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tination of the Shilohan Butterfly RAW novel - Chapter 11
10. 후일담: 태영
사람의 열등감이 사람을 죽일 수 있다는 걸 태영은 어린 나이서부터 깨달았다. 삼촌의 집에서 가출한 후 뒷골목에서 아이들 삥을 뜯는 재미로 살았다. 같은 처지의 고아들을 모아놓고 왕 노릇을 하는데 개중 깡이 세고 욕심이 많은 태영이 왕초 노릇을 했었다.
생각해 보면 그 더러운 쓰레기장 같은 곳에서 어떻게 살았나 모르겠다. 그래도 삼촌의 집에서 살던 것보다는 행복했었다. 그런데 사람이 참 신기하기도 하지. 그때의 시절이 너무 지옥 같았나 어쨌나.
삼촌을 혐오했다는 감정은 또렷한데, 막상 삼촌의 모습은 거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삼촌이 어떻게 생겼는지, 어떤 목소리를 갖고 있었는지, 그는 전부 잊었다. 말투, 분위기, 그리고 대머리와 살찐 뱃살 정도만을 기억하고 있었다.
여하튼 그렇게 살았다. 구질구질하지만 왕초 노릇을 하며 친구도 사귀고, 하루걸러 하루 굶었지만 적어도 태영이 못생겼다며 무시당하는 일이란 건 있을 수 없었다.
하루는 먹을 것이 많다는 소문에 뒷산을 넘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거기는 그래도 꽤 괜찮게 사는 주거 지역이 있었는지, 태영의 무리가 살던 비안전지대와 다르게 평범한 행복이 뭔지 아는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태영은 기가 안 죽은 척하려고 했지만, 쇼윈도 창문에 비친 자신의 꼴을 보고 창피하다는 감정을 느꼈다.
감은 지가 언제인지 기억 안 날 정도로 떡이 진 머리에, 얼굴은 재를 묻힌 것처럼 군데군데 까만 게 묻어 있었다. 아비의 손을 잡고 가는 소년의 모습과 대비되어 더욱 초라하게 느껴졌는지 모르겠다.
그날 태영은 아지트로 돌아가 부하들을 물리고 움막에서 한 시간을 내리 울었다.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어린 나이였지만, 죽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자신도 부모가 있을 때는 머리를 이틀에 한 번씩 감는 게 자연스러웠다. 먹고 싶은 것이 있으면 아버지를 졸라서 사 먹을 수 있었다.
울고 있는 태영에게 부하가 저녁이라도 먹으라고 가져다줬다. 썩은 바나나 껍질이었다. 태영은 이대론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여기서 더 살면 미치거나 죽거나였다.
새벽이 되고 태영은 무작정 짐을 싸서 아지트를 떠났다. 하지만 세상이 삥을 뜯는 기술 말고는 아무것도 없는 꼬맹이를 받아줄 리가 없었다. 일주일을 쓰레기로 연명했다.
그때 산에 들어가면 부라장 무리가 있고, 거기에 합류하면 적어도 밥은 굶지 않는다는 소리를 들었다. 꼬맹이끼리 모인 아지트보다 험난할지 몰랐으나, 당시에는 일주일을 굶은 터라 먹을 것만 주면 다리 사이를 길 수도 있을 정도였다.
죽고 싶다고는 말해도 죽을 순 없었다. 희망적인 마음보다는 삼촌을 향한 원망 때문이었다. 자기가 길바닥에서 죽으면 그 인간이 얼마나 좋아하겠는가. 그럴 순 없었다. 그 마음뿐이었다.
이윽고 아무 산이나 보이는 대로 올라간 태영은 부랑자 무리를 만나지 못하고 나무의 뿌리를 캐 먹으면서 살아남았다. 닥치는 대로 무언가를 뜯고 먹다가 보니 못 먹을 것도 꽤 먹었었다. 배가 아파서 자주 등산로에 쓰러졌고, 등산객이나 광산 작업부 중에 도움을 주는 이는 없었다. 어떤 사람은 태영이 이미 죽은 줄 알고 등산로에서 치워버리기까지 했다.
