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Of the Unique Lineage RAW novel - Chapter 65
63. 범 내려온다.
“이쪽은?”
퇴근 후 우미호가 말했다.
여기에는 셋뿐이고 날 향해 물어본 건 아닐 테니.
“외부 컨설턴트.”
“금고 터는 데 컨설턴트? 전직이 그쪽이란 소리구나.”
눈치는 빨라 가지고.
“내가 앙, 막 너희 팀장님하고 밥도 먹고, 대리님하고 일도 하고. 다 했어.”
“범죄와의 전쟁?”
“정답.”
이 아재가 이래서 좋다.
범죄 속성 과외 때도 끊임없는 농담을 시도했었다.
물론 지금처럼 결과는 좋지 않았다.
아재요, 농담할 때가 있고 안 할 때가 있는 겁니다.
우미호는 무시했다. 대답조차 안 했다. 공기가 싸늘하게 식는 것 같았다.
“작전 개요부터 설명해 줄까?”
내가 물으니.
“지점 두 개를 털자고 한 건 이중봉 팀장님일 거고, 강도 분장하고 그 수법을 낸 건 이쪽 ‘컨설턴트’겠고, 터는 게 아니라 불 지르자는 아이디어와 세세한 작전 시간 조율은 이동훈 대리님이, 강도는 너, 서포트는 김정아 대리님. 작전 성공 이후 반응을 기다렸고 그 반응이 바로 보안 3팀에 내사가 들어온 거겠고. 내가 더 알아야 할 게 있어?”
……너 혹시 내 스토커냐? 나 몰래 따라다녔냐? 우리 팀 뒤라도 캤냐?
역시 팀장의 숨겨진 딸이라 집에서 시발 팀장이 미주알고주알 떠들었냐?
내 눈을 보고 우미호가 말을 이었다.
“애초에 누가 했다는 걸 몰랐다면 모르겠지만, 안다면 상황을 유추하는 건 쉽지.”
재수 없다.
다른 불멸 대원 앞에서 잘난 척할 때의 나도 이랬을까.
새삼 옆집 혜민이가 떠올랐다.
과외할 때마다 ‘이걸 몰라? 그냥 보면 나오는 답인데? 이 정도면 답지를 던져 주는 수준인데?’라고 얘기했었다.
과거의 나여, 왜 그랬나.
그래도 하나는 틀렸다.
“불 지르는 건 내 아이디어.”
“……잘했네.”
왜 비아냥거리는 것처럼 들리지.
“둘이 친한 거 맞지? 그러니까 이런 일도 도와주는 거고.”
컨설턴트 형이 물었다.
“네, 아마도요.”
난 답했고, 우미호는 또 무시했다.
그래, 인정하지 마라. 나도 너한테 이런 도움을 청할 줄은 꿈에도 몰랐으니까.
어쨌든 나, 유광익.
개나리 우미호.
범죄자 출신 컨설턴트 아재 김중고까지.
이렇게 셋이 합쳐 크리미널 스쿼드를 만들었다.
남은 건 머니 & 세이브 본점을 터는 것뿐.
“여긴 내가 현역이어도 이 상태로는 못 뚫어.”
브라더 중고가 말했다.
헛웃음 나오는 농담을 일삼는 사람이지만, 이 양반을 굳이 내가 데려온 이유가 뭐겠나.
한때 잘나갔으니까 그렇다.
그는 아는 게 많았고, 그 농후한 경험은 곧 가능성을 타진하는 시뮬레이션과 같았다.
“아니, 나 같은 사람 다섯이 뭉쳐도 어렵지.”
“현재로서는 그렇다는 거죠?”
우미호가 오기 전에 이미 작전 초안은 짰다.
“필요한 건, 워 & 멜팅.”
중고 아재가 말했다.
‘워 & 멜팅’ 작전명은 머니 & 세이브에서 따왔다.
지점 두 개가 털린 순간, 화림 내에 숨은 임포스터는 뚜껑이 제대로 열렸다.
그래서 외부 보안 3팀을 묶었고.
머니 & 세이브 본점에 병력을 충원했다.
그토록 피하려고 했던 사설 경비대.
