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Broadcast of Murim Returnees RAW novel - Chapter (47)
〈 47화 〉 47 약자의 지혜
* * *
1.
요괴들은 강하다.
인간과는 흐르는 피부터가 다르며
쌓아온 역사의 깊이도 다르다.
산을 무너뜨리고
강을 피로 물들이는
각양각색에
천양지차의
혈통을 따라 전해지는 역사.
요괴들은 그것을 이라 불렀고
마가놈은 묵언검객에게 이를 설명해주었다.
“요괴의 전승은 특수한 방향으로 발달된 ‘능력’을 암시하기에 알아차리면 무조건 득이 됩니다. 이 나약한 마가놈이 장수해온 비결이지요.”
“인간. 하찮다.”
“웬디고는 강한 반요니까 전승을 모르더라도 쉽게 적에게서 이겨왔을 겁니다. 하지만 자신보다 강한 요괴를 상대로는 이길 수 없지 않습니까?”
인간의 지혜.
그저 간사하고 교활하게만 보였던 마가놈은
뜻밖에도 그 지혜를 펼쳐보였다.
“전승을 안다면 강자의 무기를 이해하고 약점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요괴장군도 죽일 수 있다?”
“적어도 모를 때보단 이길 가능성이 1할은 높아지겠죠. 그러니 전승을 알아차리기 가장 빠른 방법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본의 아니게 티켓사냥에 참여하며
수많은 요괴들을 적으로 돌리고
이제 이 팀이 아니면
살 길이 없음을 깨달은 마가놈.
그는 일생동안 자신을 지켜주었던
소중한 지혜를
투사팀의 모두에게 전수하기로 결심했다.
“진명. 모든 요괴들의 혈통에는 원류가 되는 ‘원본’이 있고, 그 원본을 지칭하는 ‘진명’이 존재합니다. 이 사실을 아는 강대한 요괴들은 자신의 진정한 이름을 감추고 거짓된 이름을 표면에 내세우지만 대부분은 생각 없이 이름을 밝히죠.”
마가놈의 시선이
옷장 너머의 부기맨을 잠시 흘끗거리는 것을
해응응은 놓치지 않았다.
생각 없고 멍청한 요괴라는 은근한 비꼼.
간사한 성격답게
인간을 하찮게 여기는 요괴에게
말로 앙갚음을 하는 치졸한 복수였지만
부기맨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마치 이런 작고 하찮은 존재의 지껄임은
아무런 의미도 가치도 없다는 듯이.
웬디고 또한
크게 깨달음을 얻은 기색은 아니었다.
사생아 왕자에 이르러서야
겨우 무언가를 깊이 생각하는 기색이었고
해응응은 경청 끝에
들어둘 가치가 있는 정보라고 여겼다.
‘진명. 알면 좋기는 하겠죠.’
필드보스를 쓰러뜨릴 때마다
이별을 앞둔 상대와 상호작용을 할때마다
그녀의 앞에 나타나던 선택지에는
‘진명개방’이 상당히 높은 빈도로 등장해왔다.
그만큼 반요곡의 세계관에서
진명이 큰 영향력을 지니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요소다.
티켓사냥을 벌이고
지친 동료들이 잠시 휴식을 취하는 사이
춥고 비좁은
금이 간 담벼락 사이에서
불편하게 몸을 웅크리며 전수받았던 지혜.
더러는 그녀가 알고 있던
더러는 존재 자체도 몰랐던
다양한 요괴들에 대한 진명과 전승.
그리고 이를 속이려는
요괴들의 수법과
감추어진 진명을 추리하는 방법들.
한 사람의 역사가
일생을 쌓아올린 지혜가
해응응의 지식이 되어 머릿속에 저장되었다.
‘하지만 제게는 필요하지 않아요.’
검을 비스듬히 쥐며
앞을 가로막는 요괴들을 초당 3~4회의 검격으로
꽃을 피우듯이 피보라를 일으키며
길을 열어나가는 그녀에게
진명은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무방한
애물단지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 그녀의 뒤를
필사적으로 따라붙는 것만으로도 벅찬 마가놈은
자신의 지혜가 얼마나 보잘 것 없는지
비로소 알게 되었다.
‘지혜는 약자가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것. 저분에게 지혜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구나.’
진명을 알아내고자 노력하고
애를 들이는데 소모되는 시간보다
검으로 몸을 베는 속도가 압도적으로 빠를진대.
상대의 약점을 파헤치려 노력하지 않아도
검 한 자루로 앞을 막는 적을
모조리 도륙할 수 있는 실력자에게
지혜란 그저 약자의 발악에 지나지 않을 뿐.
