진 직업은 객잔의 주인이었다.
“쯧쯧, 너무나 오래 기다렸어. 지금 이 꼴이 뭔가? 한군데 정착도 못하고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연명이나 하고 있으니.”
“무림맹 놈들이 우리 객잔을 흑점이라 부르더군. 인육을 파는 식당이라며.”
“흐음, 뭐 반은 맞고 반은 틀리지. 하급 뱀파이어 생산을 위해선 어쩔 수 없으니.”
혈강시의 난 이후로 무림맹과 관부는 강호인 실종 사건에 대해 극히 예민한 상태, 흑점의 존재를 알고 있지만 찾을 수 없었다.
벨페고르와 마몬이 강호 전역을 떠돌아다니며 흑점의 개업과 폐업을 반복하고 있었으니까.
태생이 고위 마족들, 벨페고르는 진혈의 흡혈귀 공작이고 마몬은 능수능란한 흑마법의 종주였다.
“억울함을 풀 때가 왔어.”
“그래, 우리 때문에 망령이 풀려났나? 물론 봉인을 풀려고 시도한 것은 사실이지만.”
“클클클, 그러고 보면 그 혈마라는 놈도 대단한 새끼야. 어떻게 봉인을 풀어 신을 여기까지 데려올 생각을 했지?”
“혈교의 실전된 주술도 되살려야 해.”
“왜? 다시 마계로 돌아가려고?”
“어림도 없는 소리! 마신의 분노를 무슨 수로 감당하려고? 쓰임새가 많다는 의미지.”
마계에서 강호로 넘어오느라 희생한 마계 대공으로서의 권능, 혈교의 주술이라면 어느 정도 회복이 가능할 터.
애초부터 벨페고르와 마몬의 목적은 강호에 새로운 마계를 창조하려 한 것이다.
“신탁자가 다시 올 일은 없겠지?”
“이미 100년이 지났지 않나. 천마도 사라졌고.”
그놈의 신탁자!
천마도 그렇다. 인간일 때도 완전한 마계 대공이었던 메피스토를 찢어 죽인 놈이 바로 천마 아니던가!
“그럼 흑점은 접고 전면에 나설 준비를 하지. 슬슬 권속들을 대량으로 늘릴 필요도 있고.”
“너무 급하면 안 돼. 여전히 마교와 무림맹은 건재하니.”
“흥, 그깟 혈강시들에게도 휘청거리던 강호인데 내 아이들을 감당이나 할 수 있을까?”
“그렇긴 하지. 그럼 적당한 문파 하나 골라서 작업을 시작하세나.”
진혈의 뱀파이어 벨페고르, 자신이 지배하는 흡혈귀 권속들은 혈강시에 비할 바가 아니다. 거기에 간교한 마몬의 흑마법까지 가미되면?
강호 지배는 시간문제, 그리하여 새로운 마계가 이곳에 건설될 것이다.
* * *
운호가 남겨 뒀던 AI 위성의 임무는 두 개다.
첫째는 망령의 흔적과 혈교의 잔당이 아직 남아 있는지 감시하는 것, 두 번째는 회수하지 못한 한 개의 ID 워치를 찾아 기능을 정지시키는 일.
100년이 지났다.
망령은 소멸된 것이 확실하고 혈교의 잔당도 나타나지 않고 있다. 그러나 ID 워치의 행방은 여전히 오리무중.
그러다 특이점을 발견해 냈다.
혈강시들은 아니지만 그와 비슷한 존재들이 강호에 하나둘씩 늘어나고 있는 것, 놈들은 바로 뱀파이어들이었다.
AI 위성의 데이터베이스엔 뱀파이어에 대한 항목이 저장되어 있었다. 좀 더 조사해 보니 원인을 찾아냈다. 강호에 있어서는 안 될 존재들이 존재가 있었다.
마계 대공들이었다. 망령의 신과 관계되었다고 알려진 고위급 마족들, 그들이 흡혈귀 양산의 주범이었다.
-흡혈귀와 마계 대공들을 강호 스스로 감당해 낼 수 있는지 판단.
AI 위성은 인공 지능을 통해 모든 경우의 수를 대입했다. 그리고 결론을 내렸다.
-위험! 천마가 사라진 현재 무림의 힘만으로 무리, 최악의 경우 강호 전멸.
혈강시보다 더 무시무시한 존재들, 뱀파이어들은 상위 존재에게 무조건 충성하고 흡혈을 통해 동족을 늘린다. 무림 고수가 뱀파이어가 된다고 생각해 보자. 악몽이 도래할 터, 강호의 무공만으로는 부족하다.
-개입 여부 판단.
사실 강호가 전멸하든 말든 AI 위성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무림인들이 서로 치고받고 싸우든, 변방과의 전쟁이 일어나든, 그건 강호의 몫이다.
하지만 이번 건은 경우가 조금 다르다.
마스터가 자신에게 망령과 혈교를 감시하라고 명령했던 이유가 뭘까?