말이 사설 경비대지, 실상은 쭉정이 몇을 제외하면 프로메테우스의 전력이라고 봐도 무방한 놈들이다.
평소에는 은행의 안전을 보장한다는 핑계로 제 위치를 알리지 않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현재 그들은 대놓고 머니 & 세이브 강남 본점에 떡하니 버티고 있다.
그 숫자가 서른이다.
거기에 모든 보안 시스템이 최고조로 경계를 갖추고 있으니.
현대 문물이 빚어낸 난공불락의 성이라 하겠다.
그런 곳을 몰래 들어가 털겠다는 건, 내 목을 잘라서 은행 금고에 넣겠다는 말과 같았다.
그래서 택한 방법이다.
보통 방법으로 안 된다면 판을 엎어 버리겠다는 거다.
정밀한 기계와 사람이 모였다면, 그 모든 정밀함을 부수고 시작하면 된다.
전쟁통에 제 주머니를 얼마나 잘 챙길 수 있을까?
전쟁 중에 모든 시스템은 먹통이 되기 마련이다.
그래서 필요한 게 워(War)다.
“미쳤군.”
말하지 않아도 모든 걸 이해한 우미호가 말하고 날 노려봤다.
“불구덩이에 들어갈 작정이라면 난 빠지겠어. 멜팅? 건물을 녹여 구멍을 뚫겠다고? 그게 가능한 초능 특수종을 데려오는 것부터가…….”
우미호가 말을 끊었다.
아마추어같이 왜 이러실까.
“익명의 초능 특수종이 도와주기로 했구나.”
그녀가 말했다.
“운이 좋았지.”
컨설턴트가 모른 척 말을 덧붙였다.
물론 직접 연락해서 그 열화(烈火) 능력자를 캐스팅한 나도 모른 척했다.
“응, 진짜 운이 좋았지.”
애초에 이 일의 시작은 축능석이다.
거기에서 당한 게 불멸특수대만은 아니었다. 사이오닉 협회 한국 지부도 짜증이 날 만큼 났을 것이다.
하지만 대외적으로 양지의 사업체를 치는 건 불가능.
그럼 이쪽도 같은 방식으로 하면 어떤가.
양지의 사업체를 음지에서 치는 거다.
난 사이오닉 협회의 ‘사’ 자도 나오지 않고 상대를 엿 먹일 기회를 제공한 거다.
“용케도.”
우미호가 말했다.
난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내가 겉보기와 달리 영재 소리를 듣고 자랐다니까?
내가 짠 작전은 전쟁으로 열기를 일으키고 그사이에 본점 금고 뒷벽을 녹여서 뚫는 거였다.
무식하지만.
“때론 단순한 방법이 효과가 있지.”
김중고는 이 작전의 가능성을 이렇게 표현했다.
즉, 가능한 일이다.
물론 문제가 많았다. 금고 벽은 당연히 내열성이 높은 소재를 쓴다.
어지간한 열기로 녹일 수 없다.
그래서 사이오닉 협회가 필요한 거였다.
흔한 발화 능력자로 해결될 수준이 아니었으니까.
발화와 열화 능력은 차이가 있다.
발화는 불을 만들고 일으킨다. 화염계 초능력자 중에서는 흔한 편이다.
열화 능력자는 불꽃을 일으킬 수 없다.
대신 그들은 몸 안에서 연소 반응이 일어나며 원하는 신체 부위에 열기를 일으킬 수 있었다.
발화가 라이터라면, 열화는 달군 돌이다.
길거리를 쏘다니는 프리랜서 중에서도 이런 능력으로 골치 아픈 이들이 몇 있지만.
그들을 구할 시간도, 여력도, 인맥도 없었다.
대신 나에게는 사이오닉 협회 연락처가 있었지.
고순도의 열화 능력자를 길거리에서 구하려면 브로커가 있어도 최소 보름에서 한 달은 걸리겠지만.
협회에서 구한다면 얘기가 다르다.
애초에 초능 특수종 중에서 상위의 능력을 갖춘 이들이 모인 곳이 협회가 아닌가.
그런 내 생각은 맞아떨어졌다.
“그 익명의 열화 능력자는?”
“필요한 순간에, 필요한 장소에서 힘만 쓰고 빠지기로 했지.”
