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the Mad Demon RAW novel - Chapter 424
424화. 바다에 가보셨소?
내가 교주의 호법을 설 줄은 몰랐다.
사실 유언을 주고받고, 싸우고, 호법까지 섰다면 적과 아군을 떠나서 상대를 신뢰한다는 뜻이다.
그것이 나는 더 황당했다.
사람 일은 대체로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교주는 부상이 깊었던 모양인지 운기조식을 밤새도록 했다. 어쩔 수 없이 모닥불을 지피면서 운기조식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모닥불을 바라보는 동안에 교주에게 물어볼 말이 몇 가지 떠올랐으나 나중에는 한 가지로 축약했다.
그사이에 교주의 안색은 시간 차이를 두고 다섯 차례나 변했다. 마공이 잘못됐을 때는 수습하는 시간도 길어지는 것일까. 무공이 고강할수록 주화입마의 여파가 크다는 것을 고려했을 때, 교주는 제정신으로 사는 게 힘들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래서 전생에도 그렇게 자주 폐관 수련을 했던 것일까.
욕심을 조금만 내면 주화입마에 빠지는 사람처럼 보였다. 어쩌면 그런 무공을 익히고 있어서 희로애락을 지극히 줄이면서 살아온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교주의 운기조식을 기다리면서 나도 천옥을 태웠다.
모닥불도 타고, 천옥도 타고, 시간도 태웠다.
교주는 회복하고 있었지만, 나는 더 강해지는 시간이었다. 사실 금구의 영역에 진입한 이상은 교주가 어떻게 강해지더라도 상관이 없는 상태.
우리는 밤새 운기조식의 자세와 마음가짐마저 겨뤘다.
백발이 된 교주가 새벽녘에 조용히 눈을 뜨더니 나를 쳐다봤다. 나는 교주의 표정을 보다가 말했다.
“축하드리오.”
위기를 이용해서 또 다른 성취가 있었던 모양이다.
교주는 기뻐하는 내색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온기인가 했더니 모닥불이었구나.”
“교주, 물어볼 게 있소.”
“말해라.”
“혈야궁에서 봤을 때 나를 왜 살려뒀소. 충분히 죽일 수 있었을 텐데.”
교주가 대답했다.
“살면서 믿을만한 사람을 얻는 게 쉽지 않다.”
“음.”
“검마는 믿을만한 사내였지. 검마 같은 사내를 한 명 더 꼽으라면 허 장로가 있었다. 너는 그때 허 장로의 일살을 들고 있었지. 허 장로와 검마가 네게 무언가를 기대하고 있다면 나로서는 죽일 이유가 없었다. 두 사람이 네게 무엇을 기대했는지 나도 지켜보고 확인할 생각이었지.”
교주의 말을 듣고 나서야 내가 살아있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결국에 나 혼자 싸운 게 아니로군.”
“그렇게 해석하느냐?”
“그렇지 않소? 혼자였다면 감당할 수 없는 싸움이었을 거요.”
“나조차도 허 장로가 없었다면 교주가 되기 힘들었을 테니 네 말이 옳다.”
교주와 내가 각자 잘나서 이렇게 강해진 것은 아니었다.
“교에서 맏형은 어떠했소?”
“확실한 것은, 후계자 후보로 태어나 교주에 오르는 일만큼이나 어려운 일을 해냈지. 노예로 들어와서 광명좌사에 오른다는 것은 그런 일이다.”
종합해보면 이 사내도 교주가 되는 것이 무척 어려웠었고. 맏형도 광명좌사가 되는 과정이 무척 살벌했었던 모양이다. 그러고 보면 교주는 강자를 인정하는 성향이 확실한 모양이다. 물론 그 강자의 범위가 무공만은 아닐 터였다.
나는 고개를 끄덕인 다음에 물었다.
“이제 내려가시겠소?”
“가자.”