그렇게 다 죽어가던 태영이 깨어난 건 모닥불 피우는 소리 때문이었다. 몸이 따듯해서 일어나 보니 누군가의 점퍼를 덮고 자고 있었다. 따듯한 장작불이 있는 게 실감이 나지 않았다. 잠이 덜 깬 태영의 눈에 은박지에 싼 고구마가 구워지는 게 보였다. 태영은 고구마 익는 냄새에 정신을 못 차리고 불에 달려들었다.
“악!”
태영의 손이 불에 닿기도 전에 이마를 새게 차였다. 쫄쫄 굶어 눈에 뵈는 게 없었던 태영은 자신을 찬 남자의 다리를 물었다. 온 힘을 다해, 죽어 보자는 심정으로 물었으나 강철도 아니고 꿈쩍을 안 했다.
“그러다 이빨 빠진다.”
“으, 으악!”
변이 짐승에 대한 건 소문으로만 알고 있었다. 태영은 한국 사람 이외의 인종을 본 적이 없기 때문에 회색 눈과 머리칼을 보고 변이 짐승인 줄 알았다.
“저리, 저리 꺼져!”
“시열아.”
그때 버니를 처음 만났다. 시열은 웃기다는 표정으로 태영을 바라보고, 땔감을 가져오던 버니가 일어난 태영을 향해 일어났냐며 물었다. 아빠뻘 나이의 남자였다. 시열보다는 그쪽이 믿음이 갔다.
“더 잘 줄 알았는데.”
변이 짐승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고 태영은 민망스러워져 제자리에 앉았다. 그 옆으로 시열, 버니가 차례대로 앉았다. 남자들은 말수가 없었다. 태영은 말수가 많은 편이나 그때는 기력이 없었다. 세 남자는 앉아서 익어 가는 고구마만 노려봤다. 가장 참을성이 없는 건 예나 지금이나 태영이었다.
“나 줄 거예요?”
당돌한 태영의 물음에 시열은 아니, 하며 놀렸다. 버니는 그러지 말라고 시열을 말린 뒤에 당연히 먹으라고 그랬다. 대신 꺼내주는 건 자신이 할 테니 기다려 달라고. 그처럼 부드럽게 말해 주는 어른을 오랜만에 만난 태영은 눈물이 차올랐다.
“먹자.”
다 익은 고구마를 태영의 앞에 먼저 놔줬다. 태영은 뜨거운 은박지도 아랑곳하지 않고 고구마를 크게 한 입 베어 물었다. 입천장이 까지게 뜨거웠으나 태영은 콧물, 눈물을 흘리면서 끝까지 삼켜냈다.
“더러워서 같이 못 먹겠다.”
시열은 무심하나 솔직한 편이었다. 그래도 악의는 없었다. 그걸 지금은 알고 있으나 어린 시절에는 자신이 고구마를 뺏어 먹어 미워하는 줄 알았다.
그리고 태영은 자고 일어나 자연스럽게 펑크로 들어갔다. 버니가 자신을 추천해서 들어간 줄 알았더니 시열의 입김이 있었다는 건 나중에 알았다. 실수도 많고, 다혈질이라서 태영은 형들과 부딪힐 때가 많았다. 그래도 시열은 화를 내기보다 문제가 생기면 네가 책임 지면 될 테니 관심 없다는 쪽이었고 버니는 형이니까 너그러이 이해한다는 쪽이었다.
시열은 보기와 다르게 맹한 구석이 있었다. 화를 내는 것처럼 말하나 다음 날에도 변함없이 자신을 똑같은 태도로 대했다.
남자들의 세계란 그런 건 줄 알았다. 형제가 없어서 형들이 자기를 봐주고 있다는 것도 몰랐다. 버니는 나이 차이도 크게 나는 탓에 형이라기보다 아버지 같았다.
