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Of the Unique Lineage RAW novel - Chapter 486
71. 생각해 보고
“이 새끼!”
기남이 아저씨가 이렇게 기뻐하는 걸 보니, 새삼 그동안 내가 한 일이 뿌듯해졌다.
이렇게 좋아하실 줄은 몰랐다.
다만, 기쁨이 너무 넘치셔서 뒤에서 어깨를 움켜쥔 마리 이모의 손길을 자꾸 뿌리치려고 하는 게 문제라면 문제랄까.
“놔! 놔!”
“너무 기쁘시군요.”
“저 새끼!”
이 새끼에서 저 새끼가 된 건 등급이 오른 걸까.
아니면 애칭의 변화라고 봐야 할까.
나쁜 건 아닌 것 같은데.
내 옆에서 미랑이 손을 허벅지에 끼운 홀스터 위에 올려 둔 게 보였다.
홀스터 안에 들어 있는 건 긴 총신을 가진 광학 리볼버다.
미랑의 커스터마이징 장비다.
“놔아!”
너무 기뻐 날뛰는 아저씨를 진정시킨 건 마리 고모였다.
힘으로 어깨를 눌러 앉혀 버렸다.
“그만. 더 하면 의자 부서져요.”
장모님이 장인어른의 어깨를 누른 채로 하는 말이다.
의자가 부서지는 게 문제가 아니지 않나?
그대로 내리눌러서 의자를 부수면 장인어른의 어깨가 먼저 부서질 것 같은데.
하지만 아무도 그걸 걸고넘어지는 사람은 없었다.
이게 바로 변신족의 카리스마일까.
아니면 결혼해서 아이를 낳은 여자의 카리스마일까.
본래 마리 고모는 평생 아이를 낳을 수 없는 몸이라고 했었다.
그걸 할아버지, 이제는 돌아가신 고 박병준 박사가 고쳤다고 들었다.
아이를 원하는 딸을 위해, 평생 연구만 하다가 돌아가신 분이라고 했던가.
그래도 웃으면서 죽었다고, 다들 호상이란 말을 했었다.
내가 아주 어릴 때, 장례식에 갔던 기억이 있다.
그분은 죽는 그 순간까지도 딸만 찾으셨고.
마리 고모가 살포시 안아 주는 게 그분의 마지막이었다고.
그런 딸이다.
정미랑은 그렇게 태어난 딸이었다.
쒸익, 쒸익.
불멸자답지 않게 숨을 몰아쉰 장인어른은 한동안 날 노려보다가 입을 열었다.
“조건? 좋지, 근데 이 새끼야. 그보다 먼저 해야 할 게 있지 않냐?”
먼저? 뭐? 할 건 다 하지 않았나?
슬쩍 장모님 눈치를 봤다.
언제나 반걸음쯤 내 편을 들어 주던 분이었는데.
이번에는 입을 다무셨다.
왜? 뭐가 문제지?
잠깐 생각해 봤지만, 통 문제를 알 수 없었다.
특수종 세계에서 두각을 보이라 해서, 그렇게 했다.
노 페이스 팀의 리더.
이게 지금 내가 가진 명함이다.
사관학교 조기 졸업.
이후의 이름을 쏙 들어가게 한 위명.
뭐가 부족한 걸까?
돈? 에이, 설마.
내 부친의 성함이 유광익이시다.
NS의 창업주이자, 현존하는 최강의 특수종.
내가 바로 재벌 2세였다.
애정? 마음? 부족한 게 없는데.
이 세상에 나보다 미랑이를 위하는 사람은 지금 눈앞에 두 분 말고는 없을 텐데
“넌 내 딸의 혼삿길을 막았어, 이 생키야.”
장인어른은 어린 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흥분했다. 발음이 잇새로 샜다.
나머지 설명은 장모님이 덧붙였다.
그 전에 미랑이를 내보내셨고.
“미랑아, 나가 있어.”
그녀는 불멸자, 나간다고 못 듣진 않겠지만.
어쨌든 그녀가 홀스터를 만지작거리다 나가고.
잠시, 아주 잠시 장모님이 날 지긋이 바라봤다.
눈에 애정, 걱정, 우려 비슷한 무언가가 어린 게 보였다.
“너 미랑이 허락은 받았니?”
장모님, 아니 고모의 질문을 받는 순간, 뇌전을 발동하지 않았음에도 머릿속에 벼락이 내리쳤다.