프로다운 일 처리였다.
얼굴도, 목소리도 보여 주지 않고 딱 자기 할 일만 하겠다는 거다.
나머지는 전부 이쪽의 책임이다.
“정말 용케도.”
우미호가 같은 말을 내뱉었다.
알아. 나도 내가 대견하다.
용케도 그런 생각을 했지.
머리에 총구가 닿아도 생각할 시간이 있다면 피할 수 있다.
그런 마음가짐으로 머리를 굴렸다.
“미호야, 네가 할 일도 있어.”
내가 그녀를 불렀다.
내 얘기가 끝난 뒤, 그녀는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친한 척 이름 부르는 건 피해 줘.”
염병, 그게 문제냐?
* * *
한가롭게 점심을 먹고 난 뒤였다.
“부탁한다. 요한아.”
방귀태는 집요했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고.”
그 집요함을 요한에게도 발휘했다.
요한은 분석팀이었고, 귀태는 그런 요한에게 사적인 부탁을 했다.
“내가 그런 걸 할 것 같아?”
요한은 거절했고.
“이거.”
귀태 형은 세상 사는 법을 알았다.
“어디서 구했어?”
요한은 패배를 직감하고 물었다.
“사촌 동생이 열둘이야. 티켓팅쯤이야.”
귀태 형은 그 사촌 동생 열둘을 시켜서 구하기 힘든 뮤지컬 티켓을 구해 왔다.
요한 형은 어울리지 않게 뮤지컬 마니아고.
요새 바빠서 티켓팅은 꿈도 못 꿨을 거다.
“와 씨, . 이거 웹소설 원작이잖아.”
웹소설 원작을 뮤지컬로 만들었어? 제작자가 미친 건가.
“ 같은 거 안 만든 게 다행이지.”
귀태 형이 말했다.
“그건 웹툰 나왔어.”
“그래?”
둘만의 세계를 감상하던 내가 말했다.
“그래서. 우미호 뒷조사를 해 주겠다?”
동기 뒷조사를, 그것도 연애 사업을 위해 청탁한 놈이나, 그걸 뇌물 받고 받아 준 놈이나 매한가지 아닌가.
한심하다. 그런 눈으로 둘을 빤히 보자.
“사랑의 허리케인은 어떤 난관도 이겨 내게 만들지.”
귀태 형이 말했다.
그 난관, 본인이 만든다는 생각은 안 드는지.
“우정의 힘을 얕보는 거냐?”
요한 형이 말했다.
뇌물의 힘 아니고?
어쨌든 둘은 합의를 봤고.
바쁜 와중이었기에 그 결과물은 점심시간을 이용해서 받았다.
덕분에 나도 곁다리로 있다가 들은 적이 있었다.
현재 우미호의 능력 따위를 말이다.
화림 내에서 팬더 대리는 천재로 통했다.
그의 직관력과 상황 파악 능력, 작전 전반에 끼치는 영향은 지대하다.
사소한 실수를 용납하지 않고 일어날 일과, 일어나지 않은 일을 분간한다.
이번 일도 마찬가지였다.
사설 경비대의 출동 시간과 그 움직임, 작전 시간은 전부 팬더 대리가 앉은 자리에서 추측했고 만들었으며, 세부 사항을 짰다.
그건 하나도 틀리지 않았다.
비아냥거리는 용도로 책상 위의 천재라는 말도 쓰지만, 어쨌든 그의 능력은 의심할 게 없었다.
우미호 얘기를 하면서 팬더 대리의 얘기가 나오는 이유는 둘이 비슷한 타입이기 때문이다.
다른 점이라면 우미호 개나리 양은 책상이 아니라 전장에서 그 능력을 십분 발휘한다는 거고.
“내 뒷조사하고 다녀?”
우미호가 물었다.
“내가 그렇게 할 일이 없어 보여?”
뒷조사는 김요한이 했지. 정확하게는 귀태 형이 시켜서 했고.
“김요한, 이 떠버리 자식이.”
우미호가 말했다.
역시 눈치 빠르고 머리가 잘 돌아간다.
내가 미호의 능력을 눈치챈 걸 알자, 앞뒤 상황과 왜 내가 자신의 능력을 아는지 이유를 대부분 파악했다.
