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Of the Unique Lineage RAW novel - Chapter 214
211. 이제 그만 따라 해도 될 텐데
꽝.
기생 라이플의 발사음이 귀를 때린다.
난 오감을 활용해 다음 적을 찾았다.
스코프에 눈을 대고, 육감을 좇아 총구를 돌린다.
다음 적은 근육질 엘프였다.
날쌘 몸과 움직임을 자랑으로 삼는 넘버 17 인베이더 엘프의 이두박근은 어지간한 보디빌더 저리가라였다.
그럼에도 빨랐다.
근력은 속도에 비례하는 법이라니까.
그 움직임, 동선을 머릿속에 때려 넣고 총구를 돌린다.
확인하고 쏜다. 단순한 동작을 실현한다. 그 단순한 동작 끝에 드롭 불릿이 근육질 엘프의 머리를 터트렸다.
‘드롭 불릿’은 피 한 방울이란 의미로 내가 탄환에 붙인 이름이다.
스코프를 돌린다. 다음 적을 찾는다.
다음은 그레이 하트 리스.
무광 회색으로 랩핑한 인베이더다.
확인하고 쏜다.
상대는 내 사선을 확인하지 못한다. 불길함을 느끼며 막을 엄두도 내지 못했다.
머리가 터진다. 깨진 회색 조각이 위로 튄다. 터진 물감처럼 핏줄기가 허공을 수놓았다.
시야를 돌리며 다시 적을 찾았다.
인간보다 월등한 큰 덩치와 힘이 자랑인 인베이더 자이언트가 보였다.
보통의 자이언트보다 몇 배는 더 컸다.
대부분 인베이더는 약점이 있다.
챔피언 같은 놈이야 가슴 중앙이 약점이지만, 자이언트는 머리다.
머리를 노려 쐈다.
맞추는 게 어렵진 않았다. 조준과 격발이 동시에 이뤄진다.
펑.
스코프 너머 자이언트 머리가 터졌다.
다시 적을 찾는다.
슬라임은 무시했다. 애초에 탄이 안 먹히는 놈이다.
그러자, 몇몇 초능 특수종이나 특수 무기를 가진 이들이 달려들었다.
결빙탄 따위로 잡겠지.
저 슬라임도 특이종으로 보이지만, 괜찮다.
네임드를 본 적 있는데, 그 정도 규모만 아니라면 능력이 어느 정도 먹히는 상대라면, 상대할 만했다.
난 스코프로 다음 적을 찾았고, 쐈다.
이걸 반복했다. 끊임없이.
그렇게 수십 발을 쏘자, 꽉 막힌 변기가 물을 토하듯 쏟아 내던 특이종 숫자가 현저히 줄었다.
하지만 숫자가 줄어드는 대신 질이 더 좋아졌다.
퉁.
이제야 내 탄에 죽지 않는 놈이 생겼다.
드롭 불릿, 탄이 정확히 머리를 맞췄는데도 살아남았다.
뻑- 하는 소리와 함께 목이 옆으로 팩 돌아갔지만, 죽진 않았다.
머리가 터지지도 않았고 목뼈가 부러지지도 않았다.
끝내줄 정도로 유연한 목 근육이다.
녹색 피부의 넘버 12의 오크.
겉모습은 평범한 오크와 다를 바 없었다.
목이 다른 놈들보다 몇 배는 두껍고 머리 위에 생긴 갑각 투구가 더 두꺼워진 걸 빼면.
“저건 뭔데.”
밑에서 들리는 목소리다.
그 목소리와 같은 마음이었다.
저 블랙홀은 인간의 전략에 맞춰 인베이더를 토해 낸다.
처음에는 진형을 무너뜨리는 겹문 현상.
이후에는 웨이브 숫자를 조절해 양보다 질로 전환.
그리고 지금은 더없이 독특한 특이종을 내뱉었다.
“쿠오오오오오!”
나온 오크가 울음을 터트렸다. 심장을 저릿하게 하는 하울링이다.
두근.
절로 심장이 뛰고, 변신족의 피가 달궈졌다.
