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Of the Unique Lineage RAW novel - Chapter 221
218. 스카우트 대상 1호
재밌었다.
이보다 더한 재미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즐거웠다.
짧은 고민, 그러니까 1초 내외의 고민과 생각이 몸을 통해 실현된다.
난 가상의 이미지를 그리며 주먹을 뻗고, 팔꿈치로 허공을 그었다.
쉐도우 파이팅이었다.
손에 칼을 들었다는 가정을 한다. 이제까지 한 번도 들어 보지 않은 종류의 무기였다.
얇고 가는 세검이다.
어젯밤에 자기 전, 펜싱 강의 영상을 봤다.
그걸 전투에 적용했다.
어설픈 강의였고 어설픈 배움이지만, 그 짧은 영상 하나만으로도 난 그 실체를 파악할 수 있었다.
발끝은 가볍게 칼끝은 무겁게.
치고 빠지고 찌르고 휘두른다.
기술이 섞였다.
칼리 아르니스의 단검술과 주짓수가 복싱의 메커니즘과 단검술이 복합적으로 몸에 익혀 나왔다.
원투 펀치 후 로우킥 콤비네이션.
이후 품에 파고드는 스텝은 팔극권의 그것과 닮았다.
본래라면 효율성이라고는 눈을 씻어 찾아볼 만큼 어설픈 동작이 변신족의 힘과 센스로 하면 그럴듯한 동작이 된다.
그래도 어설펐다.
카메라로 보듯이, 난 내 동작이 객관적으로 보였다.
머릿속에서 멋대로 이미지가 만들어지고 그걸 바꿔 끼운다. 동작에 방해되는 것들을 지우고 새로이 만들었다.
불멸자의 감각과 더불어 변신족의 육체 체득 능력이 불가능을 가능케 했다.
난 방금 한 동작을 반복했다.
똑같이 하진 않았다. 어설픈 부분을 수정했다.
펀치를 내지르는 각도, 움직이는 몸짓, 모든 것이 변한다.
그게 피부로 느껴졌다.
실시간으로 내가 가진 것을 깨부쉈으니, 새로 쌓아야 할 시간이었다.
격투의 기본은 효율성이다.
살인기술이든, 올림픽에 채택되어 스포츠화된 종목이든, 상대를 제압하는 데 중점을 둔다.
태권도의 나래차기나 살인기술의 무언가나 그 행위는 같다.
그걸 소화하는 사람의 차이가 있을 뿐.
툭.
그렇게 네 시간가량의 개인 훈련이 끝났다.
땀이 흠뻑 났다.
이전에 정직이가 흘린 땀만큼이나.
물론 난 기절 따위는 하지 않았다.
적당히 몸이 풀려서 개운할 뿐이었다.
그리 땀을 흘리며 대련장에서 나왔다.
벌써 일주일, 난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단련했다.
훈련하고 또 훈련했다.
하루에 네 시간씩, 더 시간을 쓰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어 안타까울 뿐이었다.
할 일이 뭐가 이리 많은지.
회사를 차려 보니, 사장질이 보통 귀찮은 게 아니었다.
“되게 열심히 하네요.”
“그러게.”
팬더 형과 정직이의 대화가 들렸다.
정작 나보다 더 열심히 훈련해야 할 둘은 근력 운동을 끝내고 바닥에 앉아 있었다.
바로 옆에서 눈을 반짝이는 피가 섞이지 않은 동생도 보였다.
“오라버니.”
마리가 양손에 도끼를 빙글빙글 돌리며 날 보며 반겼다.
훈련 시설은 고작 셋이 쓰기에는 지나치게 좋았다.
그래서 마리도 불렀다.
마리는 이전에 무기 차에서 뺀 도끼가 무척 마음에 들었는지, 그걸 꼭 들고 다녔다.
도통 손에서 떼려고 하질 않았다.
잘 때도 안고 자는 판이었다.
그렇다고 마냥 들고 다니게 할 수 없어서 등 뒤로 교차해서 메는 도끼집을 하나 구해 줬더니, 그걸 멘 채로 밖에 나가려 했었다.
말렸다.
길거리의 사람들이 마리를 보고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는 꼴을 보고 싶진 않았으니까.
살인마가 아니고서야 저런 병기를 품에 들고 다닐까.