약자의 지혜란
고작 그 정도의 가치에 불과했다.
강한 요괴들이
어설픈 잔재주를 압도적인 강함 하나로
모두 압도했듯이 말이다.
‘분명 귀부인께서도 강하시지. 허나 결정적인 부분에서 다르시다.’
그의 지혜가 하찮아질 정도로
강한 힘을 지닌 반요나 요괴들은
언제나 마가놈을 무시하고 모욕해왔다.
도주만큼은 자신이 있는 그를
죽이지는 못하더라도
마음에 상처를 입혀 분을 푸는 것 정도는
어려운 일도 아니었으니까.
그러나 묵언검객은
단 한 번도 마가놈을 쓸모없다고 욕하거나
하찮다며 멸시하지 않았다.
격식 있는 동작으로
한 손으로 주먹을 쥐고
반대쪽 손을 펼쳐 그 위를 감싸는
포권지례를 취하며 감사의 예를 표할 뿐.
‘왕자가 낯선 인간여자를 어머니라고 부르는 이유가 있었구나.’
인간의 목숨이 벌레만큼 하찮아진
반요곡의 세계에서
마가놈은 처음으로 타인에게 존중받는 것이
얼마나 기분 좋은 일인지 깨닫게 되었다.
서늘한 기세와 무뚝뚝한 표정과 달리
자상한 마음씨로 타인을 배려하는
이 자상한 여인을
어찌 어머니라 부르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그녀는 자신의 어머니가 될 수 없었다.
왕자가 먼저 그를 만났고
왕자가 먼저 그를 어머니라 불렀기에.
그녀는 왕자만의 어머니였고
왕자는 그녀만의 아이였다.
그 두 사람의 관계에 마가놈이 끼어들기에는
이미 너무 늦었다.
‘한심한 녀석. 교활한 쥐새끼라는 욕이나 들으며 살아왔더니 사고방식도 쥐새끼가 되었구나.’
감히 자신이 따르는 왕자와
자애로운 귀부인에게
불순하고도 사적인 감정을 품다니.
확!
딴 생각을 품다가 걸음을 헛디딘 그의 어깨를
왕자가 재빨리 붙잡으며 일으켰다.
“뒤처지지 마라! 놓치면 쓸려나간다!”
그의 추악한 고민을 알기나 하는지
왕자는 그가 뒤처지지 않도록
필사적으로 옆을 지켰다.
마가놈의 가슴속에
질시의 감정 대신
충성심이 자라나기 시작했다.
“벽인가? 너무 높군. 저 문으로 난입하거나 우회하지 않으면 안 되겠어.”
“안 됩니다. 무조건 저 성벽을 타고 위로 넘어가야 합니다.”
“마가놈?”
본래라면 자신을 업신여기는 요괴나 반요 따위
멋대로 나가떨어지도록
함정 앞에서 방치할 수도 있었던 기회.
잘만 하면
왕자도 떨쳐내고
그가 귀부인의 유일한 ‘아이’가 될 수도 있었을
유일무이한 순간.
마가놈은 그 모든 유혹을 뿌리치고
벽의 한편에 자리한 눈을 가리켰다.
“저건 벽 요괴입니다. 진명은 누리카베. 옆으로 돌아가면 그 길이가 무한히 늘어나서 결코 지나칠 수 없다는 전승을 지닌 요괴입니다.”
언뜻 듣기에도 불합리한 법칙을 지닌
물리법칙을 우습게 여기는 요괴.
그만큼 강대한 요력을 지니고
세계를 속여 자신의 형태를 스스로 재단하는
요괴로서는 상당히 강한 축에 속하는
강적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문은 입이라도 되나?”
“누리카베는 본래 문을 지니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니 저 요괴는 엄밀히 말하자면 요괴와 요괴의 피가 섞인 혼혈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시간이 없다.”
해응응조차 끝없이 펼쳐진
거대한 벽을 상대로
무작정 검을 휘두르는 대신
마가놈의 설명에 귀를 기울이며 멈춰선 지금.
등 뒤로 몰려드는 요괴들로부터
벗어나는 건
오직 마가놈의 지혜에 달려있다.
“장벽과 무한의 속성을 지닌 누리카베라도 그 몸에 달린 ‘문’까지 무한히 늘어나지 않으니, 문이 있는 중심부의 주변 벽을 공략해야 합니다.”
공략부위가 정해졌다.
중심부 문 주위의 벽.
이를 노리기 위해 넘어야 할 마지막 장애물.
문 앞을 지키는 두 마리의 요괴가 있으니.
말머리와 소머리를 지닌
커다란 두 요괴.
모두 마가놈의 알고 있는 요괴들이었다.
