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of the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187
186화 활약(2)
커다란 침대를 절반 이상 잠식한 거구의 사내가 있었다.
사내는 흉한 알몸뚱이를 드러낸 채 누워 있었는데, 그 곁에는 역시나 하얀 나신의 여인들이 있었다.
“자자, 이제 꺼져 봐.”
사내는 거칠게 여인들을 밀어냈다.
“네.”
“또 불러주세요, 계약자님.”
여인들은 교태를 부리며 알몸 그대로 사라졌다.
사내는 나가는 여인들의 매혹적인 뒤태를 보며 히죽히죽 웃었다.
“정말 끝내주는 곳이란 말이야.”
동탁은 마계의 생활이 좋았다.
인세(人世)에서는 상상도 못했던 모든 욕망이 충족되는 세상.
악마군주 오리아스의 유혹을 받아 계약을 한 동탁은 그때의 결정을 후회하지 않았다.
비록 믿었던 부하 놈에게 살해당했지만, 신나게 권력놀음을 하며 천하를 오시하지 않았던가.
그리고 원하는 모든 것을 다 얻고 즐길 수 있는 이 세상이라니!
악마들의 마계 사회는 동탁의 취향에 딱 맞았다.
이 영화를 영원히 누릴 수 있다.
조건은 딱 하나.
서열전에서 승리할 것.
계속 악마군주 오리아스로 하여금 지금의 위치를 사수할 수 있게 할 것!
서열전을 시작하면서 지금까지 동탁의 성적은 그냥저냥 평범한 수준.
어떨 땐 승리하고 어떨 땐 패배하고, 어쨌거나 악마군주 오리아스의 서열과 마력량을 현상유지하게 해주었다.
현재 악마군주 오리아스의 서열은 60위.
동탁과 계약하기 전에는 59위였으니, 그럭저럭 선방을 한 셈이었다.
치열하고 끝이 없는 악마군주들의 무한경쟁 속에서 긴 세월 이만큼 선방한 것만으로도 공이 있다고 할 수 있었다.
물론 뛰어난 활약이었다고 말하기도 힘들지만, 악마군주 오리아스로서는 동탁을 선뜻 버리고 다른 인물로 계약자를 교체하기도 애매한 상황.
새로운 계약자는 그만큼의 기대감과 리스크를 동반한다.
단적으로 악마군주 그레모리를 보면 안다.
이전에 계약자를 잘못 만나서 최하위까지 서열이 추락해 상급 악마들로부터 도전까지 받는 굴욕을 겪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떠한가?
이번에는 뛰어난 계약자를 만나 그 짧은 시간에 벌써 여기까지 치고 올라왔다.
그처럼 누군가는 성공하는가 하면, 또 어떤 계약자는 실패하기 때문에 악마군주 오리아스로서는 현상유지나마 해주는 동탁을 쉽게 버릴 수 없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계약자인 동탁이 그걸 믿고 마음대로 악마군주 오리아스를 쥐락펴락하느냐 하면 그건 결코 아니었다.
서열전의 주역이 계약자들이라고는 하나, 어디까지나 주체는 악마군주들이었다.
대부분의 계약자들은 결국 승률이 세월의 흐름에 따라 등락곡선을 그리며, 승률이 하강할 때쯤 악마군주는 어김없이 계약자를 갈아치운다.
계약 조건에 따라 계약이 해지되었을 때의 처우가 달라지는데, 동탁의 경우는 계약자의 지위를 잃을 시 어김없이 지옥행이었다.
‘그럴 수야 없지.’
계약자들은 끊임없이 이기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악마군주들이 끊임없이 재능 있는 유망한 차기 계약자를 수색해야 하듯이 말이다.
‘이제는 슬슬 이겨야 하는 타이밍인데, 상대가 좋지 않군.’
그레모리가 새로운 계약자와 함께 무서운 기세로 상승하고 있다는 소식은 마계에 널리 알려진 핫이슈였다.
딱 한 번 패배한 적이 있지만 그나마도 곧바로 재도전해서 더 큰 배팅으로 이겼으니, 사실상 승리라고 봐야 했다.
그렇듯 실력이 심상치 않은 계약자이기에, 동탁은 머리를 굴렸다.
동탁은 살아생전에도 그랬지만, 자기보다 권세 높은 이의 눈치를 보는 데는 거의 초능력자급이었다.
악마군주 오리아스의 눈치를 끊임없이 보며 승패 관리를 해왔기 때문에 지금껏 버틸 수 있었다.
‘그 실력 넘치는 신인 놈과 붙기 전에 일단 승리를 따두어야겠다!’
그렇게 생각해서 위 서열로 도전을 감행했다.
하지만 도전은 실패.
2만 마력을 내주면서 60위에 그대로 주저앉고 말았다.
그러는 사이에 악마군주 그레모리는 또 승리를 거두어 62위가 되었다.
