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of the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510
510화 의무(1)
계속 진행된 팀 랭킹전에서 이신은 상대가 누구든지 간에 같은 스타일을 고수했다.
정석, 그리고 안전.
상대가 할 수 있는 모든 노림수를 틀어막는 더없이 철저한 플레이였다.
하지만 그건 결코 평범한 플레이는 아니었다.
이는 가위 바위 보로 비유할 수 있다.
상대가 가위나 바위를 낼 거라고 예상이 든다면 마땅히 바위를 내는 것이 최선이다.
이때 상대가 보를 낼 위험까지 대비할 수는 없는 법이었다.
상대가 보를 낼 위험은 배제하고 나머지 두 가지 경우를 대비하여서 바위를 내는 것.
SC도 그러했다.
모든 경우의 수를 다 대비할 수는 없으니, 몇 가지는 어느 정도 배제해야 하는 것이다.
그 가위 바위 보가 바로 빌드 오더다.
그래서 빌드 오더를 선택할 때 상대의 성향과 평소 즐겨 하던 플레이, 그리고 맵의 특성을 골고루 감안하여서 결정해야 한다.
상대도 평소에 하지 않던 빌드 오더를 시도하는 등의 심리전을 펼칠 테고 말이다.
이신이 사상 최고의 프로게이머로 군림할 수 있었던 가장 주된 이유도 바로 이런 심리전에 강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의 이신은 가위 바위 보 세 가지를 모두 막아내기 위한 운영을 하고 있었다.
인류는 방어에 특화된 종족 특성상 그게 가능하긴 했다.
다만 그만큼 방어에 더 자원과 시간을 소모했으므로 상대보다 한 발짝씩 뒤쳐질 수밖에 없다.
상대에게 뒤처지지 않기 위하여, 혹은 한 발 더 앞서기 위하여 일부 경우의 수를 과감하게 ‘배제’를 하는 것인데, 오늘 이신은 전혀 배제를 하지 않은 것이다.
극도로 안전한 플레이.
그것은 이신이 갑자기 겁을 먹고 안전주의자가 된 게 아니었다.
오히려 반대였다.
한발 뒤처지더라도 결국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
허를 찔린 일격만 안 당하면 이길 수 있는데 당연히 안전해지는 것이었다.
그리고 실제로도 지지 않았다.
-퍼퍼퍼퍼퍼펑!!
기동포탑들이 일제히 포격을 펼쳤다.
우렁찬 굉음과 함께 쏘아진 포화가 신족의 병력을 무참히 짓이겼다.
상대 신족은 확장 기지를 많이 구축하고 이를 통해 얻은 막대한 자원을 바탕으로 이신보다 빨리 인구수 제한까지 풀 병력을 모았다.
자원이 넘쳤으므로 싸움을 통해 병력을 소모해야 했다. 그래야 병력을 또 뽑고 계속 공격하는 물량 싸움이 이루어지니까.
이신도 그런 신족의 심리를 꿰뚫고 있었다.
싸우고 싶을 테니, 싸울 곳을 마련해 주마.
이신은 전 병력을 끌고 출진했다.
이신이 먼저 본진에서 나와주자, 신족은 얼씨구나 하고 덮쳐들었다.
그리고 그 결과가 바로 이것.
-끼리릭! 끼릭!
-끼리릭!
포화에 맞은 거신병기들이 고장 난 채 털썩 주저앉는다. 거신병기들이 죽어나가는 소리가 계속 울려 퍼졌다.
바로 이거였다.
상대에게 덮칠 기회를 줬지만, 이신은 나오면서도 완벽한 진형을 갖춰놓은 상태.
그걸 모르고 무작정 달려들었던 신족은 병력을 꼬라박고 패퇴했다.
지금까지 앞서나갔던 이득이 송두리째 사라져 버렸다.
급히 병력을 다시 생산하고 있지만, 아직 병력이 채워지지는 않고 있는 시점!
이신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가차 없이 역습에 나섰다.
바람처럼 진격하여 신족의 확장 기지 하나를 파괴시켰다.
또한 유리한 위치에서 자리를 완벽하게 갖추고 상대를 압박.
신족은 적을 물리치기 위해 달려들 수밖에 없었고, 유리한 위치에서 좋은 진형을 갖춘 이신에게 또 패퇴했다.
결국 GG가 선언되었다.
이를 지켜본 선수들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아까랑 똑같이 졌잖아?”