나는 모닥불을 발로 꺼서 없앤 다음에 교주와 함께 화산을 내려갔다. 이상하게도 백발 때문인지 지금의 모습이 더욱 교주다웠다.
매화장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아침이어서 갑자기 등장한 우리에게 시선이 꽂혔다. 다들 교주의 백발 때문에 놀라기도 하고, 우리 둘이 나름대로 멀쩡하게 복귀해서 놀라는 것 같기도 했다.
다들 승패를 궁금해할 테지만 굳이 입을 열지 않았다. 매화장주가 먼저 우리 둘을 맞이했다.
“사부님들, 어서 오십시오. 한참 기다렸습니다.”
그사이에 매화장은 제법 잘 정돈되어 있었다. 나는 교주와 함께 탁자에 앉아서 사람들을 둘러봤다.
참지 못한 천악이 먼저 물었다.
“대체 어떻게 됐나? 둘 다 멀쩡해서 예상할 수가 없구나.”
색마가 중얼거렸다.
“화산이 무너지는 줄 알았는데. 어떻게 이렇게 멀쩡하지?”
천악이 나를 쳐다봤다.
“무엇보다 이상한 것은…….”
내가 물었다.
“뭐가 그렇게 이상하시오?”
“너는 어째서 올라갈 때보다 더 강해진 것 같구나. 교주와 수련하고 내려온 것이냐? 아니면 아직 제대로 안 싸운 것이냐?”
교주와 나는 슬쩍 웃었다.
교주가 천악에게 말했다.
“천악.”
“왜 그러나?”
“함께 신개를 보러 가자.”
“그 거지를 왜?”
“수하를 시켜서 말을 전하면 신개가 믿지 않을 것이다. 자네와 내가 가서 우리의 시대가 끝났음을 알려야지. 그러면 신개도 믿지 않겠나?”
천악이 그야말로 놀란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뭐?”
다들 교주가 이긴 것으로 예상했었나 보다. 맏형과 색마도 놀란 표정으로 나와 교주를 번갈아 봤다.
천악이 중얼거렸다.
“놀랍구나. 신개도 놀랄 것이다. 장주.”
매화장주가 대답했다.
“예, 선배님.”
“이따가 백가 놈이 일어나면 나는 교주와 함께 신개를 보러 갔다고 전해라. 이 조합으로 갔다고 전하면 또 싸우는 줄 알 텐데. 그게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알겠습니다.”
천악이 나를 쳐다봤다.
“거지와 술 한잔해야겠다.”
천악, 교주, 신개의 술자리면 나름대로 의미가 있을 터. 내가 낄 자리는 아니라서 같이 갈 마음은 전혀 없었다.
그러고 보니 부상자들은 전부 매화장 내부에 누워 있는 모양이었다.
다행히 눈치 빠른 매화장주 때문에 나는 복귀하자마자 멀쩡한 식사를 할 수가 있었다. 교주와 내가 강한 것이 이토록 허망하게 느껴질 줄이야. 교주는 끝내 평정심을 잃지 않았으나 나는 굴다리 밑에 있는 거지처럼 밥을 맛있게 처먹었다.
맏형이 웃으면서 내게 말했다.
“개방에 투신한 것 같구나.”
나는 젓가락을 바쁘게 움직이면서 대답했다.
“굶어 죽을 뻔. 사냥이라도 해놓고 겨뤘어야 했는데.”
교주가 있었기 때문에 나를 축하하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놀랍게도 삼재 두 명은 밥을 먹자마자 마차로 이동했다. 우리는 당연히 두 사람을 배웅하느라 마차로 함께 이동했다.
마부석에서 일어난 마부 선배가 교주를 먼저 맞이했다.
“교주님, 머리카락이…….”
“그렇게 됐다.”
내가 살펴보니 마부석에도 매화장주가 가져다준 식판이 놓여 있었는데 나뿐만이 아니라 교주도 그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화산제일검의 활약이 이토록 화려하다는 뜻이다.
교주가 말했다.
