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Of the Unique Lineage RAW novel - Chapter 13
11. 장원 급제
시험관은 자신의 머리를 한 번 쓱 쓰다듬었다.
털이 없는 반들반들한 두피가 느껴졌다.
반대편 손에는 시험지 마지막 장이 펼쳐져 있었다.
제일 먼저 나간, 이 중요한 시험에 사인펜 하나 챙겨오지 않은 놈이다.
그는 마지막 문제의 답을 바라봤다.
문제 의도는 뻔하다.
불멸은 안전불감증이 심하다.
어지간하면 죽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위험도가 높은 무기, 상황을 머릿속에 때려 넣어야 했다.
그걸 위한 문제다.
네 몸에 위해를 끼치는 걸 얼마나 알고 있는가.
이걸 묻는 거다.
그런데 먼저 나간 친구의 답이 가관이었다.
질식, 냉동, 연소, 분쇄.
전부 다 위험하다.
기도가 막혀, 정신을 잃는 것도.
액체 질소 따위로 얼리는 것도.
불에 태워지면 쇼크 이전에 전신의 화상으로 제대로 된 활동이 불가하다는 것도.
분쇄기에 들어가 갈리면 과연 재생될까?
불멸을 죽이는 방법은 서술하자면 한도 끝도 없다.
고로 이 문제의 답은 없다.
덧붙이자면, 불멸은 위험을 더 선명하게 인지해야 한다.
이 몸은 재생이 가능한 몸이지, 죽지 않는 몸이 아니다.
이걸 인지한다면 불멸을 죽이는 방법을 전부 외우지 않아도 위험은 줄 것이다.
과격하고 파격적이다.
문제의 해답이 아니라 그 의도 너머를 짚어 말한다.
‘이놈 봐라.’
인간과 혼혈이라고 들었는데.
이 정도면 육체 능력은 떨어져도 머리는 쓸 만할 듯싶다.
아니, 오히려 인간과 혼혈이라 이렇게까지 생각했을지도 모르지.
본래 혼혈은 힘이 옅어지기 마련이니까.
시험관은 깊게 오해했다.
이쪽은 혼혈도 그냥 혼혈이 아니었다.
그는 시험지를 도로 덮어 앞장을 펼쳤다.
불멸자는 오감 외에 육감과 직감도 발달한다.
그는 그런 불멸자 중에서도 직감이 특히 뛰어났다.
쓱.
시험지 겉면 점수를 매긴다. 그가 마지막으로 할 일이다.
쉽게 말하자면 인상 점수다.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주목받는 사람은 있기 마련이다.
그 첫인상이 주는 강렬함, 자신의 직감에 걸려든 이에게 주는 점수다 숫자 십을 단숨에 적었다.
10점 만점이다.
인상만큼은 시험장에서 제일이었다.
제일 먼저 시험장에 나간 것과 처음부터 끝까지 여유를 잃지 않은 것.
다양한 이유와 말로 할 수 없는 직감의 영역에서 시험관은 광익의 인상이 깊게 남았음을 인정했다.
* * *
시험 결과는 보름 뒤에 나왔다.
딱히 애타게 기다리진 않았기에 메신저로 알림이 온 걸 보고도 놀라지 않았다.
음, 근데 이 결과는 좀.
식탁에 앉아 폰을 보다가 고개를 들었다.
아버지는 퇴근하기 전이었고, 어머니는 저녁 준비를 위해 앞치마를 두르고 통통통 도마를 두르시는 중이었다.
일정 간격으로 잘리는 감자를 보며 엄마의 칼질을 감상했다.
언제 봐도 기가 막힌 수준의 칼질이다.
하긴, 변신족의 육체다.
몸 쓰는 일은 무엇이든 금세 익혀 버리는 사기적인 피지컬을 지녔다 이거다.
이 말은 머리 쓰는 일은 피지컬의 도움을 받을 수 없다는 것과 같았다.
고로 이 시험 결과는 순수한 내 실력이리라.
