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Of the Unique Lineage RAW novel - Chapter 212
209. 블랙홀이 생각한다
‘X됐다.’
땅이 무너지는 순간, 딱 그 한마디가 떠올랐다.
그와 동시에 머릿속으로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는 기억들.
엄마, 내가 호강시켜 줄게.
라고 말하며 당당히 처음 출근하던 날.
사이오닉 협회에 입사했을 때, 어머니가 흘린 눈물.
위험한 일 하지 말고, 나서지 말라는 어머니.
어릴 적 돌아가신 아버지를 대신하여 홀로 자신을 키운 어머니.
초능 각성 후, 그 능력을 갈고닦아 협회에 입사한 이후, 지금까지.
스친 기억의 끝, 협회 대원은 마지막을 예감하며 후회했다.
‘그거 사 줄걸.’
어머니가 김치 냉장고를 바꾸고 싶다고 했는데.
너무 비쌌다. 며칠만 생각하고 같이 가서 고를 작정이었는데.
그거라도 바꿔 주고 올걸.
‘김치 냉장고.’
주마등의 끝, 빨간 레트로 스타일의 김치 냉장고가 머릿속에 가득했다.
“저거 예쁘다. 아들.”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팔다리를 묶은 촉수가 제 몸을 밑으로 쭉 당겼다.
그리 눈을 감으려는 순간이다.
“낙법.”
짧게 들린 한마디와 함께.
후웅.
바람을 가르는 파공음.
붕.
그와 함께 몸이 붕 뜨는 부유감을 느꼈다.
반사적으로 버둥거렸다.
몸에 묶인 촉수가 엉망으로 엉켰다.
가까스로 다리와 팔의 자유를 찾은 초능 특수종은 다가오는 바닥을 보며 몸을 공처럼 말았다.
퍽.
무릎과 어깨가 땅에 부딪혔지만, 머리는 지켰다.
그렇게 땅을 구른 초능 특수종은 몸에 붙은 촉수를 뗄 엄두도 못 낸 체 고개를 들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당장은 가늠이 안 됐다.
그런 그의 눈에 등판 하나가 보였다.
“아저씨, 친구 좀 받아요.”
그리고 들려오는 말 한마디.
머리 위로 저격수 동료 하나가 뚝 떨어졌다.
엉킨 촉수를 풀지 못한 채 떨어진다.
그걸 보며 공주님 안기로 동료를 받아 들었다.
“후아, 후아, 시발, 시발.”
동료는 호흡을 끊어 삼키며 연신 욕설을 뱉는 중이었다.
“누구세요?”
동료를 안은 채, 앞에 있던 등판을 향해 황당함을 담아 물으니.
“유광익이요.”
대수롭지 않게 답한 특수종은 곧바로 사라졌다.
아니, 정확히는 땅을 차더니 날았다.
저건 난다고 표현해야 맞았다.
땅을 차더니, 건물 위에서 위로 뛰었다.
스파이더맨 친구라고 해도 좋을 법했다.
그 뒤, 무너진 건물 근처로 뚝 떨어지곤 사람을 구하고, 땅을 후려쳐 인베이더를 죽인다.
그걸 본 초능 특수종은 제 동료를 땅에 떨어뜨렸다.
퍽- 소리가 들렸다.
정작 떨어진 동료는 신음조차 흘리지 않았다.
그도 놀라긴 마찬가지였다.
“맞지?”
바닥에 떨어진 동료가 물었다.
주어가 빠졌지만, 뭘 말하는지 알 것 같기에 입을 열어 발음했다.
“……세최특.”
멍한 시선으로 그 등을 쫓으며 초능 특수종이 중얼거렸다.
‘세계 최강 특수종’이란 별명을 지닌 프리랜서.
영상에서 봤고 소문으로 들었다.
그 작자가 훨훨 날아다니며 무쌍을 찍는 모습이 두 사람의 동공에 남았다.
* * *
“후위 특공, 어, 음.”
군부대 장성이 중얼거리다 말을 멈췄다.
습격당했다는 보고를 듣자마자 이어서 들려온 보고가 말문을 멎게 했다.
“웬 변신족 하나가 붕붕 날아다니면서 다 죽인답니다.”
부관이 말했다.
“혼자?”
장성이 되물었다.
그게 말이 되나?
그의 얼굴에 의아함이 가득했다.
“네.”
“그게 누군데?”
“후위 쪽 혼혈 불멸자가, 세최특이라고 보고했습니다.”
세최특, 유광익.
장성도 그 이름을 알았다.
적당히 거품이 낀 이름이라고 생각했는데.
이건 뭔, 이제까지 한 일이 오히려 과소평가된 수준이다.