나와는 다른 의미로 9시 뉴스에 나올 법한 짓이다.
그래서 차 트렁크를 무기 수납형으로 개조해 줬다.
그 뒤로 마리는 매일 출근 도장을 찍었다.
아침 9시에 와서 저녁 늦게까지 함께했다.
근력 훈련과 더불어 도끼 휘두르는 일에 심취한 듯 보였다.
나만큼이나 열심이었다.
퍽 보기 좋았다.
“후, 살벌하네요.”
침착한 말투다. 정직이가 말하며 마리를 바라봤다.
난 그 눈을 보며 말했다.
“너 불멸자였음, 지금 눈깔 뽑았다.”
“네?”
“내 동생을 그런 눈깔로 보면 죽여 버리겠다는 말이다.”
이 새끼가 돌았나.
어디서 남의 동생을 음흉한 눈으로 봐.
“……함부로 말 걸면 도끼로 머리가 쪼개지겠구나, 어지간하면 거리를 둬야겠다고 생각하면서 본 건데요.”
“말이 많다.”
구구절절, 사연팔이가 특기인 놈이다.
대련을 핑계로 쥐어패고 싶지만, 정직이와의 대련은 이틀 만에 그만뒀다.
정확히는 팬더 형이 말렸다.
“애 잡을 거 아니면 관두자.”
이렇게 말하더라.
난 이해할 수 없었다.
“이게 안 돼? 진짜 안 돼?”
몇 가지 동작을 시범 삼아 보여 주면서 하라고 했을 뿐이다.
그것도 정직이 수준을 생각해서 쉬운 거로.
간단한 콤비네이션부터 할 생각이었다.
몸 움직이는 거야, 기본은 하는 것 같았으니까.
그런데 이걸 보던 팬더 형이 고개를 절레절레 젓더라.
정작 정직이가 시키는 걸 따라오질 못하기도 했고.
아니, 이게 왜 안 돼?
안 어려운데 말이야.
“그러니까 주먹을 넣었다가 빼고 발을 뻗으면 돼.”
“……네?”
내 말에 정직이가 눈만 깜빡였다.
답답했다.
이게 딱, 응? 그냥 하면 되는 건데, 이게 안 돼? 왜 안 돼?
그래서 가르치다가 포기했다.
어쩌겠나.
사람은 다 각자 특기가 있는 법이다.
적어도 누굴 가르치는 건 내 특기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멀쩡히 회사 굴릴 생각은 있는 거냐?”
틈틈이 팬더 형이 내가 할 일을 환기했다.
마냥 개인 훈련으로 시간을 보내서는 안 된다는 거다.
회사 차렸다고 커팅식을 하거나, 시루떡을 쪄서 돌릴 생각은 없었다.
그렇다고 이대로 궁둥이 깔고 시간을 보낼 수도 없었다.
돈을 벌어야 했다.
겸사겸사 회사 설립 이념과 목적도 지키고.
나에게는 신념과 돈이 두 마리 토끼였다.
달리 말하면 행복도 찾을 거고, 목표도 이루겠다는 거다.
두 마리 토끼를 쫓는 건 내 특기다.
그 와중에 돈이 필요한 건 당연했다.
나를 포함해서 여기에 모인 이들은 전부 NS 소속이었다.
그러니까 팬더 형, 정직이 마리까지 내가 월급을 줘야 한다.
다른 사람 돈을 타 먹을 때는 월급날이 참 멀기만 하던데, 반대 입장이 되니 한 달이 뭐 이리 빨리 지나는지.
그동안 모아 둔 돈을 거의 다 썼다.
따로 모아 둔 건 또 쓸 데가 있었고.
길어야 3개월 이내.
팬더 형은 그 이전에 수입이 발생해야 한다고 말했다.
생각한 바가 몇 개 있었다.
물론 그 전에 회사가 그럴듯해지는 게 먼저지만.
팬더 형이 수없이 말하지 않았나.
“PMC, 특수종 세상에서 먹고 살려면 일단 사람부터 모아야지.”
라고.
나도 같은 생각이었다.
맨 파워, 인재가 곧 힘이라는 말이다.
이후 회사 운영에 필요한 것들은 수없이 많았다.
신경 쓸려니, 훈련 시간을 여유 있게 가질 수 없었다.