아, 하도 정신이 없어서 깜빡했다.
프러포즈를 안 했다.
고백 비슷한 건 했던 것 같은데 제대로 한 적이 없다.
사전 합의 없이 대중을 상대로 질러 버리기 전,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을 안 했다는 거다.
아 씨.
진짜 깜빡했다.
난 병신인가?
응. 병신이지.
자문자답과 함께 자해로 내 머리를 후려쳐도 할 말이 없으리라.
진짜다. 그걸 까먹은 내 뇌를 회초리로 후려치고 싶었다.
“이 새끼 몰랐던 얼굴인데?”
내 얼굴을 본 장인어른은 황당한지, 입가가 떨리더니 버럭 화를 내며 말했다.
“미랑이가 원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안 해! 평생 내가 데리고 사는 한이 있어도!”
“그건 너무 나갔어요. 하지만 이 의견에는 동의한다. 미랑이는 이런 상황 원했니?”
사실 몰라요. 하하하 병신 같은 뇌가 그걸 까먹었거든요.
근데 원하나? 아니, 날 싫어하나? 설마 아니지?
돌아 나가서 물어봐야 할 것 같은데.
선뜻 발이 안 떨어졌다. 다리 사이에 있는 두 개의 알이 쪼그라드는 기분이 들었다.
차이면? 나 차이면 어떻게 하지?
“쪼다 짓 하지 마라.”
그걸 본 장인어른이 한마디 하고.
‘네’ 하고 답한 내 입에선, 이어서 장인어른이란 호칭이 쉬이 나오지 않았다.
어쨌든 돌아 나가서 물어봐야 했다.
할 일은 해야지.
“후, 으쌰.”
이게 어떻게 이계 탐험할 때보다 더 떨리는 것 같기도 하고.
그렇게 저택 응접실에서 나갔는데, 미랑이 보이지 않았다.
뇌안을 열어 주변을 훑으니 정원 쪽이다.
순혈 정가의 저택은 넓다. 정원사와 요리사가 따로 있는 수준이니까.
근데 왜 아버지는 이런 저택에서 안 사는 걸까.
불편하다고 했던가.
가족끼리 오순도순 밥 지어 먹는 게 기쁨이라고 하셨던가.
검소해서 그러는 건 아닌 게 확실했다.
빌딩 하나를 통째로 사서 개인 훈련장으로 삼으시는 분이 뭘.
그리고 우리 집도 건물 하나에 우리 말고 아무도 안 산다.
위아래로는 전부 무기고나 간이 훈련장, 주문 연구실 따위가 있었다.
바로 옆 건물에는 할아버지와 할머니, 외할머니가 지내시고.
그 바로 옆에는 또 동훈이 삼촌이 살고 하는 식이긴 하지만.
그래서 내가 사는 집을 중심으로 우리 동네를 NS 타운이라고 한다던가.
어지간한 명함 가지고는 동네에 입성조차 할 수 없는 곳.
잡생각을 연료 삼아 걸어 다가가는 길이다.
그동안 좋아한다고 말했을 때마다 미랑의 반응이 머릿속을 스쳤다.
미랑이가 좋아했던가?
그렇게 정원에 나와 눈을 마주친 순간이다.
“왜?”
미랑이 물었다.
새삼 생각해 본다. 난 미랑이랑 결혼하고 알콩달콩 사는 꿈을 꿨는데.
미랑이도 그랬을까? 모른다. 모르면 물어봐야지, 그게 정답이다.
병신 같은 뇌가 뭐라 더 헛소리하기 전에.
“결혼하자.”
“싫어.”
억.
심장에 비수가 꽂혔다.
울컥하고 피를 토할 뻔한 걸 참고 고개를 드니.
미랑이 웃는 게 보였다.
아, 얼마 만에 보는 미소인지.
“장난.”
“장난?”
“생각해 보고.”
“응?”
“오늘은 일단 가고.”
“응?”
“생각해야지.”
툭 하고 미랑이 내 가슴을 밀었다.
이건 그린 라이트인가? 아니면 교통사고인가?
생각한다고? 그동안 수차례 미친 듯이 좋아한다고 말했던 것 같은데.
이제 와서 무슨 생각?
“나 까인 거야?”
“넌 어떻게 생각해?”
그리 말하고 미랑이 쏙 집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난.
“전혀 모르겠는데.”
근데 나 저게 왜 거절로 들리는 거지?
