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mer King RAW novel - Chapter 57
056 난 말했다(3)
각성한 권후라면, 그녀의 말에 힘이 있었다. 그러나 아직은 남궁세가의 금지옥엽에 불과했다. 대연화로서 제법 역량을 갖춘 햇병아리. 그녀의 발언에 무게가 실리려면 조금 더 시련이 필요했다.
‘어떠냐?’
-내가 무슨 제갈공명이라도 되는 줄 알아? 보면 다 알게!
‘아니면 아니지, 왜 화를 내고 지랄이야.’
-일단 내부로 들어가면 외부와 차단이 쉽다.
‘그거야 당연한 소리잖아.’
천하제일세가로 불리는 남궁세가의 안방이었다. 외부에서 내부로 침투하기가 쉬울 리 만무했다. 역으로, 들어가서 나오기도 만만치 않다는 의미가 되었다.
-단순하긴, 이래도 모르겠어?
이 새끼가, 말을 해도 끝까지 안 해.
자꾸 자기 말을 알아서 해석하라고 밑밥을 깔고 있었다. 그렇다면 무진도 방법이 있었다.
-……끄지 마.
‘말 길어지게 하지 마라.’
-치사한 새끼!
‘또 그러면 방 닫는다! 본론만.’
-외부에서 일을 벌이긴 어려워. 그랬다간 시도도 해 보기 전에 발각되겠지.
마신교가 주 전력을 이끌고 왔다면 얘기가 다르겠지만, 남궁세가를 힘으로 무너뜨리기에는 부족함이 있었다. 만약 그랬다면 남궁세가에서 벌어졌던 사건이 널리 알려졌을 것이다. 소룡대회에 몰려든 사람들의 눈과 귀를 전부 속이기는 불가능할 테고.
‘내부에서 일을 벌이려면 면식이 있다는 거고. 그놈이 가장 유력하긴 한데, 더 말이 안 되잖아.’
-그러니까.
독을 썼을까?
사천당문이 같이 왔다. 독에 관해서는 대륙에서 사천당문을 따라오지 못한다. 그것은 마신교도 마찬가지였다. 하물며 남궁세가의 중심에서 독을 살포한다? 그것이 통했다면 사천당문이 대륙을 일통했어야지.
무형지독과 같은 절세의 독을 사용했을 수도 있겠지만, 그럴 가능성은 희박했다. 그렇다면 다른 수를 썼을 텐데, 제일 유력한 방법이 사술이었다.
‘사법을 썼을 수도 있지.’
-놈의 사법으론 어려워. 투심마안이 극에 이르러도 절대고수를 제압하긴 힘들거든.
‘머리 아프네.’
-누가 들으면 고민이라도 한 줄 알겠어.
말이 그렇다는 거지.
지금은 그런 고민보다 중요한 볼일이 있었다. 남궁세가를 살펴보는 사소한 분쟁은 이쯤에서 마무리했다.
“……어디 가?”
“대륙전장에.”
“거긴 왜?”
“왜긴, 돈 찾아야지.”
남궁연화의 고운 얼굴이 재차 일그러졌다. 저 인간에겐 애초에 기대를 해선 안 되었다. 조금이라도 기대하면 실망을 벽력탄급으로 안겨 주었다.
크크크. 이게 다 얼마야!
뒈져, 이 새끼야!
흐뭇해하는 무진을 보고 있자니 울화가 치밀었다.
***
소룡대회의 사강전이 끝났다.
대회장은 북풍의 서리가 내려앉은 것처럼 찬바람이 불었다. 사람은 항상 자신이 예상한 한계치가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그 한계를 벗어나 버리면 망연자실하게 된다.
무명의 반란은 파란의 연속이었고, 기어이 당가의 암룡과 남궁의 창천을 꺾었다.
“저 살인마 새끼가 일을 저질렀어!”
“마지막에 박치기는 너무하잖아!”
“어찌나 소리가 큰지 대가리가 쪼개지는 줄 알았다고!”
“나이 속인 거 아냐!”
“저 얼굴은 불혹이라고!”
대결의 양상은 이랬다.
속도에서만큼은 자신이 있었던 당천호의 권공은 남철호의 전신을 두들겼다. 당가가 자랑하는 삼대보법 추뢰환영보는 실로 뛰어났다. 신력을 바탕으로 남철호의 권공과는 상극처럼 보였다. 그 일례로 초반은 당천호가 유리하게 끌어갔다.
그러나 남철호의 단공보(斷空步)가 공간을 서서히 잘라먹기 시작하자, 비무대라는 한정된 공간 속에 당천호는 가장자리로 몰리게 되었다.