맨 파워, 그 말에 집중했다.
내가 못 하고 내가 하기 싫으면, 나를 대신할 사람을 찾으면 된다.
사람은 각자 잘하는 일을 하는 게 최고니까.
중고 형을 회사에 넣었다.
“형, 월급 따박따박 받으면서 보너스도 받고 싶지 않아요?”
불멸특수대 급의 복지를 약속했다.
중고 형은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는 김에 스티븐 최도 데려왔다.
“친구! 내 친구!”
“또 뭡니까, 이상한 거 시키려고 하죠?”
마침 이 친구는 프리랜서로 전향한 후였다.
어떤 소속도 아니라는 거다.
“우리 함께하자.”
“거절해도 됩니까?”
“진짜 거절? 내 마음을 그렇게 아프게 할 참이야?”
눈을 크게 뜨고 되물었다. 그럼 상처받은 내 마음은 어떻게 하려고?
“입사하겠습니다.”
스티븐 최의 장점은 눈치가 귀신이라는 거다.
가끔 보면 불멸자에 버금가는 것 같다.
“혹시 불멸 피 섞였어?”
라고 물으니.
“아뇨. 일반인입니다. 저 싸움 못 합니다.”
딱 부러지게 말하더라.
그렇게 잡무 담당 둘을 데려오고 전반적인 운영은 팬더 형한테 맡겼다.
그래도 사람은 부족했다.
전투 가용 인원도, 나 대신 정직이를 가르칠 사람도.
기회가 되면 길에서 굴러다니는 정직이 같은 애들 더 데려오고 싶지만, 그런 특수종은 찾는 게 일이었다.
아, 신주호, 특파라치라는 양반도 데려왔다.
“이건 약속에 어긋나죠.”
라고 항의하기는 했지만.
“일개 시민인 제가 세무 조사를 어떻게 막습니까.”
회사가 탈탈 털리는 걸 막아 주기로 한 거 아니냐고 노려보기에 말했다.
“이렇게 된 거 접고 들어오세요.”
“어딜요?”
“저 회사 차렸습니다.”
“네?”
“경력직으로 오세요. 어차피 정부에서 물고 늘어지면 알잖아요. 답 없는 거.”
올드 포스가 출범하면서 세계 정부 연합의 권력은 더욱 막강해졌다.
정부가 태풍이라면 한국의 작은 회사는 조각배일 뿐.
그걸 신주호도 잘 알았기에.
“……그럽시다.”
울며 겨자 먹기로 넘어왔다. 억울함을 얼굴에 가득 담아 터벅터벅 걷는 걸 보니, 진짜 내가 못 할 일 시킨 것 같은데.
그래도 이래야 맞을 거다.
신주호는 이전에 나한테 정보를 넘겼다.
그러니까 의뢰자를 엿 먹인 거다.
그 의뢰자는 매드 사이언티스트였고, 그 미친 과학자 새끼에게도 친구와 뒷배라는 게 있더라고.
제자라는 작자도 있고.
아버지가 은근히 말해 준 내용이었다.
지금 특파라치 쪽에 나간 세무 조사가 멈추면 이 아재는 죽는다.
보복하려고 어금니를 박박 가는 놈들이 있단다.
그래서 품었다.
능력도 탐났고.
“월급 밀리면 안 됩니다.”
이해가 되는 요구다.
이 아재는 처자식이 있는 몸이었다.
중고 형도 비슷한 말을 하더라고.
스티븐 최는 인센티브를 잘 챙겨 달라고 하던데 말이야.
그렇게 사람을 하나둘 모은 참이다.
훈련 시설이 아닌 위층 사무 공간에 그 셋은 집어넣어 놨고.
오늘의 훈련을 끝낸 나는 외출 준비를 하고 밖으로 나섰다.
중고 형의 말에 따르면, 내가 회사를 차렸다는 게 각 단체 수뇌부 귀에 들어갔다고 한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태도가 변하는 건 없었다.
뭐라고 생각하고 있으려나?
외할아버지는 내가 적당히 노는 거로 생각하는 모양인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원하는 게 있으면 말하라고 했다.
돈을 원하면 돈을, 인맥을 원하면 인맥을 붙여 주겠단다.
알았다고 했다.
필요하면 말하겠다고.