“어머니.”
“응?”
“그, 시험 결과가 나왔는데요.”
통통통.
“떨어졌니?”
설마요.
“소자, 과거에 떡 하니 급제하였나이다.”
뚝.
칼질을 멈춘 어머니가 날 바라보신다.
“다행이네.”
“그냥 급제도 아니옵니다. 어마마마.”
어머니가 그럼? 하고 눈으로 물었다.
내 입으로 말하기 뭐해, 스마트폰 액정을 어머니 눈앞에 들이밀었다.
“……장원 급제네?”
위트 넘치시네.
말 그대로였다.
보통 합격, 불합격만 알려 줄 텐데, 내 화면에는 당당히 여의도 시험장 수석 합격이란 말이 붙어 있었다.
몇 명이나 뽑는지는 모르겠다만, 하여간 내가 그중 제일이다.
절로 콧대가 올라갔다.
성형이 무슨 필요가 있나, 이리 콧대가 알아서 올라가는데.
“에헴!”
“잠깐.”
어머니가 식사 준비를 멈추고 전화를 들었다.
“연호 씨.”
곧장 아버지에게 전화다.
“수석 합격이래요. 네, 맞아요. 아무렴요. 호호, 저도요. 네, 소고기 투 뿔 한우로.”
말만 들어도 알 수 있다. 한우 파티였다.
우리 가족은 전부 대식가다. 한우로 배를 채우면 가계가 파탄이 난다.
그런데 그 한우 파티를 하시겠단다.
“소자, 오늘 벨트를 풀어도 되겠나이까?”
“고무줄 바지 입고 오렴.”
곧 아버지가 양손 가득 고기를 들고 오셨다.
묵직함을 넘어섰다.
최소 10kg 이상이다.
“다녀오셨어요?”
말하며 고기를 받아들자 아버지가 흐뭇한 얼굴로 말했다.
“나보다 고기가 반가운 것 같다.”
“당연히 아버지가 더 반갑습니다.”
말만 그리하고 고기만 챙겼다.
식탁 가운데 전기 그릴을 꺼내고 세팅 후, 파채에 어머니 특제 소스를 뿌렸다.
아, 향긋한 냄새, 죽여준다.
파채 하나를 입에 넣고 씹었다.
매콤 달콤 새콤, 삼콤의 맛이다.
“고기랑 같이 먹어. 두 배는 맛있다.”
아버지의 조언을 귀담아들었다.
다 맞는 말이었다.
“네이.”
흰 쌀밥과 중간에 느끼함을 잡아줄 반으로 자른 방울토마토까지 세팅된 뒤.
어머니가 집게로 고기 한 점 꺼냈다.
빨간 살 사이로 하얀 마블링이 예술 작품처럼 보였다.
“하악, 예뻐.”
내가 그걸 보고 말하자, 아버지가 침 흘리지 말라고 나무라셨다.
안 흘립니다. 변신족 육체와 불멸자 육체를 가진 나다.
침은 무슨.
“후룹.”
방심했다. 흐를 뻔한 침을 회수할 때다. 어머니가 달궈진 불판 위에 투 뿔 한우 님을 올렸다.
치이이이이익!
흰 연기를 시작으로 고기 굽는 냄새가 단숨에 집 안 곳곳으로 퍼진다.
예민한 감각을 가진 셋 모두의 코가 벌름거렸다.
어머니의 손이 빨라졌다.
촵촵.
소금을 뿌리고 석석 가위로 투 뿔 한우 님을 보기 좋게 자른다.
그다음은 뭐다?
먹는 일만 남았다. 첫 번째 한 점은 히말라야 핑크 솔트만 콕 찍어서 입에 넣었다.
으적.
한 번 씹은 순간, 내 입안에서 마법이 일어났다. 마블링이 만든 고소한 지방과 제대로 익은 고기 육질이 만났다.
두 번 씹으니 입안에서 고기가 사라졌다.
