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of the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121
120화 드라마(4)
5-8. 드라마(4)
쉬면서, 이신은 구형 폴더폰을 꺼내 문자 메시지들을 확인했다.
[인터넷 중계로 보고 있다. 힘내렴.]어머니의 문자.
[외숙모랑 같이 보고 있어.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ㅋㅋ 아무튼 파이팅!]채정아의 문자.
[신님 꼭 승리하세요! 경기장에서 간절히 두 손 모아 기도하며 응원하고 있어요!]지수민의 문자.
그밖에도 주디나 차이의 문자도 있었다.
확인 못했던 수많은 응원 문자 메시지가 그를 즐겁게 했다.
오래 전…….
신인으로 처음 데뷔하고 무패우승과 무패 금메달을 쟁취했을 때, 이신이 느낀 것은 공허함이었다.
평생 걸어가기로 했던 길인데, 벌써 종착지에 다다랐나?
겨우 이 정도였나?
벌써 끝을 볼 수 있을 만큼 얕은, 정말 그 싫은 아버지 말씀처럼 어릴 때나 하는 놀이란 말인가?
그래서 은퇴도 생각했다.
그걸 막아준 사람은 황병철이었다.
프로리그에서 이신에게 처음으로 에이스 결정전에서 패배를 안겨주었다.
계속 허수(虛數)를 던져 끝까지 비수(匕首)를 감춘 뒤에, 결정적인 순간에 그 칼날을 드러내며 온몸을 던져 공격한다.
죽음을 불사한 듯한 비장한 총공격.
그리고 이신에 대적할 수 있는 컨트롤과 직감.
운이 아닌 실력에 의한 패배.
덕택에 잃었던 열정을 회복했다.
그래서 이신에게 황병철은 큰 의미로 다가왔다.
‘내가 질 리가 없잖아.’
문자 메시지들을 읽어보며 이신은 피식 웃었다.
비로소 이렇게 재미있어진 승부였다.
그런 승부에서 질 리가 없지 않은가.
이 이신이 말이다.
이런 데서 지라고 신이라 불린 게 아니다.
“이신 선수, 이제 곧 경기가 시작되니 준비해주십시오.”
스태프가 들어와 말했다.
고개를 끄덕인 이신이 핸드폰을 집어넣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인마.”
문득 방진호 감독이 이신을 불러 세웠다.
“왜요?”
“왜요? 확 그냥.”
“뭡니까?”
“아오, 어차피 팀이랑 상관도 없는데 확 박살나버려라.”
이신은 뻔뻔스럽게 미소를 지어보였다.
방진호 감독은 귀찮다는 듯이 툭 내뱉었다.
“이기고 와라. 그딴 짓 해놓고 지면 뒈진다.”
“예.”
이신은 대기실을 나섰다.
***
황병철은 부스를 떠나지 않았다.
대기실에서 몸을 쉬게 놔두면 긴장감도 풀릴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이 극도로 고양된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고 싶었다.
부스의 유리벽 밖을 바라보았다.
눈이 마주치자 어머니와 아버지가 아주 밝은 모습으로 손을 흔들었다.
아버지는 엄지를 치켜세워보였다.
잘 싸웠다고, 멋졌다고, 입모양으로 호들갑스럽게 말씀하신다.
그 주변에 있던 그의 팬들도 응원문구가 적힌 플랜카드를 흔들어댔다.
자신에게 힘이 되어 주는 이들을 보며, 황병철은 날카롭게 정신을 가다듬었다.
‘이긴다.’
황병철의 두 눈에 다시금 살기가 피어올랐다.
‘신이고 나발이고 난생 처음 광탈이 뭔지 체험하게 해준다!’
그렇게 두 사람이 마지막 결전을 준비하기 시작했고, 마침내 대망의 5세트가 다가왔다.
-이제 마지막 5세트 경기가 곧 시작됩니다. 양 선수 모두 부스로 돌아와 경기를 준비 중입니다.
-정말, 3세트 후반까지만 해도 2 대 2 스코어로 최후의 승부가 벌어지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죠.
-그렇죠. 3세트도 이신 선수의 전략이 연속으로 먹혀들면서 황병철 선수가 GG를 치기 직전이었는데, 돌연 이신 선수가 GG를 선언했단 말이죠. 이건 정말 경기 끝나고 인터뷰 때 물어봐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예, 하지만 4세트! 정말 3세트 때까지 지지부진했던 황병철 선수가 마치 1년 전으로 돌아가기라도 한 것처럼 놀라운 플레이로 이신 선수를 제압했습니다.
-오늘 경기는 정말 예측 불허의 양상으로 펼쳐지고 있네요. 아무튼, 결착은 납니다! 바로 이곳, 5세트 맵 파이널 플랜트에서 말이죠!