“저 둘은 마두와 우두로 지옥문을 지키는 옥졸이라는 전승을 지닌 요괴입니다! 지옥의 옥졸에게는 누구든 포박할 수 있는 포승줄이 있으므로 절대로 붙잡혀서는 안 됩니다!”
거침없이 달려 나가려던 웬디고를
왕자가 급히 붙잡았다.
신체능력 하나만 믿고 무식하게 덤벼드는
저돌적인 성향의 웬디고라면
포승줄에 묶이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으리라는 정도는
손쉽게 예측할 수 있었다.
“어머님, 위험합니다!”
“….”
그렇다면 길을 열 수 있는 건
자신밖에 없다.
포승줄을 피해 길을 열려는 해응응의 옆으로
무임승차나 다름없는 수준으로
허공을 둥둥 떠다니며 뒤따르던 옷장이
문을 활짝 열고
시커먼 손을 10장(약 30m)도 넘게 뻗었다.
냅다 포승줄을 꺼내
손을 묶으려 든 두 요괴는
역으로 포승줄을 붙잡은 시커먼 팔이
엄청난 힘으로 줄을 잡아당기자
비명 한 번 못 지르고 문으로 휙 딸려 들어가
옷장의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잔챙이 따위에, 미적거리지, 마라.”
“….”
하는 말은 하나같이 재수 없어도
첫 만남에 비하면
훨씬 우호적으로 변한 건 틀림없는 사실.
“잘해주었다! 웬디고, 이제 네 차례다!”
“우워어어어!”
야만적인 외침을 내지르며 돌격한 웬디고가
커다란 몸체에서 비롯된
폭발적인 근력으로
문 주변부의 벽을
일격에 뻥 뚫으며 박살냈다.
“맙소사!! 오백년을 장수한 누라카베의 성벽이 뚫리다니. 저 녀석은 1차 요괴전쟁에서도 살아있던 장수종이었을 텐데!”
“왕자의 노예투사들, 하나같이 보통이 아니군. 이건 당해낼 수 없어.”
누라카베의 벽이 뚫렸다는 소식에
하염없이 몰려들던 정예병들이
사기가 뚝 떨어지며
뒷걸음질을 치기 시작하니.
“본 투기장의 32강전에 참여할 새로운 투사들이 입장했습니다. 놀랍게도 투사들을 이끄는 주인은 요괴왕의 혈통을 물려받은 사생아 왕자!”
묵언검객은 기어이 정면돌파로
거리 전체에 펼쳐진 포위망을 뚫고
투기장에 입성하는데 성공했다.
2.
이해찬은 허탈함에 헛웃음을 지었다.
“검술이 또 바뀌었잖아.”
묵언검객 따라잡기.
그 요상한 컨텐츠에 참여한 이래로
시청자들 앞에서 티를 내지는 않았지만
엄길동의 컨텐츠와는 별개로
묵언검객의 검술을 따라잡고 싶다는
개인적인 욕망을 품었던 그.
순수한 검술실력으로만 따지자면
현역 스트리머 중에서는
가뿐히 1위를 차지한다고 자부해왔던
한국최강검객을 자부하는 그였기에
묵언검객의 검술에는 관심이 많았다.
“시체언덕. 혈둔수로채. 녹아내리는 대수림. 요계수도. 가는 곳마다 사용하는 검술이 전부 다른데 사용하는 검술은 전부 수준급이라니.”
“형, 저게 그렇게 대단한 거야?”
“한심하긴. 영상만 백날 편집해봐야 뭐하냐? 보는 눈이 길러지지 않는데.”
“댁 영상 백만 조회수 만들어주는데?”
“보는 눈만 백날 길러봐야 뭐하냐? 백만 조회수가 더 좋은데.”
“빠른 태세변환 좋구연.”
이해찬과 그의 영상편집자.
사적으로도 절친한 두 사람은
종종 이해찬의 집에서 함께 술을 마시며
놀고는 했다.
직업이 직업이다 보니
먹고 마시고 즐기면서
겸사겸사 다른 스트리머들의 영상도 보는데
묵언검객의 방송은 무조건 1순위였다.
그 사실이
지금만큼은 부쩍 원망스러워졌다.
“묵언검객이 대단하기는 해도 잡몹만 썰었잖아. 저 옷장괴물이랑 짐승괴물이 더 쩌는 거 아니야? 버스 탄 거 같은데.”
“에휴, 이 무식한 놈아. 묵언검객이 워낙 잡몹 잡듯이 썰어버리니까 그렇지, 저것들 하나하나가 엘리트 몹이야.”
“진짜?”