어? 어디 갔지?
녹았다. 살살 녹는 맛이다.
치이이익!
어머니의 손이 빨라졌다.
“우리 여보도 먹으면서.”
오늘도 어김없이 아버지와 어머니는 염장을 지르셨다.
아버지가 구운 고기 한 점을 어머니 입에 넣어 주신다.
“괜찮아요.”
어머니는 그리 말하면서도 잘 받아 드셨다.
난 젓가락을 쉴 새 없이 놀렸다.
우적, 으적.
두 번째는 파채만 얹었다.
매콤 달콤새콤 삼콤 사이로 고기 지방이 퍼진다.
크으으으으.
바로 이 맛 아닙니까?
누군가가 나에게 넌 왜 사냐 묻는다면 난 투 뿔 한우 등심을 먹기 위해 산다고 말하리.
세 번째는 깻잎에 겨자 소스를 찍었다.
맛있어, 맛있어! 최고야! 소가 최고야!
정신없이 먹었다. 위장이 확 늘어나는 느낌이 들었을 때, 어머니가 불판 위로 밥을 올렸다.
썰어 둔 깍두기와 쌈장 한 스푼을 섞고 볶는다.
타닥타닥타닥.
한국인의 음식은 무얼 먹던 볶음밥으로 완성된다.
또 먹었다. 무지막지하게 먹고 나니 아무것도 하기 싫어졌다.
의자에 축 늘어져 행복을 느꼈다.
“합격할 줄 알았다.”
그제야 아버지가 축하 인사를 건넸다.
셋 다 고기에 너무 정신이 팔렸었네.
“네, 누구 아들인데요.”
“우리 아들이지.”
어머니가 말하고 아버지가 곧바로 답한다.
두 분이 또 이상한 눈빛을 교환하시네.
“문제가 생각보다 쉬웠어요.”
그게 진짜, 제가 받은 과외 수업이 전부 정답이더라고요.
한때 이상한 아저씨에서 자연인, 막대기 선생으로 부른 그 선생이 생각보다 능력자란 소리였다.
“결과 나왔으니 곧 면접 있을 거다.”
“네.”
큰 기업은 1차, 2차, 3차까지 시험이 있다.
그래도 여긴 2차 면접이 끝이다.
보통 공무원을 채용할 때보다 더 심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근데 무엇을 위해 불멸자를 이리 뽑는 걸까.
“어디 부서로 가는데요?”
어머니가 물었고 아버지가 그릴 위를 키친타월로 닦으며 답했다.
“행정 안전부 휘하 공기업에서 시작할걸? 나도 정확히는 모르지.”
“그래요?”
난 아버지가 대답을 회피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어머니는 그냥 그렇구나 하고 넘어갔다.
치우는 것도 일이었다. 식탁 위가 고기 기름 때문에 번들거렸다.
세제를 희석한 물을 분무기로 뿌려 다섯 번이나 닦자, 그제야 뽀득뽀득해졌다.
아, 기분 좋다.
다 먹고 소파에 앉아 메시지를 다시 확인했다.
수석 합격,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은걸.
그 밑에 면접 일정이 나와 있었다.
면접 장소는 이전과 같았다.
2차 면접이라.
이건 꼼수가 없겠지? 아버지 눈치를 보니 알려 줄 생각이 조금도 없어 보였다.
“난 모른다니까. 보통 면접은 인성을 보기 마련이니까. 대답만 똑바로 하면 돼.”
이런 말만 하실 뿐이다.
뭐, 어쩔 수 없지.
이제부터는 진검승부다. 그리 먹고 자고 면접 날까지 대기업 면접 썰 같은 걸 검색했다.
“잘하고 와.”
어머니 배웅을 받고 정장을 입었다. 셔츠가 조금 작게 느껴졌다.
작년에 산 건데 그동안 훈련한다고 몸을 굴렸더니, 근육 크기가 커진 듯싶었다.
