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of the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387
387화 인수(1)
월드 SC 그랑프리는 계속 진행되었다.
우선 아마드 부티아가 독일의 미하엘 슈나이더를 꺾고 올라가 박영호의 4강전 상대가 되었다.
그리고 남은 하나의 티켓을 놓고 신지호와 지우펑은 그야말로 혈투를 벌였다.
1세트는 지우펑의 승리.
초반부터 찌르고 들어간 광신도가 큰 전과를 거두면서 신지호를 시종일관 휘둘렀다.
끈질기게 막아내며 중반까지 게임을 끌고 간 신지호도 대단했으나, 초반에 입은 피해로 벌어진 격차를 끝내 좁히지 못했다.
흉신악살처럼 일그러진 신지호의 표정이 화면에 잡히면서 한국 팬들은 즐거워했다.
신지호의 좋지 않은 성격이 세계무대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나는 것. 신지호의 팬들은 그런 부분을 좋아했다.
2세트, 성질 더러운 신지호가 치즈 러시로 똑같이 앙갚음을 했다.
지상 거리가 긴 맵.
심지어 서로 거리가 가장 먼 대각선 방향.
그럼에도 신지호가 치즈 러시를 감행할 줄을 지우펑은 미처 예상치 못했다.
앞마당 확장 기지 파괴.
신지호는 그 자리에 참호와 대공포를 지으며 완전히 밀봉시켜 버렸다.
하지만 지우펑도 범상한 인물은 아니었다.
본진에 완전히 갇힌 상태에서 수송기를 써서 유닛들을 일일이 바깥으로 실어 날랐다.
그러고는 안팎에서 공격을 퍼부어 봉쇄를 돌파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이미 많은 피해를 입은 상황.
치사할 정도로 모험을 감수하지 않고, 자신의 유리한 상황을 철저히 지켰다.
결국 GG를 선언한 지우펑은 키보드를 주먹으로 후려치며 분노를 표출했다.
-둘 다 성격 더러움ㅋㅋㅋ
-저러다 멱살 잡고 싸울 각 아님?
-ㅋㅋㅋㅋㅋㅋ
-끝나고 현피 각ㅋㅋ
한 성질 하는 두 선수의 대결이라며 해설진이나 팬들이나 모두 즐거워했다.
3세트에서 지우펑은 또다시 초반부터 광신도로 찌르며 공격적인 운영을 구사했다.
이는 전략연구팀에서 지정한 전략이 아니었는데, 지우펑의 자의적인 전략 변경은 주효했다.
처음에는 디펜스에 주의를 기울인 신지호였던지라 잘 먹히지 않았다.
하지만 다음에도, 또 그 다음에도 계속 무리한 공격이 이어지자 신지호도 그렇게까지 할 줄은 몰랐는지 흔들렸다.
결국 엉망진창의 진흙탕 싸움이 되어서 모두가 손에 땀을 쥐며 격전을 치켜보았다.
3세트가 끝났을 때, 지우펑이 벌떡 일어나 소리를 질렀다.
신지호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지우펑의 승리였다.
하지만 4세트는 신지호의 압승이었다.
지우펑이 준비한 수송기+철갑충자 전략을 신지호가 완전하게 맞받아친 것이다.
지대공 공격에 능한 기계보병을 먼저 뽑아서 수송기를 격추해 버린 것.
철갑충자와 수송기를 아무것도 못 하고 잃자, 급격히 불리해진 전세를 지우펑은 만회할 도리가 없었다.
신지호의 절묘한 역설계에 인터넷에서 팬들의 찬사가 쏟아졌다.
스코어는 2-2.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가운데, 마지막 5세트가 시작되었다.
그것은 장장 50분짜리 대결전이었다.
지우펑의 무기는 바로 항공모함.
그런데 지우펑이 항공모함을 준비하느라 지상군이 약해져 있는 타이밍을 노리고 신지호가 총공세를 펼쳤다.
확장기지 2군데를 전부 날려 버린 신지호의 강력한 맹공이었다.
하지만 그 뒤부터 항공모함을 확보한 지우펑이 역공을 펼쳤다.
항공모함 함대가 지형지물을 이용해 치고 빠지며 신지호의 지상군을 계속 갉아먹었다.
항공모함에서 쏟아지는 작은 폭격기들이 기동포탑과 고속전차 등을 계속 파괴시켰다.
신지호도 곧 기계보병을 쏟아내며 맞섰지만, 지우펑의 게릴라는 집요했다.
확장 기지를 새로 확보해 가며, 이를 저지하는 신지호의 지상군을 항공모함으로 계속 갉아먹었다.
신지호가 우세한 상황.
