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of Sword Castle RAW novel - Chapter 52
52화.
Lv.18-25 그란 왕국, 자누 평야.
탈것을 타고 동남으로 약 10여 분 질주하여 숲길을 빠져나오자, 한참 땀 흘리며 일하는 농부 NPC들의 모습과 함께 드넓은 평야가 펼쳐졌다.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함께 자라나는 곡식들이 보이는 풍경. 자연의 상쾌함과 함께 자전거로 열심히 달리는 찬성은 여태 맛보지 못한 쾌감을 느꼈다.
“넓고 멋지네요.”
“그렇죠. 아, 저기!”
“쿠룩, 저기가 바로 자누 요새입니다. 이 평야를 오크들과 고블린들의 공세로부터 지키는 보루지요. 저 너머에선 이제 계속해서 쳐들어오는 오크와 고블린들의 공세가 계속되는 명물 레벨 업 사냥터입니다.”
“지지직… 그리고 본격적으로 유저들의 분쟁이 시작되는 개미지옥이기도 하죠. 사실 습격 요새에서 더 레벨 업 해도 좋았을 거지만요.”
평야 너머에 있는 커다란 목책 요새를 보면서 찬성에게 친절히 설명해 주던 일행은 빠르게 요새에 도착했다.
도달하니 목책 너머에서 비명 소리, 금속음, 커다란 외침, 마법과 빛이 폭발하는 효과까지 은연중 보이면서 이곳이 전쟁터라는 것을 실감케 했다.
“멈춰라! 여긴 전쟁 중인 자누 요새다. 정체를 밝혀라.”
“저희는 수웨라성의 모험가 길드에서 왔습니다.”
“흠, 오기로 했던 지원군인가? 좋다. 들어가도록 해라.”
입구에 있는 병사 NPC가 잠시 길을 막았지만 수웨라성에서 올 지원이 이미 예정되어 있던 건지 그대로 통과할 수 있었다.
“자, 그러면 여기서 세이프! 오늘은 여기까지!”
“시간 아슬아슬하네요.”
“지지직… 딱 좋게 주차되었네요. 그럼 다들 내일 뵙겠습니다.”
“예! 내일 봬요!”
아슬아슬한 플레이 타임이 마침 딱 끝났기에 다들 요새에 오자마자 좋은 위치에서 접속 종료를 하고 게임에서 나갔다.
***
다음 날, 자누 요새.
시간 맞춰 접속한 찬성 일행은 집결하자마자 곧바로 병사의 안내를 받아서 요새 내부로 들어갔다. 그러자 지휘와 전투를 위해 오가는 병사들의 틈바구니에서 요새의 지휘관이 보였다.
“좌측! 벽면을 사수해라! 자네들은 뭔가? 지금 한창 바쁜데!”
“수웨라성, 모험가 길드에서 온 지원이라고 합니다.”
“흐음, 내가 부른 건 좀 더 강한 모험가들인데, 거기도 인원이 부족한가? 제길! 어쩔 수 없지. 난 이곳 자누 요새의 지휘관 에란트 자작이다. 우선 실력을 보여 봐라. 가볍게 오크 놈들의 목 10개만 따 와. 그러면 다음 임무를 주겠다.”
[시스템-퀘스트가 갱신되었습니다.] [퀘스트:지휘관의 요구(1)]당신의 실력을 의심하는 자누 요새의 지휘관이 ‘오크의 머리’를 가져오라고 한다. 그럼 실력을 보여 줘야 하는 법. 요새 밖으로 나가서 오크들을 처치하고 머리를 가져오자. 곧바로 목책 위의 파견대장에게 향하라.
조건:파견대장을 향해서 출동하기
오크의 머리 0/10개
“우린 9개만 가져가면 되겠네. 한 개는 이미 있으니 말이야.”
“쿠룩, 너 이 새끼, 그 말 할 줄 알았다. 쿠룩. 10개 다 챙겨야 합니다. 쿠룩.”
“하하하.”
“지지직…….”
고블린과 오크들이 주적인 전장에 왔다 보니 오크 아바타를 입은 근손실보험을 자연스럽게 놀리며 찬성 일행은 곧바로 목책 위로 향했다.
파견대장 제이시라고 하는 주근깨에 주황색 머리칼이 인상적인 한 여성 장교 NPC가 찬성 일행을 향해 손을 흔들면서 반겼다. 그녀는 다가와서 그들에게 무언가 가방 같은 것을 건네며 말했다.
“자, 다들 등에 이거 착용하고, 사용법은 간단해. 슈웅~ 날아가면 그대로 빨간 버튼을 눌러. 그럼 등 뒤의 낙하산이 펴질 거고 천천히 내려가게 될 거야.”
“…네?”
“날아가는 건 여기 투석기로 날려 줄 테니까~ 자, 다들 한 명씩 저기 앉아.”
“제정신이에요? 사람을 그렇게 날리면…….”
“찬성 님, 뭐 해요? 얼른 앉아요.”