파이널 플랜트는 올해 들어 공식 맵으로 등록된 3인용 맵이었다.
스타팅 포인트가 1시, 3시, 7시 지점에 위치한다.
이신의 스타팅 포인트는 7시.
황병철은 3시였다.
“오오오오!”
관객석에서 경악이 터져 나왔다.
이신의 8번째 건설로봇이 맵 중앙까지 나와 병영을 짓기 시작한 것이다.
-8병영! 이신 선수가 과감하게 칼을 뽑아들었습니다!
-치즈러시를 가겠다는 뜻인데요?!
3세트 때와 비슷한 빌드 오더를 택한 이신.
하지만 상황은 3세트 때와 같지 않았다.
-황병철 선수는 9수정관입니다! 8병영을 다분히 의식한 대책이에요!
9번째 일벌레로 수정관을 짓는 빌드 오더였다.
빠른 타이밍에 바퀴가 생산되기 때문에, 치즈 러시를 노리는 인류의 8병영의 카운터라고 할 수 있었다.
황병철의 경계심이 극에 달해 있다는 증거였다.
이신은 다 완성된 병영에서 보병 2명을 생산한 뒤, 바로 병영 건물을 들어 올렸다.
병영 건물은 이신의 본진으로 천천히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때쯤 바퀴 6마리가 생산되자마자 달리기 시작했다.
-황병철 선수, 갑니다!
-여기서 이기면 오랜 천적을 꺾는 겁니다!
바로 그때였다.
정찰을 나갔던 이신의 건설로봇이 바퀴들과 마주쳤다.
바퀴들은 무시하고 달렸지만, 도리어 건설로봇이 달려들었다.
다음 순간, 모두의 감탄이 경기장을 뒤덮었다.
절묘한 길 막기!
건설로봇이 바퀴들의 앞에서 천천히 달리며 자꾸만 진로를 방해하는 것이었다.
-정말 신기에 가까운 컨트롤이네요! 저게 일부러 할 수 있는 건가요?
-계속 바퀴들 달리는 속도를 늦추며 시간을 법니다!
바퀴들이 이신의 본진에 당도했을 때, 본진 입구는 건설로봇 3기와 보병 2기로 지켜지는 상태.
-황병철 선수, 어어! 달려듭니다!
-저게 이단자죠!!
그 방어 태세를 보고도 과감하게 뛰어든 황병철!
블로킹을 하고 있는 건설로봇 하나를 집중 타격했다.
삽시간에 펼쳐진 교전.
반사적으로 다른 건설로봇들이 수리했지만, 그 순간 황병철은 타깃을 그 옆의 건설로봇으로 바꿨다.
-퍼엉!
-키엑!
건설로봇 1기와 바퀴 1마리가 죽었다.
건설로봇 1기가 비자, 그 틈새로 바퀴들을 쑤셔 넣었다.
-으악!
-키엑!
보병 1명과 바퀴 1마리가 또 동시에 죽었다.
-황병철 선수의 컨트롤도 장난이 아닙니다!!
-저걸 뚫나요?!
그러나 이신은 조금도 당황하지 않았다.
건설로봇을 추가로 끌고 나와 바퀴들을 진압해나갔다.
남은 보병 1명을 노렸지만, 건설로봇들의 블로킹에 의해 진로 차단!
건설로봇들이 에워싸 바퀴들을 죽여 나갔다.
극도로 정교한 컨트롤이 자유자재로 펼쳐졌다.
수리하고 길 막고 보병의 무빙 샷.
결국 바퀴들은 건설로봇을 추가로 1기 더 사살하는 데 그쳤다.
이신은 건설로봇 1기를 밖으로 내보내 추가로 달려오는 바퀴가 없는지 확인했고, 다른 건설로봇들은 돌아가 일을 하게 했다.
-8병영이 실패했지만 황병철 선수의 역습을 아주 무난하게 막았습니다.
-와, 정말 숨이 막혔습니다! 거기에 냅다 뛰어들어서 구멍을 뚫고 들어가는 황병철 선수나, 그걸 또 표정 하나 안 변하고 막아내는 이신 선수나! 두 선수 모두 대단합니다!
-예, 어쨌거나 지금 현 상황에서 유리한 쪽은 황병철 선수죠. 앞마당을 가져갔고, 이제 2부화실에서 쐐기충을 생산해 다시 견제를 들어올 텐데요!
-아아! 이신 선수의 선택은 2항공입니다!
-저건 스텔스 전투기죠!
이신은 앞마당을 가져가지 않고 본진 플레이를 하면서, 항공정거장 2개를 지었다. 그리고 스텔스 전투기 생산에 들어갔다.
황병철 또한 쐐기충 둥지를 짓고서 본진과 앞마당 2개의 부화실에서 쐐기충 생산에 들어갔다.
먼저 생산된 쪽은 이신.
