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of the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420
420화 폐막(1)
뉴스가 쏟아졌다.
세계 e스포츠 최대의 축제를 장식한 이신과 박영호의 대결.
두 사람은 결승전에 걸맞은 세계 최고 수준의 명경기를 펼쳐 더욱 큰 감동을 주었다.
마지막 한 끗 차이로 승패가 엇갈린 아이러니컬한 결말이 두 사람의 드라마를 더욱 빛내주었다.
엄청난 실력으로 이신을 위협한 박영호는 이번 그랑프리 최대의 수혜자가 되었다.
이미 지난해도 은메달을 땄기에 실력자로 인정받고 있긴 했으나, 인지도 측면에서는 아직 톱클래스로 여겨지지는 않았다. 이는 규모가 작은 한국에서 주로 활동했던 탓이 컸다.
하지만 박영호는 올해, 자신의 역량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엔조 주앙, 아마드 부티아 등등 세계 강자를 차례로 격파하고 결승전에서는 이신을 패배 직전까지 몰아붙인 엄청난 실력은 전 세계에 똑똑히 각인되었다.
돌아온 황제 이신을 꺾을 수 있는 유일한 실력자가 된 것.
이신의 라이벌이라는 이미지를 구축하면서, 박영호의 인지도는 껑충 뛰었다.
이제는 북미권에서 말도 안 되는 활약을 떨친 마이클 조셉도 박영호보다 위라고 할 수 없지 않느냐는 목소리였다.
결과적으로 SC스타즈가 이신은 물론 박영호도 엄청난 이적료와 몸값을 지불하고 영입한 것이 신의 한 수로 평가받았고, 이를 주도한 왕춘 감독의 안목이 높이 평가되었다.
* * *
그렇게 개인전은 끝났지만, 아직 그랑프리는 끝난 게 아니었다.
그랑프리의 꽃이라 할 수 있는 단체전이 남아 있었다.
SC스타즈는 세계적인 e스포츠 명가를 꿈꾸고 있었기 때문에 단체전이 무엇보다도 중요했다.
중국 프로리그를 여러 차례 제패했고, 세계적으로도 팀의 저력을 인정받는 SC스타즈였지만, 유독 그랑프리에서는 아쉬움이 많았다.
지우펑 이전에도 항상 중국에서 수위를 다투는 에이스를 보유하고 있었으나, 소속 선수가 그랑프리 개인전에서 메달을 딴 전례가 없었다.
단체전도 마찬가지.
자주 4강에 이름을 올리는 알아주는 강호였으나, 유독 메달과는 인연이 없었다.
순전히 운이 없었다고밖에 할 수 없는 현상.
이를 SC스타즈의 징크스라 불릴 정도였으니, 왕춘 감독으로서는 동메달이라도 반드시 거머쥐겠다는 의지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러나 그런 그들을 4강에서 기다리고 있는 상대는 다름 아닌 팀 크라이시스였다.
북미 최강의 팀 크라이시스는 가장 유력한 금메달 후보로 거론되는 명가.
하물며 팀 크라이시스의 에이스 마이클 조셉은 개인전에서 일찍 탈락해 버린 수모를 만회할 생각으로 살기등등했다.
물론 SC스타즈도 질 생각이 없었다. 충분히 해볼 만하다는 입장이었다.
왕춘 감독은 마이클 조셉 같은 팀 크라이시스의 주력 선수를 지우펑으로 저격할 생각을 했다.
그리고 SC스타즈의 또 다른 주력 카드인 리우를 마지막 5세트에 배치했다.
선수가 선호하는 맵이나 컨디션 등을 모두 고려한 선택이지만, 무엇보다도 어떻게든 2-2상황을 만든 뒤에 마지막 5세트에서 리우로 결정타를 찍겠다는 왕춘 감독의 시나리오였다.
그런 왕춘 감독의 생각대로 지우펑은 팀 크라이시스의 붙박이 주전 멤버 하나를 잡고 1승을 챙겼다.
2-2 스코어로 5세트까지 가는 상황이 만들어졌다.
다만 5세트에서 마이클 조셉이 나타날 줄은 아무도 예상 못했다.
팀 크라이시스를 이끄는 마르케스 감독도 왕춘 감독과 비슷한 생각을 했던 것이다.
그동안 마이클 조셉은 1, 2, 3세트에 출전하는 경향이 컸다.
마이클 조셉의 순서가 오기 전에 팀이 3-0으로 져버리면 안 되기 때문에, 필승카드를 일찌감치 내서 승리를 챙겼던 것.