“아까부터 신족이 계속 한 타 싸움에서 패배해서 유리한 상황을 말아먹고 있어.”
“병력도 더 많았는데 계속…….”
“되게 쉽게 이기네.”
“신족이 원래 저렇게 약한 종족인가?”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는 광경이었다.
특히나 신족과 괴물을 다루는 선수라면 더욱 더.
이신이 특별한 승부수나 슈퍼 플레이를 펼친 것도 아닌데 자연스럽게 상대를 픽픽 쓰러뜨렸으니, 종족의 한계인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물론 왕춘 감독이나 전략 연구원들은 비결을 알고 있었다.
“진형.”
왕춘 감독이 한마디로 정의했다.
연구원들도 수긍했다.
“예, 싸울 때마다 진형을 완벽하게 잡았습니다.”
“원하는 때에 원하는 장소에서 싸울 수 있도록 상대를 유도했습니다. 그러니 진형을 완벽하게 이룬 채 전투를 펼칠 수 있었던 것이죠.”
한 번 잘 싸워서 승부가 뒤집히는 경기는 얼마든지 있었다.
단 1의 자원이라도 더 먹기 위해, 단 1초라도 더 단축시키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는 프로게이머의 세계.
하지만 그렇게 해서 상대보다 조금 더 이득을 본다 해도, 한 번의 전투에서 손실을 보면 그것들이 전부 헛수고가 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이신은 그런 식으로 연전연승을 거뒀다.
안전하게 하느라 과감한 행보를 보이는 상대보다 뒤쳐져도, 그런 식으로 따라잡고 결국 이겼다.
일류 선수들도 대규모의 병력끼리 맞붙는 큰 전투에서는 잘못 싸우기도 하는 법인데, 이신은 그런 실수를 한 번도 안 했다.
운 좋아서 계속 잘 싸운 게 아니라, 기세를 보니 앞으로 전투를 100번 더 펼쳐도 계속 이길 것 같았다.
“오늘 막 휴가에서 복귀했는데도 어찌 저럴까요?”
한 코치가 경이에 차서 그렇게 물었다.
왕춘 감독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완벽하기 위해서는 실수를 하지 않도록 계속 연습해서 반복 숙달되어야 하지.”
오늘 랭킹전에서 보여주는 이신의 경기는, 일반인이 보기에는 그냥 평범한 게임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자리에는 전문가들밖에 없었다.
저게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그 진가를 알 수 있었다.
“그냥 완벽한 거야.”
왕춘 감독이 한마디로 요약해 버렸다.
실수가 전혀 없다.
오직 피나는 연습만이 가져다줄 수 있는 티 없는 완벽함.
이신이라는 남자는 이제 막 휴가에서 복귀했음에도 오랫동안 닦아온 내공이 축적되어서 몸이 완벽함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러니 저리 의욕이 없어도 손은 알아서 완벽한 플레이를 하는 것이겠지.’
열정이 다 소진되어 버린 채.
그럼에도 손은 자신이 걸어왔던 경험이 빚어낸 플레이를 자동으로 펼치고 있었다.
“모르겠습니다.”
“무슨 포부가 필요한지 모르겠습니다.”
새 시즌의 포부를 묻는 질문에 이신은 그렇게 답했다.
팬들은 이제 이신이 완전히 의욕이 사라진 게 아니냐고 우려를 표했다.
더 이상 이룰 게 없는 현재진행형의 전설이었다.
부서진 손목을 안고 사라진 1년간 출현한 신흥 강자들도 전부 꺾었다.
마지막 난적이었던 과거의 자기 자신마저 이기고서 이미 이신은 프로게이머로서 완성을 이루었다.
[이미 완성되어 버렸기에 더할 것이 없어졌다.]어느 칼럼에서 이신을 표현한 문구였다.
의욕이 있든 없든 여전히 굉장한 실력을 보여주는 건 다행이었지만, 그래도 감독으로서 걱정되는 건 사실이었다.
의욕 저하가 부진으로 연결되지는 않았고, 계약이 되어 있는 이상 SC스타즈의 선수로서 제 역할을 다 할 것임은 틀림없었다.
그럼에도 심경의 변화를 일으켜 은퇴하겠다고 나서면 SC스타즈의 입장에서는 그걸 저지하기가 난감해진다.
‘나 같아도 지금 은퇴할 거다.’
왕춘 감독은 그렇게 생각했다.
이미 일반적으로는 전성기가 한참 지나가 버린 나이.
더 이룰 것도 없는 업적.
