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of the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492
492화 디데이(1)
“젠장, 젠장, 젠장!”
PC 앞에 앉아 연신 구시렁거리는 키 작은 청년.
구시렁거리고 있으니 좁은 어깨가 더욱 작아 보였다.
“왜 날 빼? 지들이 그렇게 게임을 잘해? 나보다 잘해?”
청년은 앙증맞은 마우스를 폭풍 클릭하며 게임에 몰두 중이었다.
애니메이션 영화 얼음 왕국 캐릭터가 그려진 마우스는 그야말로 불꽃이 튈 것 같았다.
어린 아이들이나 쓸 법한 마우스는 얼마 버티지 못하고 망가질 것만 같았지만, 놀랍게도 이 마우스는 벌써 반 년째 잘 버티는 중이었다.
“내가 2년 연속 은메달리스트인데, 날 놔두고 동메달 딴 놈을 뽑아? 지금 사람 차별함?”
쉬지 않고 구시렁구시렁.
그런데도 모니터 속의 괴물 유닛들은 쉬지 않고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촤아악!
-으아악!
-아악!
인류의 보병·의무병이 밖으로 나오자마자 기다리고 있었던 촉수충들이 촉수로 긁어버렸다.
한 번 긁혀서 손실을 본 인류는 재빨리 병력을 부채꼴처럼 펼치며 레이더를 찍어서 촉수충들의 위치를 파악했다.
하지만 보병들이 에워싸기 전에, 땅속에서 벌떡 튀어나온 촉수충들이 후다닥 도망갔다.
그리고 레이더의 시야가 미치지 않는 곳까지 물러나서 다시 땅속에 파고들어갔다.
“와, 깔끔하다.”
“딱 한 번만 긁고 바로 뒤로 빼버리네. 죽인다.”
“나였으면 한 번 더 긁으려고 욕심냈다가 바로 싸 먹혔다.”
“응, 그게 네 클래스.”
촉수충으로 계속 인류의 병력이 나오지 못하게 꽁꽁 묶어놓으면서 레이더를 소모하게 만드는 플레이.
그러는 사이에 2번째 확장 기지를 안전하게 펼치고, 본진까지 3광산을 확보했다.
“아마드 부티아 걔 나한테 3 대 0으로 발렸잖아? 왜 내가 아니라 걔가 괴물 종족 대표인 거야? 내가 갔어야 해. LA행 티켓은 내가 받았어야 했다고.”
정말 쉴 새 없이 투덜거렸다.
그럼에도 하나의 사소한 결점도 없이 완벽한 플레이.
인류는 불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하여, 항공수송선을 쓴 드롭 작전으로 흔들어보려 했다.
하지만 병력을 태운 항공수송선은 목적지에 절반도 오지 못했다.
“에휴, 얘는 보나마나 항공수송선이겠네. 차라리 전술위성을 더 뽑지 그랬니.”
이윽고,
-퍼엉!
항공수송선은 어서 오란 듯이 마중 나와 있던 폭탄충 2마리의 자폭을 받아 격추되었다.
“소름 끼친다.”
“그냥 다 훤히 꿰고 있네.”
등 뒤에서 구경하는 선수들은 그저 감탄밖에 나오지 않았다.
인류는 다시 한 번 항공수송선을 뽑았다.
한 번 실패한 드롭을 또 시도할 줄은 예상 못했겠지, 하는 역발상.
그러나 그때, 폭탄충 2마리가 인류의 진영으로 날아왔다.
본진을 이리저리 둘러보며 정찰을 한 폭탄충 2마리는 쫓아오는 보병들을 피해 요리조리 곡예비행을 하다가, 막 생산된 항공수송선과 자폭했다.
-퍼어엉!
이번에는 아예 나오자마자 격추당해 버린 항공수송선.
상대 인류의 멘탈이 박살 나는 순간이었다.
-Runner: 나가^^
상대 멘탈에 쐐기를 꽂는 싸가지!
-[JKT]han: ㅠㅠ
-[JKT]han: GG
그리하여서 JKT의 연습생들은 벌써 10명이나 계란으로 바위 치듯 박영호에게 박살이 나버렸다.
한바탕의 학살극을 끝낸 박영호는 세상 다 산 것처럼 허망한 표정을 한 채, 연습실 한 가운데에 쌓여 있는 과자를 하나 집어서 우걱우걱 먹기 시작했다.
그런 박영호에게 JKT 선수들 중 가장 선배인 오성준이 다가왔다.
“넌 휴가받은 놈이 왜 여기서 죽 치고 있냐?”
“계속 놀면 손 썩잖아.”