“사일런스 웜이 한 스무 마리는 된다고 하던데?”
“네, 웜을 죽이며 사람도 구하고 있어서…….”
“있어서?”
“현재 사망자가 하나도 없습니다.”
후위에 예상치 못한 습격을 받았다.
기겁할 만큼 놀랐다는 말이 부족하지 않을 터였다.
사상자가 꽤 나오리라 예상했다.
그거로 인해 터질 문제가 수십 개라고 생각했고.
당장 진형부터 변경해야 했는데.
그랬는데.
군대 지휘관은 잠깐 머리가 멈췄다.
상식 밖의 일이 두 번 연속으로 일어나서 그런지, 머리가 돌아가는 걸 멈췄다.
그는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린 뒤, 말했다.
“알았다.”
할 말이 없었다.
일이 터졌는데, 알아서 해결했단다.
인베이더가 있었는데, 없어졌다.
위기가 있었는데, 없어졌다.
그게 전부 특수종 한 명이 한 일이란다.
‘기도 안 차네.’
지금 당장 중요한 일은 그게 아니었다.
그는 부관을 향해 다음 명령을 뱉었다.
“지휘관 전부 호출, 긴급회의다.”
후위를 습격당했다는 사실. 딱히 불멸자도 아니지만, 그는 이게 보통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 * *
유광익의 활약은 중봉의 귀에도 들어갔다.
얼굴에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그래도 겉으로 티를 내진 않을 터였다.
중봉은 머리를 휘휘 돌리며 광익의 활약상을 잊었다.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불멸자의 감이 그리 말했다.
불멸특수대 저격팀이 습격을 받았다.
그 소식을 듣자마자, 중봉은 순전히 육감을 따라 습격 포인트를 확인했다.
전부 주요 포인트였다.
저격수가 있을 법한 위치.
습격 포인트를 눈으로 훑은 이중봉은 블랙홀을 바라봤다.
블랙홀, 누가 이름 붙였는지 잘도 붙였다.
어스 블랙홀, 지구에서 열린 검은 구멍.
그 구멍이 보인다.
다른 말로는 게이트, 문이라고도 부르는 것.
저 문 너머에서 인간을 침략하는 침략자, 인베이더 무리가 튀어나온다.
그런데, 이제까지 이런 일이 있었던가?
이중봉은 후위가 습격당했다는 걸 듣자마자 이상하다고 느꼈다.
그건 불멸자의 육감 때문이기도 했고, 오랜 시간 전장에서 살아와 갈고닦은 경험에서 비롯된 감이기도 했다.
왜 후위를 습격하는 걸 알아채지 못했지?
판독기가 오류를 일으켰나?
이중봉은 홀로 되묻고 답을 구했다.
판독기가 문을 판독하고 탐지한 타이밍.
‘그 타이밍에 맞춰 지하에도 문을 열었다?’
그럼 판독기가 알아채지 못할 수도 있고, 현 상황이 벌어진 이유를 설명할 수도 있다.
두 개의 문이라면 가능한 일이다.
이 말이 시사하는 바는 무엇인가?
‘블랙홀이 전략을 구상했다?’
이게 말이 되나?
안 된다. 하지만 특수종 세상에서는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지 않나.
지금 후위를 습격한 건 사일런스 웜.
위험한 인베이더이긴 하지만, 피해가 예상되는 한 수이긴 하지만.
‘감당 못 할 건 아니지.’
그럼 이게 전략이라면?
만약 이중봉 자신이 블랙홀을 조종할 수 있다면 후위에 전력을 쏟아붓지 않을 것이다.
그보다는 시선을 돌린 뒤.
꽈-앙.
폭음이 터졌다.
이중봉의 시선도 절로 돌아갔다. 포병대가 있는 곳이다.
폭음과 함께 화염이 치솟았다.
직사포대가 있는 방향이었다. 전신에 불이 붙은 사람 하나가 끔찍한 비명을 지르며 달리다가 쓰러지는 게 보였다.
불멸자가 아니라면 죽을 만한 부상이다.
무전기를 통해 새된 목소리가 날아들었다.
“포병대 습격! 넘버 17, 엘프입니다! 개체 수 최소 쉰 이상, 전원 특이종으로 추정!”
포대를 노리겠지.
자신이라면 그리할 것이다. 즉, 이 일의 전반에는 이런 전제를 깔아야 할 터였다.
“블랙홀이 생각한다.”
중봉이 중얼거렸다.
긴급회의를 한다고 모인 이들을 향해, 안으로 들어서며 한 말이다.
그 말에 모두의 시선이 모였다.
다들 한가락 하는 인물들이다.
하지만 이중봉만큼은 아니다.