“천악과 함께 신개를 보러 가야겠다. 개방으로 가자.”
마부가 대답했다.
“그럼 개방으로 모시겠습니다.”
교주와 천악이 우리를 한 차례 둘러봤다. 살가운 작별의 말을 꺼낼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기 때문에 분위기가 무척 건조했다.
하지만 화산제일검은 예외였다.
“교주님, 선배님. 먼 길 살펴 가십시오. 후배가 많이 배웠습니다.”
교주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매화장주에게 말했다.
“장주도 고생 많았다.”
“예, 교주님.”
천악이 우리를 보면서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마차에 탄 채로 시대가 바뀔 줄은 나도 몰랐다. 싸움 한 번으로 끝나는 강호가 아니니 다들 매진해라. 간다.”
“살펴 가시오.”
그렇게 마차가 출발했다.
삼재가 이른 아침에 떠나는 모습이기도 했다. 함께 지켜보던 맏형이 내게 물었다.
“대체 어떻게 이긴 것이냐? 교주는 입산할 때보다 더 강해진 것 같은데.”
이번에는 다들 나를 쳐다봤다.
“그러게 대체 어떻게 이겼지?”
나도 속 시원하게 알려주면 좋겠지만, 내 승리의 원인은 너무 복합적이어서 간단한 말로는 설명할 수가 없었다.
“……그냥 내가 더 강해서 이겼겠지.”
한때의 강함을 아무렇지 않게 자랑하는 사내, 그것이 나다. 색마가 믿을 수 없다는 것처럼 말했다.
“올라가서 말싸움하고 내려온 거 아니야? 그럼 이해가 되는데. 교주도 네 잔소리를 듣기 싫어서 밤새 머리가 하얗게 됐거나 밤새 피를 토했겠지. 이게 더 설득력이 있지 않습니까. 사부님?”
맏형이 진중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더 설득력 있다.”
이건 무슨 분위기지? 사대악인의 셋째가 교주에게 이기고 하산했는데도 도무지 믿어주는 사람이 없었다.
“실력으로 이겼다니까 무슨 말싸움이야. 사실 말싸움을 했어도 이기긴 했겠지. 아마 나 혼자 떠들다가 입에 거품을 물었을 것 같은데. 근데 둘째는?”
맏형이 대답했다.
“어제는 나왔다가 저녁에 다시 운기조식을 시작했다.”
멀쩡해 보이는 매화장 안에 귀마, 백의서생, 혈교주가 운기조식을 하고 있으리라 생각하니 살짝 우스웠다.
매화장주가 내게 물었다.
“문주님, 어떻게 이겼는지도 궁금하지만 어떤 마음으로 비무에 임하셨는지도 궁금합니다. 그건 알려주실 수 있겠지요?”
“마음가짐?”
“예.”
사실 별생각이 없었는데 매화장주의 진지한 표정을 보고 있으려니 할 말을 골라야 하는 순간이었다. 그냥 있는 그대로 짤막하게 설명했다.
“화산에 오르자 교주가 생사결을 신청했었지. 서로 유언을 들었으니 말이야.”
“음.”
“사실 내가 혼자 죽을 생각은 없었어. 함께 살아서 내려가거나, 함께 죽어서 화산에 묻히거나 둘 중 하나라 생각하고 싸웠지.”
색마가 내 말을 끊었다.
“알았으니까 좀 설득력 있게 말해봐. 어떻게 이겼어.”
나는 똥싸개의 말을 무시한 다음에 맏형을 바라봤다.
“맏형.”
“왜.”
“교주의 유언은 맏형에게 교주 자리를 넘기는 것이었어. 예상했나?”
“아주 놀랄 일은 아니다.”
“그럼 교주 자리를 맡았나?”
맏형이 우리를 둘러본 다음에 고개를 내저었다.
“그럴 수는 없지. 교주 자리보다 지금 일상이 더 낫다.”
역시 내가 예상했던 대로다. 이렇게 되자, 맏형이 이번에는 내게 물었다.