내 귀가 이상한 건가. 뇌가 고장 난 건가.
이건 청천벽력이었다. 진짜 벼락이 치기도 했다. 놀란 내 몸에서 시작된 뇌전이다.
파지지직.
“우리 집 정원 다 태워 먹을 거 아니면 가라.”
언제 나왔는지 기남이 삼촌이 말했다.
그렇게 차인 난 터벅터벅 걸었다.
솔직히 말하면 어떻게 집에 갔는지조차 몰랐다.
당연했다. 미랑이도 원한다고 생각했다.
아니, 그럼, 이제 데면데면하게 누나라고 불러야 하나.
시발, 눈물이 나진 않는데.
전신에 힘이 빠진다.
“아이고, 내 새끼? 일 끝내고 집으로 안 오고 어딜 들렀다 오는 걸까, 이런 내 씨입, 아니 내 새끼.”
집이었다. 그 앞에서 어머니가 웃으며 물었는데.
그걸 보는 순간 반사적으로 몸에 힘이 들어갔다.
“야, 레베카.”
그리 따지듯 손목에 대고 말하니.
“전 힘없는 AI인걸요.”
몰래 다녀오려고 했는데 레베카가 냉큼 말했다.
너무 놀라서 AI의 정보 단속을 시키지 못했다.
“들어와라. 엄마랑 한판 붙을 거 아니면.”
현관 안쪽 아버지가 생긋 웃으시며 날 반겼다.
“네, 음, 엄마?”
“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엄마야!”
“어머니, 소자가 그 할 말이 좀 있는데요.”
일단 미랑이 일은 뒤로 미룰 때다.
어머니 손에 뒈지면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
난 실연의 아픔을 뒤로하고 생존 본능부터 끌어 올렸다.
* * *
“그래서 차였어요.”
내 말에 아버지가 테이블에 앉아 갈색 액체를 흔들다 입에 털어 넣었다.
스트레이트 잔에 담긴 알싸한 액체, 그걸 나도 한입에 털어 넣었다.
속이 뜨끈해지며 위장을 화끈하게 데웠다.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속이려고 속인 건 아닌데, 노 페이스 건은 죄송합니다.”
사과도 했다.
아버지는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고.
“너 한 번 더 그런 짓을 하면 내가 죽인다. 크리쳐 대신 내가 죽일 거다.”
어머니는 데스 노트를 쓰셨다.
알겠다고 했다.
“말만 해, 말이라도 하고 하라고.”
머리를 식힌 뒤에는 저렇게 말씀하셨고.
그 또한 알겠다고 했다.
아버지는 잠시 하늘을 보다가 말했다.
“생각 중이라잖냐.”
“그게 그거 아닐까요.”
“그러냐?”
“그렇습니다.”
“내 새끼가 이렇게 비관적일 리가 없는데.”
“아니 근데 좀 불안하고 그렇습니다.”
“넌 걔가 왜 좋냐?”
술 몇 잔에 취하진 않았어도, 밤의 도시를 배경으로 베란다에서 하는 아버지와의 대작은 감성적이긴 했다.
그래서다.
뜬금없는 질문에 툭 하고 봇물 터지듯 말이 나온 건.
“제가 죽어도 될 것 같았어요. 뭐, 내일 당장 죽어도 사실 아무 일도 없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버지 어머니야, 알아서 잘 사실 것 같고. 제가 사라지면 슬퍼하시긴 하겠지만, 그런 거로 무너질 것 같진 않으시니까.”
이건 한때의 내 얘기다. 멍청이처럼 굴었던 유온신의 이야기.
방 안에 처박혀, 아버지를 향한 시선이 나에게 오는 걸 무서워하던 그런 시절.
“그때요. 그때 옆에 있어 주더라고요.”
위로? 그딴 건 없었다.
미랑은 나한테 총기 분해 시범을 보이곤 했다.
왜 그러냐고 했더니.
취미란다.
얘는 왜 이러나 싶었다.
그랬었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나니, 죽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사라졌다.
그리고 난 방에서 나왔다.
“그러냐?”
아버지는 덤덤하게 털어 내고 술도 털어 냈다.
“속상하게 해서 죄송합니다.”
“괜찮아. 나도 네 할아버지 할머니 내장 많이 뒤틀어 짰다. 네 엄마는 더했지?”
“여기서 내 얘기가 왜 나와?”