딸이 있다는 것도 버니가 말을 해 주어서 알았다. 딸 때문에 뒷골목 조직에서 일할 정도로 성실한 아버지구나 했다. 딸이 자기가 이러고 일하는 것을 알면 실망할 테니까 철저히 비밀에 부치는 중이란다. 그래서인지 수당이 나와도 버니는 다 쓰지 않고 아껴 두었다가 종종 마켓에서 진주 머리핀 같은 것을 사서 보내기도 했다.
“딸 성격이 되게 형이랑 다르게 세나 봐. 혼자서 멀리 사는 거 보면.”
“그래서 기특하고 또 한편으로는 미안해서 연락도 자주 못하겠어.”
태영은 버니의 딸을 질투하고 있었다. 삼촌 같은 인간이 아니라 버니 같은 아버지가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복도 지지리 없어서 삼촌 같은 인간한테 양육권이 넘어간 자신의 인생이 가여웠다. 그래서 더 버니를 따랐다. 다정할 때와 다르게 사람을 쉽게 죽이는 모습은 조금 의외였지만, 저것도 다 먹고 살려는 부정 때문에 그런 줄 알았다.
펑크에서는 시열만 있으면 임무는 걱정이 없었다. 그러나 그만큼 대우해주는지는 모르겠다. 맨날 뺑뺑이에, 외부 임무에, 더럽고 지저분한 임무는 죄 태영의 팀이 맡았다. 형들은 바보같이 착해서 맨날 당하기만 한다고 태영이 울분을 터뜨렸다. 언젠가 다른 조직에서 스카웃 제의가 오면 튈 거라고 엄포를 놓고 살았던 어느 날.
태영은 온이라는 여자를 만났다. 주눅 드는 법이 없고, 가진 것도 없으면서 꿈은 원대했다. 그리고 어딘지 모르게 과거의 자신이 생각나는 여자였다. 그리고 그의 첫사랑이었다.
첫사랑은 그에게 아픔을 주고, 기쁨을 주고, 그리고 추억을 줬다. 그리고 그 첫사랑을 앗아간 남자는 마지막까지 자신의 속을 긁고 떠났다. 화수호를 타는 날이 왔을 때 태영은 아무도 자신을 배웅해주지 않으리라고 생각했다.
“왔네. 안 올 줄 알았더니.”
차온은 신 행성으로 가는 길을 대신해서 지구를 선택했다. 전쟁이 일어날지 모르고, 환경은 위태롭고, 인생에 다시 없을 기회를 놓치면서까지 그녀가 있고 싶은 곳은 지구가 아니라 시열의 곁이었다.
시열과 버니는 자신을 배웅하러 나왔다. 배신감에 사무쳐서 그들을 형제도, 가족도 아니라고 말했지만 역시 그들이 죽거나 누군가에게 죽임을 당하면 부모나 형제가 죽은 것만큼 슬플 것 같았다.
버니는 화수호에 타기 직전 태영을 끌어안고 미안하다고 해 줬다. 버니의 딸을 보려고 가는 거나 다름없는 선택지였다. 그는 차온이 자신의 옆에 없으니 더는 지구에 미련이 없었다. 그러고 보면 차온이나 자신이나 환경은 둘째치고 사랑이 우선인 사람들이었다. 입으로는 현실주의자처럼 말해도 마음은 낭만주의자였다. 그래서 차온이 좋았다.
“왜 울고 그래.”
버니는 태영을 한참 끌어안다가 놓아주었다. 태영은 울지 않으려고 혀를 물었다. 언제 다시 보게 될 줄은 모르겠으나 마지막에 추한 꼴로 기억되고 싶지 않았다. 더군다나 시열의 앞에서는 말이다.
“태영아.”
“응.”
“너 어릴 때, 그때 내가 너 돌봐준 마음, 그거 기억하지.”
기억하다 말다. 자신의 유년 시절이라는 게 있다면 그중 행복한 추억은 모두 이들과 만들었다.
“그렇게 내 딸한테도, 해 줄 수 있니. 내가 갈 때까지만.”
“형.”