팬텀, 1세대 영웅에 비견하는 불멸자.
“후위가 아니라 전위에 일이 터질 것 같은데.”
중봉이 중얼거렸다.
순전히 감에 의한 말이지만, 그 또한 무시할 수 없었다.
불멸자의 육감에 기반한 말이다.
느낌, 이만큼 부정확한 것도 없겠지만, 불멸자의 느낌은 다른 법이었다.
그 말이 맞았다.
후위에서 벌어진 특수종의 활약에 놀란 사이 일어난 일.
전면에 게이트 안에서 자이언트보다 머리 두 개는 더 큰 개체가 걸어 나오는 게 보였다.
특이종.
모두의 머릿속에 떠오른 말이었다.
특이종이라고 해서 다 같은 특이종이 아니었다.
어떤 특이종은 의미 없는 능력을 뿜어 내기도 했으니.
“저런 건 처음 보는데요.”
PWAT 지휘관으로 온 이지혜가 중얼거렸다.
그녀는 막 광익의 활약을 듣고 볼을 붉히며 기뻐하던 참이었다.
과연 유광익이라고.
미래의 남편으로 삼을 만하다는 잡생각도 조금 하는 참이었는데.
그 기쁨을 다 보일 틈도 없었다.
게이트 너머에서, 머리 세 개 달린 괴수가 나오는 중이었으니까.
양손에 든 커다란 몽둥이가 인상적이었다.
머리 셋에 팔 넷.
두두두두두.
전면에 자리 잡은 기관총 사수가 탄환을 쏟아 냈다.
투두두두둥.
놈의 가죽 위로 불똥이 튀기 시작했다. 사방에 튀는 불티가 마치 그라인더로 쇳덩이를 자르는 것 같았다.
그러나 탄환은 전혀 타격을 주지 못했다.
“포대.”
곡사포대의 탄이 머리 위를 난다.
뻥, 뻥, 꽈르르릉.
인간이 만든 무기가 뇌성벽력을 내리친다.
꽈앙! 꽈앙!
폭음과 함께 놈의 머리 위로 탄이 떨어졌다. 매캐한 향을 풍기는 연기와 먼지가 훌쩍 피어올랐다.
박살 난 건물 사이, 연기를 헤치며 두툼한 녹색 손가락이 보였다.
“넘버링 16, 오거 특이종, 트리플 헤드 오우거, 화기 무용.”
깔끔하게 중봉이 현 상황을 정리했다.
가끔 있었다.
인베이더 중에 인간의 화력을 우습게 보는 놈들.
피부의 강도만으로 탄환을 무력화하고 포탄까지 이겨 내는 놈.
포탄에 맞은 놈이 기우뚱하긴 했다.
찔끔이지만, 머리통에서 피를 흘리기도 했고.
죽을 정도의 상처가 되려면, 저 상태로 포탄을 수백 발은 더 맞아야 의미가 있을 터였다.
“계속 쏴!”
군대 지휘관이 무전기에 대고 외쳤다.
2차 포성이 울리기 전이다.
“기습입니다! 엘프!”
곡사포대도 습격을 받았다.
이중봉은 확신했다.
저 블랙홀은 지금 전략을 구상해서 쓴다고.
그러니까 후위를 보내 시선을 끌고.
엘프 특공대를 보내 포대 마비.
이후 전면을 뒤집을 특이종을 보낸 거다.
‘한 방 먹었군.’
한 대 맞았다고 그로기 상태가 된 건 아니었다.
“화랑, 너희 애들 좀 있지?”
구면인 상대다.
그 말에 화랑 팀 지휘관, 2m가 넘는 키에 눈이 좌우로 쭉 찢어진 담당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불멸보단 우리가 낫겠지.”
“웃기시네.”
“이게 웃긴가? 웃기려고 한 말은 아닌데.”
전통적으로 불멸과 변신은 오랜 라이벌 관계였다.
특히, 불멸특수대와 변신특수대 화랑팀은 더 그렇고.
이중봉과 현 화랑 팀의 지휘관으로 온 김사온은 더 그랬다.
한쪽은 팬텀으로 이름 날린 불멸자.
다른 한쪽은 대기업의 지붕 아래에서 이름을 감춘 채 살아온 실력자다.
둘은 시선을 한 번 마주치곤 앞으로 나섰다.
“협회랑 군대에서 이후 나올 웨이브 담당해 주시고.”
중봉은 답도 듣지 않은 채, 말만 남기고 나섰다.
저 앞에 나온 특이종은 불멸특수대와 화랑에서 맡겠다는 말이었다.
“게이트에서도 웨이브가 진행 중이에요. 포대가 없어도 일단 막긴 해야 하니까.”