그럼에도 싸움이 길어지자 이상한 조짐이 보였다.
악착 같이 버티며 항공모함의 숫자를 1척씩 늘려나가는 지우펑.
전략 레벨에서 이미 우세한 신지호였으나, 전술 레벨에서 계속 손해가 누적되면서 싸움이 서서히 기울어졌다.
종국(終局)에는 둘 다 지원이 없어서 찢어지게 가난한 상태에서 처절하게 싸웠다.
맵에 자원은 많았지만, 서로 확장 기지를 허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서로 꼬리를 묵고 잡아먹으려 드는 두 마리의 뱀처럼 싸우는 것이다.
피 말리는 대결이었다.
그리고 승리의 여신은 지우펑의 편을 들어주었다.
부스에서 뛰쳐나온 지우펑은 왕춘 감독과 얼싸안고 환호했다.
이로서 SC스타즈는 소속 선수 셋을 모두 월드 SC 그랑프리 개인전 4강에 진출시키는 위업을 달성했다.
신지호는 부스 안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아직 투지는 꺼지지 않았는데, 그의 의지와 상관없이 승부는 끝나 버렸다.
의연한 표정을 애써 짓는 신지호의 매서운 눈빛이 붉게 충혈되었다.
아직 더 싸울 수 있는데…….
아직 지치지 않았는데!
왜 다들 일어나서 박수를 치고 있단 말인가.
이제 다 끝났다는 듯이. 손님을 떠나보내려는 것처럼.
“지호야.”
하영훈 감독이 부스 안에 들어와 신지호를 불렀다.
신지호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감독님, 이걸로 끝난 거죠?”
“…….”
“패자부활전 같은 거 없는 거죠? 전 아직 더 싸울 수 있는데. 아직 안 보여준 게 하나 더 있는데.”
“뭐가 끝이야. 내년에 또 오면 되지.”
하영훈 감독이 다독였다.
신지호는 끝내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그날 신지호는 자신의 평생에서 가장 뜨거운 찬사를 받았다.
올해 그랑프리 개인전에서 신지호는 쉬운 경기를 펼친 적이 없었다.
하나같이 세계적인 강자들이었고, 하나같이 치열한 접전이었다.
디펜스 위주라 팬에게 어필하기 어려운 스타일을 가진 신지호였지만, 상대가 하나같이 뛰어났던 덕에 그의 방어력이 빛을 발할 수 있었다.
끝내 8강에서 멈췄지만, 신지호로서는 세계 무대에 자신의 이름을 똑똑히 알린 셈이었다.
그의 실력과 불타는 승부욕을 모두가 인정해 준 것이다.
* * *
그렇게 명승부 끝에 4강 멤버가 확정된 동안, 한국에서는 이변이 벌어졌다.
결코 호재(好材)가 아니었다.
[넥스트 실업 파산 신청] [넥스트 파산으로 소속 e스포츠 프로팀도 해체 위기] [‘새로운 구단주 모십니다.’ 한국 e스포츠 협회, 100대 기업에 공문] [팀 넥스트 해체 위기 ‘선수들은 어쩌나’] [구단 파산과 강등 위기 등 악재 겹쳐 ‘새 구단주 찾기’도 난항] [한국 프로리그 10팀 체제 깨지나]팀 넥스트가 해체 위기에 놓인 것.
구단주가 파산을 한 탓에 팀도 매물로 나온 것.
e스포츠 프로팀은 야구나 축구와 달리 1년에 드는 운영비도 적고, 투자 대비 마케팅 효과가 뛰어나 새로운 스폰서를 구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팀 넥스트는 사정이 달랐다.
꼴등을 달리고 있었던 데다가, 팬들의 평판도 좋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올해 시즌을 끝으로 강등될 게 확실한 팀을 인수하겠다고 나설 기업은 없었다.
한국 e스포츠 협회가 국내 100대 기업에 공문을 보내 e스포츠의 마케팅 효과를 홍보하며 새 구단주를 물색했지만, 연락 오는 곳은 없었다.
프로리그 후반기 시즌이 곧 시작되는 터라 다들 전전긍긍했다.
일단 한국 e스포츠 협회는 설사 새 구단주 및 스폰서를 찾지 못할 시 협회에서 운영비를 지원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하지만 팀에 소속된 선수들은 연봉도 제대로 받지 못할 위기에 놓였으며, 이제 막 프로게이머의 꿈을 꾸었던 연습생들도 오갈 데가 없어졌다.
“진짜 안쓰럽더라, 넥스트 애들.”
박영호가 혀를 차며 말했다,
“거기가 손지훈이 있었던 팀 맞지?”
