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lood Knight's Villains RAW novel - Chapter (546)
나의 악당들 546화
68. 왕도행(19)
영주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웬 인간 같지도 않은 덩치 큰 사 내놈은 커다란 바위를 공깃돌처럼 던져 순식간에 너덧을 쥐포로 만들 었고, 하늘에서 추락하듯 위에서 뚝 떨어져 내린 여인은 강맹한 참격을 그어 내려 부하 용병의 상반신을 마 른 장작처럼 쪼개버렸다.
게다가 그게 전부가 아닌 듯, 이어 서 웬 불덩이가 밤하늘을 가르며 날 아오더니 대열의 뒤쪽에 떨어졌다.
꽈앙!
“으아아악!”
“마, 마법사다-!”
부하들의 비명이 아니더라도, 폭음 과 함께 밀어닥친 열기와 시뻘건 화 광 덕에 상황을 파악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랜토브는 저도 모르게 욕지거리를 지껄였다.
“이런 씨발, 대체 뭔- 이 병신들 아! 정신 차려!”
그는 부하들을 독려하면서도 눈앞 의 상대를 다시 확인했다.
기껏해야 20대 초중반 정도로 보 이는 여인이었다. 얼굴은 곱상하지 만 키가 꽤 크고 눈매가 날카로운 탓에 범상치 않은 분위기를 풍겼다. 조끼 형태의 낡은 판금 흉갑과 가벼 운 천갑옷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흔한 용병의 복장이었다. 인상적인 것은 날개와 깃털 모양이 도드라진 철제 헤드기어와 넓적한 칼날의 곡 도였다.
한눈에 봐도 무인이었고, 좀전의 참격과 지금 보이는 자세를 통해 그 수준이 상당함을 눈치챌 수 있었다.
“계집년이,”
그는 투구의 면갑을 내리며 이를 갈아붙였다. 예상치 못한 일이 연달 아 이어지는 와중이었지만, 랜토프 는 서임 받은 기사였으며 무수히 많 은 전투를 경험한 용병대장이었다.
그는 곧장 전투에 돌입했다. 간결 한 동작으로 검을 휘두른 것이다.
영주의 양손검은 장인의 손길이 닿 은 명품이었다. 수려한 문양이 음각 된 칼날이 빛살처럼 그어졌다.
« o ”
또 다른 도적을 베어 넘긴 참이던 여검사-틸로리아는 반사적으로 몸 을 돌리며 곡도를 치켜들었다.
깡, 카강.’
휘청대는 화광을 등에 업고 달려든 영주는 인영이 흐릿하게 보일 정도 로 재빠르게 쇄도했고, 양손검은 흐 르는 물처럼 곡도를 연달아 후려쳤 다.
틸로리아는 이를 악물고 연격을 맞 받아쳤다. 그러나 정교하면서도 강 력한 검격이 휘몰아치자 곧 수세에 몰리고 말았다. 이를 악문 그녀가 가벼운 몸놀림을 뽐내며 물러서자 영주 역시 남다른 보법을 선보이며 따라붙었다.
틸로리아는 크게 놀라 눈을 홉떴 다. 눈앞의 중년인이 드러낸 신체 능력과 검술 그리고 무장은 한낱 도 적의 것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수준이 높았다.
‘ 어쭈.’
영주 역시 놀란 건 마찬가지였다. 자신의 공격을 몇 합이나 받아내는 실력자를 이런 곳에서 만나리라고는 미처 생각지 못한 눈치였다.
동시에 마음이 조급해졌다. 만만치 않은 상대를 마주한 건 둘째치고, 저 언덕 위에 선 거구의 청년이 두 번째 바위를 들어 올리고 있었기 때 문이다. 게다가 언제 두 번째 화염 구가 날아들지 모르는 일이었다.
“화살을 쏴! 저 떡대 새끼부터 죽 여!”
랜토브는 포효로 명령을 내리는 한 편 눈앞의 틸로리아에게 맹렬히 돌 진했다.
까, 그그극-
그의 양손검이 곡도를 짓누르듯 밀 어붙이자 두 칼날이 서로 미끄러지 며 마구 불똥을 튀겨댔다. 칼자루를 쥔 손끼리 맞닿을 만큼 가까워진 순 간, 영주는 팔꿈치와 손목을 크게 비틀었다.
“큭-”
“걸렸, 어!”
십자막이가 상대의 칼등에 걸린 순 간 랜토브가 양손검을 잡아당겼다. 아주 단순하고 기본적인 기술이었지 만, 어지간한 기사라도 반응하지 못 할 만큼 빠르고 강력한 전개였다.