게다가 본래 61위였던 악마군주 안드레알푸스가 큰 배팅에서 져 추락하는 바람에, 그레모리가 61위로 다시 한 계단 올라왔다.
마침내 동탁은 그 무서운 신입 계약자 녀석과 싸울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였다.
심지어 그 바로 아래로 줄줄이 올라온 녀석들도 하나같이 심상치 않았다.
62위로는 악마군주 벨리알과 조아생 뮈라.
64위로는 악마군주 안드로말리우스와 오자서.
오자서는 수많은 고사 성어를 만들어낸 말이 필요 없는 위인.
그리고 조아생 뮈라는 여포에 비견될 무력과 특출한 승부 감각을 지닌 맹장이었다.
여포는 초인적인 용맹을 지닌 무장이었으나, 때때로 이상하게 겁이 많아 일을 그르칠 때도 있었다.
그런데 조아생 뮈라는 뭘 잘못 먹었는지 겁 대가리를 완전히 상실했다.
일전에 싸워봤었는데 뇌가 없는 것 같은 조아생 뮈라의 광전사 같은 투지에 학을 뗀 적이 있는 동탁이었다.
‘이번에도 패배하면, 자칫 잘못하면 줄줄이 연패에 빠져 버린다.’
그랬다가는 지금껏 유지해왔던 승패의 균형이 깨져 버린다.
악마군주 오리아스로부터 신임을 잃게 되는 것이다.
‘하는 수 없지. 비상수단을 써야 하나.’
동탁은 입맛을 다셨다.
마력이 아까워서 그동안 미뤄왔던 것을 해야 할 차례인 듯했다.
***
“준비는 끝나셨나요?”
“예.”
이신은 고개를 끄덕였다.
기병 활용에 유리한 전장들을 전부 숙지하고 모의전을 통해 연마했다.
전략도 수립되었다.
이제 도전해서 승리를 가져오는 일만 남았다.
“제 손을 잡으세요. 놓으면 안 되는 것 아시죠?”
“예.”
이신은 그레모리의 손을 잡았다.
두 사람은 텔레포트해서 악마군주 오리아스의 궁전으로 갔다.
파앗!
공간이 일그러지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환경이 변했다.
악마군주 오리아스의 궁전은 이신이 듣도 보도 못한 건축양식으로 되어 있었다.
단 1층.
위로 올라가는 계단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다만 그 1층이 광활한 평야처럼 매우 넓었다.
쿠르르르르!
멀리서 복도 코너 저편에서 바퀴가 거칠게 굴러가는 굉음이 들려왔다.
이윽고 코너를 돌아 다타난 것은 황금으로 된 거대한 전차!
그리고 전차를 몰고 있는 존재는 두 발로 서고 양손에 채찍과 고삐를 쥔 사자였다.
사람처럼 직립보행을 하고 의복을 입고 있는 것도 이상한데, 거대한 전차만큼이나 덩치가 태산 같아서 더욱 괴이했다.
옆에 함께 타고 있는 거구의 사내 동탁이 난쟁이처럼 작아 보일 지경이었다.
그 엄청난 위용에 압도당한 이신은 저도 모르게 잡고 있는 그레모리의 손을 더욱 꽉 힘주어 쥐게 되었다.
아무리 이신이라도 사람인 이상 악마군주의 위용 앞에 기가 질리는 것이 정상이었다.
그러자 두려워할 필요 없다는 듯이 그레모리의 손으로부터 따스한 기운이 밀려왔다.
그제야 이신은 반지의 힘을 깜빡했다.
‘이럴 때 쓰라고 했었는데 잊고 있었군.’
현실 세계에 있을 때는 워낙에 멘탈이 갑이라 마음이 동요할 일이 없었기에, 반지의 힘을 사용하는 것이 습관화되지 않은 것이었다.
반지에 마력을 주입하자 그제야 안락한 기분이 들어 평온해졌다.
이제 악마군주 오리아스가 일부러 겁박을 주려고 기세를 일으키지 않는 이상 겁먹을 일이 없었다.
“반갑군!”
동화 속 캐릭터처럼 직립보행 하는 거대한 사자 형상을 띤 오리아스가 그레모리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물론 동화 속 캐릭터와 달리 오리아스는 저 거대한 주둥이로 사람을 몇이나 씹어 먹을 것처럼 위험하고 광포해 보였다.
목소리마저도 으르렁거리는 사자 울음소리와 비슷했다.
“오랜만이구나, 악마군주 오리아스.”
“한창 하락세였을 때는 아쉽게도 붙을 일이 없더니, 상승세일 때 이렇게 만나게 되니 고약할 노릇이군.”
오리아스의 엄살에 그레모리는 눈웃음을 짓는다.
“약한 소리를 하는군. 긴 세월 간 큰 등락 없이 성세를 유지한 몇 안 되는 악마군주들 중 하나면서.”