넥타이까지 차고 구두까지 신고 나서니, 지금 당장 직장인이 된 기분이다.
1층 엘리베이터 문에 비치는 날 보니, 꽤 괜찮았다.
애초부터 외모도 나쁘지 않고 키도 185cm다. 어깨도 넓고 그러다 보니 옷 빨 하나는 기가 막히게 받았다.
아버지만큼 흰 피부는 아니지만, 이 정도면 뭐, 지금 당장 연예계로 진출해도 되지, 암.
“아우, 재수 없어. 지금 거울 보면서 자뻑한 거야?”
홱 하고 고개를 돌리자, 혜민이가 보였다.
이제 막 동이 트는 시점이었다. 내 면접 시간은 아침이었다.
“넌 여기서 잠복하냐?”
“잠복은 무슨 지나는 길에 보인 거 가지고.”
“바쁘다.”
말하고 휙 나가자, 뒤에서 혜민이가 말했다.
“잘 어울린다.”
그래, 이건 인정해야겠지.
난 옷빨이 죽여줬다.
면접장에 도착해서 이전과 같이 안내받아 올라갔다.
나 말고도 기다리는 사람이 몇 더 보였다.
그중에 익숙한 얼굴도 있었다.
시험장에 내 왼쪽에 앉았던 귀공자다. 생긴 건 어느 나라 왕자라고 해도 그러려니 할 것 같았다.
왕자라면 저 정도는 생겨줘야 할 것 같은 그런 잘생김이다.
옆에 앉지 말자.
“48번 유광익.”
곧 내 이름이 호명되어 들어갔다.
면접관은 둘이었다.
한 명은 붉은 머리칼을 가진 남자다. 진짜 타는 듯한 빨간 머리다.
취향 한번 고약하다.
얼굴이 새하얗고 머리는 새빨간 마른 면접관, 별명은 분명 양초일 거다.
내 왼쪽 새끼손톱을 걸 수 있다.
오른쪽은 구면이었다.
그 엘리베이터 앞에 있던 단발머리 누나다.
섹시미는 부족하지만, 귀염 지수는 상당히 높은 그 누나.
눈빛으로만 놀라자.
“구면이죠?”
먼저 아는 척을 해 왔다.
나무로 만든 긴 테이블 앞에 덩그러니 놓인 의자가 보였다.
내 자리였다.
거기에 앉자, 둘이 질문을 시작했다.
“지원 동기를 물어봐도 될까요?”
단발머리 누나다.
아버지가 시켜서요 라고 답하면 바로 떨어지겠지?
“어려운 시험이라고 들었고 제가 어디까지 갈 수 있나 확인해 보고 싶었던 게 첫째, 둘째는 제 꿈을 이루기 위해섭니다.”
“꿈?”
“나라를 위해, 사람들을 위해 싸우고 싶거든요.”
적당한 질문과 답이 오갔다.
그리 튀지도 않고 그렇다고 엉망으로 답한 것도 없는 것 같았다.
양초도 간간이 뭘 물었는데 뜬금없는 질문이 많았다.
“동료를 위해 희생하는 건 어디까지인가?”
이런 질문이다.
난 이리 답했다.
“모릅니다. 그 상황에 맞춰 달라질 겁니다.”
“희생할 생각이 없다는 건가?”
“없는 게 아니라 효율적인 방법을 찾겠다는 겁니다.”
꽤 도발적이었으려나.
이외에도.
“어머니와 애인이 물에 빠졌다. 누굴 먼저 구할 것인가?”
“둘 다 한 번에 구할 것 같은데요? 제가 수영 좀 합니다.”
“단 한 발의 총알이 남았다. 하지만 쏴야 할 타깃은 두 개다.”
“하나는 쏘고 하나는 권총을 던져서 잡겠습니다.”
이 대답에는 단발머리가 참지 못하고 고개를 푹 숙인 채, 어깨를 들썩거렸다.
아무래도 이 질문에 이리 답한 건 내가 처음인 듯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