스텔스 전투기 2기가 즉시 출격했다.
스텔스 전투기 2기는 일단 황병철의 본진을 쭉 훑어보았다.
황병철이 쐐기충 체제로 간다는 걸 파악하자, 더 볼 것 없이 행동에 나섰다.
쫘악!
스텔스 전투기 2기가 하늘군주 1마리를 공중분해 시켰다.
하늘군주 1마리를 더 공격할 때였다.
-끼익!
본진 쪽 부화실에서 생산된 폭탄충 6마리가 날아왔다.
작은 폭탄충 6마리는 그대로 스텔스 전투기와 자폭을 하려 들었다.
2마리당 1기를 자폭으로 격추시킬 수 있는 위력을 지닌 폭탄충이었다.
역 V자 대형으로 날아드는 폭탄충.
-지금 빌드의 핵심은 바로 저 스텔스 전투기를 잃지 않고 모으는 겁니다!
-1기도 격추되면 안 됩니다!
8강행 티켓이 걸린 마지막 5세트.
저 1기 1기에 두 선수의 운명이 걸려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보는 이들을 아찔하게 만드는 공중전의 개막이었다.
펑!
-끼익!
스텔스 전투기 2기는 감각적인 터닝 샷으로 폭탄충 1마리를 죽였다.
하지만 그 사이 다른 5마리가 거리를 좁혀오자, 달아날 수밖에 없었다.
황병철 또한 예술적인 컨트롤을 보였다.
5마리를 두 패로 갈라 사냥개가 양떼를 몰이하듯 스텔스 전투기들을 맵 구석으로 몰아세운 것.
-깔끔하게 두 개로 나뉘어서 몰아넣는 것 좀 보세요!
-정말 황병철 선수가 마침내 이단자다운 모습을 보여주네요! 어, 어, 잡힐 것 같은데요!
맵 구석에 몰리자 폭탄충 5마리가 득달같이 덤볐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충돌하기 직전, 스텔스 전투기들이 순간적으로 U턴!
급격히 머리를 돌려 폭탄충들 사이를 절묘하게 빠져나갔다.
갑작스러운 방향 전환으로, 쫓아오던 폭탄충들에게 잠깐의 딜레이가 생긴 것!
이 점을 의도적으로 노린 회피 플레이였다.
“우와아아아아!”
“꺄아아악!”
관객들이 아예 이성을 잃고 열광하였다.
-와, 이런 말씀 드리면 좀 그렇지만, 저게 사람입니까!
-사람이 아니라 신이죠. 정말 신의 드라이빙입니다!
무표정의 이신과 살짝 인상을 찡그리는 황병철의 모습이 대형화면에 잇달아 비춰졌다.
황병철은 쐐기충과 폭탄충을 늘렸고, 이신 또한 스텔스 전투기가 다수 모이고 스텔스 모드까지 개발되었다.
이신의 스텔스 전투기 편대가 다시금 황병철에게 향했다.
이에 질세라 황병철도 모든 비행유닛을 끌고 나섰다.
스텔스 모드를 간파하기 위해 하늘군주까지 대거 끌고 나왔다.
스르륵―
투명화 되어 사라지는 전투기 편대.
하지만 황병철은 하늘군주를 잔뜩 펼쳐놓아 시야를 확보해놓고 맞섰다.
공중전이 마침내 절정에 이르렀다.
쫘아악! 쫙!
-키에엑!
-키엑!
-퍼어엉! 퍼엉!
양진영이 현란하게 치받기 시작했다.
쐐기충들이 날갯짓하며 쐐기를 발사했고, 스텔스 전투기들은 연속 무빙 샷으로 접근하는 폭탄충들을 족족 격추했다.
폭탄충들이 반 포위 대형을 펼쳐 사방에서 전투기 편대를 덮쳤다.
그 순간, 전투기 편대는 지그재그로 기동하며 터닝 샷을 좌우로 퍼부었다.
삽시간에 격추되는 폭탄충 4마리!
그러면서 무난하게 후퇴하는 전투기 편대!
하늘군주의 시선이 닿지 않는 거리까지 물러서자, 황병철도 더는 후퇴하지 못했다.
근처에 하늘군주가 없으면 스텔스 모드 때문에 싸움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
그 틈에 이신은 다시 반 시계 방향으로 우회해 측면에서 공격했다.
황병철도 일방적으로 당하는 건 아니었다.
사실은 아주 잘 해주고 있는 것이었다.
하늘군주들을 전투기로부터 보호하고, 사거리 안에 들어오면 쐐기를 한 방씩 날려 반격을 가했다.
쐐기충은 스텔스 전투기보다 체력이 많아서 똑같이 데미지를 교환하면 불리할 게 없었다.
그저 넋을 잃은 관객들.
지금껏 본 적이 없었던 슈퍼 플레이의 대향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