“네 유언은 뭐였지?”
“나는 유언이 없다고 말했지. 맨날 떠드는 말에 다 했는데 무슨 유언이야.”
이때, 우리는 동시에 고개를 돌려서 매화장의 입구를 바라봤다. 마차는 무너진 담벼락 너머에 있었기 때문에 이제야 입구를 주시한 셈이다. 나도 살면서 이렇게 놀란 적은 몇 차례 되지 않는다.
“와…….”
어떻게 저런 조합이 가능한 것일까.
매화장 입구에 광승이 서 있었다.
광승이 등장한 것도 놀라운 일인데, 혼자가 아니었다. 우리를 발견한 광승이 어깨에 태우고 있었던 요란이를 내려놓았다.
광승의 얼굴과 법복의 끄트머리에 묻은 흙을 보고 있으려니 요란이를 어깨에 태운 채로 경공을 펼쳐서 이곳에 온 것처럼 보였다.
요란이는 우리에게 다가오다가 점점 웃음기가 사라졌다. 인사를 하려다가 물었다.
“둘째 사부님은 어디 계세요?”
색마가 대답했다.
“운기조식 중이다. 큰 부상은 아니니 걱정 말아라.”
그제야 요란이가 밝은 표정으로 맏형에게 인사했다.
“대사부님, 평안하셨습니까. 셋째 사부님, 넷째 사부님을 뵙습니다.”
“그래.”
우리는 화산에 등장한 제자의 안부 인사를 받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제자와 노닥거리는 것보다 제자를 데려온 사람이 더 궁금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어서 다들 광승을 바라봤다.
광승이 천천히 다가오면서 물었다.
“……교주와 싸운다고 들었는데 싸움은 끝났소?”
대체 시간이 어떻게 흘러간 것일까. 내가 알던 광승의 모습보다 한참 더 젊은 모습이었다. 귀신에 홀린 심정이 이런 것일까.
결국에 내가 대답했다.
“무사히 잘 끝났습니다.”
평소와 다르게 내가 존댓말로 대답하자, 다들 나를 쳐다봤다.
광승도 나를 쳐다봤다.
“하오문주신가?”
“예.”
당연히 광승은 나를 처음 본다.
광승이 나를 쳐다보면서 말을 이어나갔다.
“……사제가 중원에서 도움을 받았다기에 인사차 일양현에 방문했다가 어린 제자의 요청을 받아서 함께 와봤소.”
맏형은 광승의 소속이 어디인지 아는 모양인지 이렇게 물었다.
“혹시 잡부밀교의 무승이시오?”
광승이 고개를 끄덕였다.
“무승이오. 중원에 이렇게 강자가 많았다면 빨리 와볼 걸 그랬소.”
다들 서서 이야기를 하는 터라, 매화장주가 나섰다.
“자자, 저쪽에 앉아서 말씀들 하시지요. 스님과 제자 분은 식사하셨습니까?”
광승이 대답했다.
“바쁘게 오느라.”
“아, 그럼 준비를…….”
광승이 매화장주에게 물었다.
“술 있소?”
“예?”
“술.”
“있습니다.”
스님이 아침부터 처들어오듯이 방문해서 술을 달라고 하자, 다들 당황하는 눈치였다. 그러고 보면 이 사내는 전생에도 술을 자주 마셨다. 사제의 죽음에 분노해서 왔다는 것은 뒤늦게 알았기 때문에 나는 이 사내가 술을 마시러 절을 탈출했던 것으로 오해했었다.
어쨌든 내가 매화장주에게 부탁했다.
“장주, 술 좀 준비해주시오.”
“예, 문주님.”
