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mer King RAW novel - Chapter 68
067 동냥아치(2)
‘질 수 없어!’
태진으로서도 져선 안 되는 명분이 있었다. 아버지가 뒤에서 지켜보고 계셨다. 만약 지기라도 하는 날엔,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아버지가 있기에 든든하기보다는 바늘방석이었다.
‘반드시 이긴다!’
철호는 시련을 받아들이고 나아가기로 했다. 아저씨가 밉기는 해도, 함께하면서 철혈사자공은 장족의 발전을 이루었다.
착!
빗소리를 뚫고 인기척이 들렸다.
“크크크, 용기가 가상하구나.”
애송이 둘이 도망치지 않고 침착하게 막아서자, 삿갓을 깊게 눌러쓴 사내에게서 중저음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수고를 덜어 줬으니 특별히 고통 없이 보내 주마.”
삿갓을 쓴 사내는 수신호를 보냈다. 스무 명의 살수가 철호와 태진을 향해 달려들었다.
타다다닥!
문답무용.
태진과 철호도 무기를 착용하고 마음을 가라앉혔다. 놈들에게서 풍겨 나오는 살의가 굉장히 짙었다. 수적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지경이다. 얼마나 많은 살인을 해야 저처럼 비릿한 혈향이 풍길 수 있는지 생각하니 치가 떨렸다.
스왁!
어둠으로 물든 공간이 베어졌다.
다섯 방향에서 철호와 태진의 간격을 치고 들어왔다. 사전 동작 없이 이어지는 능숙한 살수였다.
쿠웅!
각반과 토시를 찬 철호가 권파를 발출했다. 공기와 물이 튕겨 나가면서 다섯 살수의 검로를 방해했다.
찰나의 멈칫거림이었다.
서걱, 서걱!
철호가 만들어 준 기회를 태진은 놓치지 않았다. 서로 으르렁거리며 호적수로서 투지를 불태우지만, 때와 장소는 가렸다. 수적들과의 결전에서 합격을 해 봤기에 그때보다 한층 발전된 정교한 합격술을 발휘했다.
일천과 질풍을 동시에 발휘, 다섯을 벤 후에 다가오는 살수들의 연격을 방해했다.
솨아아아!
한층 성숙한 검기가 검을 타고 발출되어 바람처럼 쏘아졌다. 이어서 맹수처럼 달려든 철호가 검의 공간을 무력화하며 살수들의 요혈을 정확히 가격했다.
퍼퍼퍼퍽!
일격필살.
다음을 염두에 두지 않은 철호의 권공은 단호했다. 한 번의 망설임으로 낭패를 경험했기에 두 번 다시 실수하진 않았다. 각각의 사혈에 적중당한 살수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절명했다.
슈슈슝!
선공을 취하고 다시 가다듬을 그때를 노리는 살수의 비침이었다. 검게 칠해진 날카로운 탈혼침이 철호를 노렸다.
타타탕!
살수의 탈혼침을 운용한 암영살은 철호에게 닿기 전 태진의 검에 가로막혔다. 태진의 검이 공간을 휘젓자, 검의 궤적이 방패처럼 펼쳐지며 암영살을 튕겨 냈다.
차작!
철호의 단공보가 살수의 동선을 차단했다. 기회를 노렸던 살수는 일순 철호와 정면으로 마주하게 되었다. 철혈사자공 육성을 개방하여 주먹을 발출했다. 어둠이 꿰뚫은 권영이 살수의 생명줄을 끊어 냈다.
크억!
위협을 감지한 살수가 회피하자, 태진의 검이 동선을 선점했다. 마치 이쪽으로 피할 줄 알고 있었다는 듯이 검을 휘둘렀다. 갈 길을 잃은 살수가 허둥대자, 태진은 송풍행을 펼쳐 주도권을 장악했다.
서걱, 서걱!
살수의 수급이 무너져 내리며 바닥을 굴렀다.
태진과 철호는 심호흡하기보다 기세를 타고 살수를 압박했다. 곧바로 살수의 수를 줄일 기회를 잡았다.
철호와 태진의 연수합격은 톱니바퀴처럼 맞물리며 살수에게 빈틈을 내어 주지 않았다.
“멈춰!”
빗속을 관통하여 치고 나오는 검력이 철호와 태진을 노렸다.
처어어엉!