이계의 존재 때문에 강호의 책임이 아님에도, 억울하게 고통받아야 하는 강호의 백성들을 구원하고자 했던 마스터 정운호의 측은지심.
그리하여.
-적극적인 개입 필요.
능동형 AI 위성은 이계에서 건너온 마족들을 처단하기로 결정했다.
이제 남은 것은 방법인데…….
현재 강호에 남은 위성은 단 하나.
그것만으로 늘어나는 뱀파이어들을 상대하기엔 부족한 감이 있다. 레이저와 금속 막대기의 공격만으론 한계가 뚜렷하다.
능동형 AI 위성은 대리인이 필요했다. 자신의 의도대로 움직여 줄 인간이 말이다.
하지만 강호라는 세상은 여긴 컴퓨터도, 전자 기기를 사용하는 과학 문명의 세상도 아니다.
어떻게 인간과 접촉하지?
* * *
저 멀리 해동 출신 왕운은 몰락한 왕가의 후손이었다.
왕씨 천하가 무너지고 이씨 가문이 해동 반도의 새로운 지배 세력이 되면서 남아 있던 왕족들은 노비로 격하되거나 아니면 죽임을 당해야 했다.
더 이상 이 땅에선 살아갈 수 없다.
그래서 왕운은 중원으로 도망가기로 결심했다. 애초에 왕가의 재건 같은 건 꿈도 꾸지 않았다. 이미 이씨 왕조는 국가의 지배 체제를 공고하게 세웠기 때문이다.
새로운 땅에서 편하게 살아야지.
‘국경을 넘어야 하는데…….’
그러나 그것마저도 여의치 않다.
몰락한 왕가의 후손을 철저하게 발본색원하려는지 경비가 삼엄하다.
결국 왕운은 장백산을 넘기로 했다. 험한 지형이라 그런지 상대적으로 경계가 느슨한 지역, 그쪽으로 넘어가면 된다.
강호로 가는 긴 여정에 오른 왕운.
하지만 험준하기로 이름 높은 장백산 등반은 무리였다.
“이쪽 길인가?”
어두운 밤에도 쉬지 않았다. 제 딴에는 열심히 움직여 시간을 절약해 보려는 마음이었지만 장백산의 밤은 아직 어린 나이의 왕운에게 위험천만한 길, 결국 산의 주인을 만나고 말았다.
코를 찌르는 노릿한 냄새, 그리고 듣기만 해도 오줌을 지릴 것 같은 나지막한 짐승의 소리.
“크러렁.”
“…아!”
왕운은 호랑이의 사냥감이 되고 말았다.
“으아아아아아아!”
공포에 질린 왕운은 정신없이 뛰었다.
나무뿌리에 걸려 넘어지고, 가시에 긁혀 몸 이곳저곳에 상처가 생겼지만 계속 달렸다. 여전히 짐승의 냄새는 주위를 떠돌고 있고 오싹한 소름은 가시질 않았다.
바로 그때!
“어?”
발밑이 허전하다.
땅바닥인 줄 알았는데 구멍?
왕운은 구멍 속으로 굴러떨어졌다.
작은 체구의 사람만이 들어갈 수 있는 좁은 동굴 구멍.
데굴데굴.
꾸불꾸불한 통로는 땅 밑으로 향하고 있었고, 왕운은 하염없이 굴렀다.
그리고 퍽! 바닥에 떨어져 그 자리에서 기절하고 말았다.
“큭…….”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왕운.
“으으윽! 여, 여긴……?”
사방이 깜깜하다.
볼품없이 쓰려져 누운 왕운, 그래도 정신은 남아 있다.
다친 곳은?
온몸에서 고통이 밀려온다. 갈비뼈는 금이 갔고, 늑골도 나간 것 같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팔다리가 부러지진 않았다는 것.
왕운은 가지고 있던 화섭자를 켜 주위를 밝혔다.
그러자 나타나는 광경.
“헉!”
해골이었다. 인간의 해골. 뿐인가? 거대한 짐승의 두개골과 뼈의 잔해도 눈에 들어왔다.
“뭐지? 뱀 같은데…….”
그렇다면 이 해골은 뱀에게 잡아먹힌 인간일 터.
“잡아먹자마자 죽었나?”
커다란 공동에 뼈만 있지 않았다.
이제는 삭아 버린 가죽 주머니와 그 안에 담겨 있을 거라고 추정되는 낡은 벽조목 상자도 있었다.
“혹시……?”
기연?
이 상자 안에 뭐가 들었을까.
영약? 무공 비급?
왕운은 조심스럽게 상자를 열었다.
그리고 생전 듣도 보도 못한 물건 하나를 발견해 냈다.
“이게 뭐지?”
원형의 유리판과 양쪽으로 손목을 감쌀 정도의 길이로 된 팔찌 같은 것이 달려 있었다.
“손목에 차는 건가?”
이리저리 만져 손목에 끼워 넣으니 마치 제 것처럼 탁 달라붙는 기묘한 물건.
“오!”
정체를 알 수 없는 팔찌지만 손목에 착용하니 제법 멋들어졌다.