그제야 우리는 탁자에 둘러앉았다. 광승도 무척 오랜만에 보지만, 광승이 탁자에 기대어 놓은 선장(禪杖)도 무척 오랜만이었다. 내가 알던 선장의 색과도 달랐다. 전생에는 피에 절인 것처럼 검붉어서 자줏빛이 났었는데 지금은 아주 깨끗한 황금빛이었다. 오는 동안에 누군가의 머리통을 으깨지 않은 모양이다. 다만 전생과 다르게 선장의 머리 부분에는 초승달 모양의 날붙이가 붙어 있지 않았다.
물어보고 싶었지만, 물어볼 수가 없었다. 우리는 처음 만나는 사이라서 그렇다.
색마가 광승에게 물었다.
“스님, 병장기가 엄청나게 무거워 보입니다. 한번 들어봐도 되겠습니까?”
“그러시오.”
색마가 선장을 한 손으로 들더니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걸 들고, 요란이까지 어깨에 올려놓고 경공을 펼치셨단 말이오?”
광승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깨가 빠질 것 같소.”
덩치는 물론이고 맹장(猛將)처럼 생긴 외모하고 전혀 어울리지 않는 엄살이어서 나는 웃음을 참았다.
교주가 떠나자마자 광승이 등장한 터라 대체로 정신머리가 없는 상황이었다.
요란이가 조용해진 틈을 타서 우리에게 물었다.
“사부님들, 다친 곳은 없으시죠?”
“없다.”
“없지.”
나도 괜찮다는 것처럼 고개를 저었다.
요란이가 다시 물었다.
“교주님에게 이긴 거예요?”
이상하게도 어린 제자 앞에서 자랑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짤막하게 대꾸했다.
“그래. 비무 형식으로 겨뤘다. 그나저나 스님께서 너를 업고 여기까지 왔는데 이것을 어찌 갚는단 말이냐?”
요란이가 광승을 쳐다보면서 말했다.
“그렇지 않아도 아버님이 너무 죄송해하셔서 출발하기 전에 돼지통뼈랑 가장 좋은 술로 연신 대접해드렸어요. 죄송합니다. 스님.”
광승이 요란이를 보면서 웃었다.
“괜찮다. 어차피 여행할 생각으로 온 것이니.”
이어서 우리는 술을 마시는 스님을 구경했다. 내가 술을 따라주기도 했다. 대체로 광승은 마음이 편한 모양인지 우리와 잡담을 나누면서 자주 웃었다.
짤막한 대화를 나눴을 뿐인데.
전생의 광승이 웃었던 것을 다 합친 것보다, 이 자리에서 더 많이 웃고 있었다.
맹장 같은 스님, 술을 마시는 스님이 의외로 소탈한 어조로 말을 나누자 사대악인은 물론이고 매화장주도 광승을 어렵지 않게 대했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내가 알던 광승과는 전혀 다른 일면이 보여서 나는 때때로 광승을 물끄러미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나는 일부러 선장을 조금 만져볼 생각으로 광승에게 물었다.
“선장 좀 봐도 되겠습니까?”
“그러시오.”
나는 부러지지 않는 신념을 만지작거리면서 머리 부분을 살폈다.
“이곳에 본래 날붙이나 둔기 같은 것이 붙는 겁니까?”
“그렇소.”
“평소에는 붙이지 않는 모양이로군요?”
광승이 나를 쳐다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여행을 온 것이니 날붙이는 필요 없어서.”
“여행은 어디로 가실 생각이십니까?”
광승이 우리를 둘러보면서 말했다.
“보고 싶은 명승지(名勝地)가 몇 군데 있고. 조금 멀리 가서 바다도 좀 구경하고 싶소.”
이 사내는 왜 그렇게 바다에 집착하는 것일까.
궁금해서 물어봤다.
“바다를 보고 싶으신 이유가 있으신지요?”
광승이 별거 아니라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태어나서 말로만 들었던 것이니 한 번은 봐야지 않겠소. 바다가 있다고 하더이다. 산처럼 깊고, 평야보다 넓고, 그 끝이 보이지 않는다고 하오. 여러분들은 바다에 가보셨소?”
우리는 광승의 질문을 받은 다음에 잠시간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