“그것도 나름대로 고충이 있는 터라 좋다고 말할 수가 없군. 아무튼 이렇게 만나게 되었으니 어디 한 번 겨뤄보지. 어느 쪽이 더 뛰어난 계약자를 손에 넣었는지를 말이지.”
“좋지.”
두 악마군주가 대화하는 동안 이신 역시 동탁과 눈을 마주했다.
시선이 마주치자 동탁은 넉살 좋게도 씨익 웃어 보였다.
그것은 도발처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신은 별다른 동요가 없었다.
프로생활을 하면서 수차례 마주쳐 본 유형 중 하나였다.
넉살 좋고 유들유들하면서도 뻔뻔하기도 하고 거침없이 시비를 걸고 도발할 줄도 안다.
특히 외형적인 성향이 두드러지는 서양이나 공격적인 중국 쪽 프로게이머들이 저런 유형의 인간이 많았다.
e스포츠는 처절한 승부의 세계.
땅과 자원을 놓고 전쟁을 벌여 상대를 멸망으로 몰아넣는 처절한 경쟁이었다.
당연히 상대에 대한 매너나 상대에 대한 배려 등을 집어치우고 승부를 즐기는 유형의 선수들도 얼마든지 있고, 이신 또한 수많은 도발을 당해왔다.
그리고 이신은 그런 상대에게 져본 적이 없었다.
이신은 날카롭게 벼려진 검이었다.
검집에 들어가 있을 땐 조용하나, 한 번 뽑으면 그러한 거친 선수들보다도 오히려 더 예의·배려를 차릴 줄을 몰랐다. 상대를 괴롭게 만드는 악마적인 플레이를 즐겼다.
그런 성격을 잠자코 드러내지 않고 있기에, 동탁이라는 맹수 같은 사내 앞에서도 별반 감정을 품지 않는 것이었다.
“넌 뭘 하던 작자야?”
이신이 아무 반응 없자 동탁이 이번에는 말을 걸어왔다.
이신은 그런 동탁의 심리를 감지했다.
어떻게든 자신의 반응을 보고 싶어 한다. 왜냐하면,
‘내가 두렵기 때문이지.’
말이나 행동으로 도발하는 이유는 대개는 상대를 알고 싶기 때문이었다.
상대의 반응을 보며 이런 사람이구나, 하고 형태를 머릿속에 그리고 싶어 한다.
알 수 없는 미지의 존재로 머릿속에 남긴 채 싸움에 임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런 묘한 심리적 성질을 알게 된 것은 프로 데뷔 후 2년차에 접어들면서였다.
“꼴을 보니 군인은 아닌 것 같은데. 내 말이 맞지?”
동탁은 계속 말을 건넨다.
“왜 말이 없어? 겁을 먹었나? 푸하하하!”
이신의 반응을 보고 싶어서 점점 도발의 수위가 높아지고 크게 웃기도 했다. 그것은 역시나 치열한 난세를 살았던 동탁의 본능과 같은 행동이었다. 저런 것에 일일이 날 세워 대응하면 지고 들어가는 것이었다.
이신은 주눅 들지도, 상대를 비웃는 기색조차도 없이 그냥 가만히 동탁을 응시했다.
“흥, 뭔 벙어리 같은 놈이 다 있어? 재미없는 녀석이군.”
도리어 자신이 상대에게 관찰을 당하니 동탁은 기분이 안 좋은지 떨떠름한 표정이 되었다.
그러는 동안 악마군주들 간에는 대화가 마무리되고 있었다.
“배팅할 마력은 1만, 전장은 제12 전장 레틴이다.”
“배팅이 작구나.”
“숨 고르고 신중할 때를 알아야 추락을 모면하는 법이지.”
“좋아. 마신께서 정하신 율법상, 그것을 정하는 건 피도전자의 권리이니.”
오리아스가 채찍을 고쳐 쥐자, 동탁이 전차의 틀을 붙잡으며 이신에게 말했다.
“그럼 전장에서 보자고, 친구!”
이신은 끝까지 아무런 반응도 보여주지 않았다.
쫘악!
오리아스가 채찍을 휘두르자 멀쩡했던 공간이 찢어지며 큼직한 균열이 생겼다.
쿠르르르!
히히히힝!
네 마리의 말들이 끄는 거대한 황금 전차가 질주해 균열 안으로 진입해 사라졌다.
“우리도 가요. 제12 전장 레틴인데 자신 있나요?”
“그 전장을 고를 확률이 40% 이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다 준비됐습니다.”
제12 전장 레틴은 중앙지역이 광활한 평지.
게다가 본진과 앞마당과의 거리가 멀어 초반에 약한 휴먼이 시작부터 앞마당에 마력석 채집장을 차리기가 어려웠다.
이신이 동탁이었어도 레틴을 전장으로 골랐을 터였다.
“역시 든든하네요.”
그레모리는 웃으며 텔레포트를 했다.
그렇게 서열전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