하지만 그 때문에 마이클 조셉을 저격하는 상대팀의 전략을 수도 없이 겪었다.
깜짝 전략으로 흔들려고도 했고, 아예 버리는 카드를 내밀어서 처리하려고도 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마지막에 배치하여서 승리를 결정짓게 한 것이었다.
마르케스 감독의 생각이 완전히 맞아떨어진 것은 아니었지만, 아무튼 마이클 조셉을 5세트에 배치한 생각은 상당히 유효했다.
마이클 조셉이 아니었더라면, 밴쿠버SCC의 에이스 존 던까지 이긴 적 있었던 리우를 확실하게 이길 수 있다고 장담할 수가 없었다.
중국의 대형 신인인 리우는 SC스타즈의 게으른 천재로 유명했다.
훈련보다는 다른 게임을 하며 노는 것을 더 좋아해서 팀 코칭스텝의 골치를 썩게 했다.
하지만 어떤 고난이도의 전략도 주문대로 완벽하게 구사하며,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특이한 상황에서도 놀라운 임기응변을 보여주었다.
어쩌면 그런 천재성은 낙천적인 평소 생활 태도에서 비롯된 게 아닐까 하고 이제는 왕춘 감독도 포기 지경이었다.
그 상대는 마이클 조셉!
무척 빠른 손과 집중력을 끝까지 유지하는 튼튼한 체력이 돋보였으나, 섬세한 컨트롤과 전략적인 유연성이 아쉽다는 평을 들었었다.
하지만 올해의 마이클 조셉은 그 단점들이 거의 사라져 있었다.
비록 개인전에서 안드레이 이바노프에게 완패당해 탈락하는 수모를 겪었으나, 그것은 실력보다는 방심한 탓이 더 컸다.
마이클 조셉은 리우를 상대로 한 5세트에서 이를 똑똑히 증명했다.
시작은 리우가 좋았다.
우직한 성향의 마이클 조셉에게 꼼수와 속임수를 좋아하는 리우는 상성이 좋지 않았다.
리우는 중반까지도 우세한 상황을 리드했다. 어떻게 불성실한 선수가 저런 완벽한 운영을 하는지 불가사의할 정도였다.
SC스타즈의 결승 진출 기대감도 최고조에 이르렀다.
하지만 중반 이후로 마이클 조셉이 살아나기 시작했다.
특유의 피지컬을 기반으로 한 엄청난 장기전 능력이 펼쳐진 것.
몰아치는 리우의 공세를 마이클 조셉은 계속 막아냈다.
바퀴들을 계속 맵에 뿌려서 곳곳에 매설된 지뢰를 제거하는 리우의 솜씨는 유려했으나, 마이클 조셉도 지치지 않고 계속 지뢰를 깔고 디펜스를 했다.
맵을 절반씩 나눠 가진 채, 리우가 공격하는 마이클 조셉이 막아내는 상황이 지속되었다.
맵 전역의 자원이 모두 고갈될 때까지 그런 상황이 이어지자, 결국 승리한 쪽은 마이클 조셉이었다.
“와아아아!!”
뉴욕 e스포츠 센터가 팬들의 기쁨의 함성으로 가득했다. 이곳 뉴욕은 팀 크라이시스의 홈이었기 때문.
SC스타즈는 낙담한 채 퇴장할 수밖에 없었다.
“아까웠구나.”
왕춘 감독은 리우를 다독였다.
중요한 경기에서도 부담 없이 자기 플레이를 펼칠 정도로 배짱이 좋은 리우였다.
하지만 자신의 패배 때문에 팀의 결승 진출이 좌절된 셈이라, 낙천적인 리우라 해도 상처가 없을 수 없었다.
“하나도 안 아까웠어요. 아시잖아요?”
리우는 눈물을 머금고 볼멘 목소리로 투덜거렸다.
꽤나 장기전이었던지라 팽팽한 승부로 보일 수 있었지만, 속사정은 그렇지 않았다.
마이클 조셉은 끝까지 막기만 하면 이긴다는 걸 알기 때문에 심정적으로는 여유가 있었다.
오히려 공격하는 리우 쪽이 쫓기는 입장이었던 것.
“아직 때가 아니었던 것 같구나. 일단 단체전 금메달은 저들에게 맡겨두자꾸나.”
왕춘 감독은 눈을 빛내며 말을 이었다.
“맡겨놓은 건 내년에 가지러 오면 되니까.”
새로 합류한 이신과 박영호가 내년 그랑프리에는 단체전에서도 참전한다.
그때는 지금과는 전혀 다른 입장이 될 것이라고 왕춘 감독은 확신했다.