“수귀특수병 이딴 것보다도 훨씬 쎄고. 원본이 되는 혈통도 수귀 따위보다 강해보이잖아.”
“오. 그런가.”
편집자야 그냥 그러려니 하고 있지만
반요곡을 직접 플레이해본 이해찬이기에
그는 알 수 있었다.
‘상당한 경지까지 연마한 검술. 그 정도가 아니면 저런 일방적인 살육은 불가능해.’
복싱선수가 1초에 여섯 번 이상의 주먹을
상대의 몸에 우겨넣듯이
수많은 검격을 초보다 작은 시간 안에
강제로 밀어 넣으며
동작과 동작 사이에 막힘이 없이
생소한 요괴의 신체로 인해
검이 뼈에 걸려서 멈추는 일도 없이
지나가는 길마다
피보라를 불러일으키는 검술.
그런 게 짧은 시간의 노력으로 가능할 리 없다.
그래서 더 억울했다.
벌써 본 검술만 네 개이고
이해찬 본인을 기준으로는
검술 하나당 족히 5년은 수련해야 할 지경인데
보여준 것만 헤아려도
묵언검객은 그의 20년 수련과 맞먹는 성취를
실전에서 증명하지 않았는가.
“한 우물만 파도 부족한 게 검술인데 뭐 하러 네 개나 되는 검술을 연마했을까?”
“그거 알면 뭐하게?”
“그야…”
“아하. 한 번 싸워보고 싶어서?”
“이래서 눈치 빠른 녀석은 싫다니깐.”
묵언검객의 20년의 성취.
대단하긴 하다.
인정할 건 인정해야지.
하지만 그 방향이 한 우물이 아닌
네 갈래로 퍼진 깊이가 없는 검술이라면.
한 우물만 우직하게 파온
이해찬 그가
묵언검객을 이기는 일도 가능하지 않을까.
“도전장 던져 그냥. 그렇게 싸우고 싶으면.”
“미친놈아, 그것도 친분이 있는 사람한테나 하는 짓이지. 현실합방도 못 해본 사람한테 다짜고짜 그러는 놈이 어딨어.”
“그럼 어쩌려고. 스피드마스터처럼 공약이라도 걸게? 반요곡 끝나면 함 뜨자고.”
“미쳤냐? 이번 방송 끝나면 반년 이상 잠수를 타도 그러려니 할 텐데. 절대 못 기다려.”
투기장에 티켓을 제출한 팀이
막상 넷 밖에 안 되고
묵언검객이 아닌 다른 팀들도
서로 싸워 수가 줄어들었음이 밝혀지며
시작부터 4강전이 된
화끈하게 달아오른 투기장 대회화면을 앞두고
이해찬은 손이 근질거리는 감각을 느꼈다.
“안되겠어. 내가 봤을 때 이 인간 메일은 절대로 안 보는 타입이야.”
“형이 여자 타입도 분류할.. 아, 알았어. 일단 그 치킨 뼈 내려놓고 얘기하자. 응?”
“묵언검객 코스프레녀가 명호동에 떴다는 인터넷 게시글. 그거 확인해놨어?”
편집자가 한 손으로 스크린폰을 대충 툭툭 두들기며 정보를 띄웠다.
“확인해봤는데 일치율이 꽤 높던데? 안면인식 돌려보니 본인일 확률 99%래.”
“당분간 우리 야방만 때릴 거야.”
“직접 가려고?”
“어차피 야외컨텐츠 밀린 것도 많았잖아. 그거 전부 명호동에서 하고 운 좋게 지나가다가 만나면 좋은 거고.”
“못 만나면?”
“수소문부터 해야지. 딱 봐도 각성자 같은데. 명호길드도 한 번 찾아가서 물어보고.”
묵언검객의 방송에서
시청자들의 채팅 넘어가는 속도가 빨라질수록
이해찬의 심장 또한 점점 두근거렸다.
저 대단한 묵언검객과
직접 검을 겨루어 승리를 따낸다면.
이 얼마나 짜릿하고 즐거운 일이겠는가.
“그것도 방송이 끝나야 하지.”
“…그러게 말이다.”
한 방송에 한 필드씩 공략하는
묵언검객의 방송패턴 상
방종은 필드보스를 해치운 뒤로 추정되지만
정작 그 필드보스는
어떻게 생겨먹었는지도 모른다.
[브이튜브 신규 BJ] [묵언검객 님이 방송을 시작합니다.] [게임 반요곡(시미럴 사)] [플레이타임 64:13:02] [방송시간 62:07:55]방송시간 62시간째.
극한의 컨셉충 묵언검객.
이 터프한 여자는
기어이 3일 72시간을 풀타임으로 채워야
직성이 풀릴 모양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