한국에서 휴가를 보내던 박영호는 친정팀인 JKT의 연습실에 불쑥 찾아와 이렇게 연습 게임을 하고 있었다.
대형마트를 하나 털기라도 했는지, 바리바리 싸들고 온 과자를 연습실 한가운데에 산더미처럼 쌓아놓고는 말이다.
선수들이 하나씩 집어먹은 터라 과자의 산은 상당히 줄어든 상태였다.
“친구 없냐?”
“있어! 다 만나고 온 거거든?”
“쯧쯧, 할 일 없으면 연애나 좀 해라.”
“댁이나 잘해!”
박영호는 버럭 성질을 냈고, 오성준은 낄낄거렸다.
“짜식, SC 본사에 초대 못 받았다고 삐쳤나 보네.”
“댁 때문에 삐쳤거든?”
“기운 내라 짜식! 네가 이해해야지. 너처럼 인기 없는 애보다는 아마드 부티아가 그럴듯하잖아.”
“크아악! 싸우자!”
박영호는 오성준과 엎치락뒤치락했다. 하지만 이내 훨씬 체격이 큰 오성준에게 제압당해 버렸고, JKT 연습실은 웃음바다가 되었다.
그런데 그때, 박영호의 핸드폰 벨소리가 났다.
확인해 보니 얼마 전에 만나서 번호를 교환했던 최환열이었다.
“여보세요?”
-너 요즘 JKT 숙소에 죽치고 있다면서?
“네. 근데 무슨 일이세요?”
-내가 제안을 하나 받았는데, 이신 나가는 리마스터 발표회 있잖아?
“네, 저는 초청 못 받은 그 이벤트요.”
박영호의 시큰둥한 대꾸에 최환열은 잠시 웃었다.
-그래, 그거. 날더러 그 이벤트 매치 해설에 참여해 달라고 요청 왔다.
“네, 축하합니다. 전 못 받았어요. 그럼 이만 끊어요.”
-인마! 끊지 말고 끝까지 들어. 뭘 그렇게 심통이 나 있어?
“몰라요! 저 완전 왕따예요! 신이 형은 저 놔두고 캐나다로 가버리고, 학교 친구들도 죄다 군대 갔고, 친정팀에 오랜만에 왔더니 애들은 지질히 게임 못해, 선배란 양반은 날 못 놀려서 안달이고!”
옆에 있던 오성준을 혀를 찼고, 연습생들은 울상이 됐다.
우울하면 한없이 땡깡을 피우는 박영호의 성격에 익숙한 1군 선수들만이 낄낄거릴 뿐이었다.
-와, 너 정말 진상이구나.
“아 쫌! 하고 싶은 얘기가 뭔데요?”
-쯧쯧, 뭐긴 뭐야? 너도 같이 해설 하자는 거지. 나한테 해설 참여 제안했기에 내가 너도 추천했다. 너 입 하나는 잘 털잖아.
“…진짜요?”
-그래, 곧 너한테도 연락 갈 거야.
“출연료는 얼마나 준대요?”
-돈도 많이 버는 놈이 뭘 그런 걸 물어? 올도어가 하는 건데 잘 챙겨주겠지.
“전 워낙에 비싼 몸이라.”
-하지 마, 인마.
“할 건데요?”
박영호는 끝까지 진상을 떨었다.
* * *
전 세계의 골수 e스포츠팬들이 속속들이 로스앤젤레스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로스앤젤레스에 위치한 SC코퍼레이션 본사에서 바로 e스포츠의 미래에 중대한 영향을 끼칠 이벤트가 벌어지기 때문이었다.
무려 5만 장이나 되는 입장권은 인터넷 예매를 시작한 지 10분도 되지 않아 매진되어버린 기록을 세워 버렸을 정도로 관심이 몹시 높았다.
여러 가지로 개선이 된 스페이스 크래프트 리마스터 버전.
그리고 e스포츠의 살아 있는 전설, 이신의 전성기 시절을 그대로 재현한 인공지능.
호기심을 자극하는 요소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특히나 인공지능 이신 대 살아 있는 이신의 대결!
모든 팬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질문들이 있었다.
마이클 조셉, 엔조 주앙 등 이신이 사라져 있었던 동안 새로운 신성이 나타날 때마다, 그들은 이신과 비교 대상이 되었다.
전성기 시절의 이신과 현재의 최강자가 붙는다면 누가 이길까?
전성기의 이신은 인간이 게임으로 할 수 있는 극한의 플레이라고 말하는 팬들이 대다수.
비극으로 무대에서 사라졌던 터라, 이신은 팬들에게 신앙과도 같은 존재가 되어 있었다. 누구도 이신을 능가할 수는 없다는 믿음이 너무도 확고했다.