챙!
틸로리아는 속수무책으로 무기를 놓치고 말았다. 날이 넓적한 곡도는 묵직한 무게에도 불구하고 수수깡처 럼 튕겨 밤하늘 위로 날아올랐다.
영주는 길쭉한 칼날을 부드럽게 휘 돌리더니 그대로 횡으로 그었다. 그 야말로 벼락 같은 일격. 강적들을 숱하게 베어 넘긴 연계기였다.
죽음의 위기에도 틸로리아의 눈은 냉정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지난 2 년간 지금과 유사하거나 훨씬 더한 열세에 수시로 처한 바다.
‘ 이쯤이야.’
그녀는 마치 준비하고 있었던 것처 럼 허리를 꺾으며 드러눕는 동시에
‘날개의 관’을 발동했다.
스읏.
양손검의 칼끝이 그녀의 턱을 아슬 아슬하게 스치고 지나갔다. 예리한 절삭음과 함께 혹청색 머리칼 몇 가 닥이 나풀나풀 휘날렸다.
이마에 얹은 강철관이 번쩍이고, 틸로리아는 마치 보이지 않은 줄에 묶여 당겨지는 것처럼 허공을 미끄 러졌다. 그 와중에 영주의 턱을 향 해 발을 차올린 건 덤이었다.
퍽
“이 썅년이.”
팔꿈치를 당겨 어렵잖게 기습을 막 아낸 랜토브가 미련을 버리지 못하 고 땅을 박차려던 차, 몇 미터쯤 거 리를 벌린 틸로리아가 왼손바닥을 내밀었다.
지이잉.
촘촘하고 질긴 소재의 반장갑을 낀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정확히 말하 자면 장저(掌底)에 붙은 철제 반구 가 진동의 근원지였다.
‘ 마도구.’
영주는 심상찮은 진동음을 듣자마 자 본능적으로 몸을 날렸다. 그가 경사진 바닥에 엎드린 순간 ‘파동의 장갑’에서 비롯된 진동이 절정에 달 했다.
마침 그때는 영주의 부하들 중 몇 몇이 언덕 위 거구의 청년을 향해 화살을 쏘아붙이는 중이었다. 랜토 브의 근처를 지키던 심복은 막 하늘 로 날아오른 틸로리아에게 쇠뇌를 겨누고 있었다.
‘파동의 장갑’이 희미한 자색 광채 를 뿜었다.
팡!
가죽북이 터지는 듯한 굉음과 함께 허공에서 충격파가 터졌다. 막 쏘아 진 화살들은 힘을 잃고 바닥에 머리 를 처박았고, 영주의 심복은 강풍에 밀린 듯 뒷걸음을 치며 엉뚱한 곳으 로 쇠뇌살을 쏘고 말았다.
‘속았다!’
영주는 이를 갈았다. 충격파는 꽤 쓸만해 보였지만, 그 위력은 기껏해 야 화살을 쳐내거나 숙련된 용병의 균형을 흔드는 정도에 불과했다. 그 는 공연히 몸을 던졌음을 깨닫고 재 빨리 일어났지만, 틸로리아는 이미 언덕 쪽으로 훌쩍 물러난 뒤였다.
랜토브는 재빨리 주변을 돌아보며 상황을 파악했다.
“……좆됐구먼.” 그 말대로였다. 2분이나 지났을까 싶은 시간 동안 서른네 명 중 열다 섯이 죽었으니.
또한 언덕 위쪽의 소란은 어느새 잦아든 뒤였고, 처참한 비명만 몇 줄기 멀어지고 있었다. 먼저 야영지 를 들이친 세스의 패거리는 모두 정 리된 게 분명했다.
일이 틀어져도 한참 틀어졌다. 영 주는 곧장 도주하기로 마음 먹고 몸 을 돌렸다.
“하 않-/” —9 白 •
언덕 위에 우뚝 선 덩치, 골만의 기합이었다. 또다시 커다란 바위가 허공을 갈랐고 화염구도 뒤를 이었 다.
“이런 썅, 또 온다!”
“피해-!”
미리 대비하고 있던 영주의 부하들 은 사냥개에 쫓기는 토끼떼마냥 재 빠르게 흩어졌다. 문제는 그렇게 흩 어진 자들 대부분이 그대로 줄행랑 을 치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이 버러지 같은 놈들! 돌아와!”
