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Broadcast of Murim Returnees RAW novel - Chapter (519)
〈 519화 〉 519 기권
* * *
1.
“이게 되는군.”
이정운은 자기가 해놓고도 정말로 성공해버린 납치에 얼떨떨함을 감추지 못했다.
“우와, 선배님! 정말로 해남파 거점 안에서 최면술사 납치에 성공했어요. 굉장해요!”
“시끄럽다. 저놈 상태부터 확인해라.”
“코에서 피는 흐르는데 아까 주먹으로 코 맞아서 흘리는 것뿐이에요. 그보다 정말 굉장하세요! 해남파 문주가 있는 곳에서 당당하게 납치에 성공하다니!”
계획을 세웠던 장본인도 놀람이 가시지 않는데 시키는 대로 따라다니기만 했던 간부 제시카와 상급단원들은 얼마나 더 놀랐는지.
모르는 사람이 저들 눈빛만 보면 언리미티드 등급의 재앙급 레이드몬스터라도 혼자 토벌한 줄 알겠다.
“위스퍼가 해남파 문주를 최초로 1데스 시켜봤자 현실에서 해남파 문주에게 한 방 먹인 고위간부는 선배님이 최초일 거예요!”
이정운은 알고 있다.
그 경우로 따져도 최초는 보이스걸이라고.
그 잠깐 사이에 마주친 것도 간담이 서늘해지는 고수의 귀에 네귀에딩딩딩을 몇 시간이고 재생시킨 담력은 정말 누구도 범접할 수가 없다.
경연프로그램 데뷔 이후 차트를 싹쓸이하며 슈퍼스타로 거듭날만도 했다.
저런 광기 넘치는 인간이 부르는 노래에 어찌 흥미가 안갈 수 있겠는가.
‘그래봤자 양지의 일이지.’
보스는 보이스걸을 좋게 봐줘서 손에 더러운 피 묻히는 일 대신 대중 앞에서 흑의종군의 이미지메이킹을 하는 일을 안겨주었다.
그러나 조직의 진정한 임무는 양지가 아닌 음지에서 이루어진다.
‘가상현실게임에서의 패권전쟁은 이미 시작되었다.’
거대조직들이 내공과 마나의 지급률이 높은 게임에 너나 할 것 없이 진출하며 기존 순수 플레이어들이나 스트리머들의 세력과 전쟁을 벌이고 있다.
한국 한정으로 현존하는 모든 멀티게임의 랭킹 권에는 거대한 지각변동이 일어나는 중이다.
‘최면술사는 이 구도를 단숨에 흑의종군에 기울어지게 만들 수 있는 인재.’
보스는 말했다.
최면으로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불감증으로 만들고 사망후유증을 두려워하지 않는 과감한 플레이를 하는 플레이어 군단을 만들면 어떻게 될 거 같냐?
열 명 중에 하나만 살아도 엄청난 이득이 돌아온다. 고수양성속도가 대폭 빨라지겠지.
그러니 무조건 잡으라고.
우리 것으로 삼지 못한다면 반드시 죽이기라도 해야 하는 존재라고.
거듭 당부하고 또 당부했다.
“캡슐은 어딨지? 대회에 참석해야 하는데.”
“상황파악이 안 되나? 정하준 실장. 당신은 이미 납치되었다.”
“그래서 캡슐은 어딨지? 빨리 대회에 참석하지 않으면 안 되는데.”
그런데 느낌이 싸해진다.
“선배님. 이 사람 왜 자꾸 했던 말을 반복하죠?”
“캡슐은어딨지? 캡슐은어딨지? 캡슐은어딨지?”
“서, 선배님? 이 사람 좀 무서운데요.”
“물러서라.”
제시카를 뒤로 물리기 무섭게 “캡슐은 어디에 있냐고 묻고 있잖아!!” 라고 외치며 정하준 실장이 사납게 달려들었다.