뭐, 숨길 거였으면 나도 그럴듯한 연기력을 발휘했겠지만, 이런 사소한 일쯤이야 지금은 신경 쓰고 싶지도 않았다.
이 일이 전부 끝나면 귀태 형의 명복은 빌어 줘야겠지만 말이다.
우미호의 특기는 ‘조율’이다.
그녀는 상황을 눈으로 보고 앞으로 일어날 일을 예측하고 대비할 능력을 지녔다.
타고난 지성과 쌓아 온 잡다한 지식, 사람들의 행동 패턴, 적 지휘관의 머릿속을 들여다보는 직관이 합쳐진 특기다.
이 특기를 통해 전장을 조정해서 ‘조율’이었다.
고로, 그녀는 소수로 다수를 무찌를 수 있는 작전 수행 능력을 갖췄다.
쉽게 말해, 전투 시 감각을 달궈서 통찰함으로 전장 상황을 예지해서 조정한다.
이게 바로 우미호의 특기였다.
이제까지 이걸 아는 건 분석팀 요한과 몇몇뿐이다.
물론 나도 포함이고.
“이거 써라.”
작전 시작 1시간 전.
우리 중고 형은 범죄의 세계에 몸담은 양반답게 현금을 무기로 치환했고, 나한테 가면을 선물했다.
“……굳이요?”
“동네방네 소문낼 일은 아니라며.”
복면으로 충분한데 말이야.
굳이 이런 걸 구해 줬다.
호랑이 가면이다.
차가운 가죽이 피부와 맞닿자 착 달라붙는 느낌이 들었다.
어지간해서 안 떨어질 듯싶었다.
“전문가용이다.”
중고 형이 말했다.
목소리에 자신감이 엿보였다. 마법적 처리나 엑토플라즘 마스크 따위는 아니지만, 얼굴에 붙으면 떨어지지 않는 신소재로 만든 물건이었다.
착용감도 괜찮다.
“나쁘지 않네요.”
그렇게 말하고 기척을 죽였다.
“깔끔하네.”
우미호가 그런 날 평가했다.
깔끔은 무슨, 완벽하겠지.
실전에서 쓰다 보니 몸에 더 익었다.
자, 그럼 가 보자.
음악 켜 주시고.
우리에게 전쟁을 일으킬 병력은 없다.
하지만 난 불멸자고, 불멸자는 혼자서도 전쟁을 치를 수 있다.
다만, 몸이 찢기고 터지는 건 감수해야겠지.
감수할 것이다.
작전 시작이다.
틀지도 않은 음악이 귓가에 울렸다.
두둥, 두두둥, 두둥, 두두둥.
범 내려온다. 범이 내려온다.
장림 깊은 골로 대한 짐승이 내려온다.
“뭐야?”
기척 죽이기는 시야에서 모습을 숨겨주는 광학 위장이 아니다.
고로, 상대가 날 발견했다면 경계심을 일으킬 만했다.
호랑이 가면에 등에 샷건 두 자루를 엑스자로 교차하고, 허벅지에는 보위 나이프 네 자루를 차곡차곡 찼다.
허리에는 권총 두 자루, 손에는 기관단총 한 자루, 가슴팍에는 수류탄까지 야무지게 붙여서 왔다.
난 날 바라보는 놈을 향해 총구를 겨누고 쐈다.
퉁.
단발로 날아간 총알이 놈의 턱을 뚫고 얼굴 중앙에 구멍을 만들었다.
피가 튀었다. 상대는 불멸자로 보였다. 총탄의 충격으로 몸이 뒤로 넘어갔다.
머리통이 뚫렸으니, 일단 하나는 아웃이다.
기척 죽이기가 아무리 훌륭해도 총성까지 숨겨 주진 않는다. 이 한 발로 머니 & 세이브 사설 경비대가 날 향해 시선을 돌렸다.
해 줄 말은 없지만, 이 한마디를 던지지 않을 수 없었다.
때론 가면은 그 사람의 숨겨진 본성을 표현하는 법이니.
“범 내려오셨다. 자식들아.”
난 그렇게 말하며 뛰었고, 곧 총성이 내 뒤를 따라 달렸다.