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of the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239
238화 소원(3)
“마음 다스려. 곧 3세트 패자전 치러야 해.”
이신이 침묵을 깨고 말했다.
패배가 충격이었던 것일까. 아니면 다른 간절한 이유가 있었던 것일까.
저기압인 주디는 고개만 끄덕였다.
그때, 2세트가 끝났다.
5조의 승자와 패자가 모두 결정된 것이다.
주디의 패자전 상대는 화성전자의 인류 플레이어 왕찬수였다.
“급할 필요 없어. 두 번만 더 이기면 돼.”
“네.”
“왕찬수 요즘 성적 안 좋은데 그렇다고 얕보지 마. 1시간짜리 장기전을 치르더라도 이기기만 하면 절대 네 손해가 아니야.”
주디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잠시 후, 경기장 스태프가 와서 주디를 데려갔다.
3세트, 주디와 왕찬수의 패자전.
스타트는 좋지 않게 끊었다.
왕찬수가 장난을 걸었다.
시작부터 보병 2기를 찔러서 주디의 건설로봇 2기를 잡은 것.
주디가 초반의 컨트롤 싸움에 약하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앞서 오광태에게 진 것도 있어서 그런 듯했다.
‘안 좋은데.’
일꾼 2기 잡힌 것 정도야 아무것도 아니다.
하지만 문제는 정신적인 측면.
이유는 모르겠지만, 오광태에게 지고서 평소답지 않게 정신적으로 많이 저기압 상태에 빠진 주디였다.
이런 식으로 또 기분 나쁘게 시작했으니 동요될지도 몰랐다.
넌 이런 거에 약하지?
하면서 찔러 들어오는 상대의 악의가 고스란히 피부로 느껴질 것이다.
‘그게 좋은 쪽으로 작용해야 할 텐데.’
아니나 다를까.
주디는 게임을 어렵게 풀어나가고 있었다.
앞발 앞서서 압박 라인을 구축한 왕찬수가 맵 장악을 리드하며 시종일관 게임을 유리하게 이끌어나갔다.
두 차례의 견제까지 모두 실패한 주디는 진땀을 흘렸다.
확장 기지가 서로 늘어날수록 맵을 많이 장악한 왕찬수의 우세로 이어졌다.
주디는 더는 확장을 할 곳이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반전은 주디의 과감한 병력 구성에서 시작되었다.
놀랍게도 인구수 제한까지 꽉 채운 병력의 절반이 스텔스 전투기였던 것이다.
전투기 편대로 제공권을 장악한 주디는 단숨에 왕찬수의 라인을 박살 내고 확장 기지 곳곳을 동시 타격했다.
연이어 진격한 지상군이 단숨에 왕찬수의 본진 앞마당까지 당도하여 압박 라인을 구축했다.
-놀랍습니다! 단숨에 턱밑까지 치고 올라와서 왕찬수 선수의 멱살을 틀어쥐었습니다!
-한 방! 정말 한 방이었습니다! 그동안의 고통을 단 한 방에 갚아주고 역전을 일궈냅니다.
-하지만 아직 끝나지 않았죠. 왕찬수 선수가 그동안 먹은 자원이 있고, 게임은 아직 끝난 게 아니에요.
모니터로 경기를 지켜본 이신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이제 주디가 이겼다.
팬들이 보기에는 짜릿한 역전 경기였다.
하지만 이신이 보기에는 둘 다 졸전을 치렀다.
주디는 중반까지 계속 끌려다녔다.
아무것도 해본 것 없이 맵 장악에서 밀렸다. 게임이 져 있다는 말은 바로 그걸 두고 하는 소리다.
왕찬수는 자기 우세에 취해 상대에 대한 정찰을 소홀히 했다.
주디가 스텔스 전투기를 다수 모으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으니 말이다.
차이는 인류 대 인류전에서 단축키 다섯 개를 모조리 레이더에 쓴다. 상대를 손바닥 안처럼 파악한다. 그것과 확연히 대비되는 형편없는 모습이었다.
어쨌거나 주디는 예상대로 승리를 거머쥐었다.
짜릿한 역전승이었다며 해설진들도 포장을 해주었다.
선수대기실에 주디가 돌아왔을 때, 이신은 퉁명하게 말했다.
“수고했어.”
“네…….”
주디는 쥐 죽은 듯한 목소리였다.
이신도 딱히 질책을 하지 않았다. 앞으로 한 경기를 더 치러야 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성품이 매우 솔직한 이신이라 표정에 불만족스러운 기색이 역력하게 드러났다.
“죄송해요…….”