“후우우우우.”
난 일부러 호흡을 길게 뱉어 혈류 속도를 조절했다.
흥분해서 좋을 때가 있고 아닐 때가 있는데.
지금은 아니다. 그렇게 판단했다.
철컥.
우드드드드드.
기생 라이플, 패러사이티움으로 만든 기어가 다시 완갑 형태로 돌아갔다.
엎드렸던 몸을 일으키자.
“개멋있었습니다.”
밑에서 어리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내려다보자, 신입이 분명한 협회 직원이 보였다.
앳된 얼굴, 상기된 뺨, 장비는 어디서 잃어버렸는지 빈손이었고, 입은 슈트는 가슴팍이 파인 채 곳곳이 찢어져 있었다.
용케도 살아남았구나 싶었다.
패인 가슴팍 옆으로 반쯤 남은 사이오닉 협회를 상징하는 마크가 눈에 들어왔다.
“그래요?”
대강 답하고 완갑을 추스르고 내려갈 참에.
“영광입니다.”
이번에는 경찰이었다. PWAT 소속의 경찰, 아는 얼굴은 아니었다.
상대는 날 아는 눈치였지만.
“같이 싸워서 정말 영광입니다.”
경찰이 재차 말했다.
페이스 가드를 올려 둬서 얼굴이 다 보였다. 입가에 진 주름을 보니 어린 나이는 아닌 것 같은데, 이 양반은 왜 이렇게 또 흥분했나.
이쪽도 상기된 볼이다.
“네, 뭐 영광까지야.”
이번에야말로 말하고 내려올 참이었다.
“최고, 나 박근태, 네가 마음에 쏙 든다.”
변신족이었다. 이쪽은 아예 방탄을 벗고 날 향해 엄지를 치켜세운다. 볼이 빨개지진 않았는데, 눈빛에 열기가 감돈다.
“크흥, 크흥.”
재차 콧김을 뿜어 내며 제가 흥분했다는 걸 숨기지 않는 눈치였다.
이 작자만 그런 건 아니었다.
협회 직원 옆의 다른 협회 직원도 앳된 직원과 비슷했고.
경찰도 비슷했다.
그리고 변신족도 마찬가지.
한 명이 흥분하고 끝이 아니라, 그 곁에 있는 이들의 얼굴에도 가시적인 흥분감이 보였다.
눈에 훤히 보일 정도로 날 향한 시선이 뜨거웠다.
엉거주춤 일어난 내 눈에 불멸특수대 복장의 대원도 보였다.
아는 얼굴이었다.
불멸특수대 재직 당시 동기였던, 1조 문신남이었던, 나에게 넥광익이란 별명을 붙여 준 친구다.
“덕분에 살았다.”
방탄 헬멧은 어쩌다가 잃어버렸는지, 얼굴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그 덕분에 목 언저리에 진득한 핏자국이 보였다. 상처가 아직 재생 중인 듯했다.
말한 그가 손을 들며, 말했다.
불멸자답게 조용하고 나직하지만, 힘 있는 목소리로.
“세최특.”
낯부끄러운 별명이다.
나만 그렇게 생각했는지.
차 주변에 모인 수백의 특수종이 외쳤다.
“세최특!”
“세최특!”
“세최에에에트으으으윽!”
뭐야, 왜 이래.
난 몰랐다.
이들이 왜 이러는지.
하물며 지금 싸움이 끝났나?
아닌데, 더 싸워야 하는데.
그럼에도.
환호가 전신을 울린다. 심장이 뛴다. 소름이 돋는다. 그 모든 과정 끝에 난 뭐라 말할 수도 없어서 그저 손을 들어 화답할 수밖에 없었다.
“아, 네.”
당황스러웠다.
* * *
도안결은 남은 화랑 팀을 이끌고 광익의 탄이 닿지 않는 곳의 특이종을 잡아 죽이는 중이었다.
근접전 최강 특수종이라는 변신족 답게.
그중에서도 최강을 논하는 화랑이라는 팀답게 그리 싸우는 중이었다.