어느새 옆에 앉은 어머니가 눈을 부라렸다.
이게 무섭지도 않으신지.
아버지는 똑같이 덤덤했다.
가끔 보면 무슨 생각 하시는지 영 모르겠다.
“그럼, 이제 미랑이는 안 괴롭힐 거냐?”
그러더니 뜬금없는 물음이다.
“제가 괴롭히는 거였어요?”
내가 언제 일어났지? 나도 모르게 의자를 넘어뜨리며 벌떡 일어난 채였다.
아버지가 날 보더니 피식 웃고는 말했다.
“그럼, 이게 편하게 해 주는 거냐?”
“아니, 그건 아니고.”
“그럼, 포기?”
“전혀. 절대, 네버. 아니요.”
“그렇지, 그래야 내 아들이지.”
아버지가 호탕하게 웃었다.
“네, 포기 안 합니다.”
꼴깍.
아버지가 말하며 술을 한 모금 더 드셨다.
나도 맞춰서 마시고.
그렇게 한 잔 두 잔 마시다 보니, 얼굴이 열이 훅훅 올라왔다.
“아오! 아우!”
그 뒤에 무슨 말을 했는지 정확히 기억나진 않는다.
그냥 떠들었고.
시끄러웠고.
어머니가 웃다 말고 화를 내고 또 웃었고.
아버지는 달을 보며 늑대로 변해 보라고 날 종용했다.
난 늑대 대신 팝콘을 튀겨 드리겠다고 한 뒤, 옥수수를 뇌전으로 지졌다.
월광도 보여 드렸다.
“좋죠?”
“좋네.”
중간중간 사고가 멈추기도 했고.
머릿속에 깜깜해지기도 했다.
왜 나한테 특수종 세상에서 두각을 보이라고 한 걸까.
왜 나한테 기회 비슷한 걸 준 거야?
그게 궁금한 참이었는데.
여기서 기억이 끊겼다. 블랙아웃, 술에 진탕 취해 잠들어 버렸다.
다음 날 눈을 뜨자.
“해장에는 뼈다귀지.”
어머니가 뼈다귀해장국을 끓여 주셨다.
이런 말 하기 뭐하지만, 정말 꿀맛이었다.
후루룩하고 해치우고 핑핑 도는 숙취가 싫어서 숙취 해소제를 챙겨 먹었다.
한 알만 먹으면 10분 내로 숙취 해결이다.
인류가 만든 끝내주는 발명품이다.
괜히 네이팜탄을 개량한 지옥 불 수류탄 따위 말고 이런 거나 더 만들지.
“쯧, 이기지도 못할 술을.”
“제가 이긴 거 아닙니까? 어머니?”
“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승부의 세계에서는 결국 살아남은 사람이 이긴 거라고, 제가 살아남았습니다. 어머니.”
“여보, 온신이 머리통 쪼개 봐야겠어요. 벌레가 낀 것 같아요.”
일상에 섞인 농담이다.
“아우.”
기지개를 켠 뒤에 샤워하고 다시 누우니 또 잠이 왔다.
아니, 왜 자꾸 잠이 오냐.
그래, 숙취 해소제가 수면 부족을 해결해 주진 않으니까.
술을 마시고 자면 양질의 수면은 불가능하니.
그럼, 조금 더 자자고.
다시 침대에 드러누우니, 역시 집이 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고다. 집.
무엇보다 미랑이한테 차이는 중인데도 마음이 그리 불편하지 않으니.
솔직히 말하면 아, 몰라 어떻게든 되겠지 상태였다.
진짜 어떻게든 되겠지.
일단 기다려 보는 거다. 그렇게 눈을 감고 잠이 들었고.
다시 눈을 떴을 때다.
주변이 밝았다.
꿈은 꿈인데, 뭐랄까. 이런 건 무슨 상황일까 싶은 그런 꿈이었다.
쿠구구궁.
그때 머리 위에서 거슬리는 굉음이 귀를 때렸다.
반사적으로 몸을 보호하는 방어막을 불러내려는데,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왜?
아, 이상한데.
초능이 사라졌다.
그리고 고개를 들자, 머리 위로 불이 붙은 수직 상승 비행기가 추락하는 게 보였다.
일단 피하고, 봐야 했다.
순전히 감이지만, 저거 무시하면 엄청 아플 것 같단 말이지.
꿈이라고 해도 말이다.
그래서 피했다.
외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