주디는 기가 죽은 목소리로 말했다.
“뭐가?”
“제가 잘못했어요.”
“뭘 못했는데?”
“소극적으로 플레이해서 주도권을 빼앗긴 거요.”
“아무것도 못한 채 불리해졌다는 게 가장 잘못됐어. 그런 맥없는 플레이는 나와서는 안 돼.”
“네.”
“어쨌든 이겼으니까 다 잊고 마음 가라앉혀.”
“네.”
모니터에 중계되는 4세트는 바로 승자전.
오광태와 쌍성전자의 1군 주전 괴물 플레이어 안재훈의 대결이었다.
종족 상성은 괴물이 유리하지만, 모두가 오광태의 승리로 내다보았다. 선수대기실에서 지켜보는 이신과 주디도 마찬가지였다.
주디는 안재훈과 최종전을 치를 것을 생각하며 전략을 구상했다.
하지만…….
-우와! 또 센터 참회실?!
-오광태 선수, 주디 선수에 이어 안재훈 선수를 상대로도 연속으로 센터 참회실을 시도했습니다!
“저런 미친…….”
이신이 중얼거렸다.
그 도박 수는 곧바로 들통 났다.
안재훈이 대각선 방향으로 정찰을 가다가 맵 중앙에 지어지고 있는 참회실을 발견한 것이다.
이어지는 국면은 뻔한 수순이었다.
재빨리 수정관을 짓고 바퀴를 대량 생산한 안재훈이 오광태의 광신도 찌르기를 가뿐히 막아내고 역습했다.
오광태는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이신과 주디의 표정도 그와 비슷했다.
-아아! 너무 무리한 수였습니다!
-예, 기본적으로 센터 참회실은 도박입니다. 저렇게 자주 써서는 안 되는 빌드였거든요. 오광태 선수가 너무 안일하게 생각했습니다. 안재훈 선수를 너무 얕봤어요!
-상황이 정말 묘합니다. 이렇게 되면 5조에서 가장 강력한 16강 진출 후보로 꼽혔던 오광태 선수와 주디 선수가 최종전에서 다시 맞붙게 되었습니다.
-예, 주디 선수로서는 안재훈 선수를 다음 상대로 기대했을 텐데 당혹스럽게 되었죠.
-그렇습니다! 안재훈 선수가 5조에서 가장 먼저 16강 진출을 확정 지었고, 이제 남은 5세트에서 두 사람의 희비가 교차하게 되었습니다!
이신은 혀를 찼다.
주디의 표정에도 깊은 부담감이 어렸다.
안재훈을 상대로는 져본 적이 없는 주디였다.
하지만 오광태는 그녀의 천적이나 다름없는 스타일.
주디의 16강행에 다시 한 번 가시밭길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주디의 표정은 도리어 아까보다 밝았다.
“괜찮아?”
“네.”
주디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계속 졸전을 해서 선생님께 면목이 없었어요. 설령 16강 진출에 성공한다 해도 소원을 말할 수 없었을 거예요.”
“…….”
“오광태 선수를 이번에 제가 꺾으면 만회한 거죠?”
“그래.”
이신은 주디의 머리를 슥슥 쓰다듬어 주었다.
주디는 기분이 좋은지 눈웃음을 지었다.
“이번에는 센터 참회실 못 할 거야. 또 했다가 떨어지면 욕을 바가지로 먹거든.”
“알아요.”
“대신 초반에 거신병기로 압박만 하는 척하면서 불쑥 치고 들어올지도 몰라. 포격모드 개발 완료될 때까지 절대 기동포탑을 안전한 곳에 둬.”
“네.”
“중반까지 가면 대사제와 아바타로 마법을 많이 쓸 거야. 전술위성으로 무력화탄 잘 쏴야 해.”
“네.”
그때, 쉬는 시간이 거의 끝났는지 경기장 스태프가 들어왔다.
“주디스 레벨린 선수, 슬슬 준비해 주세요.”
“네!”
주디는 가방을 챙겨 들고 일어섰다. 그리고 선수대기실에서 나가려던 찰나,
“선생님.”
문득 다시 뒤돌아 이신에게 말을 건넸다.
“왜?”
“소원 말이에요.”
“그게 뭐?”
“미리 들어주시면 안 될까요?”
“……?”
이 와중에 무슨 소리를 하려는 것인지 이신은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주디가 성큼성큼 다가왔다.
몸을 숙여 눈높이를 앉아 있는 이신과 같게 낮췄다.
주디의 얼굴이 기습적으로 다가와,
쪽―
이신의 뺨에 입을 맞췄다.