당천호는 당가가 자랑하는 암기술 구환살을 권으로 응용하여 남철호의 요혈을 노렸지만, 철혈사자공의 우직함이 결과를 만들어 내었다. 비무대의 끝에 몰렸던 당천호는 붙잡힌 채 망신을 당하고 말았다.
관중에겐 당천호의 일방적인 공격에 당하다가 운이 좋아 일발 역전을 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보는 사람의 안목이 다 같을 순 없다. 고수의 반열에 든 무인일수록 그 일련의 과정을 꼼꼼히 살폈다.
‘처음엔 미숙하더니 점점 익숙해지는군.’
‘힘도 힘이지만, 육체의 담금질이 상상 이상이잖아.’
‘공간을 잘라 내서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었어.’
‘당문의 이무기가 손바닥 안에서 놀아났군.’
아직은 다 자라지 못한 당천호의 미숙함보다는, 결과를 완성한 남철호의 성장이 눈부셨다. 대회를 시작하면서 끊임없이 발전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강태진과 남궁현의 대결은 어땠을까?
예상과 다른 결과가 나오긴 했지만, 검수다운 대결이 되었다. 제검 남궁현은 완성도 높은 중검을 펼쳤고, 강태진은 속도와 변수로 대항했다.
남궁현은 중검의 묘리를 담아 압박했지만, 강태진의 빠르면서도 변칙적인 수에 결과를 내지 못했다.
치열한 공방전 후 마지막을 가른 수는 임기응변이었다.
강태진이 변칙 수를 쓰기는 했어도, 검의 정석에서 크게 벗어나진 않았었다. 정해진 궤적에서 번뜩이는 움직임이 있었을 뿐이다. 그러나 마지막에 송호오검의 일천을 역수로 두어 남궁현의 제검을 흔들어 놓았다.
마치 주머니 속에 가려진 송곳처럼 방향을 예측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찌르고 나온 역수검은 완성도 높은 제검의 빈틈을 끄집어내 승기를 잡았다.
강태진은 잡은 승기를 놓치지 않았다.
굶주린 호랑이가 다 잡아 놓은 먹이를 놓고도 방심하지 않는 것처럼, 노련하게 제검을 요리했다. 제검이 비록 완성도 높은 애늙은이로 평가를 받아도, 결국은 어린애였다.
“이게 대체 뭔 일이래!”
“남궁세가의 안마당에서 남궁의 검을 꺾었다고!”
“마지막 수는 정말 일품이지.”
“이러면 남궁세가 역사상 처음 아냐.”
“저 둘, 아는 사이라며!”
남궁세가에서 개최한 대회에서 남궁의 검이 결승에 오르지 못한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것도 남궁세가 역사상 가장 뛰어난 성취를 보인 제검의 패배는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오대세가의 입장도 난처하긴 매한가지였다.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무명의 선전에 희생양이 되었으니 편치 않을 수밖에.
‘검의 완성도가 더 높았어.’
‘실전을 많이 겪어 본 검이군.’
‘천재라는 건가.’
‘송호문, 지켜봐야겠어.’
‘그 아비는…… 흠, 모르겠군.’
‘대연화가 왜?’
강태진의 검에서 실전 경험의 노련함이 돋보였다. 저 나이에 저토록 능숙하게 자신의 실력을 보여 주기란 간단하지 않았다. 경지가 높아도, 미숙함으로 인해 실패의 쓴맛을 경험하곤 했다.
“누가 이기려나?”
“당연히 비호일검이지.”
“흉살마권도 만만치는 않아 보이는데.”
“이쯤 되니 저 얼굴도 나쁘진 않네.”
“무인이 얼굴 뜯어 먹고 살 것도 아니고.”
“내 눈을 즐겁게 해 준다면야 상관없지.”
“나이 속였다니까!”
태진을 향한 환호는 꾸준히 늘었지만, 대회가 진행될수록 철호의 악명 또한 높아졌다. 그러나 결승까지 올라간 이상 평가가 달라졌다. 여전히 적응이 안 되긴 해도, 적응하려고 노력하는 자들이 생겨났다.
대결이 끝나고도 분노를 뿜어내던 철호는 사람들의 바뀐 분위기에 얼떨떨해하다가 곧 마음을 가라앉혔다. 세상을 부숴 버리겠다고 하고선, 마음이 종잇장이었다.
‘안 되지.’
-또 지랄이네.
안주하면 안 된다니까.
“그 얼굴은 안 된다.”
“무인은 얼굴 필요 없거든요.”