퍼벅
검집으로 턱 밑을 가격해 뇌진탕을 일으켜 정하준 실장을 쓰러뜨린 이정운.
바닥에 넘어져 꼼짝 못하는 상태로도 거듭 캡슐을 중얼거리고 발버둥치며 반항을 시도하는 모습에 싸한 느낌이 들었다.
“어이.”
“캡슐캡슐캡슐.”
“묻는 말에 대답하면 캡슐에 타게 해주지.”
“캡슐?”
“너, 최면에 당한 피해자냐?”
누군가가 최면에 당했는지 가장 빠르게 확인할 수 있는 질문.
제압된 상태에서 상대의 최면유부를 묻는 질문에 정하준 실장이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그 나이 먹도록 최면이나 믿다니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닙니까? 최면 같은 건 혀 깨물고 죽어버리면 아무 쓸모도 없는데.”
들어 올린 입에 순간적으로 검집을 밀어 넣어 자살시도를 막아낸 이정운.
그는 참을 수 없는 허탈함에 빠졌다.
“선배님…”
“허탕이다. 보기 좋게 한 방 먹었군. 최면술사 녀석이 우리를 가지고 놀았어.”
“그럼 이제 어쩌죠?”
“대회장에서는 이미 우리의 범행을 눈치 챘을 거다. 지금 와서 돌아간다고 어떻게 될 일은 아니지. 대회는 포기한다.”
“안돼요. 포기하지 말아요.”
이정운은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보스 직속으로 들어온 간부들은 출세가도 확정에 위스퍼를 따르는 간부들도 고개를 뻣뻣이 들고 다니건만, 자신의 후배인 제시카만 이 지경이다.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돌아오는 페이는 그리 넉넉하지도 않은 생명수당도 간당간당한 일.
얼마나 실망이 크면 저 순한 녀석이 포기하지 말라고 애원까지 할까.
그래도 어쩔 수 없다.
“미안하다, 제시카. 이번 작전은 실패다.”
나중에 회식으로 좋은 거라도 먹여주자.
각오를 다지는 그에게 제시카의 뒷말이 이어졌다.
“벌써 프로그걸이랑 웨딩걸한테 이번에 크게 한 건 했다고 자랑했는데…….”
이정운의 표정이 싸늘해졌다.
“회식 압수.”
“아 선배니임!”
한 번 떠난 이정운의 마음은 돌아오지 않았다.
제시카는 순순히 납득했다.
“아쉬움보단 킹받음이 앞서네요. 작전도 실패하고 김한나 그 춤도 못 추는 괘씸한 아이돌한테 한 방 먹일 기회도 놓치다니.”
“그딴 건 아무래도 상관없다. 진짜 문제는 최면술사를 흑의종군에서 빼돌렸다고 당사자들까지 착각하게 만든 최면술사의 교묘한 함정이지.”
“혹시 저희도 큰일 난 건가요?”
“우리는 관계없다. 아무래도 최면술사 녀석이 음습한 능력을 지닌 주제에 보기보다 호전적인 성격 같으니. 녀석은 해남파 문주를 방심시키려고 하고 있다.”
제시카는 의아했다.
“그 사람이 방심시킨다고 방심을 하긴 해요?”
“모른다. 아무튼 최면술사는 그러려고 하고 있다. 실제로 우리는 당했지.”
이정운이 생각하기에는 나름 가능성도 있었다.
자신들의 납치도 속수무책으로 방관한 그들이 최면술사의 속셈은 간파할 수 있을까.
걱정 아닌 걱정이 되는 것은 그 다음이다.
졸지에 결승전에 참여할 세 팀중 두 팀이 공중분해 되어버린 해남코퍼레이션 사내단합대회.
대회진행을 망쳐버린 원흉을 해남파 문주는 과연 어떻게 생각할까.
최면술사가 제 뜻을 펼치도록 곱게 놔둘까.