그러나 이제 그만 이신의 잔재를 걷어내 주었으면 하고 바라는 팬들도 많았고, 그들은 시간이 흘러 전략도 발전하였으므로 과거의 사람과 비교 자체가 될 수 없다고 말했다.
끊임없는 논쟁거리가 되었으나, 결코 확인할 수는 없었던 일.
그것이 직접 눈으로 검증할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이었다.
상상하지도 못했던 방법으로 이 매치를 실현시킨 코렛 사장에게 팬들은 감동했다.
역시나 진정한 e스포츠의 팬은 코렛 사장이라고 팬들은 칭찬했다. 가장 스케일이 큰 이신의 광팬이라는 우스갯소리도 나왔다.
SC코퍼레이션 본사로 입장하는 관객들의 행렬이 길게 줄을 서서 장관을 연출하고 있는 상황.
그런데 문득, 줄을 선 관객들 사이에서 소란이 발생하였다.
“오오!”
“카이저다!”
“헤이, 카이저! 여길 봐줘!”
“오, 맙소사! 내가 신을 보았어!”
검정색 밴이 멈추고 그곳에서 이신이 내렸다.
밴쿠버에서 만반의 준비를 모두 마치고 로스앤젤레스에 온 것이다.
찰칵찰칵! 찰칵!
촬영하는 소리가 연신 울려 퍼졌다. 관객들이 환호를 보내자, 이신도 그들에게 가볍게 손을 흔들어주었다.
“꼭 이겨!”
“인간이 인공지능에게 지지 않는다는 걸 보여줘!”
“과거의 스스로에게 지지 마!”
“네가 최고야!”
응원의 소리를 받으며 이신은 결전의 장소로 들어섰다.
본사 내부도 붐빈 관객들로 인해 대성황이었다.
SC뿐만 아니라 SC코퍼레이션에서 개발한 수많은 게임의 상품들이 전시되어 있었고, 게임 캐릭터들을 코스프레한 모습도 즐비했다.
코스프레 모델들은 팬들과 사진을 찍어주는 서비스를 해주고 있었는데, 이신을 발견하자 오히려 모델들이 그에게로 모여들었다.
“……?”
의아해한 이신은 이내 피식 웃고는 코스프레 모델들과 사진을 찍어주었다.
모델들이 도리어 사진을 함께 찍어달라고 요청하는 모습에 관객들도 웃음을 터뜨렸다.
“난리도 아니군요.”
이신은 선수 대기실에 도착하자 비로소 한숨 돌렸다.
“다들 궁금해하거든요. 연습을 많이 하셨습니까?”
공항에서부터 이신을 안내해 주었던 스태프가 물었다.
이신은 고개를 끄덕였다.
“해보시면서 뭔가 문제점은 없으셨고요?”
“해상도가 달라져서 그런지 마우스 감도도 달라졌는데, 알맞은 설정값을 찾았으니 괜찮습니다.”
“다행이군요. 그럼 시간이 될 때까지 푹 쉬세요. 축제를 함께 즐기셔도 좋고요.”
“알겠습니다.”
스태프가 떠나고, 혼자 남게 된 이신은 태블릿PC를 꺼냈다.
그리고는 리플레이 파일을 재생했다.
작년에 온라인에 출몰한 Kaiser2017과 대전했던 게임이었다.
이때도 인공지능은 이미 상당한 실력을 뽐내고 있었다.
하지만 이조차도 아직 미완성.
오늘은 완전해진 모습으로 나타날 터였다.
‘앞서서 마이클 조셉과 하는 걸 잘 봐야겠군.’
마이클 조셉이 준비한 맵은 오늘 이신이 치를 맵과 달랐지만, 그래도 인류 대 인류 전에서 인공지능이 어떤 스타일과 실력을 보여줄지 참고할 부분은 많았다.
특히나 피지컬로 따지면 현재의 이신보다 더 좋은 마이클 조셉이었다.
온라인에서 함께 연습 게임을 했을 때, 마이클 조셉은 굉장히 공격적인 플레이를 했었다.
똑같이 공격적으로 나서서 서로를 물어뜯는 스피드 게임을 펼칠 작정이었다.
‘마이클 조셉이 지지 않고 난전을 펼치는 식으로 인공지능을 이길 수 있을지 봐야겠어.’
사실 이신도 100% 완성된 지금의 인공지능의 실력을 잘 가늠하지 못했다.
그래서 불안감을 느껴 더 준비를 철저히 해야 했다.
하지만…….
리플레이 영상을 보면서 이신은 자기도 모르게 미소 짓고 있었다.
이길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상대를 앞둔 긴장감이, 그를 한없이 기쁘게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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