“맞는 말이긴 한데, 그 얼굴론 어지간해서는 안 될걸. 너무 무섭게 생겼어.”
“저는 반드시 고수가 될 겁니다!”
“평범한 고수도 안 돼.”
“대체 저한테 왜 이러세요?”
“왜긴, 너 잘되라고 하는 말이지. 절대고수가 되면 시선이 달라지긴 하거든. 그래도 내 딸은 안 된다. 쳐다보기만 해 봐, 죽여 버릴 거야.”
환호에 잠시 현실을 망각했던 철호는 무진의 만천화우에 무참히 난자당하고 있었다. 마음이 풀어지려고 하면 여지없이 얼굴을 들먹이며 분노를 심었다.
부들부들!
억울함에 몸서리를 치는 철호를 두고.
무진은 자기 아들 태진을 살뜰히(?) 챙기는 척했다. 아들이야 적당히 가르쳐 주기만 해도 된다. 사내란 인적 없는 야산에 던져 놓아도 알아서 잘 먹고 잘 크는 법이었다.
“우승 기념으로, 우리 아들 먹고 싶은 거 없냐?”
“아버지, 전 형한테 감정 없다니까요.”
“누가 사이좋게 지내지 말라더냐.”
“이러고요?”
“뭐가 어때서. 아참. 이 녀석 왼쪽 옆구리에 상처 입었다. 그쪽으로 치고 빠지면 쉽게 이길 거야.”
“……아빠!”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는 철호 형을 보고 있자니, 태진은 떨떠름했다. 아버지가 자신을 이용해서 철호 형을 자극하고 있는 게 뻔히 보였다. 저 수작에 넘어가지 말라고 몇 번이나 말했는데, 철호 형은 벽창호가 분명했다.
‘제발 뻔한 수작에 넘어가지 말라고.’
아버지의 지속적인 차별과 이간질은, 알고서도 복장 터지는 지고의 경지에 올라섰다.
“어서 단상으로 올라가라.”
사강과 결승은 하루에 치러진다. 열기를 그대로 이어 가려는 의도였다. 그러나 자기 집에서 남의 잔치를 벌여야 하는 남궁세가로서는 떨떠름할 따름이었다. 팔강에 오른 참가자들도 분위기가 묘했다.
아들과 철호가 비무대에 올라서자, 가라앉았던 분위기가 달아올랐다. 관중으로선 매번 같은 사람이 오르기보다는 새로운 신성이 등장하기를 바라기 마련이다. 오대세가에 반감을 품을수록 환성이 커졌다.
“크크크, 이러면 돈이 좀 되겠어.”
“많이 벌었잖아. 대체 얼마나 벌려고 그러는 거야?”
“물 들어올 때 노 저으라고, 돈은 많을수록 좋은 거야. 부잣집 공주님이 우리 같은 서민의 심정을 알겠어?”
“돈에 환장한 인간이, 누가 서민이야!”
남궁연화는 무진이 아들과 철호를 대하는 모습을 보고 혀를 내둘렀다. 이 인간이 정상이 아닌 줄은 진작 알았지만, 아는 것 이상으로 미친놈이 분명했다. 그런데 어떻게 저런 정상적인 아들이 태어났는지 친자가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내기 한 번 더 할까?”
“됐거든.”
“천하의 대연화가 쫄리시나 봐.”
“이 천박한 인간이!”
사람들이 보는 자리만 아니면 저 인간을 확…… 안 되는구나. 그나마 사람들이 보고 있으니까 말로 갈구고 있는 거다. 그러나 선을 넘으면 이 자리에서 공개적인 망신을 당할 수도 있었다. 저 인간이라면 하고도 남을 철면피였다.
“내가 보기엔 오늘이 고빈데, 괜찮겠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면 내 입장이 뭐가 되냐고! 책임도 지지 않을 거면서.”
“이 돈, 전부 걸 수도 있어. 할래?”
“죽어 버려!”
남궁연화도 더는 참지 못하고 쌩하니 자리에서 사라졌다.
무진은 그녀가 떠나자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남궁연화를 이용하는 면이 없지 않아 있지만, 잘만 하면 원하는 결과를 얻어 낼 수 있을 것이다. 아마 아닌 척해도, 의심의 싹은 지우기 힘들 것이다. 하물며 오늘 일이 벌어진다면, 다급해지는 쪽은 정해져 있었다.
‘나중에 한턱 쏘라고.’
그 전에 돈을 걸어야 했다. 돈이란 빛과 어둠이 교차하고, 어두울수록 액수가 두둑해진다. 이번에 아예 본전을 뽑을 요량으로 전부 걸었다.
‘안 주면 뒈지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