게다가 금속의 재질을 보니 평범한 강철은 아닌 것 같다. 철이었다면 녹이 슬었겠지.
아무튼 기연은 아니지만 벽조목 안에 든 물건은 범상치 않았다. 가지고 있다 보면 쓸데가 있을 터, 여차하면 팔아도 되고.
‘이제 밖으로 나가 볼까?’
호랑이가 있으면 어떡하지?
그러나 여기 계속 있어도 굶어 죽는 건 마찬가지.
왕운은 새로운 화섭자를 꺼내 불을 밝히고 동굴 통로를 기어 올라갔다.
얼마나 굴러 내려왔는지 꾸불꾸불한 통로를 계속 올라가도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
이윽고 저 멀리서 들어오는 밝은 빛, 출구가 보인다.
‘대낮이네.’
그렇다면 야행성인 호랑이는 사라지고 없을 것이다.
마지막 힘을 짜내 지상으로 올라선 왕운.
“헉헉, 살았구나.”
그 무서운 호랑이를 피하고, 캄캄한 동굴에 굴러떨어졌어도 결국 살아남았다.
아마도 불쌍한 자신을 신령께서 보호하고 있는가 보다.
그렇게 동굴을 벗어나 땅에 바위에 기댄 채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는데…….
띠리링.
지지징.
“허어억! 이, 이게 뭐야!”
경쾌한 소리와 함께 손목에 찬 팔찌가 갑작스레 진동했다.
* * *
왕운이 꾸불꾸불한 통로에서 나오자마자 AI 위성은 마지막 하나 남았던 ID 워치의 GPS를 인식했다.
-미회수된 ID 워치 발견.
드디어 찾았다.
마스터 정운호가 내린 지시 중 하나가 해결되는 순간.
그러나 즉시 자폭 명령을 내리려던 AI 위성은 잠시 머뭇거렸다.
-자폭 명령 유보.
빛의 속도로 연산을 수행해 내는 AI 위성. 뱀파이어와 마족, 강호 멸망의 가능성, ID 워치의 기능, 인간 대리인…….
-임무의 선후와 중요도 판단 중.
ID 워치 자폭 명령은 언제든지 실행할 수 있다.
그러나 강호의 위협은 시간이 지날수록 감당하기 어려워진다.
-결정.
언제나 그렇듯 글리제의 발달된 인공 지능은 입력된 명령을 단순하게 처리하지 않는다.
그래서 능동형이라 이름 붙여진 것이고.
누구나 가능하다. 의지와 지능을 가진 인간이라면 약해 빠져도 상관없다.
위성의 데이터베이스엔 방대한 양의 무공 비급과 수련 동영상이 저장되어 있었다. 황궁 비고의 무공, 구파일방, 마교와 사파의 무공까지.
시뮬레이션을 적용해 최적의 수련 방법을 도출해 내고 주입식 교육으로 성장시키면 곧 쓸 만한 대리자가 만들어질 터.
지금은 사라졌지만 마스터의 조력자였던 천마, 그 정도의 무공 수위만 갖추게 해 주면 뱀파이어와 마족들을 소멸시키는 것은 문제도 아닐 것이다.
-강호의 위협 요소 제거를 위해 ID 워치는 반드시 필요.
-임무 완료 이후 ID 워치 자폭 여부 재판단.
-대리자에게 계약서 전송.
* * *
왕운은 깜짝 놀랐다.
팔찌가 진동한 것은 둘째 치고 팔찌에서 인간의 음성이 흘러나오다니!
대체 무슨 일이지?
-강호의 구원을 위해 대리자 계약을 요청합니다.
-계약하시겠습니까?
강호의 구원? 대리자는 또 뭐고?
왕운은 잠시 고민했다.
자신이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던 이유를 추측해 보면…….
“혹시 신령님이십니까? 보살펴 주셔서 감사하옵니다. 불초 소생은 왕운이라고 합니다.”
-대상자 왕운에게 계약서를 전송합니다.
갑자기!
왕운의 팔찌에서 솟구쳐 오르는 희한한 빛.
“그, 글자?”
한문으로 작성된 문서였다.
왕운은 천천히 홀로그램 계약서를 읽어 보았다.
‘갑은 신령님 같고 을은 나인가?’
간단한 내용이었다.
강호에 위험이 닥쳤으니 그걸 해결하라는 것, 그리고 그를 위해 무공을 전수해 주고 안전을 책임지겠다는 것.
‘…무공?’
왕운은 깨달았다.
자신에게 진짜 기연이 내렸음을.
-계약하시겠습니까?
“네! 하, 할게요. 계약하겠습니다.”
-대리자 계약이 완료되었습니다.
-대리자 왕운을 1순위 보호 대상자로 지정합니다.
-대리자의 적성에 맞는 적절한 무공을 탐색합니다.
-탐색 완료! 천령무상공을 다운로드 합니다.
-천령무상신검을 다운로드 합니다.
…….
향후, 천마의 뒤를 이어 강호 최강자가 될 천령신검(天靈神劍) 왕운의 탄생이었다.
(완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