어안이 벙벙해진 이신에게, 주디는 눈웃음을 지으며 속삭였다.
“서양에서는 그냥 인사예요. 아시죠?”
당황했던 이신은 그만 피식 웃고 말았다.
“알아.”
주디도 웃었다. 서로를 바라보며 두 사람은 그저 웃었다.
이윽고 생중계 모니터에 부스로 들어온 주디의 모습이 보였다.
-아, 어려운 고비를 만난 주디 선수인데요, 도리어 기분이 좋아 보이네요?
-좋은 일이라도 있었던 걸까요? 아무튼 오광태 선수에 비해 오히려 마음은 가벼워 보입니다.
5세트, 주디 대 오광태.
마지막 16강 진출 티켓을 놓고 두 사람이 붙었다.
예상대로 오광태는 더 이상 센터 참회실을 시도하지 못했다.
양측 다 평범한 빌드 오더로 시작되었다.
오광태는 자신의 특기인 마법 활용을 극대화하기 위하여 아바타와 대사제를 모으기 시작했다.
마법으로 어떤 불리한 상황에서도 한 타 싸움에서의 대승으로 극복했던 오광태였다.
그런데 이에 맞서는 주디의 선택은 바로 다수의 전술 위성.
항공정거장에서 꾸준히 전술위성을 생산했다.
보통의 인류 대 신족전의 양상보다 훨씬 많은 숫자의 전술위성이었다.
계속해서 벌어지는 싸움에서 다수의 전술위성이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전술위성이 많으니 무력화탄을 싸울 때마다 마구 쏴대는 주디.
그런데 그게 의외로 좋은 효과를 발휘했다.
신족의 모든 유닛과 건물은 기본적으로 보호막에 보호되고 있기 때문에 체력이 강력하다.
그런데 무력화탄은 그 보호막을 제거해 버린다.
-퍼어엉!
-퍼엉!
무력화탄을 계속해서 사용하자 약해진 오광태의 병력들.
거기에 디펜시브 실드로 아군 유닛을 보호하기까지 하니, 전투마다 이득을 얻기 시작했다.
‘좋아.’
이신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야 주디다운 플레이였다. 깔끔하고 꼼꼼하고 완벽했다.
멀티태스킹과 반응 속도가 빠른 주디는 필요한 곳마다 놓치지 않고 무력화탄을 쐈다.
무력화된 대사제와 아바타는 마법을 발휘하지 못하고 도망쳤다.
확장 기지가 늘어난다.
주디는 계속 전진하며 확장 기지를 늘려 나갔다.
전술위성은 계속 고공을 누비며 무력화탄을 쏴댔다.
자신의 특기인 전투에서 계속해서 지자 오광태는 흔들렸다.
맵 센터를 쥐지 못하고 흔들리자, 주디의 견제 플레이가 시작되었다.
고속전차가 사방으로 다니며 일꾼을 사냥했다.
지뢰를 꾸역꾸역 매설하며 오광태의 활동 폭을 더욱 좁혔다.
-완벽한 주디 선수의 페이스입니다!
-상대가 괴물도 아니고 신족인데 저렇게 위성 숫자가 많은 건 처음 보네요. 그런데 저런 다수 위성 전략이 오광태 선수를 상대로 맞춤 전략으로 멋지게 먹혀들어 가고 있습니다!
-그러게 말입니다. 오광태 선수가 지금 전격 마법으로 쓸어버리지도 못하고, 소환 마법으로 병력을 찌르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완벽하게 봉쇄당했네요. 1세트의 패배를 멋지게 설욕하는 주디 선수입니다.
-하지만 광전사 오광태입니다! 이대로 맥없이 끝날 리는 없죠.
말 그대로 최후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오광태는 대사제가 아닌 광신도와 거신병기 위주로 병력을 구성하여서 공격을 개시했다.
주디는 기동포탑을 계단식으로 배치한 채 맞섰다.
-파앗!
-파아앗!
전술위성들이 잇달아 디펜시브 실드를 기동포탑에 걸어주었다.
해일처럼 덮쳐 오는 오광태의 총공격을, 주디는 꾸역꾸역 막아냈다. 끊임없이 무력화탄을 쏘고 디펜시브를 걸며 버텨냈다.
병력을 전부 잃은 오광태는 참담한 표정으로 GG를 쳤다.
“와아아아아!!”
“주디! 주디! 주디!”
폴짝폴짝 뛰며 부스에서 뛰쳐나온 주디는 팬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그날,
이신과 제자들이 전원 16강 진출에 성공했다는 뉴스가 e스포츠면을 도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