고갈된 의욕.
바로 지금 은퇴하는 것이야말로 여전히 최고인 채로 박수받으며 떠나는 그림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더 우려되는 왕춘 감독이었다.
감독으로서 그렇지만, 순수한 팬으로서도 그랬다. 이신의 아름다운 플레이를 더 보고 싶었다. 팬들도 이 같은 심정일 터였다.
‘누군가가 다시 그의 승부욕을 자극해 주었으면 좋겠는데.’
팀 랭킹전은 계속 진행되었다.
부진의 조짐이 보이는 지우펑은 이신을 상대로 암흑사제를 이용한 기습 전략을 썼다가 사전에 발각당해 막혀 버렸다.
이신은 모든 경우의 수를 다 대비하고 있는데, 암흑 사제처럼 실패하면 뒤가 없는 전략을 시도하다니?
왕춘 감독은 어처구니없는 판단을 한 지우펑을 호되게 질책하고 싶었다.
하지만 워낙 자존심이 강한 지우펑에게는 역효과일 뿐이라 왕춘 감독은 잠자코 있었다.
실컷 놀고 나더니 도리어 실력이 물이 오른 리우도 이신 앞에서는 별수 없었다.
인류가 완벽하게 플레이를 하면 괴물이 죽었다 깨어나도 이길 수 없음을 입증할 뿐이었다.
“쐐기충 동선을 다 예측하고 있어.”
“제대로 견제를 못하고 보병한테 긁히기만 했네.”
“어떻게 저런 디펜스를 펼치는 거야?”
선수들은 그저 감탄할 뿐이었다.
프로들의 눈에는 보병들과 쐐기충들의 움직임 하나하나에 들어간 심리전이 보였다.
그 때문에 리우의 쐐기충들이 이신에게 심리적으로 말려서 움직임을 다 예측당한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렇게 리우도 항복 선언을 하니, 이제 이신에게 남은 상대는 오직 박영호뿐이었다.
박영호도 무패행진을 계속하여서 이제 팀 내 1위를 놓고 이신과 쟁탈전을 벌이게 되었다.
“내 차례네. 와 무슨 에이스 결정전 같아.”
박영호는 이신의 엄청난 기세에도 전혀 겁먹은 눈치가 아니었다.
쪽쪽 빨아먹던 홍삼 팩을 휴지통에 버리더니 부스로 올라갔다.
여유가 넘치는 박영호.
하지만 아무도 박영호가 이신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인공지능마저 이기고 명성이 극에 달한 이신의 존재감은 그 정도였다.
하지만 박영호의 얼굴은 느긋했다.
공식전도 아니니 긴장감을 못 느끼는 것일까.
아니면 이미 2위를 확보했으니 안심한 걸까.
게임이 시작되었다.
맵의 이름은 승부처.
2인용 맵으로, 스타팅 포인트가 1시와 7시에 위치했다.
서로 대각선 위치이기 때문에 거리가 멀어 초반에 승부를 보는 전략이 쓰이지 않는다.
초반 전략은 타이밍이 생명인데, 거리가 멀어서 이동하다가 시간을 다 빼앗기는 것.
때문에 이신도 박영호도 방어를 신경 쓰지 않고 부유하게 출발했다.
* * *
박영호는 기분이 좋지 않았다.
모두가 보고 감탄하는 이신의 오늘 게임이 마음에 안 들었다.
‘어딜 봐서 감탄을 해야 하는 거냐? 너희들이 졸라 못하는 거?’
프로게이머들은 조금이라도 더 시간과 자원을 아끼기 위해 심혈을 기울이는 장인들이다.
왜 그렇게 방망이 깎는 노인이라도 된 양 디테일한 부분에 노력을 기울일까?
조금이라도 더 유리하기 위해서였다.
그 조금의 차이가 승부를 가르기 때문이다.
이신은 오늘 그걸 무시하고 무조건 안전하고 철저하게 가고 있었다.
좀 불리해도 만회할 수 있다는 자신감?
‘자신감 따위가 아니야.’
이신은 상대가 약하더라도 얕보고서 플레이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는 그냥 승부욕을 잃어버린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최상의 플레이를 위하여 무언가 하나는 배제해야 하는 위험을 무릅쓰지 않는 것이다.
아무 생각 없이 습관적으로 하기 위한 선택.
영혼은 나간 채, 손만 움직이는 껍데기였다.
박영호는 그게 진심으로 화가 났다.
‘정신이 번쩍 들게 해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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