빗소리마저 잠식해 버리는 철의 비틀어진 굉음에 파문이 번지며 물방울이 사방팔방으로 난립하며 펼쳐졌다. 부챗살처럼 퍼져 나간 물방울은 수목과 수풀을 가리지 않고 꿰뚫었다.
부르르!
검력을 막으며 뒤로 밀린 태진을 살수가 노리자, 철호가 쇠를 부수는 사자철파를 쏟아 냈다. 응축된 유형의 기운을 일시에 쏟아 내는 권포였다.
퍼퍼퍼펑!
권포가 휩쓸고 나간 공간이 비자, 태진이 검을 휘둘러 재차 노리고 들어오는 뱀 같은 검의를 차단했다.
차작!
태진과 철호는 거리를 벌리며 참았던 호흡을 뱉어 냈다. 찰나에 여러 가지를 한꺼번에 처리하느라, 소모된 기력이 상당했다. 보기에는 쉬워 보여도, 승부를 길게 끌어선 좋지 않다고 판단해 전력을 끄집어내고 있었다.
‘빗속이라 평소보다 소모되는 기력이 커.’
태진과 철호는 우중의 혈투가 왜 어려운지를 체감했다. 이론적으로 아는 것보다 배 이상으로 힘들었다.
“이 애송이들이 감히!”
잔응검(殘鷹劍) 강자기로서는 예상치 못한 막대한 피해였다. 애송이들 따윈 간단히 치워 버리고 목표물을 제거하려고 했었다. 한데, 정작 목표물은 천막에서 고기를 뜯고 있고, 애송이들에게 수하의 반을 잃었다.
혈견은 살수기예를 익힌 전문 암살단이었다. 더욱이 오늘처럼 악조건의 상황일수록 적을 효율적으로 살육하는 데 최적화되었다. 어둠 속에서 대낮처럼 운신할 수 있도록 훈련을 받았기 때문이다.
“갈가리 찢어서 산짐승의 먹이로 던져 주마!”
피를 머금은 진득한 살의가 강자기에게서 흘러나왔다.
그는 혈견들과는 차원이 다른 강자였다. 절정의 무력을 소유하고 있으며, 살상력이 높은 암살검을 익혔다. 실제로 절정의 무인과 절정의 살객이 대결을 벌이면 살객이 압살했다.
“말 더럽게 많네. 어서 안 싸워!”
소고깃국에 밥을 만 무진은 소강상태를 두고 보지 않았다.
같잖은 것들이 무게를 잡고 지랄이야. 그래 봤자 준 거 도로 뺏으려는 동냥아치들 주제에.
빠직!
애송이를 전장으로 내세우고 편안히 밥이나 처먹고 있는 무진의 태도에 살의가 치미는 강자기였다. 이번처럼 살심이 끓어넘치는 경우는 처음이었다.
“네놈의 자식은 처참하게 죽어 갈 것이다. 그때도 밥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나 지켜보마.”
“누가 살수 나부랭이들 아니랄까 봐, 입만 살았네.”
강자기의 시선이 무진을 향할 때 태진과 철호가 쇄도했다. 기회가 있을 때 기다리는 짓이야말로 어리석은 행위였다. 무진의 가르침이 빛을 발했다.
“이 겁대가리 상실한 놈들이!”
“애들 칼엔 안 죽나.”
무진의 빈정거림은 때와 장소를 망각했다. 언제 어느 때라도 하고 싶으면 해야 직성이 풀렸다.
“참고 살면 병 되지.”
무진의 훈육이 가혹해 보일 수도 있으나, 무인이 되기로 한 이상 피를 겁내선 안 되었다. 무인이라면 스스로 내세운 명분을 위해서 시산혈해도 마다하지 않아야 했다. 그 정도의 각오가 없다면 무인이란 직업을 때려치워야 마땅하다.
“무인은 잔혹해야 하거든.”
도를 넘어서는 행동을 하라는 뜻이 아니다. 냉철함을 잃은 무인은 무공을 사용할 자격이 없다. 또한, 결심이 섰다면 과감해야 했다. 생사의 갈림길일수록 더더욱.
무림에선 두 번의 기회가 없다고 했다. 죽고 나서 후회한들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경계해야 할 것은 자신의 마음뿐이지.”
살생을 많이 한다고 해서 살수인가? 그리 따지면 무림의 영웅들은 도살자나 학살자라고 불려야 마땅했다. 마(魔)에 물들지 않은, 굳건한 정신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
-미주는?
‘닥쳐.’