아무리 생각해도 그럴 리가 없었다.
2.
갑작스러운 납치사건으로 대회 결승전은 사실상 무산되었다.
물론 있는 그대로 소식을 전하면 엄청난 패닉이 일어날 것이 뻔했기에 운영진은 적당히 핑계를 대며 얼버무렸다.
그 얼버무림 당한 소식은 해남엔터연예인팀에도 전해졌다.
“아니 진짜 기권했어요?”
“헐?”
“한나야… 그분이 너 좋아하나봐.”
다른 두 팀의 에이스 이정운과 정하준의 기권!
소식을 들은 한나는 찐텐으로 당황했다.
“아저씨가 한나가 기권해달라고 해서 기권한 거야? 이거 빼박 그린라이트 아니야? 한나는 아저씨랑 그럴 생각 없었는데? 그럼 한나 이제 어떡해?”
“별 일 없을 거야. 집 근처에 낯선 아저씨의 차량이 서성거린다거나 발신인 불명의 전화가 걸리는 일은 종종 있겠지만.”
“해코지는 안 당한다고 쳐도 너무 미안하다요!”
이정운한테 관심이 많아보이던 후배간부 제시카를 떠올리면 죄책감이 더 커졌다.
졸지에 마음에도 없이 남이 연모하던 남자 마음을 쥐락펴락 흔든 나쁜 여자가 되어버리지 않았는가.
“괜찮아. 쫄지 마.”
소식을 전한 이소혜는 한나의 어깨를 다독여주었다.
“귀찮게 굴면 밥 한 끼 먹어주고 헤어져.”
“으아앙! 한나는 무서운 아저씨랑 데이트하기 싫어!”
“한나야. 세상 사람들은 다 큰 여자가 자기 이름을 3인칭으로 부르는 모습이 더 무서워.”
채팅창이 열려있다면 웃음바다가 도배되었을 멘트에 지수와 지연, 영아가 킥킥 웃었다.
“우씨. 다들 한나한테만 머라 그래. 다들 미워!”
[너무 그러지 마요. 저는 보기 좋은데.]“길드장님…! 역시 한나는 길드장님뿐이다요!”
해응응은 자신의 품에 안기는 한나의 머리를 슥슥 어루만지며 생각했다.
무림에도 자기 이름을 3인칭으로 부르는 무림고수들이 종종 있었다.
주로 주화입마에 걸려서 정신이 오락가락 하는 안타까운 친구들이었지만.
한나를 보면 경지상승에 실패하여 고꾸라진 무림인이 떠올라서 늘 마음이 너그로워지고는 했다.
‘본인한테는 절대로 알려주지 말아야죠.’
한나야 그렇다쳐도 대회진행이 곤란하게 됐다.
기껏 최면술사를 대회를 핑계로 잡을 기회였는데 목전에서 제멋대로 사라지는 척 깽판을 치다니.
이런 분위기에서는 다시 게임을 하는 것도, 수면가스를 살포할 수 있는 캡슐 속에 최면술사를 밀어 넣는 것도 전부 무리다.
[일단은 기획조정실팀의 남은 팀원분들을 의무실로 데려다주세요.]흑의종군의 개입 덕분에 알게 된 사실도 있다.
그녀가 최면술사를 의식하고 있듯이 최면술사도 그녀를 의식하고 있다.
이 기회를 놓친다면 최면술사는 음지로 사라지겠지.
그리고 영영 그녀가 최면술사를 붙잡을 기회는 다시 찾아오지 않을 것이다.
세뇌, 각인, 최면.
정신계 능력은 한 번의 발동 이후에 긴 딜레이나 제약이 있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니 능력을 사용할 기회를 만들어준다.
누구에게 능력을 걸든 그녀가 걸리지 않을 것은 자명하니까.
능력을 사용한다면 그 직후에 급습.
최면술사는 오늘이 곧 제삿날이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