“응. 그냥 뭐 만날 바닥 치던 팀이지. 아슬아슬하게 강등은 면했는데 이제 운을 다 썼나 보네.”
이신은 일전에 손지훈을 영입하기 위해 팀 넥스트와 친선 연습을 한 적 있었다.
그때 느꼈던 팀 넥스트의 저력은 그야말로 밑바닥.
코칭스텝도 썩어 빠졌다.
고액 연봉자지만 손가락 염증으로 경기력이 안 나오던 손지훈을 차별하고 따돌리는 데 앞장섰다.
선수들도 하나같이 근성 없고 해이하기는 마찬가지.
사정을 알면 더더욱 인수하기 싫어지는 팀인 것이었다.
이신은 문득 이와 비슷한 과거가 떠올라 쓴웃음을 지었다.
팀을 상대로 법적 다툼까지 벌인 끝에 계약된 연봉을 받아냈다.
그러나 스폰서가 돌연 후원을 관둔다며 일방적인 통보를 해버렸고, 팀은 공중분해 되었다.
그때도 선수들은 1군 몇 명만 갈 곳을 찾았고, 연습생들은 상당수가 꿈을 접고 떠났다.
그에 대한 죄책감은 없다.
하지만 프로게이머로서 모든 것을 거머쥔 이신으로서는 꿈을 펼칠 기회를 잃은 후배들이 안타까웠다.
최소한 기회는 있어야 할 게 아닌가.
이신은 여러 가지 생각을 하다가 문득 스마트폰을 꺼냈다.
주소록을 뒤져서 찾던 이름을 발견했다.
“어디 전화해?”
“협회장.”
“응?”
“조용히 해봐.”
“서, 설마 한국 e스포츠 협회?”
“어.”
박영호는 벙쪄 버렸다.
이신이 전화를 걸자, 냉큼 상대가 전화를 받았다.
-예, 이신 선수!
“안녕하셨습니까.”
-예, 이신 선수야말로 그랑프리 준비는 잘 되시고요?
“예, 금메달은 문제없습니다.”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이신이 말하자, 옆에서 듣던 박영호가 울컥하는 표정을 지었다.
-하하, 잘됐네요. 올해는 이신 선수가 금메달, 박영호 선수는 은메달! 딱 이렇게 나란히 성적을 거두면…….
“거두절미하고, 팀 넥스트는 어떻게 됐습니까?”
이신은 늘 그렇듯 상대 말을 끊고 본론을 꺼냈다.
-아, 그 이야기 때문에 전화 주셨군요. 그게…….
“인수할 사람 찾았습니까?”
-아직 못 찾았죠. 사실 좀 어렵습니다. 다들 난색을 띠고 있어요. 워낙 선수들도 부진해서 강등 확률이 높고, 선수들 연봉 미지급도 많이 밀려 있고, 차라리 2부 리그에서 승급 확률이 높은 신생팀을 인수하지 거기에 돈을 쓰고 싶어 하는 기업이 없습니다.
“인수해서 이적 시즌 끝나기 전에 새로운 선수를 영입해 전력을 보강하면 괜찮지 않겠습니까?”
-맞는 말씀이시긴 한데, 요즘 기업들이 그렇게까지 관심 있게 e스포츠를 보지 않아요.
“어째서?”
-e스포츠 잘 모르는 사업가들 생각은 뻔해요. e스포츠라면 아는 건 이신밖에 없죠. 이신 선수는 이제 중국으로 갔잖습니까?
“…….”
-아무튼 어떻게든 해봐야죠. 정 안 되면 협회 차원에서 운영비 지원을 해줘서 올해 시즌이라도 보낼 수 있게 해줄 생각입니다.
“제가 인수하겠습니다.”
-…예?
“뭐라고?!”
협회장은 물론 옆에 있던 박영호도 기겁을 했다.
“제가 인수하겠다는 겁니다. 제 생각에 팀 넥스트의 1년 운영비가 10억을 안 넘을 거라고 생각됩니다.”
-예, 8억 조금 넘죠. 대부분 선수 연봉이고, 그나마도 팀 인수하실 때 선수들의 협조도 구하면 연봉을 재조정할 수 있습니다. 선수들도 팀이 강등 위기에 처한 데 책임이 있고요. 근데 정말로 인수하시게요?”
“일단 직접 팀 선수들을 보고 판단해보겠습니다. 팀을 인수하겠다는 기업이 안 나오면 연락 주십시오.”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어휴, 이신 선수께서 나서주신다니 저도 이제 한숨…….
뚝.
이신은 뒷말을 더 듣지 않고 통화를 종료했다.
그리고 자신을 멍하니 쳐다보는 박영호에게 한 마디 했다.
“뭘 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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