“그래. 말해.”
“딸, 예쁘지? 내가 그걸 안 물어봤네.”
버니는 싱겁다는 듯이 웃고는 당연히 자기 눈에 넣어도 안 아프게 예쁘나 객관적으로는 판단이 안 된다고 말했다. 버니와 장난스럽게 인사하고 있을 때 시열은 그저 태영을 바라만 봤다. 시열과는 할 얘기가 없고, 또 하기 싫기도 했다.
“시열이 형.”
자기에게 말을 걸 줄 몰랐던지 시열이 군화 신은 다리로 그에게 천천히 걸어왔다. 너무 가깝지도 않고. 포옹할 수도 없고. 시열은 담백하게 인사하려는 듯이 태영에게 웃으며 말했다.
“잘 가.”
그 인사조차 시열다웠다. 나사 빠진 것처럼 맹한데 들여다보면 가장 속을 끓고 있는 남자가 그였다. 태영은 미안하지만 시열처럼 쿨하지 못했다. 태영은 첫사랑을 뺏어간 그에게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흉터 같은 걸 남기고 싶었다. 문득문득 생각이 나서 차온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라도, 그녀를 행복하게 만들어 줄 수 있게.
“부부는 사랑이 아니라 정으로 산다고 하더라. 형, 그러니까 만약 차온이 싫어지면 정으로 살지 말고 자유롭게 살아. 나는 그때 걔한테 가서 사랑 줄게.”
태영의 마지막 말이었다. 시열은 한 방 먹은 사람처럼 표정이 굳어지지도, 상처받았다는 표정도 아니었다.
“그럴 리 없어, 적어도 우리는.”
그렇게 태영은 두 사람과 이별했다. 연락은 주고받더라도 실제 만나기는 어려울 터였다.
– 도착까지 30분, 남았습니다.
그리고 긴 여행의 끝에 그는 UT 행성에 도착했다. 천국, 그리고 지상의 낙원이라는 미디어에서의 광고와 다르게 UT 행성은 산소 농도를 조절해 주는 특수 마스크를 착용하고 일상생활을 해야 했다. 건물도 지어진 곳은 다 지어졌지만, 아직 개발되지 않은 곳이 많아 여기 사람들은 지구에서 물자를 보내주는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
하늘은 나는 시범 자동차는 말 그대로 시범이었다. 자동차도 몇몇만이 소유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말을 타자니 이곳의 짐승은 지구의 짐승과 달라 타고 다니기도 여의찮아 보였다.
애초에 천국에 마스크를 끼고 다녀야 한다는 것부터 난센스였다. 그는 짐가방을 들고 공항 같은 곳에 내렸다. 차온이 이걸 보면 실망을 많이 하겠다 싶었다.
“안녕하세요!”
“안 사요.”
태영은 판매원인 줄 알고 지나치려고 했으나 그녀는 끈질기게 태영의 뒤를 따라붙으며 말했다.
“윤태영 씨죠?”
그 말에 걸음이 멈췄다. 뒤돌아서서 자세히 보니 어딘가 이목구비가 버니와 많이 닮아 있었다. 차온보다는 살짝 나이가 어려 보였다. 그녀는 아빠가 사진을 보내줘서 알고 있다며 태영에게 악수를 신청했다.
“여긴 생각만큼 좋지 않은데. 그래도 살다 보면 또 살 만해요. 아빠한테는 걱정하실까 봐 제대로 말 안 한 게 많지만요.”
태영은 내민 그녀의 손을 살포시 잡았다. 그때 왜 천천히 먹으라고 고구마 껍질을 까주던 버니의 손이 기억나는지 모르겠다. 그때 그의 보호자가 버니였던 것처럼, 이제 그녀의 보호자는 태영이 되었다.
“지구도 좆 같애. 어딜 가든 그렇겠지.”
나중에 버니가 왔을 때 놀랄 만큼 잘 지내고 있을 거다. 태영은 비로소 웃을 수 있었다. 차온의 말대로다. 자신은 여기서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아볼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