“쿠룩, 읏챠. 이거 꿀잼이라는데, 어디…….”
상식적으로 너무 말이 안 되는 소리인지라 찬성은 깜짝 놀라며 반박했지만, 다른 세 사람은 이미 투석기의 바위를 올리는 곳에 각각 앉아서 대기하고 있었다.
이내 그는 이게 ‘게임’이었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으며 자신도 남은 투석기 자리에 다른 사람들처럼 앉았다.
“…정말 이거 안전한 건가요? 아니, 대체 왜 이런 식으로…….”
“애초에 정규군이 아닌 모험가가 전쟁터에 지원 오는 거 자체가 이상한 거죠.”
“쿠룩쿠룩. 맞아.”
“그럼 손님들~ 무사히 귀환하세요~ 사격 준비~ 쏴!”
덜컹!
투석기의 발사 장치에 묶인 밧줄이 끊어지고, 찬성 일행은 그대로 하늘로 날아갔다.
발리우드(인도 영화계)에서나 볼 법한 방법으로 하늘로 날아오른 찬성은 물리 법칙에서 오는 압력과 바람을 맞으면서 점점 멀어지는 지상을 내려다보았다. 처음엔 미쳤다고 생각했지만 발밑으로 순식간에 멀어지는 지상을 보며 금방 재미있다고 생각을 바꿨다.
“오오… 오오오오오오! 우얏호오오오오오오오!”
“생각보다 엄청 좋아하시네. 얼른 낙하산 펴세요. 그럼 UI 메뉴 바뀌니 그거 보고 지정해서 착지 포인트 정합시다. 낙하에 가속도 붙어서 떨어지면 얄짤없이 죽습니다.”
“아, 예에!”
펄럭!
전국건강협회의 지시에 찬성은 곧바로 빨간 버튼을 눌러서 낙하산을 폈고, 낙하의 속도가 점점 떨어지면서 새로운 UI가 뜨고 낙하할 지점을 찍으라는 설명이 나타났다. 파티원들의 위치가 찍히는 것을 본 찬성이 그들을 따라서 터치하니 자동으로 지정한 지점으로 날아갈 수 있었다.
“읏챠, 이거 꽤 재미있죠? 아, 가방은 버리면 알아서 사라집니다.”
“일회용인가 보네요.”
“쿠룩, 이건 그냥 게임적 편의죠. 쿠룩쿠룩. 아무튼 위치는 잘 왔는데… 쿠룩.”
“지지직… 날을 잘못 잡았네요.”
찬성 일행이 잡은 위치는 오크들의 진영 외곽으로, 적절한 숫자를 끌어모아서 사냥하기 좋은 곳이었다.
오크들의 진영에는 그들이 만든 간이 천막들이 잔뜩 있었는데, 보통은 그 안에서 오크와 고블린들이 끊임없이 리젠되면서 자동으로 요새를 향해 돌진하는데, 전국건강협회는 그 외곽에서 끌어와서 잡을 계획이었다.
하나 그 계획이 하필 시간을 잘못 잡아서 헛되게 생겼다.
[Lv.30 오크 워로드 메가빅 워엑스(필드 보스)]보유 스킬:강건함, 필드의 강자, 워로드의 용맹, 분노의 폭발, 투기의 발산
“쿠워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엉어어어어어! 내 도끼의 적수는 없는 거냐!”
내려오자마자 보인 것은 약 건물 3층 높이 정도로 거대한 오크가 자신의 몸만 한 도끼를 휘두르며 난동을 부리는 장면이었다. 그리고 그 주변에서 수많은 유저들이 오크 워로드 메가빅 워엑스를 잡기 위해서 싸우고 있었다.
“우와아아아! 어라? 다들 왜 그러세요?”
거의 괴수 영화에서나 볼 법한 광경을 발견한 찬성은 감탄하며 눈을 반짝이는데, 다른 사람들은 오히려 낭패라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에 이상함을 느낀 찬성은 세 사람에게 사정을 물었다.
“별로 좋지 않은 거라서 말이죠. 조금만 더 가까이 가서 밑을 자세히 보세요.”
“밑? 어라?”
찬성은 전국건강협회의 말대로 좀 더 다가가서 상황을 살폈다.
그러면서 밑의 상황이 좀 이상한 걸 눈치챘다.
멀리서 볼 때는 그저 저 필드 보스인 오크 워로드 메가빅 워엑스를 상대하기 위해 서로 협력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올라오는 채팅 로그만 봐도 그게 아니었다.
[필드][헤르메스의걸음:좀 죽어라!] [필드][메키의목걸이:죽여! 죽여!] [필드][방어태세:보스를 저쪽으로 보내! 포 더 호드!] [필드][오늘만산다:브루탈 개새끼들! 엔타로 아둔!] [필드][탐험가의돌:시공 놈들은 시공으로 돌아가라! 아? 이미 돌아갈 수 없어서 망해 버렸던가?] [필드][물의군주:너 아이디 기억했어! 반드시 죽인다!]“…싸우고 있네요?”