결과적으로 SC스타즈의 단체전 성적은 4강, 종합 4위였다.
역시나 불운했다.
‘아니, 아직 우리가 약간 더 부족한 것인지도 모르지.’
왕춘 감독은 나름대로 자성을 갖기도 했다.
하지만 4강에서 팀 크라이시스를 만나고, 3·4위전에서는 하필 파리SCC와 맞닥뜨렸으니, 운도 탓하지 않을 수 없었다.
파리SCC도 유력한 우승 후보였는데, 그보다 약체라고 평가 받는 팀에게 미끄러져서 결승 진출이 좌절되었던 것이다.
실력 면에서 상대적으로 부족함이 없다고 자부한 SC스타즈였지만, 파리SCC는 선수 개개인의 실력보다 전략성을 더 중시 여기는 강팀이었다.
에이스 엔조 주앙이 그 팀 컬러를 대표하는 지략가형 선수였다.
파리SCC는 치즈 러시 같은 깜짝 전략을 연달아 펼치면서 SC스타즈를 연신 흔들었고, 결국 3-1로 승리를 거두어 동메달을 차지했다.
결국 이번에도 좋은 활약은 했으나 운이 없어 메달은 놓쳤다, 라는 SC스타즈의 징크스가 증명되었다.
개인전에서도 지우펑이 3·4위전의 패배로 동메달을 놓쳤던 탓에 그 징크스가 더욱 설득력이 있었다.
중국에게 메달을 가져다주기 위해서는 SC스타즈가 상하이 게이밍에게 그랑프리 출장을 양보했어야 했다는 중국 팬들의 우스갯소리도 나왔다.
아쉬운 결과였지만 왕춘 감독은 낙담을 그만 거두기로 했다.
‘어쨌거나 증명은 됐다.’
일단, 현재의 SC스타즈가 충분히 세계 최강팀들과 견줄 수 있는 팀이라는 것.
그리고 이신과 박영호가 합류했을 때, 세계 최강이 된다는 것!
‘어서 내년이 왔으면 좋겠군.’
앞으로 펼쳐질 미래를 생각하니, 올해 그랑프리의 아쉬움에 그나마 위로가 되었다.
* * *
팀 크라이시스의 단체전 우승과 함께 월드 SC 그랑프리는 종료되었다.
하지만 개인전 금메달과 은메달의 주인공인 이신과 박영호는 바쁜 일정에 시달려야 했다.
각종 인터뷰와 촬영 등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박영호는 이제 패배의 후유증을 다소 회복한 덕에 인터뷰에 무리 없이 응할 수 있었다.
“비록 아깝게 금메달을 놓쳤지만 놀라운 경기력에 많은 찬사가 이어졌는데, 이에 소감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아깝게 금메달을 놓쳤다…….”
“네?”
“그게 포인트인 것 같습니다.”
박영호는 덤덤히 소감을 밝혔다.
“주인공이 아닌 악역으로서 카이저의 그랑프리 복귀라는 판을 꾸며준 것, 최근 들어 많은 관심과 칭찬을 받는 근본적인 이유는 거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하, 필요 이상으로 스스로를 비하하시는 게 아닐까요?”
“뭐, 그게 사실이니까요. 우리나라에서도 작년에 우승했을 때보다 준우승을 한 지금 언론 주목도나 팬클럽 회원 수가 더 많아졌거든요. 그것만 봐도 답이 나오죠. 만약 제가 이겼더라면 그때도 이렇게 기뻐해 주셨을까요?”
“하하, 그러면 오히려 더 주목을 받으셨지 않을까요? 카이저라는 레전드를 이긴 주인공으로요.”
“글쎄요. 그러기엔 e스포츠에서 카이저라는 닉네임이 갖는 상징성이나 비중은 너무 크죠.”
박영호의 말이 이어졌다.
“물론 낙담만 하고 있지는 않을 겁니다. 지금까지는 조연이나 악역일 뿐이었지만, 숱한 좌절에도 굴하지 않고 다시 일어나 끝내 승리를 쟁취하는 ‘박영호’라는 드라마의 주인공이고 싶습니다.”
“예, 꼭 그 드라마를 보게 될 날이 오기를 빌겠습니다. 자, 내년에는 자신이 주인공이 되겠다는 러너의 포부가 어땠나요?”
인터뷰 진행자가 이신에게 질문을 돌렸다.
“영호는…….”
이신은 덤덤히 말했다.
“드라마 주인공에 적합한 외모는 아니라고 봅니다.”
박영호는 진심으로 이신의 멱살을 잡을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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