“전과가 비교도 안 되겠는데요.”
뒤편, 소진이 말했다.
총원 서른, 안결은 자신의 팀을 이끌어 전과를 냈다.
그렇게 죽인 특이종 숫자가 열하나.
그리고 저기서 차를 쌓아 올려 저격 탑을 만든 광익이 잡은 숫자는 수십 단위를 넘었고.
아니, 백 단위가 넘은 것 같기도 하고.
“이건 경쟁이 아니다.”
안결이 말했다.
그렇게 말하면서도, 안결은 주먹을 꽉 쥐었다.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 저쪽에서 세최특이란 환호를 받는 특수종은 시대를 뛰어넘은 특수종이었고.
세상은 그런 이들을 규격을 벗어난 이들이라 불렀다.
규격 외 특수종.
그만큼 어울리는 말도 없으리라.
“움직인다.”
안결은 시선을 돌리고 할 일을 했다.
남은 특이종을 잡는 게 그가 할 일이었다.
하물며 광익의 저격 액션 이후로 나오는 놈들의 질이 더 높아졌다.
“팀 레드, 블루, 그린, 하나로.”
그래서 열 명씩 쪼개진 팀을 하나로 묶었다.
안결은 자신의 장점을 잘 알았다.
어떤 변신족도 쉬이 갖추지 못한 냉철함, 안결은 그걸 토대로 움직였다.
전장의 흐름을 읽고 팀을 운영했다.
정호남과 정기남도 광익을 봤다.
둘은 막 새로운 특이종 하나를 죽인 참이었다.
“미친 오크 새끼.”
기남이 중얼거렸다.
꽤 고생했다.
결빙탄으로 발을 얼렸더니 힘으로 부수고, 기남의 레이저 커팅 나이프가 한쪽 다리 힘줄을 잘랐는데도 깽깽이 발로 냅다 달려들었다.
뒤편에서 대기하던 이들이 기관단총을 갈겼다.
9mm 탄 수백 발이 박히고 나서야 놈이 누웠다.
비효율적인 싸움이었다.
그래도 그럴 수밖에 없었다. 난전이 됐고 누군가는 이 라인을 지켜야 했다.
“고압 지뢰 깔아.”
호남이 말했다.
주변 인베이더 무리와 특이종 일부를 해결했다.
그럼 이 일대에 제대로 된 진지를 구축할 수 있으리라.
그 와중에 광익이 한 미친 저격 샷을 본 거다.
“따라잡으려고 하지 마라.”
“제 일은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저쪽은 비교 불가야.”
호남의 말을 받아친 기남은 우습게도 저 자리에 선 광익의 곁이 허전하다고 느꼈다.
그 자리를 채울 수 있는 특수종이 몇 안 되리라는 생각도 함께한 뒤, 곧 고개를 털었다.
“역시 우리 광익이.”
바로 옆이다.
김요한이 입을 털었다.
“시끄러워.”
기남은 괜히 핀잔을 주고 고압 지뢰를 깔았다. 땅을 파고 지뢰를 심는다. 깊게 심거나 조심할 필요가 없었다.
전부 원격 조종 형태의 지뢰였다.
홀이 아직 일렁이는 중이었다.
뒤편으로는 불멸특수대와 화랑 팀이 트리플 헤드 오우거를 사냥 중이고.
이들은 아까부터 이쪽으로 인베이더가 넘어가려는 걸 막는 중이었다.
“특수대, 전원 전투 대형.”
이쪽 책임자는 정호남.
이 라인을 막는 게 아니었다면 그도 저 오우거를 잡으러 갔을 터였다.
강슬혜는 아들의 늠름한 모습을 봤다.
잘난 아들이었다.
“싸움 끝난 거 아닌데요. 여러분.”
아들이 말했다.
맞는 말이었다. 아직도 저 앞에서 인베이더가 꾸역꾸역 나오고 있고 특이종도 툭툭 튀어나오는 중이다.
빈도수가 줄었지만, 그만큼 강력한 상대이리라.
“음, 이제 조용히 하고 싸웁시다.”