이걸 외할아버지와 직접 통화로 말했는데 내 대답에 껄껄 웃었다.
“당장은 필요 없다는 말이구나.”
“네, 뭐, 이전에 보낸 애들 셋도 안 보내셔도 되고요.”
안결, 소진, 운비는 전부 화랑 소속이다. 딱히 나한테 필요하진 않다.
경찰이나 군대 쪽에서는 내가 몸집을 키운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실제로 경찰 쪽 사람인 지혜 팀장 누나가 회사 통째로 이적할 생각이냐고 묻기도 했다.
그럼 아예 경찰 쪽에 팀을 하나 만들어 주겠다고.
화끈한 제안이었다.
군대는 뭐 소령 싫으면 중령 하라고 하던데.
나 계급에 욕심 없는데 말이야.
이쪽도 마찬가지 제안을 했다.
원하면 회사 통째로 팀을 만들어 줄 건데, 굳이 회사를 만드냐고.
원하면 지금이라도 원하는 인력으로 팀을 꾸려 주겠다고.
유일 여단 휘하, 개별 지휘권을 준다는 말이 뒤따랐다.
다 필요 없어서 곱게 사양했다.
“됐어요. 됐습니다. 아, 됐다고요. 필요 없으니까 전화 그만하시고, 아 군인 싫다고, 군바리 냄새난다고.”
마지막까지 지독하게 연락하던 군 간부에게 따끔하게 한마디 하긴 했다.
아니, 싫다는데 무슨 전화를 하루에 여섯 통씩 하냐고.
무슨 전화가 이리 오는지, 중고 형의 주 업무가 내 스케줄 관리가 되는 판이었다.
각종 방송 출연과 광고 제안이 끊임없이 들어왔는데, 일단은 전부 대기였다.
그게 뭐가 급하다고.
부웅.
운전해서 도착한 곳, 경기도 화성이다.
향수가 느껴졌다.
고작 몇 년 전인데, 벌써 꽤 오래된 일처럼 다가왔다.
주차하고 걸었다.
산길을 터벅터벅 오르자니, 그때의 기억이 새록새록 피어올랐다.
여기서 칼날 구보와 숨 참기 따위를 했었다.
그 무식한 훈련, 자학에 가까운 훈련.
불멸자의 기본기라 이름 붙은 고문.
하지만 멀쩡히 해냈다.
나중에 화림에 입사하고 나서 알았다.
이때 내가 한 훈련은 엘리트 코스라는 걸.
그만큼 강도가 셌다는 걸.
눈이 녹지 않은 산길을 껑충껑충 올라가며 난 기대했다.
발가벗은 자연인의 모습을.
괜히 내가 한때 자연인 작대기 선생이라 부른 게 아니다.
분명 예전처럼 살겠지? 발가벗고 추위에 떨며 모포 따위나 뒤집어쓰고 있을 거다.
“너.”
그리고 보았다.
최신 오리털 패딩을 입은 작대기 선생의 모습을.
날 발견한 선생이 눈을 깜빡였다.
굳이 기척을 감추지 않고 다가갔기에 내가 오는 걸 알았을 거다.
“내가 기대한 모습이랑은 다르네요.”
궁핍하게 있을 줄 알았더니, 어디서 화목 난로도 하나 주워 와서 불도 때고 그 위로 고구마도 굽고 있다.
맛난 냄새가 물씬 풍겼다.
“무슨 일이냐?”
“손님이 왔으면 일단 대접부터 해 주시죠.”
고구마가 노릇노릇하게 익은 걸 보니 군침이 싹 돌았다.
“먹을 복은 있네.”
선생이 고구마 하나를 들어 쪼갰다.
노란 속살이 부드럽게 갈라지며 드러났다.
“호박고구마다.”
작대기 선생이 말하며 난로 앞에 접이식 의자를 하나 펴줬다.
난 화목 난로 앞, 의자에 앉았다.
곧바로 고구마 반쪽을 받아 뜨거움을 참고 껍질을 후다닥 까서 한입에 넣으니 부드러운 단맛이 입안에 휘몰아쳤다.
꿀맛이었다.
“선생님.”
“왜?”
먹으며 말했다. 굳이 주저할 이유가 없기에.
“저랑 같이 일하시죠?”
불멸자 자연인 작대기 선생, 스카우트 대상 1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