이지혜가 말하며 협회 쪽에 눈짓했다.
협회 담당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누구 하나 할 것 없이 발에 땀 나게 뛸 시간이었다.
휴즈 게이트는 이제 시작이었으니까.
* * *
유연호는 피닉스팀 중 딱 셋만 데려왔다.
사석에서 자신을 형이라고 부르는 친구 하나, 오빠라고 부르는 친구 하나.
마지막으로 자기보다 연장자 하나.
그 셋을 데리고 대기하면서 유연호는 생각에 잠겼다.
‘광익아.’
이런 전장에 아들과 같이 서는 걸 꿈꾼 적은 없다.
하지만 아들이 바라기에 말릴 수도 없었다.
‘슬혜야.’
아내 걱정이 반, 아들 걱정이 반.
‘마리야.’
새로이 얻은 딸의 걱정이 그 틈을 파고들었다.
아내가 괜찮다고 했다.
이제 걱정의 반은 접어 둬도 된다고.
아니나 다를까.
‘역시 내 아들.’
후위에서 벌어진 일을 듣자마자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
“아드님이죠?”
여자 팀원이 물었고, 유연호는 아무렇지 않은 척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남자 팀원이 물었다.
“그냥 뭐.”
겸손을 보였다.
이번에는 연장자 팀원이다.
“입꼬리 올라가네, 팀장.”
“헬멧 썼는데 뭐가 보인다고 그럽니까.”
“안 봐도 보여.”
픽, 유연호는 웃었다.
그래. 걱정은 잠시 접어 두자.
아들은 다 컸다.
제 몫을 할 터였다.
그나마 그 위험을 줄여 주려면, 자기가 이곳에 온 이유를 실현하면 될 것이다.
그러니까 특이종의 제압.
그리 대기하던 중.
유연호는 전장 전체를 살피던 중, 엘프 습격이 일어나자마자 움직였다.
“이게 우리 전문 분야는 아니지 않습니까, 팀장님?”
내달리며 남자 팀원이 물었다.
“그래서?”
연호가 되물었다. 날이 선 어투였다.
“너무 좋다고요.”
꼬리를 만 팀원이 엘프 무리가 있는 곳을 발견하자마자 멈췄다.
“키악!”
말이 엘프지, 실제 인간이 상상 속에 그리던 그런 종은 아니다.
그저 인베이더, 그저 괴물일 뿐.
빨간 눈을 가지고 귀가 뾰족하고 몸이 날쌘 괴물.
괴물 셋이 쇠꼬챙이 같은 무기로 팀원을 찌른다.
팀원은 품에 손을 넣었다 빼며 좌우로 방아쇠를 당겼다.
타다다다당.
자동 연사 권총 두 정이 불을 뿜으며 탄을 쏟아 냈다.
전신에 구멍이 난 엘프 세 마리가 바닥에 쓰러졌다.
피가 흠뻑 흘러 바닥을 적시는 걸 보며, 유연호는 말했다.
“십 분.”
그 사이에 해결하자는 거다.
습격한 엘프는 오십.
스파이, 첩보 임무가 주력이지만, 그런 임무 중에도 전투는 일상다반사다.
인베이더를 상대하는 건 오랜만이지만, 문제는 없었다.
팔에 구멍이 난 채, 바닥을 기고 있던 군인 하나가 고개를 들었다.
그와 유연호의 눈이 마주쳤다.
“피닉스팀, 전장 합류한다.”
유연호는 그걸 보며 무전기를 통해 말했다.
* * *
난 마지막 웜을 잡은 뒤에야 허리를 쭉 폈다.
운동 제대로 했다.
“하, 그, 감사합니다.”
뒤에서 내 덕에 목숨을 건진 불멸자가 말했다.
뭔, 머리통 깨진 채로 피를 질질 흘리면서 감사 인사까지 하시나.
“네, 뭐.”
“유광익 맞죠?”
어느새 이렇게 이름이 알려졌을까나.
“네.”
수긍했다.
“고맙습니다. 정말 고마워요.”
옆에 선 다른 여자 혼혈 불멸자도 말했다. 눈에 눈물이 가득하다.
“네, 뭐.”
머쓱해서 손을 대강 흔들어 주고 걸음을 옮겼다.
휴즈 게이트는 아직 열린 채였고, 웨이브는 진행 중이었다.
전방을 향해 걸었다.
머리 셋 달린 괴이한 인베이더가 튀어나오는 것도 보였고.
무전을 통해 포대가 습격당한 것도 알았다.
그리고 난, 웨이브가 진행되는 전면을 향했다.
순전히 육감에 따른 걸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