“그럽시다! 싸웁시다!”
“세최특과 함께!”
“싸우자!”
“이기자!”
“나가자!”
“군가 한 발 장전!”
신난 군인의 외침조차도 이들의 소란을 잦아들게 하지 못했다.
거듭된 환호에 처음에는 머쓱해 하던 아들이 당당히 외쳤다.
“싸우자! 개 같은 인베이더를 죽이자!”
“죽이자!”
“이기자아!”
“이기자아!”
“내가 유광익이다!”
“유광익!”
“내가 세최특이다!”
“세최특!”
“세!”
“세!”
“최!”
“최!”
“특!”
“특!”
아들이 말하는 걸 사람들이 따라 외쳤다.
“……오라버니가 너무 흥분하신 것 같아요.”
자신과 같이 아들의 모습을 감명 깊게 보던 마리다.
그런 마리의 말에 강슬혜도 동의했다.
너무 신난 아들은 춤까지 출 기세였고 강슬혜는 그게 조금, 아주 조금 부끄러웠다.
* * *
내가 말하는 걸 앵무새처럼 따라 하는 사람들을 보자니, 나름 신이 났다.
왼손을 들면 다 같이 왼손을 들고, 오른손을 들면 오른손을 든다.
괜히 권력욕이라는 게 생기는 게 아니구나.
이게 바로 리더십일까?
그럼 하는 김에.
“갑시다.”
말하고 폴짝 뛰어내렸다. 내 주변으로 사람들이 비켜섰다.
난 나이프 한 자루와 4번 타자를 챙기고 앞으로 나섰다.
내 뒤로 어머니와 마리, 그 뒤로 사람들이 우르르 따랐다.
“여기부터 전선 유지하고.”
“하고!”
“지킵시다.”
“지키고!”
“변신족이 선두, 초능이 서포트, 불멸이 사격 오케이?”
“오케이!”
……이제 그만 따라 해도 될 텐데.
춤을 추면 그것도 따라 출 기세다.
“그럼 여기서 지키는 거로.”
“거로!”
“아니, 그만하시고.”
“하시고!”
“그만하라니까.”
“하라니까!”
신나는 건 신나는 건데, 이제 진짜 그만해도 될 것 같은데.
“어머니.”
“어머니!”
“혜민이 아직 안 왔죠?”
“안 왔죠!”
……다 미친 사람들인가.
“왜 저래? 다들.”
때마침이다. 혜민이 말하며 사람들 틈을 비집고 나왔다.
“오빠? 사람들 세뇌했어? 주문도 안 걸렸는데 왜 저래?”
난 답하지 않았다.
모른다고 답하면 또 ‘몰라!’라고 따라 할 것 같았다.
대신 눈으로 물었다.
준비는?
혜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난 전장 상황을 몇 가지 예측했다.
뭐, 지금 상황을 예측한 건 아니지만, 적당히 써먹을 수는 있을 듯했다.
마법사는 주문을 준비하기 위해서 몇 가지 작업이 필요하고, 혜민은 그걸 위해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래서 그리하라고 했고 혜민이 막 돌아온 참이다.
“해 줘.”
속삭였다.
그걸 냉큼 들은 불멸특수대원 하나가 따라 말했다.
“해 줘.”
또 그걸 들은 이들이 연이어 외친다.
“해 줘?”
“해 줘!”
“해 줘!”
특수종은 미친 자들의 세상.
이걸 보니 확실히 그 말이 가슴에 와닿았다.
난 무시한 채로 혜민의 손을 잡았고.
혜민은 차분히 호흡을 고르고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저 앞 홀에서 나오는 인베이더를 향해 특수종 부대, 급조된 세최특 부대가 총구를 들었다.
이 휴즈 게이트는 성수동 내에서 해결해야 했다.
그러니 제일 중요한 건, 전선 유지.
머릿수의 힘이 필요한 시점이기도 했다.
“가자!”
누군가가 외치고.
“세최특과 함께!”
또 누군가가 외친다.
미친 자들이 목소리를 모아, 사기를 드높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