우리 딸은 아름다운 세상만 보고 살아도 부족하다고! 내 눈에 흙이 들어오지 않는 이상, 오늘 같은 일은 벌어지지 않을 거다. 오기만 해 봐, 다 죽는 거야.
채채채챙!
서걱, 푸아악!
잘린 팔이 허공으로 날아가 바닥으로 떨어질 때, 빗줄기를 뚫고 나온 주먹이 살수의 머리를 강타했다.
하아, 하아!
철호와 태진의 전신은 땀과 핏물로 범벅이 되어 갔다. 빗물이 씻겨 내려간 바닥은 붉게 물들고 있었다. 숨을 내쉴 때마다 허연 입김이 번졌다. 타는 듯한 갈증을 빗물로 조금이나마 해소했다.
빠드득!
세 명이 또 죽었다.
강자기로선 수지가 안 맞는 수치의 연속이었다. 자신이 가담하고, 광견삼귀가 배후를 받쳤다. 애송이들이 기가 살아 설치고 있지만, 곧 갈가리 찢어서 개먹이로 던져 주려고 했다.
웬걸!
애송이들의 합격술이 보통이 아니었다. 살기를 머금은 혈견의 살수를 막아 내며 반격을 가했다. 이뿐이랴, 자신의 살검을 촌음의 간격을 두고 절묘하게 막아 냈다.
“쯧쯧쯧, 살수란 것들이 자기 몸부터 챙기네. 동료를 내던져서라도 의뢰를 완수해야지. 저리 허접해서야, 원.”
그러는 와중에도 저 밉살맞은 주둥이는 쉴 새 없이 나불거리고 있다. 듣지 않으려고 해도 신경을 건드리는 재주가 천의무봉에 이르렀다.
“나 때는 말이야, 삼백육십오일 쉬지 않고 살수의 공격을 받았다고. 그중에 암황이란 새끼가 애들을 이용해서 나의 여린 심성을 노리더라고. 하지만 어떻게 됐는지 알아? 다 저세상으로 갔단 말이야. 그래도 제법 애를 먹기는 했어. 그에 반해 너희들은 근성이 없어. 자기 살 궁리부터 하는 놈들이 뭔 놈의 살수야! 그냥 기술이나 배우고 농사나 지어.”
애들 하나 보내지 못해서 피똥을 싸고 있다는 무진의 신랄한 비판은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빗소리를 아랑곳하지 않고 그들의 귀에 내리꽂혔다.
빠드득!
강자기와 혈견들은 듣고 싶지 않았지만 귀를 막을 수도 없는 현실이었다. 그랬다간 애송이들한테 당한다.
“죽인다!”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저딴 말이나 듣자고 살수가 된 게 아니다. 한 치의 실수도 없이 목표물을 처리했던 그들의 자존심을 자극했다.
“사람 죽이는 백정 놈들이 꼴에 자존심은. 그러니까 너희들이 안 되는 거야. 살수가 무슨 놈의 자존심이야. 제발 정신 좀 차리자.”
강자기와 혈견의 분노가 공간을 지배하자, 철호와 태진은 죽을 맛이었다.
도와주지 않을 거면 방해나 하지 말지. 제발 가만히나 있으라고요.
무진이 나불거릴 때마다 살수들은 악에 받쳐서 살수를 뿌렸다. 그럼에도 아직은 할 만했다. 열이 받은 살수들이 냉철함을 잃었기 때문이다.
푸욱!
철호의 권격이 만든 기회를 태진은 놓치지 않았다. 전후좌우의 벌어진 틈에 검을 찔러 넣었다.
검에 당한 살수가 죽기 전에 발악했지만, 태진은 신속히 검을 빼며 철호와의 합격이 무너지지 않도록 했다.
“모두 정신 차려!”
또 한 명이 죽자 절반은커녕 여섯 명으로 줄었다. 비록 혈견의 중심인 광견삼귀가 남았지만, 강자기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런 개 같은 일이!’
목표물은 티끌조차 건들지 못하고 애송이들에게 전력의 절반을 잃었다. 루주가 이 사실을 알면 자신을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혈견은 적야를 지탱하는 중요한 전력이었다.
‘반드시 죽인다!’
이 와중에도 히죽거리고 있는 무진이 보였다.
불빛에서 빗소리를 감상하고 있는 걸 보자니, 심기를 다스리기가 힘들었다. 그러나 애송이들을 가볍게 여길 수가 없었다.
‘이놈들은 대체 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