넘어진 채 쇠뇌를 재장전하던 영주 의 심복을 비롯해, 충직한 용병 몇 이 경악하여 고함을 질러댔지만 돌 아서는 놈은 드물었다.
아니, 하나도 없었다. 사람을 죽이 고 재물을 약탈하고 여자를 범하는 등의 더러운 기대로 모여든 놈들 사 이에 의리 같은 게 존재할 리 없었 다.
그리고 우두머리인 랜토브부터 절 정의 기사에 어울리는 신체 능력을 발휘하여 선두에서 달음박질을 치고 있는 상황인데 어느 바보가 전의를 불태운단 말인가.
“잠깐, 형님 나리가-”
“……저 개자식.”
뒤늦게 영주의 도주를 눈치챈 용병 들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들이 절 망과 분노로 고함을 질러댔지만 랜 토브는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훅, 후욱, 후!”
내리막을 타고 달려 순식간에 골짜 기 바닥에 이른 랜토브는 즉시 방향 을 꺾었다. 시야가 훤히 트인 오솔 길을 따라가는 대신 숲에 몸을 숨길 요량이었던 것이다.
-후우욱.
점차 커지는 파공음이 전력으로 달 리는 영주의 귀를 파고들었다. 그 는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즉시 몸을 던졌다. 아니, 던지려고 했다.
파각!
“― 적,”
허벅지 아래에서 전해지는, 마치 전투마에 정통으로 치인 듯한 둔중 한 충격. 영주의 몸은 그의 의사와 상관없이 옆으로 나뒹굴고 말았다.
“……끄흐으윽!”
랜토브는 제 무릎을 꿰뚫은 투창을 발견하고 그제야 격통을 느끼며 이 를 앙다물었다.
‘이건 또 무슨,’
쇠사슬로 짠 쇼스는 물론이고 그 위에 덧댄 판금 보호대까지 관통한 물건이 한낱 투창이라니? 노포(腎 砲)로 쏘았다고 해도 믿을 만한 위 력이건만…….
쐐애액- 팍!
“꺼헉,”
저 언덕 위에서 솟은 투창이 골짜 기 아래로 연신 내리꽂혔고, 그럴 때마다 도적들이 답답한 비명을 터 뜨리며 쓰러져갔다.
투창만이 아니었다. 다시 보니 희 끄무레한 무언가가 연달아 날아들고 있었다.
푹
쓰러진 영주의 옆을 지나치던 도적 이 거기에 맞아 세차게 바닥을 나뒹 굴었다. 랜토브는 그제야 허연 물체 의 정체를 알아챌 수 있었다. 도적 의 어깨 뒤쪽에 꽂혀 있는 건 마디 가 선명한 뼈화살이었다…….
“흐, 흐어얽
새하얀 뼈화살이 창백한 빛으로 깜 빡이자 도적은 눈을 뒤집으며 거품 을 입에 물었다.
그것도 잠시, 그의 숨이 멎자 뼈화 살은 먼지처럼 부스러졌다. 동시에 시체의 상흔에서 피어난 희끄무레한 무언가가 언덕 위로 휙 날아갔다.
불길한 상상력을 자극하는 장면에 영주는 저도 모르게 성호를 그으며 중얼거렸다.
“씨, 발.”
문득 불안에 공포가 더해진다. 순 간적으로 뇌리를 스친 생각 때문이 다.
“••••••설마.”
랜토브는 영지를 방문하는 떠돌이 들-주로 용병과 모험가, 여행자 등 을 대상으로 영업을 해왔다. 이 사 업에서 무력과 화술만큼 중요한 게 정보력인바,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풍문에 귀를 기울이는 건 기본 중에 기본이라 할 수 있었다.
‘……적진을 강습하는 셀-시드의 검호. 망루를 뽑아 넘어뜨리는 종자. 뼈를 수집하는 육손이…… 그리고, 공포스러운 위력의 투창.
‘적기사.’
창을 던져 와이번을 수십 마리나 떨어뜨렸다는 남자에 대해 떠올린 영주는 무심코 절망하고 말았다.
왕국으로 돌아온 것이다. 은왕자의 복수와 수녀공주의 구원을 천명한 적기 사가.
영주는 숱한 현자, 상인, 호사가들 의 입을 찢어버리고 싶은 심정이었 다. 그 맹세는 허풍에 불과하다며, 영지에 처박힌 적기사를 비웃던 그 수많은 주둥이들을 모조리 단검으로 꿰매버리고 싶었다.
저벅거리는 인기척들이 다가오자, 영주는 질끈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