찬성이 말한 대로 양측 합쳐서 약 150명 정도 되는 인원들은 필드 보스를 상대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끼리 서로를 죽이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다.
그 와중에 광역 스킬이나 오발이 난 스킬을 맞으면서 자동으로 전투에 참여한 필드 보스는 사실상 무차별적으로 상대를 공격하는 도구가 된 전쟁의 변수였다.
“왜 저런대요?”
“왜긴요. 이득 때문이죠.”
“이득?”
“필드 레이드 보스도 결국 레이드 보스. 통상적인 MMORPG 온라인 게임이라면 모두가 하하호호 하면서 잡으면 운에 따라 보상이 골고루 분배되는 게 정상이지만… 이 ‘어나더 월드 아카이브’도 결국 K게임 출신이라서~ 기여도 순으로 확률과 보상이 배분됩니다. 더 많은 딜, 힐, 받은 피해량과 감소된 피해량 등등, 각종 기여도 순서로 말이죠. 더불어 일정 순위 아래로는 그냥 잘려서 무보수 노동 같은 게 됩니다.”
“헉!”
“거기에 저 필드 레이드 보스들의 경우 장비 아이템은 뭐, 자기 레벨대에 맞는 것만 주지만… 제일 중요한 건 역시 스킬북이죠. 특정 클래스의 특정 레어 스킬북……. 마스터 레벨 스킬북 같은 건 특정 필드 보스에서만 획득할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도 ‘거래 가능’으로 말이죠. 스킬의 등급이 올라가면 같은 레벨의 같은 클래스라고 해도 능력이 다른 건 아시죠?”
수요와 공급의 원칙 정도는 상식으로 알고 있었다. 말인즉슨 필드 레이드 보스를 독점하면 확률이 어떻든 간에 공급을 독점하는 거니 큰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러니 저런 전쟁이 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 찬성은 고개를 끄덕이며 납득했지만, 의문이 하나 생겼다.
“그럼 우리는 왜 곤란한 거죠?”
“지지직… 참고로 필드 레이드 보스의 리젠 타임은 보스마다 다르지만 죽고 나서부터 카운팅, 혹은 서버 점검 이후 리셋부터 카운팅하기 시작합니다. 지지직… 그러니 독점하는 쪽은 더욱 유리합니다. 지지직…….”
“쿠룩, 물론 다른 곳에도 필드 레이드 보스가 있고, 던전도 있고, 더 좋은 영지도 있기에 결국 저걸 두고 싸우는 건 이 근방에 있는 수웨라성의 ‘시공 길드’와 이첸성의 ‘브루탈 길드’, 둘이서만 세력권 경쟁을 하는 겁니다.”
“아무튼 우리가 때를 잘못 잡은 이유는… 싸움을 하는 저들에게 재수 없게 휘말릴 위험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게임 속에선 법도, 제네바 조약도, 수천 년간 인류가 벌여 온 각종 전쟁으로 만들어진 룰이 없으니까요. 경험치, 레벨 다운만 되면 다시 살아나니…….”
친절한 세 사람의 설명 덕분에 찬성은 저 사태가 왜 문제가 된 건지 단숨에 이해하게 됐다.
한창 전쟁하느라 바쁜 저 주변에서 얼쩡거리면서 퀘스트하다간 적으로 몰리거나 아니면 무고하게 죽을 가능성이 높은 것이었다.
“물론 지금 받은 이 9마리 처리 퀘스트 정도는…(쿠룩! 얀마, 10마리야! 10마리!)…슬금슬금 밀면 그만이지만… 문제는 그다음 퀘스트부터는 저 오크 진영 내부로 들어가야 하는 거라서 결국 못하는 거나 마찬가지죠. 리젠 타임은 맞출 수 있다고 쳐도 서로 전쟁할 타임에 겹치냐…….”
“보통은 전쟁… 잘 안 하나요?”
“쿠룩, 서로 싸우다가 죽고 하면 경험치 및 레벨 다운, 사용한 소모품 아이템 가격도 만만치 않죠. 지금 저기 다 합쳐서 150여 명 정도인 소규모 전장이라고 해도 들어가는 돈은 천만 원 단위는 그냥 넘을 겁니다. 전쟁이 왜 돈 먹는 괴물인지 알려 주는 거죠. 쿠룩. 그런 만큼 같은 길드가 아닌 이상에야… 쿠룩. 모조리 갈려 나갈 겁니다. 아무튼… 지금 시간은 무리이니 다시 정해서 모이는 건…….”
“지지직… 죄송한데, 저 지금 아니면 게임할 시간이 안 될 것 같아요. 지지직…….”
갑작스럽게 일어난 이 전쟁 상황으로 인해 다시 게임 시간을 잡을까 고민하던 차, 살덩이는나약하다가 손을 올려 더 이상 게임 진행이 어려울 것 같다는 말을 꺼냈다.
게임은 결국 게임. 다들 현실의 일정이나 사정이 있는 건 당연한 일이었기에 어쩔 수 없는 경우도 분명 존재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